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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사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내러티브 쓰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썩을 놈. 그게 전화로 묻고 답해서 해결될 일이더냐. 무슨 기사를 쓰려는 것인지 물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러티브 기사(이하 ‘내러티브’)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선 기사의 뼈대가 되는 ‘사실’을 논박 불가능할 정도로 보강하는 것이 급해 보였다.

[box type=”info” head=”내러티브 기사 (내러티브 저널리즘)“]

내러티브(Narrative)의 동사형은 Narrate(이야기하다)이고, 그 어원은 그리스어 ‘알다’라는 뜻의 ‘Gnarus’다. 어원으로 보자면 ‘Know’의 사촌이다. 즉, 내러티브는 그저 이야기를 말하는(Story telling)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이야기 해준다는 뜻이다.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인 것으로 충분하지만,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진실의 전모를 이야기하는 것을 추구한다.

[뉴스가 지겨운 기자] (2013, 안수찬), 출판사 서평 중에서 [/box]

그다음, 그 핵심 사실은 내러티브보다 직관적이고 강력한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하면서 압축적이고 논리정연한 스트레이트를 동원하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조금 후회했다. 나름대로 급박해서 선배랍시고 문의한 것인데 대학원 수업이 임박했다 한들 그렇게 짧고 냉정한 통화로 끝낼 일은 아니었다. 기특하게도 내러티브 저널리즘에 관심을 두는 참한 후배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런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에게 몇 자 적어 보낸다.

‘개념이니 역사니 다 집어치우고 여하튼 ‘내러티브’라는 걸 지금 당장 쓰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하면 되냔 말이야.’

내러티브 기사를 잘 쓰는 10가지 방법

1. 내러티브에 적합한 아이템인지 검토하라

내러티브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10개 기사 가운데 9개는 스트레이트로 쓰는 것이 맞다. 물론 스트레이트 기사 10개 가운데 9개는 불친절한 기사다. 그런데 그걸 전부 내러티브로 바꿀 필요는 없다. 대부분 (훌륭한) 인포그래픽으로 보강할 수 있다.

이때 스트레이트 기사 분량을 줄이고 인포그래픽 공간을 더 확장하는 ‘희생’이 필요하다. 1개 면 전체 또는 3~4개 면에 이어서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문제는 직관적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인데, 이건 언젠가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다.

2. 특히 발굴 특종은 내러티브로 쓰지 마라

물론 발굴 특종을 내러티브로 쓰는 노하우도 있다. 그런데 그건 정말이지 힘이 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그런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면 그냥 미련을 버리고 1번을 다시 읽어보라.

3. 내러티브는 문장이 아니라 취재방법론이다

실은 ‘내러티브는 문장이 아니라 세계관이다.’라고 쓰고 싶었으나 너무 거창한 듯하여 ‘취재방법론’이라고만 일단 쓴다.

내러티브의 바탕에는 공공저널리즘 또는 시민저널리즘의 철학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 ‘엘리트 정보원’이 아니라 ‘시민 정보원’에 뿌리를 박으려는 태도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탑다운’, top-down)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바텀업’, bottom-up) 방식이다.

따라서 시민, 서민, 빈민 중심의 아이템일 때 비로소 내러티브가 그 권능을 제대로 발휘한다.

4. 르포르타주 방식으로 취재하라

르포, 피처, 내러티브 등이 서로 어떻게 구분되는지 여기서 다 설명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르포와 내러티브는 다르다. 그러나 한국에선 르포 쓰는 기자도 드물다. 그러니 (르포를 어떻게 이해하건) ‘나는 지금부터 멋진 르포를 쓸 것이야’라는 태도로 취재해야 한다.

  • 우선 전체를 봐라. 큰 그림부터 그려라. (Look!)
  • 전체를 대표하는 공간, 사물, 사람을 찾아라. (Watch!)
  • 상당 시간 동안, 그것을 관찰하라. (Observe!)
  • 그것이 전체를 표상하는 고리를 다시 한 번 더듬어 찾아내라. (Interpret!)

