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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세븐’ 나경원

성경 잠언 6장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 거짓된 혀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잠언 6:16-19)

실로 마주치기 싫은 것들이요, 행여 만날까 두려운 사람들이다. 살면서 이런 사람들 엮이지 않게 해 주십사 기도하고 싶은 이들이다. 그러나 신은 때로 무정하여 우리에게 그런 흉물을 내린다. ‘너희들이 어떻게 하나 보자’는 식으로 손가락으로 튕기듯 그런 악종들을 우리 사이에 떨군다.

‘세븐’ 종합세트 나경원 

최근 나는 이 ‘세븐’ 종합세트를 발견했다. 범상한 무리 가운데 하나가 아니요, 어디 교도소에 처박혀 썩고 있는 인생도 아닌, 이 나라의 최상층, 최고위급 인물이고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지배할 수도 있는 입지에 있는 자다. 그 이름은 나경원이다.

나경원. 최근 일베를 싱크땡크로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은 2013년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2.0)

나경원. 사진은 2013년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2.0)

워낙 망언을 밥 먹듯하고 본심인지 실언인지 모를 실수를 물 먹듯 하는 위인인지라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는데 일간 언론을 장식한 그 망발에는 실로 책상을 치며 이마에 실핏줄을 세우고 말았다.

“문재인 정권은 광주일고 정권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을 차별하면서 더 힘들게 하는 정권에 대해 부산, 울산, 경남지역 주민들이 뭉쳐서 반드시 심판하자.

이 정권이 부울경 쪽에 인재를 등용하는가 봤더니, 간단한 통계만 봐도 서울 구청장이 25명 중 24명이 민주당인데 그 중에서 20명이 광주, 전남, 전북이더라.” (이상 ‘나경원’)

-중앙일보, ‘나경원 “문재인 정권은 광주일고 정권…부울경 차별”, 배재성, 2019. 8. 31.에서 재인용.

정치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정권 획득인 이상 그에 반하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물어뜯고 폄하하고 저주하는 것 가능한 일이다. 전쟁 치른 나라에서 투철한 반공 의식 충분히 지닐 수 있다. 국제 정세상 친일 친미가 나라의 살 길이라고 여길 수 있다. (딴에는 나도 그렇다.) 성경대로 일곱 번의 일흔 번이라도 용서할라치면 지금까지 나경원이 펼쳐온 망언과 망동 다 용서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저 발언은 용납할 수 없다. 전혀 근거와 이유 없이 여러 세대에 걸쳐 한 지역을 옥죄어 온 악마의 관뚜껑을 여는 일이요, 신이 싫어한다는 일곱 가지 범죄의 결정(結晶)이기 때문이다.

‘호남 차별’, 그 악마의 관뚜껑을 열다 

하다못해 인종갈등은 피부색의 차이라도 있고 옛 유고슬라비아나 인도 경우는 종교의 차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호남 차별에는 이유가 없었다. 지역감정이라는 말 자체는 오히려 왜곡이다. 그건 열성적이고 감정적인 호남 포위였고, 일본인이 조센징 다룬 인종주의와 다르지 않은 차별이었으며 세대와 세대를 잇고 생물학적 유전처럼 전해지는 악종 DNA였다.

대관절 무엇 때문에 조선 시대에도 없었던 차별 의식이 생겨났고,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결론은 같다. 있어서는 안 되고 돌아볼 가치도 없으며 부추기는 자들은 매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범죄적인 사고를 나경원은 태연하게 들먹였다. 술 먹고 다른 사람 다 무단횡단하는데 “나는 전라도 사람이라 조심해야 돼요.”라며 혼자 신호를 지키던 여학생의 마음, 하숙집 구하러 왔다가 전라도 말투에 번번이 거절당하고 이에 분노한 어머니가 ‘시상에 시상에’를 연발하자 그 입을 틀어막던 자식의 한이 천지사방에 쌓여 있는데, “이건희가 왜 구부정한가 하면 이병철이 꿈에 나타나서 전라도 사람 뽑지 말라고 했는데 왜 뽑아서 망신당하냐고 한 대 쳐서 그렇다.”는 개들도 귀를 막을 농담이 버젓이 유포되고, “전라도 것들과는 상종하지 마라.”는 밥상머리 교육이 지금도 횡행하는 나라에서, 그깟 정권 잡자고, 총선 이겨 보자고 나경원은 악마의 관뚜껑을 새삼스럽게 열었다.

나경원의 발언은 있어서도 안 되어도

나경원의 발언은 있어서도 안 되고, 그런 발언을 한 자를 용서해서도 안 된다.

