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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의 색다른 진보 12.] 프랑스 민주주의의 사회적 합의 역량을 시험대에 올린 ‘프랑스 학생 시위’에 관하여. (⏳5분)

진영 논리가 판치는 시대, ‘논쟁’이 어렵다. 말, 글로 논하여 다투기보다 SNS에 서로 조롱하고 비아냥대기 바쁘다. 이미 각 부족 입맛에 맞게 답을 정해 놓은 좌우파 지식인은 한 치 이견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토론은 물러나면 죽는 전장일 뿐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차분한 논쟁이 필요하다. 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어떤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토론 테이블에 꺼내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성역화도, 언더도그마도 타파 대상이다.

색다른 관점을 가진 철학자를 소개한다. 독립 연구자 이완(32)이다. 그의 철학과 생각이 정치·사회 논쟁에 작은 불쏘시개가 되길 바란다. 이번에 그와 나눈 인터뷰 주제는 3주째 이어지고 있는 ‘교육 현장에 반발한 프랑스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다.

—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한 건가?

9월 17일이다. 프랑스 공영방송(France24)에 따르면, 그날 파리 교외에 있는 생텍쥐페리 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핵심 요구는 열악한 교육 환경과 인력난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전부터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다른 학교에서도 파업을 벌였지만, 학생들이 파업에 동참해서 시위를 준비한 시기와 장소는 17일 저녁, 파리 교외의 생택쥐페리 고등학교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8일 아침 학생들이 학교를 봉쇄하면서 본격적인 학생 시위가 시작됐다. 21일 월요일 즈음에는 인근 학교로 시위가 확산됐고, 29일 프랑스 노동총동맹(CGT, 노동조합 연합체) 등 여러 노조 파업 호소와 맞물리면서 시위는 전국적 규모로 확대됐다. 여기에 학부모들도 가세하면서 시위가 지속·확산되고 있다. 르코르뉘 총리가 교사 3,000명을 긴급 배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시위가 지역·세대 격차, 기회 불균등 같은 여러 정치 이슈와 얽히는 바람에 쉽게 진정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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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최루탄까지 쏘는 모습도 보이는데, 시위가 얼마나 격해진 것인가?

규모만 보면 10월 6일 전국에서 학생과 교사 등 25만여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는 2024년 우리나라의 응원봉 시위와 맞먹는 규모다. 그런데 시위 규모가 커지면서 방화, 폭행, 기물 파손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법무부에 따르면, 10월 8일 5시 기준 6,877명이 경찰에 구금됐고, 2,376명이 검사의 사법 절차에 넘겨졌다. 경찰 진압도 덩달아 격해져 15세 학생이 손을 잃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마치 68혁명이 돌아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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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의 주 원인 가운데 하나가 열악한 교육 환경이라 들었다. 

2024년에서 2025년 사이 프랑스에서는 공립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의 9.8%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주된 원인은 교사를 충분히 구하지 못해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 정부는 교사에게 매우 적은 임금을 주는 편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물가를 반영한 구매력평가(ppp) 달로 환산했을 때 프랑스 정부는 10년차 중학교 교사에게 연봉 5만 3,157 달러를 준다. 우리나라 정부는 6만 3,636 달러를 주고, 덴마크 정부는 8만 544 달러를 준다. 모두 실수령액이 아니라 법정 급여표 기준이다. 

대우가 열악하니 사람을 구하기 어렵고, 사람을 구하지 못하니 남은 사람이 더 많은 업무를 떠맡다가 학교를 떠난다. 이런 악순환 때문에 이번 학생 시위가 일어나기 전부터 프랑스 교사들이 여러 번 파업에 나섰다. 여기에 더해 많은 지역의 학교 건물이 노후화해 복도에 쥐와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천장에서 물이 새는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사실이 SNS 영상을 통해 확산하면서 타오르는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프랑스 정부가 가난한 것은 아니다. IMF에 따르면, 2024년 프랑스 정부는 GDP의 57%에 달하는 재정을 지출했다. IMF 통계에서 ‘정부’는 중앙과 지방정부, 비영리 공공기관 등을 포함한다. 같은 해 유럽에서 프랑스보다 많은 재정을 지출한 곳은 핀란드와 우크라이나 정도다. GDP 대비 재정지출 규모로 보면, 프랑스는 매우 큰 정부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2002년에서 2024년 사이 프랑스의 GDP 대비 중등교육 지출은 0.2% 줄었는데, 연금과 노인 돌봄 예산은 2.7% 늘었다. 이번 시위가 세대 갈등으로 번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위 현장 현수막: “죄송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원할 뿐입니다.” 위키미디어 공용.
— 프랑스가 열악한 교육 환경을 여태 방치한 까닭은 무엇인가?

우선 비효율적 행정이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 자치권을 가진 행정 단위는 큰 순서대로 레지옹(Région, 광역 자치단체) 13개, 데파르망(Départements, 중간 자치단체) 96개, 코뮌(Commune, 기초 자치단체) 약 3만 5,000여 개로 이뤄진다. 각 자치 단체는 독자적 지방의회와 행정부를 갖고 있다. 

