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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기 2: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엄마, 회사 가지 마!”

일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출근할 때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시기가 있다.

워킹맘_2

첫째도 다섯 살쯤 그러더니 요즘 둘째도 아침마다 회사 가지 말라고 외친다.
“다현아, 엄마가 저녁 때 와서 꼭 안아줄게. 유치원 잘 가” 하고 현관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엄마 가지 마, 가지 마” 울며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찢어진다. 그럴 때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영화를 보려고 이 어린 것을 두고 회사를 가나’ 하는 생각 해 보지 않은 엄마는 없을 것이다.

첫째를 키웠던 경험상, 이렇게 울며 매달리는 일은 크면서 저절로 줄어들고 사라진다. 하지만 좀더 커서 일곱 살쯤 되면 이런 얘기를 한다.
“엄마는 왜 회사에 가? 엄마가 회사 안 가는 친구들도 있는데.”
엄마들은 그때마다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나는 왜 일을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아빠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그들은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니까 그렇지, 당연한 거 아냐?”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엄마에게 그런 답을 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남편 벌이가 시원치 않은 게 아니면 집에 있는 게 맞는 거 아냐?”
“집에 엄마 찾으며 우는 애들이 있는데 모질게 떼어 놓고 일 하러 나가는 거, ‘자아실현’이라는 ‘이기적’ 생각 때문 아니야?”

면전에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워킹맘들은 이런 시선을 받으며 일한다.

남자들은 받지 않는 질문, ‘왜 일을 하는가?’

왜 엄마들이 일을 하는 것일까? 같은 워킹맘 처지인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지금이야 어린 아이들 돌보고 싶지요. 하지만 법으로 보장된 1년짜리 육아휴직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에, 아이가 자라는 몇 년 동안 일을 쉬기 위해서는 회사를 관둬야 하잖아요. 나중에 다시 일을 하고 싶을 때 여성에게 남아 있는 재취업 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관둘 수 있겠어요.”

이른바 출산 후 ‘경력 단절’ 비율이 크게 높고, 재취업 시 여성에게는 특히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현실을 반영한 답변이다.

“요즘 애들한테 돈이 한두 푼 들어가나요? 사교육비도 많이 들고 애기들은 분유값, 기저귀값도 어마어마해요. 장난감은 사 주면 1주일도 안 돼 고장나는 것들이 왜 이리 비싼지. 특히 무슨 캐릭터나 TV 프로그램 관련된 거는 웬만한 돈 갖고는 못 사요. 닌자고는 10몇만원짜리를 시리즈로 사야 된대요. 물가도 얼마나 높은데 남편 외벌이로 알뜰하게 살아요? 남편이 정말 잘 벌지 않으면 요즘 맞벌이는 필수예요.”

실제로 우리나라 분유값은 너무 비싸다. 800g 한 통 기준으로 일동후디스 홈페이지 온라인샵에서 후디스 산양분유는 한 통(조금 자란 아기들은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에 5만4,900원, 슈퍼 프리미엄 퀸은 3만7,800원, 프리미엄 후레쉬는 2만4,120원이다. 보통은 6캔 정도를 한꺼번에 구입하는데, 1주일에 한 캔은 먹는다. 기저귀 값도 엄청나게 들어간다. 애 안 낳아본 사람은 ‘기저귀 값, 분유값 벌려고 일해’라는 표현이 장난 같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애를 낳아보면 그 말이 실감난다.

물론 단기적으로 보면 맞벌이를 할 때 육아비가 훨씬 더 들어간다. 일단 베이비시터나 아기를 봐 주시는 부모님께 고정 지출이 나가고, 분유값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모유 수유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주말에는 밥상 차리기가 피곤해 외식을 자주 하게 되어 그만큼 돈을 더 쓴다. 동네 재래시장이나 슈퍼에서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사지 못하고 주말에 대형마트에 가서 한꺼번에 몰아 사는 소비 행태를 갖게 되기 때문에 충동 구매 등 씀씀이도 커진다. 그러나 자녀가 ‘아기’인 시절을 지나 ‘학생’ 단계로 진입하고 사교육비가 필요해지면 엄마의 벌이가 가족에 정말 중요한 경제적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때쯤 되면 연봉도 많이 올라 있을 것이다.

