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슬로우뉴스는 NCSOFT와 함께 2016년 연중기획으로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사회에 초래한 변화를 점검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미래 읽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Next.Economy.X
- → 10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자동차 혁명
- 거인 위에 올라간 난쟁이: 디지털 공유 지식과 교육의 미래
- 예언의 시간이 다가온다: 2030년 에너지 대전환
- Next.Economy.X 시리즈는 도시, 환경, 에너지, 인공지능, 교육 등의 분야에 걸쳐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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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도심의 고급주택 양식인 타운하우스 중에서도 뉴욕 맨해튼의 타운하우스는 적갈색 사암으로 외벽을 쌓아 흔히 “브라운스톤(Brownstone)”이라 불린다.
‘말똥’과 브라운스톤의 현관 계단
하지만 뉴욕의 타운하우스는 런던이나 파리의 타운하우스와 다른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건물의 1층이 도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스툽'(stoop)이라고 부르는 현관 앞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주인이 사는 층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보면 불편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그 계단은 인류 교통수단의 역사를 담고 있다.
뉴욕은 자동차가 개발되기 훨씬 이전부터 세계적인 규모의 대도시였고, 주 교통수단은 당연히 마차였다. 1800년대 말에 이르면 뉴욕에만 약 20만 마리의 말이 마차를 끌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 자란 말 한 마리가 하루에 싸는 똥은 약 10kg. 그렇다면 뉴욕에서 하루에 약 2천 톤이고, 한 달이면 6만 톤의 말똥이 거리에 떨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청소할 겨를이 없이 쏟아지는 말똥은 뉴욕의 거리를 두툼한 카펫 처럼 뒤덮고 있었고, 거기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뉴욕의 브라운스톤 집들이 높은 1층을 갖게 된 이유는 그만큼만 높아도 거리의 말똥 냄새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면, 1898년에 열린 첫 국제도시계획 컨퍼런스[footnote]international urban planning conference[/footnote]에서 가장 크게 다룬 주제가 “도시의 말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을 정도였다. 당시 계산에 따르면 뉴욕의 인구와 마차 증가율을 고려하면 1930년에는 거리에 깔린 말똥의 두께가 건물 3층 창문에 도달할 것이었다. 이렇다 할 해결책도 없었고,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예고된 환경재난은 일어나지 않았다. 구원의 손길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왔다. 바로 자동차였다. 자동차 대중화의 시초였던 포드의 모델 T는 1908년부터 약 20년간 무려 1천6백만 대 이상이 팔리며 미국 거리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버렸고, 그 결과, 오늘날 뉴욕시민들은 왜 브라운스톤이 불편한 현관 계단을 가졌는지 알지 못한다.
100년 만에 다시 찾아온 교통혁명
지금 전 세계는 그런 100년 전과 같은 엄청난 변화가 온다고 흥분하고 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16년 5월 18일 의회연설에서 “영국이 자율주행차량과 전기자동차를 포함한 새로운 교통수단 개발의 선두에 서도록”할 것을 당부했고, 일본과 독일의 자동차 회사들 역시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량 시장을 선점하겠다고 선언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MrQ6cE6gpc
현재 그려지고 있는 운송수단 혁신의 밑그림대로라면 말이 끄는 힘에서 내연기관으로 전환된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큰 변화가 5년, 10년 이내에 시작될 것이다.
2015년 11월 토요타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10억 달러를 들여 토요타 연구소(Toyota Research Institute; TRI)라는 자율주행 및 자동차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내연기관과 고급 승용차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독일 자동차 기업 또한 자동차 산업의 성격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디젤 스캔들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폭스바겐은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시설에도 무려 1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내연기관에서 전기자동차로 기업의 무게 중심을 옮기는 노력을 시작했다. BMW 역시 배터리 용량을 두 배 이상 늘린 전기자동차를 2016년 여름 중으로 시장에 선보이겠다는 계획과 함께 2021년에는 전기 자율주행차를 출시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들 전통적인 자동차 강자들이 경쟁해야 할 상대도 만만치 않다. 바로 미국 디트로이트의 기업들이다. 올해 들어서는 GM이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의 경쟁 기업인 리프트(Lyft)에 5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자율주행과 자동차 네트워크 분야(Connected Car)에서 협력을 시작했다. GM은 올해 들어 자동주행 전문 스타트업 크루즈 오토메이션(Cruise Automation)을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포드 역시 올해 초 실리콘밸리에 자율주행과 자동차 네트워크를 연구하기 위한 ‘포드 스마트 모빌리티’라는 연구소를 설립했고, 5월에는 클라우드 전문기업인 피보탈(Pivotal)을 1억 8,220만 달러에 사들인 데 이어 우버와도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디트로이트 vs.(&) 실리콘밸리
하지만 그러한 디트로이트의 기업들마저 두려워하는 상대가 있으니, 바로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다. 대표적인 전기자동차 생산업체인 테슬라가 2012년 첫 세단인 모델 S를 내놓았을 때 미국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소비자 전문지 컨슈머리포트는 테슬라 모델 S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제까지 우리가 테스트해 본 자동차 중 최고 점수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만점을 넘어섰다.”