이렇게 지방정부가 많다는 말은 한 지방이 쓸 수 있는 예산도 분산된다는 뜻이다. 여러 코뮌끼리 자율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어 공동 사업을 벌이기도 하는데, 그런 코뮌들의 협력체만 해도 1000여 개에 달한다. 이렇게 행정 단위가 잘게 나뉘어 있다 보니, 일부 기업이 사업을 시작할 때 무려 7개 행정 당국과 따로 협의해야 했던 사례도 있다. 

더 큰 문제는 각 코뮌, 코뮌 협력체, 데파르망, 레지옹, 중앙정부의 권한이 중복되거나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각 지방정부 수반과 행정부처 장관이 다른 정당 소속이라면 합의마저 어려울 수 있다. 이런 복잡한 행정이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다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경고했다. OECD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정부도 문제를 인지하고 2024년 행정통합을 논의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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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분야 행정 역시 복잡하다. 레지옹은 고등학교 운영과 시설 관리를 책임지고, 데파르망은 중학교를, 코뮌은 초등학교를 책임진다. 시설 관리를 위한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것도 각 지방 책임이다. 그리고 교사를 임용하고 교육서비스 자체를 관리하는 것은 중앙정부다. 즉, 위에서 이야기한 시설 노후화 문제는 지방정부 관할이고, 교사 부족은 중앙정부 관할이다. 

이렇게 행정이 나뉘어 있는데 오래된 학교는 넘쳐난다. 2023년에 발표된 프랑스 원로원(Sénat, 상원의원)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중고등학교 58%가 1980년 이전에 지어졌다. 2000년 이후 지어진 고등학교는 13% 밖에 안 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전체 학교 중에서 크게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 곳은 10~20% 정도다. 물론 여러 레지옹이 학교를 보수할 계획을 세웠지만, 세금 수입이 충분히 늘지 않았는데 중앙정부 지원이 줄면서 계획을 따르지 못한 경우도 있다.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의 재정 격차도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책임을 명확히 나누고, 재정을 새로 투입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지금 프랑스 정치는 ‘국민연합’을 중심으로 한 우파와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그 좌파 연합과 갈등하는 ‘불복하는 프랑스’와 집권여당인 ‘르네상스’ 등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 서로 적극 협력하는 사이도 아니니, 신속한 결정이 어려울 것이다. 지방과 중앙, 행정부와 입법부가 분열돼서 모두가 불만족스러운 민주주의가 만들어진 셈이다.

여기에 불어나는 재정적자와 국채 금리, 다급한 안보 위협과 연금 위기까지 더해졌으니, 2027년 대선에서 누가 집권하든 교육 문제에 빠르게 대응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프랑스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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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정당은 이번 시위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좌파와 우파 반응이 뚜렷하게 갈린다. 불복하는 프랑스의 장 뤽 멜랑숑은 유력 대선 후보 중 하나다. 학생 시위를 적극 지지하며 강경하게 진압하는 경찰을 맹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2027년 대선을 앞두고 16세까지 투표 연령을 낮출 것, 대학 선별 입학 제도를 폐지할 것, 대신 교육 예산과 대학 정원을 크게 늘려서 고등학교 졸업시험 합격자가 원하는 전공을 공부할 수 있게 할 것을 공약했다. 이번 시위를 통해 정치색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사회당도 학생들 요구가 정당하며,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고 논평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

– 오렐리앙 르코크(불복하는 프랑스 소속 정치인), 경찰의 강경한 시위 진압을 비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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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국민연합의 마린 르 펜은 시위 도중에 일어난 방화와 폭력을 주로 지적했다. 또한 불복하는 프랑스가 사람들을 선동해서 폭력 사태를 키우고 있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논평했다. 집권여당 르네상스와 그 협력 정당인 호라이즌도 불복하는 프랑스가 청소년을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며 책임을 물었다. 공화당도 비슷하다.

“폭력에 매료돼 있고, 선동을 통해 반란을 부추기며, 심지어 봉기를 조직하려 하는 정당.”

– 브뤼노 르타이오(공화당 소속 정치인), 불복하는 프랑스의 시위 동참 요구 비판하며.

각 정당 지지자들도 시위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다른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10월 6~7일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불복하는 프랑스 지지자 92%가 시위에 공감했지만, 국민연합 지지자 중에서 시위에 공감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31%에 불과했다.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는 고작 19%만 그랬다. 입소스(IPSOS)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이번 시위에서도 프랑스의 정치 양극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양새다. 

지금 프랑스는 대선을 반년 앞둔 상황이다. 이번 시위와 이에 대한 반응이 유력 대통령 후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추후 각 후보에 대한 지지율 여론조사가 나오면 알 수 있을 듯하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프랑스 국민 다수가 이번 시위 목적에 공감하지만 동시 폭력 사태를 우려한다는 점이다. 시위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태에 지쳐서 질서 회복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 이번 시위가 프랑스 정치를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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