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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에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했다면 [특집]

한국 총선은 지역구마다 1명씩의 국회의원을 뽑는 것 이외에, 정당 투표 결과를 통해 약 50명의 비례대표를 뽑는 형태다.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방식이지만, 사실 이 방식에는 치명적인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정당 지지율과 실제 확보 의석수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번 총선만 해도 통합진보당은 10%대의 지지율을 얻었지만, 의석은 고작 4%대밖에 얻지 못했고, 새누리당은 약 43%의 지지율로 과반 의석을 가져갔다. 또 하나는 지역구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만이 당선되는 탓에, 영호남 등 지역에서는 특정 정당 외에는 의석을 얻기 대단히 어렵다. 역시 이번 총선의 경우 민주통합당은 PK의 낙동강벨트를 중심으로 40%대의 높은 지지율을 얻었지만, 의석은 단 두 개밖에 가져가지 못했다.

이에 따라, 주로 통합진보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실제 정당지지율을 의석수에 반영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개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모범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독일식 정당명부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한 표씩을 행사한다.
2) 각 지역구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는 그 지역구에서 당선된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같으나, 이후부터가 많이 달라진다.

3) 기본적으로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수가 같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지역구 의원이 246명이므로 비례대표도 246명이 되고, 따라서 의석수는 492석이 된다.
4) 각 정당의 의석수는 정당투표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10%의 정당지지율을 얻은 정당은 10%의 의석을 얻을 수 있다.
5) 이렇게 각 정당이 배정받은 의석은 우선으로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에게 배정되고, 나머지가 비례대표 명부에 따라 배정된다. 단, 비례대표는 한국과는 달리 전국 단위가 아니라 지역 단위로 뽑는다. 비례대표 명단 자체가 지역별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를 ‘권역별 정당명부제’라 부르는 이유.
5′) 정당의 지역구 당선인 수가 배정받은 의석보다 많을 경우 초과의석이 그대로 인정된다. 따라서 총 의석수는 492석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이는 전국적 지지도는 낮지만, 특정 지역에서 확실한 수요가 있는 정치세력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6) 단, 지역구에서 3석 이상을 얻지 못했고(최소의석조항), 지지율도 5% 미만인 경우(5% 진입장벽) 의석 배분을 받을 수 없다. 군소정당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한 ‘저지조항'(=봉쇄조항)이다.

이 방식의 가장 큰 강점은, 역시 표의 비례성에 있다. 내가 던지는 한 표 한 표가 그대로 그 정당의 의석수로 직결된다. 또 한 가지 강점은 비례대표 제도의 강화다. 비례대표를 통해 지역 명망가 대신 특정 분야의 전문가, 소수자들이 국회에 진출하여 더 좋은 정책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많은 지식인들이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임을 주장했고, 통합진보당 같은 경우 이번 야권연대에서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연대의 기본 조건임을 선언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물론 현실화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면, 이번 19대 총선을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시행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이용하였다.

1) 현재의 시도를 그대로 1개 권역으로 환산했다. 시도 간 인구수 차이가 너무 크다는 한계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서로 이해가 다른 두 지역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을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기존 연구는 경기-인천-강원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버리는데, 이렇게 하면 인구수가 압도적인 경기의 이해는 과다하게 반영되는 반면 인구수가 훨씬 적은 강원의 이해는 거의 반영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보다 엄밀한 분석을 위해서는, 권역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2) 시도별 비례대표 정당투표 결과를 그대로 이용하였다.

3) 저지조항은 3%와 5%를 각각 적용하여 분석해 보았으나, 두 경우에 의석수 차이는 없었다. 이는 새누리당/민주통합당/자유선진당/통합진보당 4개 정당을 제외한 군소정당 중 3%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정당이 없고, 군소정당의 지역구 당선인 역시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링크: 19대 총선에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적용하였을 때의 의석수 재계산 표

인포그래픽: 19대 총선에 독일식 선거제도를 도입했다면

총 의석수는 494석. 제주와 세종에서 초과의석이 1석씩 발생하였다. 이중 새누리당이 226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되었으며, 민주통합당이 192석으로 제2당, 통합진보당은 54석으로 제3당, 자유선진당은 17석을 차지하며 제4당의 자리를 차지했다. 무소속이 3석을 차지했다.

이 결과는 실제 정당지지율과도 거의 비례하는 것이다. 특히 정당지지율에 비해 적은 의석(13석, 전체 의석의 4.3%)을 확보하는 데 그쳤던 통합진보당이 전체 의석의 11%에 달하는 54석을 차지하며 여유 있게 원내교섭단체까지 확보한 것이 눈에 띈다.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은 깨지고, 대신 야권연대가 과반을 확보한다.

전체 의석수 비율만 보자면 이보다 더 합리적인 제도가 있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정당지지율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의석수 비율이라니. 그러나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서울의 경우를 보자.

서울에서는 새누리당이 42.28%의 지지율로 1위, 민주통합당이 38.16%로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실제 지역구에서는 새누리당이 16석을 확보하는 데 그친 데 비해 민주통합당은 30석을 차지, 민주통합당이 사실상 완승을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적용한 비례대표 당선인 수를 보면 얘기가 다시 정반대로 바뀐다. 새누리당은 서울에서만 32명의 비례대표를 당선시키는 반면, 민주통합당은 13명의 비례대표를 당선시키는데 그친다. 이 13명이란 숫자는 통합진보당이 당선시키는 비례대표 수인 10명과도 거의 비슷하다.

