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그냥 컴퓨터 그래픽인 줄 알았어요~’ 

올림픽 성화 점화 직전 평창 하늘에 그려진 오륜기를 TV로 시청했던 많은 이들의 무덤덤했던 반응은 이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평창 오륜기가 1,218대의 드론으로 완성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부터다. 그제서야 많은 이들이 드론의 주인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IT 기술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드론의 주인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인텔이었기 때문이다.

인텔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 컴퓨팅 기업이지만,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숨겨진 승리자’로 부를 만하다. 드론 쇼는 국내 뿐만 아니라 올림픽을 중계하는 세계 여러 나라에 인텔이라는 존재감을 다시 확인시켰던 순간이지만, 드론처럼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평창 올림픽의 방송과 통신 부문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여러 기술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https://youtu.be/fag8nirMXgE

물론 굵직한 국내외 기업들이 협력하고 있는 5G 통신 쪽도 인텔은 이름을 올려 놓기는 했다. 하지만 지난 해 7월 국제 올림픽 평의회(IOC)와 월드와이드 탑 파트너십을 맺은 배경에는 인텔의 IT 기술들이 통신이나 데이터 센터 등 인프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이용자에게 그 가치를 전달하려는 이유가 더 강하게 작용했다.

오륜기 연출의 비밀

화려한 오륜기 퍼포먼스에 쓰인 드론은 인텔 슈팅 스타(Shooting Star)다. 무게는 330g, 384x384x93mm의 크기 밖에 되지 않는 그리 크지 않은 드론이다. 이 드론의 비행 시간은 5~8분, 항속 거리는 1.5km 정도다. 최대 비행 속도는 GPS 모드에서 초당 10m, 라이트쇼 모드에서 초당 3m다. 여기에 10억 색상을 표현할 수 있는 LED를 달았다. 이러한 제원의 드론 1,218대가 동시에 평창 하늘을 날며 군무를 펼친 것이다.

Intel® Shooting Star™
Intel® Shooting Star™

많은 이들이 놀란 것은 드론 군무를 조작했던 환경이었다. 수많은 드론을 날리는 그 어디에도 흔히 말하는 드론 조종사가 없었다. 단지 수많은 드론의 움직임을 사전에 기획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제어하는 임무를 가진 한 사람이 전부였다. 모든 드론 군무를 연출하는 데 한 명의 지휘자 역할을 하는 엔지니어면 충분했던 것이다.

한 사람이 드론 군무를 연출할 수 있게 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곳이 있다. 독일의 무인 항공 스타트업인 어센딩 테크놀로지스다. 인텔은 어센딩 테크놀로지스를 2016년 11월에 인수했다. 인텔에 인수되기 전 어센딩은 이미 인텔 리얼 센스 기술을 접목해 장애물을 회피하는 드론을 인텔의 CES 기조 연설에 공개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앞서 2012년에 드론 군무를 실현했던 스타트업이다.

어센딩 테크놀로지스의 허밍버드는 인텔 슈팅 스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허밍버드 50대를 하늘에 띄운 뒤 컴퓨터에 기반한 자세 및 위치 제어에 성공하면서 가장 많은 군집 드론 비행 기록을 작성했다. 제어 소프트웨어를 통해 드론의 비행을 조종하고 공중에서 상호 통신 속에 복잡한 곡예비행을 할 수 있는데, 이번 평창 하늘에 띄운 슈팅 스타의 기원을 찾자면 이 때라고 볼 수 있다.

50대의 허밍 버드 드론으로 첫 군집 비행에 성공한 어센딩 테크놀로지스. (출처: ascending technologies http://www.asctec.de/en/back-to-the-future-5-drone-invasion-swarming/)
2012년 50대의 허밍 버드 드론으로 첫 군집 비행에 성공한 어센딩 테크놀로지스. (출처: ascending technologies)

그런데 드론 군집 비행은 단순히 하늘에 드론을 날리는 기술이 아니다. 군집 비행은 일반 드론 비행과 달리 군집 로봇 공학에 더 가깝다. 드론 자체도 로봇 공학의 일부이긴 하나 군집 드론은 벌이나 개미처럼 군집 생활을 하는 곤충의 행태를 모델로 많은 드론의 상호 작용을 실험하고 있다. 군집 비행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컴퓨터와 엔지니어도 중요하지만, 비행 중인 드론들 간 네트워크로 작동 정보를 실시간으로 교환함으로써 각 드론의 간격 유지는 물론 위치 변경 및 이동시 충돌을 방지하고 있다.