5. 오감을 동원해 보고 또 봐라

보고 듣고 만지고 느껴야 내러티브를 쓸 수 있다. 내러티브의 기본 전략은 ‘일상과 일생의 재현’에 있기 때문이다. 재현하려면 재현 대상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함부로 껴들지 말고, 그냥 하루종일 지켜보고만 있어도 된다. 보면, 알게 된다. 그동안 취재하면서 뭘 놓쳐 왔는지가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Ben K Adams, CC BY ND
Ben K Adams, CC BY ND

6. 시간을 투자하라

JD, CC BY  https://flic.kr/p/bXANVG
JD, CC BY

따라서 내러티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취재 시간을 보장하는 데스크는 없다. 자기 시간을 헐어야 한다. 술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주말과 휴가를 헐어야 내러티브를 위한 취재를 할 수 있다. 좋은 내러티브도 있고, 나쁜 내러티브도 있다. 나쁜 내러티브는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지 않은 취재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7. 다큐멘터리 영화를 편집한다고 상상하라

영화에서는 하나 하나의 장면(scene)이 모여 의미론적 최소 단위인 하나의 시퀀스(sequence)를 이룬다. ‘야마’(언론계 은어, ‘기사의 핵심내용’ – 편집자)와 ‘문장’에 대한 강박을 벗고 장면과 전개 구조를 영상으로 떠올리며 그 영상을 글로 옮겨라. 독자(대중)는 과연 내가 편집한 이 다큐멘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여 공감하며 봐줄 것인지, 자문하고 또 자문하라.

8. 잘 안되면 다큐적 문학 또는 르포를 읽어라

예컨대 나는 내러티브를 쓸 때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꺼내 몇 페이지 읽고 시작한다. 문장을 베끼는 게 아니라, 그 시퀀스의 리듬감을 익힌다. 한국 기자들은 평소 스트레이트의 리듬에 젖어 있으므로 다큐멘터리 또는 르포의 감각부터 되살려야 내러티브 기사를 밀고 나갈 수 있다.

9. 명사와 동사만 궁리하라

이것은 기사이지 문학이나 철학이 아니다. 형용사, 부사, 상념, 추상언어는 독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물론 각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있다. 그 가운데는 정말이지 천재적인 문재를 갖춘 기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쓰는 기사가 항상 최고의 내러티브인 것은 아니다. 일부 ‘마니아’를 거느릴 수는 있겠지만, 대중을 끌어들이지는 못한다.

우리가 기자 노릇을 하는 것은 ‘덕후’가 아니라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함이 아니던가. 물론 명사와 동사를 위주로 긴 기사를 쓰기는 어렵다. 그래서 자꾸 그 자리에 형용어구, 주관적 상념 따위를 넣게 되는 것이다.

이를 피하려면? 다시 5~8번으로 돌아가라. 많이 보고 또 보고 다큐 방식으로 써라. 거듭 강조하건대 내러티브는 (문학에 그 뿌리가 있긴 하지만) 문학보다는 다큐에 가까운 글쓰기다. 문학의 눈으로 보고 다큐의 렌즈로 써라.

10.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라

안수찬 내러티브 기사 이 모든 잘못을 나도 저질렀다. 그것도 무수히. 글쓰기는 대단한 육체노동이다. 칼로리를 많이 소모시킨다는 뜻이 아니다. 직접 몸으로 쓰는만큼 그 노하우를 체득할 수 있다. 글쓰기 책을 아무리 읽어봐야 글쓰기는 늘지 않는다. 직접 구현하는 만큼만 글쓰기는 진화한다. 내러티브 기사에 대한 책이 몇몇 있지만 (예컨대 [뉴스가 지겨운 기자]와 같은. ^^) 직접 써봐야 나의 감성과 독자의 감성이 어디서 충돌하고 갈등하고 교감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요즘은 방송기자들도 내러티브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방송기자연합회보”의 청탁을 받아 글을 썼다.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개념과 역사에 대한 내용도 있으니 혹시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아래에 링크를 걸어 글 하나를 소개한다.

그 첫 단락을 이렇게 적었다.

내러티브 기사 쓰기를 후배들에게 독려하는 나의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방송에 대한 경쟁의식을 자극하는 것이다. “내러티브만 잘 활용하면 뉴미디어가 우리한텐 기회야. 방송 기자는 내러티브 못하거든. 절대!”

방송기자연합회 – 대중과 교감하는 길,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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