100년 넘게 자동차를 만들어온 독일과 미국의 업체들이 설립된 지 9년밖에 안된 신생 업체에 성능에서 추월당한 것이다.
디트로이트가 두려워하는 것은 테슬라뿐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 기업 구글은 일찌감치 자율주행차 개발에 뛰어들어 현재 그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다고 평가받는다. 차량 공유 서비스의 대명사인 우버 역시 IT 분야 최고의 연구기관 중 하나인 카네기 멜론 대학교와 제휴를 맺고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혁신의 주도권을 쥐고 앞서 나가자 당황한 디트로이트의 3대 자동차 업체들은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시장점유율 1, 2위인 GM와 포드는 앞서 말한 대로 신생업체들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실리콘밸리를 따라잡으려 하고, 3위 업체인 크라이슬러는 구글, 우버와 파트너십을 고려하고 있다.
이들 디트로이트 업체들이 실리콘밸리와의 경쟁을 버거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근본적으로 ‘내연기관’에 기반을 둔 회사들이라는 데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들은 지난 1백 년 동안 내연기관에 기반을 둔 자동차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1백 년 전의 교통혁명이 말의 품종개량으로 시작된 것이 아닌 것처럼, 코앞에 다가온 교통혁명 역시 내연기관과 무관한 기술들에 기반해 있다. 바로 전기자동차, 자율주행기술, 차량 공유 서비스, 그리고 차량 네트워크 기술이 그것이다.
1. 전기자동차
전기자동차는 자동차의 핵심기술인 내연기관, 동력 전달장치, 냉각장치, 연료 탱크 등의 기술을 쓸모없게 만든다.
전통 자동차 기술에서 뛰어난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독일,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 자동차 기업에 전기자동차의 대중화는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한다. 앞서 언급한 테슬라의 모델 S는 2015년 미국에서 25,202대가 팔려 21,934대가 팔린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를 꺾고 고급차 부문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다.
물론 그렇다고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을 생산하는 전통 자동차 기업에 당장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테슬라는 2015년 미국 자동차 신차 시장에서 1% 미만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긴 충전 시간, 부족한 충전소 등 전기자동차는 아직 전통 내연기관과 비교하면 불편한 점이 많다. 전기자동차의 대중화는 앞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기자동차의 대중화는 이미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테슬라가 발표한 모델 3는 지난 4월까지 26만7천 대의 선주문을 기록했다. 앞으로 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만큼의 소비자들이 다른 차를 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 테슬라를 지켜보는 독일 자동차산업에게서는 긴장이 느껴진다. 독일 자동차산업 애널리스트인 페르디난드 두덴회퍼는 이렇게 말한다.
“독일인들은 자동차 엔지니어링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아무도 독일보다 차를 잘 만들 수 없다고 믿었고, 그래서 캘리포니아의 젊은 애송이(테슬라의 설립자 일란 머스크)이 차를 만든다고 했을 때 웃어넘겼다. 하지만 이제 독일은 그가 혁명을 주도하는 것을 지켜보는 중이다.”
출처: LA타임스
2. 자율주행 기술
이미 제한적인 자동운전 기능(autopilot)이 제네시스, 아우디, 벤츠 등 고급 승용차에 본격적으로 장착되기 시작했지만, 구글은 완전한 자율주행차량으로 1백만 마일, 1백6십만 km를 달렸다.