인텔은 어센딩 테크놀로지를 인수한 이후 군집 비행에 동원되는 드론의 규모를 수백대까지 늘렸고, 이번 평창에서 1,218대라는 새 기록을 썼다. 앞으로 인텔은 더 많은 군집 비행 기록을 계속 세워 나갈 것은 뻔하지만, 이러한 군집 비행 기술을 드론이 아니라 다른 산업과 접목할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군사 분야처럼 드론을 활용하는 곳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스마트 시티에서 수많은 자동차들이나 수송용 드론이 안전하고 빠르게 도로를 달릴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그 미래의 모습을 드론으로 우리는 미리 만났다. 평창에서.

안방의 시청자를 평창으로 인도하다

인텔은 지난 해 CES 2017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VR 헤드셋을 쓴 시청자가 앱을 통해 경기장에 있는 가상현실 카메라를 이동하며 실시간 중계를 볼 수 있는 대화형 가상현실 방송 기술인 트루 VR 기술(True VR Technology)을 공개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이 기술은 가상현실의 미래쯤으로 받아들였지만, 인텔은 이번 평창 올림픽을 통해 가능성의 기술이 아닌 상업용 기술이라는 것을 증명해내는 데 성공했다.

트루 VR은 2016년 11월 인수한 VR 스타트업 보크(Voke)의 자산이었다. 보크는 인텔에 인수되기 전 몰입형 스포츠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VR 관련 기술을 2004년 설립 이후 10년 넘게 개발해온 곳이다. 보크에서 개발한 트루 VR 기술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 실제와 같은 몰입형 경험을 구현하기 위한 스테레오스코픽 캡처 시스템과 다양한 플랫폼에서 이 경험을 살리는 멀티 플랫폼, 그리고 방송에 친화적인 솔루션의 구축이었다. VR 생중계에 필요한 영상 캡처 및 각 카메라 지점의 시간을 동기화하는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인텔 캐피털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보크

보크가 인텔에 인수되기 전 개발했던 트루 VR의 캡처 시스템은 일반적인 VR 카메라가 아니다. 트루 VR을 위해 보크가 만든 VR 카메라 ‘포드'(Pod)는 입체감과 깊이를 측정할 수 있도록 2개씩 쌍을 이룬 12개의 4K 카메라를 하나의 몸통에 넣어 180도를 촬영한다.

포드에 탑재된 카메라는 어안 렌즈를 쓰지 않으므로 어안렌즈로 촬영하는 것보다 왜곡이 거의 없는 영상을 촬영하지만, 포드의 모든 카메라로 수신된 시간당 1TB에 이르는 48K 영상을 실시간으로 이어 붙이고 압축해 전송하려면 고성능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다.

더구나 포드가 늘어날수록 이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컴퓨팅 파워도 더 요구되기 때문에 더 강력한 컴퓨팅 환경을 구축할 수 있고 이번 평창 올림을 위한 전용 데이터 센터를 건립한 인텔에게 매우 의미 있는 시도다.

그래서 인텔은 트루 VR 기술을 위한 컴퓨팅 파워를 선보일 수 있도록 개선된 포드를 이번 평창에 가져왔다. 각 포드는 평창 올림픽 스태디움을 비롯해 하프파이프, 슬라이딩 센터, 피겨 및 쇼트 트랙 경기장, 스키 경기장 등 배치됐는데, 각 경기 중계에 4~6대의 포드를 설치한 뒤 올림픽 방송 서비스 (OBS)와 함께 라이브 및 주문형 비디오 콘텐츠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30개의 올림픽 행사를 실시간 중계 및 녹화했다.

