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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원 씨(가명)는 남편 최규춘 씨(가명)와 3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고 1남 1녀를 두었다. 결혼 전에는 성실하기만 하던 남편은 PC방 사업에 손을 댔다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투자금을 모두 날려버렸고, 그 후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효원 씨는 남편이 속이 상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웬만하면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남편은 비록 도박에 손을 대긴 했지만 부부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최규춘 씨는 분을 못 참으며 부인에게 하소연했다. 도박장에서 심부름하는 아이를 시켜서 도박판 판돈 일부를 사용해 자동 기입 방식으로 숫자가 기재된 로또를 산 다음 도박 참가자들이 나눠 가졌는데, 그중 김영기 씨(가명)가 배분받은 로또가 1등에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도박판에는 네 명이 있었는데, 김영기 씨가 받은 당첨금 액수가 세금을 제하고도 거의 60억 원에 이르렀기에, 나머지 세 명은 15억 원씩 나눠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김효원 씨는 내 어머니 친구분의 지인이라 나는 이 사건을 상담하게 되었다.

로또에 당첨되면 공평하게 나누자던 약속

“우리는 매번 판을 시작하면서, 행운을 빌자는 뜻에서 판돈에서 돈을 빼서 로또를 사 왔고, 이를 나누면서도 나중에 당첨되면 돈을 공평하게 서로 나누자고 약속했단 말입니다.”

최규춘 씨는 억울한 마음에 열변을 토했지만, 법리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첫째 어려움은 ‘공동 분배 약정에 대한 입증 책임 문제’였다.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 당첨금을 네 명이 공평하게 나누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을 최규춘 씨가 입증해야 한다. 약속한 바를 서면으로 작성하지는 않았기에 증인의 증언 등을 통해 입증해야만 하는데 만만치 않을 듯했다.

둘째 어려움은 로또를 구입한 재원(財源)이 도박 자금이라는 데 있다. 즉 불법행위를 통해 형성된 자금으로 구입한 로또의 당첨금을 배분하자는 약속이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반사회적인 법률 행위로서 무효로 볼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건 자체가 성립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서 맡지 않으려 했으나 김효원 씨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최규춘 씨를 포함한 나머지 두 명의 소송을 수임했다.

역시 재판을 진행하다 보니 사전에 우려했던 두 가지 문제점에 대해 집중 심리가 진행됐다. 공동 분배 약정을 입증하기 위해 우리는 당시 노름판에서 심부름하던 아이를 증인으로 불러냈다. 아이는 다소 두려워했지만, 당시 정황을 또박또박 잘 증언해주었다. 그리고 김영기 씨 외에 나머지 세 명의 원고들은 일관되게 공동 분배 약정을 주장했으므로 이는 재판부도 인정하는 데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둘째 쟁점이었다. 로또를 구입한 재원이 도박 자금인데 과연 그렇게 구입한 로또 당첨금의 공동 분배 약정이 법률상 유효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에게 유리한 자료를 찾아내기 위해 일본의 서적까지 뒤적이면서 불법 원인 급여, 불법행위, 반사회질서 법률 행위와 관련된 다양한 참고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최규춘 씨 부부는 수시로 나를 찾아와 대책을 논의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 변론을 준비했다.

드디어 1심 판결 선고일이 다가왔는데 결국 법원은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비록 도박이 범죄 행위이고 복권 구입 대금이 도박 자금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구입한 복권의 당첨금을 서로 나누어 가지기로 하는 약정까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된 무효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 판시했다.

로또 당첨금을 받게 된 부부에게 벌어진 일

선고 당일 최규춘 씨 부부는 내 사무실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계산상으로는 최규춘 씨 앞으로 약 15억 원의 당첨금이 배분될 예정이었다. 피고인 김영기 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서 항소했고, 이 사건은 OO고등법원에서 계속 심리가 진행되었다.

나는 2심 사건도 맡아 진행했는데, 어차피 1심에서 필요한 쟁점은 모두 다뤄졌기에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김영기 씨 측 소송대리인은 1심 결과를 뒤집기 위해 다양한 법리적 주장을 펼치고 증인도 여러 명 신청하는 바람에 2심만 거의 1년 정도 진행되었다.

1심을 진행할 때 최규춘 씨 부부는 내게 자주 연락하고 사무실을 찾아오기도 했는데, 2심을 진행할 때는 거의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일이 있으리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최규춘 씨가 2심 승소 판결을 받은 뒤 며칠이 지나 나는 김효원 씨를 소개해준 내 어머니의 친구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최규춘 씨 부부가 왜 연락이 없었는지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최규춘 씨는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음으로써 거액의 돈을 챙길 수 있게 되자 돌변했다. 툭하면 술을 먹고 효원 씨에게 손찌검하는 등 폭행을 일삼고 외박을 밥 먹듯이 했다. 뒤에 확인해보니 전부터 알고 지내던 여자와 사실상 동거를 시작했다. 효원 씨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급기야 최규춘 씨는 위자료와 애들 양육비를 줄 테니 서로 헤어지자며 집요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효원 씨는 어떻게든 이혼을 막아보려 했으나 한번 떠난 최규춘 씨의 마음을 되돌리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효원 씨는 남편과 이혼하며 아이들은 계속 효원 씨가 키우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매달 200만 원의 양육비, 5,000만 원의 위자료를 받기로 합의했다. 남은 문제는 ‘재산 분할’이었는데 최규춘 씨는 당첨금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이니 재산 분할은 소송이 완전히 끝난 뒤에 다시 논의하자고 했고 효원 씨도 동의했다.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거쳐 이혼 소송으로…