테슬라는 한술 더 떠서 이미 팔린 모델 S에 자율주행에 필요한 하드웨어가 장착되어 있다는 깜짝 발표로 화제가 되었고, 무선으로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은 운전자들은 벌써 운전대에서 손을 뗀 채 도로를 달리고 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자율운전 모드를 켜놓고 달리며 잠에 빠져든 운전자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분적인 자동운전으로 시작해 완전한 자율주행까지 이르는 시간은 이를 예측하는 전문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운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자동운전과 자율주행 등 소프트웨어 부분에서 전통 자동차 기업이 경쟁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전통 자동차 기업은 지금까지 내연기관 등 하드웨어 기술 개발에 집중했고 소프트웨어 기술은 아웃소싱했기 때문에 자동운전 기술을 자체 개발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토요타, 포드, GM 등이 2016년 앞다투어 실리콘밸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뒤처진 소프트웨어 능력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내연기관 등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옮겨가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의 진보는 그 자체가 전통 자동차 기업에는 위협이다.
3. 차량 공유 서비스
전 세계 대도시를 중심으로 우버, 리프트, 디디추싱(滴滴出行, 중국), 겟트(Gett, 유럽) 등 차량 공유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주차문제가 극심해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했던 사람에게 차량 공유 서비스는 매력적이다. 매일 1시간 넘게 운전하는 시간을 아깝게 여기면서 동시에 승용차의 안락함을 즐기려는 사람에게 차량 공유 서비스는 유용하다.
특히 자율주행 기능과 차량 공유 서비스가 만날 경우 그 파괴력은 더욱 커진다. 많은 집이 2대 이상 차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부부 중 한 사람이 출근을 한 후에 차량이 스스로 차가 필요한 사람의 집을 찾아가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사람들은 자동차의 운용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 출퇴근 패턴, 그리고 더 나아가 자동차의 판매량까지 위협할 수 있다.
사실 그러한 추세는 이미 시작되었다. 전통적으로 16살이 되면 운전면허증을 갖는 것이 일반화된 미국에서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면허 취득율이 급감하여 18살 이전 취득율은 겨우 반을 넘겼고, 18세에서 34세 성인 중 자동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2007년~2011년 사이에만 30%가 감소했다. 최근 우버나 리프트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의 인기는 이러한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4. 차량 간 네트워크
V2V(vehicle-to-vehicle), 혹은 커넥티드카(connected car) 기술이라고도 부르는 차량 간 네트워크는 자율주행차량의 성능과 교통소통, 그리고 무엇보다 교통안전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로 알려져 있다.
미국 정부는 2020년부터 신차에 인터넷 서비스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유럽연합은 2019년을 목표로 ‘협력 지능형 교통체계’[footnote]Cooperative Intelligent Transport System[/footnote]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제도 정비도 한창이다.
1km 앞서 달리는 자동차가 수집하는 초당 2GB 크기의 데이터를 뒤 따라는 자동차가 공유하기 위해서, 반대편에서 중앙선을 넘어오는 차량에 대한 순간적인 제어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보행자가 건너고 있는 횡단보도로 질주하는 차량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매우 안정적인 무선 데이터망과 클라우드컴퓨팅 운영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관련 기술 확보와 데이터 통신 표준 결정을 위해 미국과 유럽의 전통 자동차 기업과 통신 기업, 인터넷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고, 거기에 시민사회 역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동차 네트워크에서 개인정보는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며, 자동차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과 소유권 이슈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교통혁명, 우리는 준비하고 있는가
한국의 자동차산업 앞에 놓인 전기자동차, 자율주행기술, 차량 공유 서비스, 자동차 네트워크 등의 도전이 난공불락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네 개의 변화가 하나씩 하나씩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개별 소비자에게 주행거리가 짧은 전기자동차는 여전히 불편한 대상일 수 있으나, 우버, 리프트, 짚카(Zipcar), 쏘카(Socar) 입장에서 작은 배터리 용량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충전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기능은 이들 차량 공유·대여 서비스에 날개를 달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이동 중에 멀티태스킹을 허용하여 생산성 향상은 물론 다양한 분야로의 파급효과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서 최종 승자가 누구일지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변화의 파급력이 어느 쪽을 향할 지도 우리는 아직 모른다. 가령, 자율운전 차량이 증가하면 도심 교통량이 증가할 것인가, 감소할 것인가를 두고도 서로 다른 예측이 나온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기자동차, 자율주행, 차량 공유 서비스, 자동차 네트워크 등 한 번에 몰려오는 거센 도전을 사활을 걸고 맞서지 않는 자동차 기업의 미래는 없으며, 각 국가의 정부가 교통혁명에 관한 연구를 철저히 해서 나오는 정확한 청사진이 없이는 잘못된 투자로 큰 사회적 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