트루 VR을 이용한 인텔의 올림픽 중계에서 특이한 점은 가상현실 생중계 안에 TV용 방송도 함께 함께 표시한다는 점이다. 트루 VR로 생중계된 윤성빈 선수의 스켈레톤 경기에서 출발선에 있는 VR 포드로 스타트 장면을 본 뒤 다음 포드로 넘어가기 전까지 실제 중계방송이 함께 표시된다.

이 때 가상 현실 영상과 실제 중계방송의 타임라인을 정확하게 일치시켜 가상현실 환경의 현장감을 살리면서 동시에 몰임감을 높여 TV와 차원이 다른 방송 경험을 제공했다. 해상도나 지연 현상 등 약간의 문제는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지만, 그동안 가상현실 생중계나 녹화 중계가 가져올 재미를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제대로 맛보게 했다.

중요한 건 기술의 진심을 보여주는 것

인텔은 드론이나 VR 이외에도 사실 평창 올림픽에 상당한 IT 인프라와 기술을 쏟아 부었다. 평창 올림픽에서 생성되는 모든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올림픽 전용 데이터 센터의 서버들도 모두 인텔의 자원이었고, 하키 경기장과 피겨 경기장에 설치된 100대의 타임 슬라이스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전송하면서 5G 기술 상용화를 위한 첫 시작에 상당부분 기여했다.

다만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프리D라 불리는 인텔의 기술을 경험하지 못한 것은 다소 아쉽다. 프리D는 복셀(Voxel)이라는 공간 픽셀 정보를 활용해 마치 현장에 가까이 들어가 촬영한 듯 한 영상을 보여주는 기술이다. 원래 이 기술도 2011년부터 360도 리플레이 기술을 개발하던 리플레이 테크놀로지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 인텔의 일부가 됐다.

여러 각도에 설치된 수십, 수백 대의 5K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한 뒤 이 영상들의 픽셀 정보를 공간으로 조합해 내는 것으로, 완성된 복셀 영상은 어느 각도에서 실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촬영한 것처럼 자유자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메이저리그와 NBA에서 시범 서비스를 했던 프리D는 카메라로 수신된 영상을 통해 복셀을 구축하기 위한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써야 하는 까닭에 인텔이 많은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이 기술은 다음 도쿄 올림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인텔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처럼 인텔에게 평창 올림픽은 그들의 기술을 보여주고 공유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흥미로운 공통점을 갖고 있다. 먼저 대부분 인텔의 원천 기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슈팅 스타 드론이나 트루 VR, 프리D는 모두 수년 동안 연구 개발 중이던 스타트업의 기술을 인텔의 다양한 역량을 더해 더 발전시킨 것이다. 물론 이 기술들이 모두 인텔의 컴퓨팅 파워나 네트워킹 기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그러한 일찌감치 그 가치를 알아채고 꾸준히 투자하고 보완한 결과를 지금 볼 수 있던 것이다.

https://youtu.be/ocaObyffHAk

무엇보다 이러한 기술들이 단순히 기술적 가치로만 머물게 한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창 하늘에 오륜기를 그리는 드론, 안방에 앉아 평창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던 VR 기술은 단지 기술의 우수한 가치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기술의 결과를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공유함으로써 어려운 기술을 더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드론과 VR, 복셀 기술은 네트워크와 컴퓨팅, 사물 인터넷 등 매우 어렵고 복잡한 온갖 기술이 뒤섞여 있으나 평창 올림픽은 그 어려운 기술을 설명하지 않아도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하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지 생생히 보여준 것이다.

많은 이들은 이것을 우리의 힘으로 해내지 못했다는 것에 자책하고 제도를 비난하지만, 사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각도에서 심어 놓은 생각의 씨앗을 틔워 뿌리를 내리고 굵은 줄기로 키운 기술을 공유하는 환경과 방법이 가장 큰 차이다. 인텔은 CPU를 공급할 뿐 드론 제조사라 볼 수 없는데, ‘드론’하면 이제 그들을 떠올린다.

방송사도 없는 인텔은 VR 생중계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이 된 것이 그저 돈으로만 되는 일은 아니다. 모두 인텔의 기술이 아니지만, 이제 우리는 드론과 VR을 보며 인텔을 떠올린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기술의 진심을 누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인텔은 그 메시지를 한국에 남겼다.

[divide style=”2″]

키사 KISA 리포트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