나경원. 이 교만한 자, 사람들의 피를 거꾸로 쏟아 죽게 만들려는 잔인한 자, 악한 계획에 여념이 없는 이 사악한 자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입에 침 하나 바르지 않고 하는 저 거짓말은 그가 사람인지 아니면 그림자가 늑대인 오멘인지를 의심케 한다. 서울 민주당 구청장 24명 가운데 20명이 호남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구청장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던가? 그녀는 지금 노태우 정권 이전 대통령이 군수 임명하고 구청장 승진시키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어린 아이도 코웃음칠 거짓말을 오로지 사람들 선동하고 악령의 꼬드김에 빠지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저 거짓말하는 혓바닥을 배배 꼬아야 하는가 아니면 일도양단을 해야 옳은가.

가장 큰 죄악, 이간질

무엇보다 나경원 최대의 악은 형제간을 이간질하는 죄다. 대관절 광주일고 출신과 부산고 출신이 무엇이 다르고, 강원도와 호남 사람들은, 전라도와 충청도는 뭐가 얼마나 다르기에 남북으로 휴전선 갈라진 나라에 호남이라는 유형지를 만들려고 이리 설쳐대는가.

그들이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수십 년 세월 동안 얻어맞고 욕먹고 군홧발에 짓밟히고 대검으로 헤집힘을 당하고도 당신한테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며, “쟤들이 다 해 먹으니 우리도 일어나자.”는 개소리의 표적이 돼야 한단 말인가. 어디서 그런 삿된 혓바닥을 천둥벌거숭이처럼 놀려 대는가.

어차피 하늘 따위 두렵지 않은가보다. 그렇게까지 해서 정권을 잡겠다면 이미 그 머릿속에 무슨 하늘이 있고 도리가 있을까. 사람이 두렵지 않은가 보다. 그렇게 사악한 거짓말을 해도 박수 보내고 환호하는 어리석은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이 나라를 무슨 진창으로 만들지, 명색 정치인으로서 야당의 대표로서 책임감 따위는 1g도 없나 보다. 아니면 저런 말을 감히 할 수 없다. 범연히 할 수 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주절댈 수 없다.

일요일 아침 나경원에게 온갖 독기를 머금어 저주를 퍼붓고 싶으나 “저주하지 말라.”는 로마서 말씀이 떠올라 가까스로 여기에서 머문다. 단지 단테의 신곡을 빌어 ‘불화와 분열 그리고 이간질을 일삼았던 죄인들이 무슨 벌을 받을지를 알려 줄 뿐이다.

“죄인들은 온몸을 난자당한 듯 피투성이였고 바닥은 죄수들의 핏물로 진창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껏 이탈리아의 대지 위에 뿌려진 피를 다 합해도 이곳 아홉 번째 구덩이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중략)

그는 자신의 잘린 머리를 초롱불처럼 양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피가 쏟아졌다. 그 머리는 우리를 쳐다보며 신세 한탄을 쏟아냈다.

“내가 받고 있는 형벌을 보시오. 이보다 더 끔직할 수는 없을 것이오. 나는 보른의 베르트랑이오. 생전에 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반목하게 한 죄를 지었다오. 서로 굳게 믿는 부자 사이를 내가 갈라놓았으니, 그 벌로 내 머리를 몸뚱아리에서 떼어내 이렇게 들고 다니는 거라오.””

-단테, [신곡] 지옥편, 제28곡 ‘분열하고, 이간질한 망령들’ 중에서

신곡 지옥편 28곡에서 베르트랑이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는 삽화(귀스타브 도레, 1857).

신곡 지옥편 28곡에서 베르트랑이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는 삽화(삽화가: 귀스타브 도레, 1857).

나경원이 신곡을 읽어 보기 바란다. 당신과 당신 동류들처럼 사람들을 이간질하여 득을 본 사람들이 어떤 벌을 받는지를 똑똑히 읽기 바란다. 당신의 머리를 당신이 들고 다니고 싶지 않다면 반성하기 바란다. 물론 그런 정도의 깜냥이 있으면 광주일고 정권 따위의 헛소리는 하지도 않았겠으나.

 

이 글은 딴지일보에서 발행(나경원 광주일고 망언: 교만하고 잔인하며 사악한 자)한 글입니다. 필자의 동의와 딴지일보의 양해를 통해 슬로우뉴스의 편집 원칙에 따라 발행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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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산하
초대필자, 작가, PD

소심한 40대 직장인입니다. [그들이 살았던 오늘](2012)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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