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정 75화] 당원은 늘었는데, 갈등과 혼돈은 줄지 않는다. 현대 정당의 딜레마. 한국 정당 민주주의 재설계의 필요성. (장선화 / 고려대 정치연구소 연구교수) (⏳5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 중꺾정 필자의 견해는 참여연대 공식입장이 아니며 다를 수 있습니다.
헌법을 훼손한 비상계엄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과 발전에 정당 역할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6.3 지방선거가 끝난 뒤 한국의 정당정치는 어떠한가. 최근 정당이 정치 양극화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 또한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지방선거에서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은 여당의 당대표 선거에서 정청래 전 대표와 치열한 경쟁 끝에 김민석 후보가 당 대표로 선출됐다. ‘당·정 일치’와 국정 안정을 강조한 김민석 대표 체제는 출범과 동시에 당내 갈등을 조정하고 당·청 관계, 여야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에서는 장동혁 대표의 책임과 당의 진로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장 대표가 강조하는 “당원 중심 정당”을 두고 당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당 운영과 당내 선거에서 당원의 권한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당은 당원만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얻어 집권해야 하는 ‘국민 정당’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이는 뜻을 같이 하는 자들의 모임으로서 비롯된 정당의 원초적 특징과 권력 획득이라는 정치적 목표 간의 긴장에서 발생하는 당연한 현상이다. 명분 뒤에는 각자의 정당 내 지위, 이해관계, 개인적 선호의 우선 순위가 자리한다.
당원 권한은 확대, 혼돈은 지속
최근 몇 년간 한국 정당에서 당원의 권한은 크게 확대되었다. 당 지도부와 공직 후보 선출에서 당원의 비중은 높아졌고, 주요 정치적 결정에서도 당심은 정치인이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가 되었다. 당원 충원과 진성 당원 이해의 반영에 충실한 방향으로 정당정치가 흘러가는 것은 근대 정당의 당연한 모습, 당내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당비를 내는 자발적 당원의 수가 많아진데다 당내 영향력이 커졌으니 선거를 앞두고 허수아비 당원 모집, 후견주의로 점철된 과거 정당정치에서 진일보된 방향으로 정당정치가 회복된 것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제도적으로 당내 민주주의는 진전된 듯한데, 비제도적으로 작동하던 당내 질서는 와해 되었으며 당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은 사라지고 리더 중심의 계파 갈등은 여전하며 정당 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정당 민주주의는 진전된 듯 한데, 정치가 실종되고 한국 민주주의가 어디로 나아가는지는 알 수 없는 혼돈의 상황이 지속된다.
8월 민주당 당대표 선출방식을 둘러싼 국민여론조사 논란은 이 문제를 잘 보여준다. 당비를 내고 정당활동에 참여하는 당원의 선택이 일반 유권자의 선택보다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하지만 정당은 뜻을 같이하는 당원과 정치 엘리트들의 의지를 실행하는 단체인 동시에 국민을 대표하고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집권·공공정책을 결정하는 정치 조직이다. 이 때문에 정당에는 다른 사회 조직과 달리 공적인 지원과 권한과 함께 책임이 부여된다. 장기적으로 당원의 선호와 유권자 국민의 선호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정당에 부담이다.

유럽 정당 정치 사례들은 오랜 정당정치의 경험 속에 당원, 활동가, 대의원, 정당 지역 조직, 중앙당 등이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지, 또한 서로 다른 의견을 어떤 조직적 절차를 통해 조정하는지 보여준다. 특히 지방선거 공직 선출 방식을 살펴보면 유럽 주요 정당들의 정당 조직화 방식과 당내 민주주의제도의 실질적 작동이 유사한 긴장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 영국 노동당에서는 지역 조직과 당원들이 지방선거 후보 선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전국집행위원회(NEC) 역시 후보 자격과 선출 절차에 상당한 권한을 행사한다.
- 프랑스 사회당에서도 지역 당원이 시장 후보를 선택하지만 최종 공천은 도시 규모에 따라 지역 상위조직인 연방평의회 또는 중앙 전국평의회가 승인한다.
- 스페인 사회노동당에서도 지역조직의 참여와 중앙 차원의 연방후보명부위원회의 심의와 조정이 결합돼 있다.
- 반면 독일 사회민주당에서는 지방의원과 시장 후보를 해당 지역의 정당조직과 당원 또는 대의원들이 결정하고, 일반적인 지방선거 후보에 대해 연방 중앙당이 다시 승인하지 않는다.
- 독일 기독민주당 역시 지역과 주 정당조직에 상당한 권한을 부여한다.
제도화된 정당 민주주의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지만 권한의 분산과 동시에 당내 조직 간 협의와 조정과정이 내포되어 있다.
당원 민주주의 확대의 딜레마
당원투표를 확대하고 1인 1표를 도입하는 것은 당내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제도개혁이다. 하지만 당원투표의 확대가 민주적 정당정치의 작동을 보장하지 않으며, 그 결과가 한국 민주주의에 반드시 긍정적이라고만 기대할 수는 없다. 리더는 ‘당심’을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으로 내세우고, 적극적 당원은 자신이 지지하는 지도자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과정에서 당내의 다른 의견은 함께 조정해야 할 의견이라기보다 당원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정당 차원에서 정당 내 지역조직과 대의 기구가 충분히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리더와 적극적 당원이 직접 결합하는 방식의 당원 포퓰리즘이 양당 중심의 한국 정당정치에 만연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우경화와 당원 중심주의는 이와 같은 우려를 확인해 준다. 결과적으로 정당 내부의 권력 투쟁과 갈등 속에 당원 민주주의 확대가 역설적으로 정당이 대표하는 사회적 기반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당의 경우 당대표 선거에서 당원은 당·정 일치를 내세운 후보를 선택했지만 대통령과 당대표, 전현직 지도자와 당원 사이의 갈등을 정당 내 어떤 조직과 규칙을 통해 조정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아있다.
정당 정치의 문제는 결국 국회 정치로 이어진다. 양당 이념적 거리의 증가와 리더 중심의 정당정치가 고착화 되고 양당 지도부가 적극적 당원의 선호에 더욱 민감해진다면 상대 정당과 협상할 공간은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협상과 타협은 민주주의의 정상적 과정이 아니라 지지자에 대한 양보나 배신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핵심은 당원 참여를 ‘정치’로 전환하는 일
당원 참여의 확대는 한국 정당정치 민주화의 한 과정이다. 과거처럼 소수 정치 엘리트에게 결정권을 돌려주는 것이 답은 아니다. 국민여론조사의 비중을 계속 높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여론을 그대로 따르는 정당은 여론에 반응하는 선거기구가 되기 쉽다. 필요한 것은 참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참여를 정치로 전환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드는 일이다.
정당에는 지도자와 당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조직과 대의기구, 의원과 당직자, 서로 다른 정책과 의견을 가진 집단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경쟁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면서 하나의 정치적 선택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다. 당원의 뜻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지속가능한 정치적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
당지도부 선출과 공직 후보 선출에 당원과 국민여론의 참여 비중이 얼마인지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앙과 지역, 당원과 의원, 지도부와 대의기구 간의 권한 배분과 의견 조정 절차까지 고민해야 한다. 당원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당내 민주주의에서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당원의 목소리를 조정할 수 있는 정당 민주주의 설계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정당정치의 회복을 넘어 정당 민주주의의 의미와 형태를 고민해야 할 지점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