전후 사정을 듣고 보니 화가 치밀었다. 남의 가정사에 왈가왈부할 바는 아니지만, 최규춘 씨의 행태가 정말 못마땅했다. 로또 당첨금 소송은, 김기영 씨가 대법원에 상고까지 했지만, 대법원에서 2심 결과가 그대로 인정되어 최규춘 씨는 15억 원가량의 돈을 자신의 몫으로 분배받게 되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최규춘 씨는 소송을 통해 돌려받은 돈 전액을 신탁으로 묶어버린 다음 효원 씨에게는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고, 이에 반발한 효원 씨는 최규춘 씨를 상대로 당첨금의 절반인 8억 원을 요구하는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나는 두 어느 한 편의 소송을 맡기가 껄끄러웠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고 소송 진행 과정을 지켜봤다. 물론 내 마음속으로는 효원 씨를 응원했다.

양측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치열하게 다퉜다. 효원 씨의 청구에 대한 최규춘 씨 측의 답변은 ‘로또 당첨금은 재산분할 청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원래 재산 분할은 부부가 공동으로 증식한 재산에 대해서 청구할 수 있는데, 이 로또 당첨금은 전적으로 최규춘 씨의 행운에 의한 것이므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약 7개월이 걸린 치열한 1심 소송 끝에 재판부는 최규춘 씨의 손을 들어줬다. 로또 당첨금은 최규춘 씨의 ‘행운’에 의한 것일 뿐 부부가 공동으로 노력해서 증식한 재산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법리적으로는 타당한 결론일지 모르나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효원 씨는 1심에 불복하고 2심에 항소해서 다시 6개월을 싸웠다. 하지만 2심에서의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효원 씨는 애초 약속된 5,000만 원의 위자료와 월 200만 원의 양육비를 받는 선에서 전남편과의 악연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최규춘 씨는 동거하던 여자와 헤어졌고 로또 당첨금은 비밀 금융 계좌에 안전하게 보관했다는 것이다.

허무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규춘 씨 관련 사건은 뒷맛이 정말 좋지 않았다. 그렇게 이 부부의 사건은 내 머리에서 잊혀갔다. 그런데 약 6개월 뒤 김효원 씨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효원 씨와 벌인 소송에서 승소한 최규춘 씨는 금융 계좌에 보관하고 있던 돈을 인출해서 서울 동대문에 상가 다섯 개를 분양받았다. 딱히 월수입이 없었기에 임대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상가를 분양받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늦게 귀가하던 최규춘 씨는 뺑소니차에 치여 바로 사망했다. 불행히도 범인은 잡을 수 없었다. 최규춘 씨는 사망 당시 부모나 법률상 부인이 없었기에 유일한 상속인은 김효원 씨와 결혼 생활에서 태어난 1남 1녀의 자녀들이었다. 다만 아이들이 미성년자였으므로 결국 김효원 씨가 상속 재산의 관리인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최규춘 씨가 한 달 전에 고액의 사망보험에 가입했는데, 가입 시 별도의 수익자를 지정하지 않아 법정상속인에게 수익이 돌아가게 되어 결국 자녀들에게 추가로 5억 원 상당의 사망보험금이 지급된다는 얘기였다. 다만 이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다소 복잡한 서류 작업이 필요했기에 다시 내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이러려고 그렇게 싸웠을까 싶습니다. 휴―”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당첨금을 분배받기 위한 치열한 법정 투쟁, 재산 분할금을 차지하기 위한 또 다른 치열한 법정 투쟁, 이런 투쟁의 끝은 얼마나 허망한가. 만약 로또 당첨금 분배 소송에서 최규춘 씨가 패소했다 해도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우리는 은연중에 횡재를 바란다. 횡재(橫財), 뜻밖에 재물을 얻는다는 의미다. 여기서 주의해서 볼 부분은 ‘뜻밖’이다. 예상하지 않은 소득이라. 내 노력과 의지의 결과와 무관한 예상치 않은 소득은 어떤 문제를 가져다줄까?

우선 그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나아가 아무리 차분해지려 해도 자기도 모르게 우쭐해지는 마음을 누르기 어렵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 우연으로 얻은 그 행운을 자신의 실력인 양 착각하는 우를 범한다. 결국에는 횡재가 횡액(橫厄; 뜻밖에 닥쳐오는 불행)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분수에 없는 복과 무고한 횡재는 만물의 조화 앞에 놓인 표적이거나 인간 세상의 함정이다.”

인생의 고수는 채근담의 이 구절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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