다시 질문하기, 그리고 ‘나’를 넣어 다시 답변하기

그런데 앞의 두 가지는 판단 방식이 대단히 수동적이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일한다는 느낌이다. 워킹맘이 일을 하는 이유에는 이 두 답변에는 생략된 ‘나’라는 주체가 들어간, 또다른 설명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라는 대답이다. 누구에게 당당하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당당하기 위해서다.

결혼이나 출산,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등 워킹맘이 진지하게 일을 계속해야 할지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는 계속 찾아온다. 하지만 그때, 자신이 정말로 원하지도 않았는데 아이 때문에 포기할 경우 그 순간부터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당장은 아이에게 정성을 쏟을 수 있어 행복하겠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남편 건강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최악의 경우, 결별 등을 하게 되었을 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내 아이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동등한 위치가 아닌 상황에서 지출에 대한 자유권이나 발언권도 줄어들 수 있다.

‘일’이라는 것이 주는 자존감이 상실될 위험도 크다. 고등학생의 80%가 대학교육을 받는 요즘, 고등교육을 받고 직장에서 일을 배우고 주어진 임무를 해 내고 승진과 봉급 인상 등으로 평가를 받고 주변 동료나 선후배로부터 인정을 받고, 이런 경험을 했던 사람이 갑자기 일을 관두면 자기 자신의 재능이나 성취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을 하게 되면서 ‘자녀의 성취=자신의 성취’라는 착각에 빠져 사교육 마니아로 돌변하기도 한다.

한국의 워킹맘에게 ‘이기적이다’는 멍에를 씌우진 말자 

물론 전업주부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집안일과 육아는 회사에서 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많은 남편은 하루종일 아기를 돌보는 엄마들을 보고 ‘집에서 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집안일과 육아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이런 주제로 블로그를 운영해 파워블로거까지 되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자신에게 일을 통한 성취의 욕구가 있는데도 아이 때문에 그것을 억누른다면 후회하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엄마, 회사 가지 마’ 하며 우는 아이를 떼어 놓고 회사를 갈 때마다 바윗돌로 머리를 누르는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일을 하는 것이 자녀에게도 당당하다는 말이 가능할까? 장기적으로는 일을 하는 것이 자녀에게도 당당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좀더 크면 사회의 일원으로서 떳떳하게 일을 하며 생활하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 믿는 것이다.

“결국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는 게 맞네. 결국 이기적인 거 아냐” 하고 되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워킹맘이 ‘이기적’인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엄마들은 하루 종일 한쪽 레이더가 아이를 향해 있다. 통계를 보시라, 사실이다.

밤에 열이 나서 아이 할머니에게 병원을 데리고 가라고 말씀 드렸는데 지금도 계속 아픈지 궁금해 전화하는 것도 엄마고, 내일 유치원/학교 준비물이 뭔지 전화로 물어보고 퇴근 후 문구점에 들러 사 가는 것도 엄마고, 날씨가 추워졌으니 내일부터는 마스크를 씌워 보내야겠다 생각하는 것도 엄마다. 학교 수업시간이 끝나면 방과후 교실에 제 시간에 갔는지 문자를 확인하고, 학교에서 놀다가 깜박 잊고 태권도 도장 버스를 놓치지 않도록 전화하는 것도 엄마다. 유치원 선생님한테서 “오늘 OO이가 실수를 했어요(오줌을 쌌어요)” 하는 전화를 받고 내일은 아침에 반드시 쉬를 잊지 않고 시켜야겠다, 생각하는 것도 엄마다.

결국 워킹맘이 원하는 건…

워킹맘이 일하는 이유는 당당한 한 인간이고 싶어서다. 그것은 결코 이기적인 욕구도 아니고, 죄책감을 느껴야 할 행동도 아니다. 아이에게도 당당하게 말해줘야 한다. 엄마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이 일은 엄마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엄마, 나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회사라는 데 가서 엄마가 하는 일 해 보고 싶어.”

오늘 첫째가 무심코 한 말에,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비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우리 딸이 기특한 생각을 했네.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 엄마가 회사에 데려가서 어떻게 생겼는지, 엄마가 무슨 일 하는지 보여줄게.” 둘째도 이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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