이런 현상은 서울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부산에서는 새누리당이 지역구 16석을 석권하는 결과 오히려 비례대표는 4명을 내는 데 그치며, 민주통합당은 지역구에선 2명밖에 당선되지 않았지만, 비례대표는 11명을 배출하며 약진한다.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당선자 수는 통합진보당의 부산 비례대표 당선자 수 3명과 거의 비슷하다.

물론 이는 지역색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고, 지역 이해가 지나치게 강조되던 폐해도 완화되며, 자연히 지역감정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지역 대표자로서 지역구 국회의원의 의미는 평가절하된다. 지역구에서 개별 국회의원이 당선되느냐 당선되지 않느냐와 별개로 각 정당의 총 의석수는 변하지 않으며, 지역구를 얻지 못해도 그만큼의 의석을 비례대표가 메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문제나 양극화, 정권 심판 같은 전국적 이슈가 부상하는 대신, 지역 경제 활성화, 지역 대중교통 문제 등의 지역적 현안은 중요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전국적 이슈를 독점하고, 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정치, 경제, 미디어 권력의 중핵이 서울에 집중된 한국 실정상 정책의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아, 결국 수도권 외 지역 소외 현상을 더욱 심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독일 연방제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기반 위에서 만든 제도인 만큼, 실제 한국에 도입하려면 인구와 지역성격 기반 선거구 재구획이 필수적이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지방자치제의 대대적 세부 개편도 필요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닐 것이다.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사이의 불균형도 문제다. 부산을 예로 들어, 새누리당은 18개의 지역구 중 16개를 석권하지만, 그 결과 비례대표는 4명밖에 내지 못한다. 이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배출하는 14명의 비례대표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것이다.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정당은 오히려 지역 명망가만 국회로 진출시키고, 비교적 낮은 지지율을 얻은 정당은 비례대표 전문가들을 대폭 진출시키는 기묘한 구도가 만들어진다.

또 한가지 문제는 비례대표 제도 자체에 있다. 유권자가 후보 개개인에게 표를 던지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비례대표 선거의 경우 유권자는 정당에만 투표하고 의석은 그 정당이 정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오히려 간접적인 투표라 할 만한데, 만일 정당이 비례대표를 엉망으로 정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전문가를 내세우는 대신 적당히 구미에 맞는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을 세워놓고, 비주류 계파의 더 나은 인물을 세우는 대신 적당히 주류 계파가 자리를 독식하고…

이는 사실 기우만은 아니다. 한국의 제왕적 하향식 공천 문제는 거의 매번 지적되고 있고, 최근 이를 극복하겠다며 다양한 경선 방식을 도입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동원 경선 문제가 불거지는 등 여전히 한계가 심각하다. 각 정당 공천심사위원회는 나름의 기준을 두고 후보를 공천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기준이 무엇인지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다. 특히 경선 같은 방식이 잘 작동할 수 없는 비례대표 같은 경우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고, 당장 18대, 19대 총선 때 공천 헌금 사태가 벌어진 것도 바로 이 비례대표 부분에서였다. 과연 비례대표 확대가 ‘전문가, 소수자 국회 진출’ 같은 긍정적인 효과만 낼 것인지 아무래도 회의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유시민 대표의 입을 통해 “하향식 공천은 헌법 위반”이라며 이런 현실에 강경한 발언을 내놓았던 통합진보당은, 오히려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가장 큰 잡음을 일으켰다. 경선 과정에서 이미 주류 계파가 비례대표의 앞 순번을 전부 독식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급기야 5월 2일에는 결국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실이 밝혀지기에 이르렀다. 조사 결과 선거인 명부보다 실제 투표수가 많은 경우가 발견되는 등,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비례대표 순번이 비교적 후순위라 큰 화제가 되진 않았으나, ‘777 대박공약’이라는, 북한과 협력만 하면 연간 몇백조 원이 확보되고 유토피아가 열린다는 괴공약을 내건 후보도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들어있었다. 통합진보당은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정당이며, 실제로 위의 분석에서 무려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며 이 제도의 최대 수혜자가 되는 정당이기도 하다. (독일식으로 환산한 의석수를 한국 국회의원 정원인 300명으로 재환산하더라도 통합진보당은 32석을 획득하여 넉넉하게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재계산 표’ 참조.)

많은 지식인들의 주장대로,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표의 비례성이나 비례대표의 강화 등 많은 강점을 지닌 제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실현 가능성은 별론으로, 이 제도가 대한민국 위에서 실현되었을 때, 그 결과가 과연 우리가 기대하는 바대로 나올지는 훨씬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작업은 무척 사소한 것에 불과하며 분석이라 칭하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지만, 유권자들의 더 많은 고민과 더 진지한 논의를 위해서는 작은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슬로우뉴스 2호 특집, ‘온라인, SNS, 그리고 4.11 총선’ 열다섯 번째 글입니다.

알림

최초 발행한 기사 (2012년 5월 3월 오전 9시)의 의석수 계산 과정에서, 최근 방식과 구식 방식을 혼용하는 착오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본문의 의석수와 엑셀문서, 인포그래픽의 데이터를 최신 방식을 적용하여 수정했습니다. 최종 데이터 적용 시각: 2012년 5월 3일 오후 1시 30분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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