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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국정 교과서 무력화 나선 서울교육청 (2016년 4월 26일)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511128&code=11131100&cp=nv
국민일보-국정 교과서 무력화 나선 서울교육청 (2016년 4월 26일)

국민일보(이도경 기자)는 “국정 교과서 무력화 나선 서울교육청 – 반대 핵심 세력 전면 내세워 대안 교재 만들어 갈 방침”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핵심 내용은 서울시 교육청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한 교사들을 끌어모아서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기사에 나온 ‘민주사회를 위한 역사교육 위원회’ 명단을 보면 마치 과거 군부독재 시절 공안 사건 혐의자의 경력 공개를 연상하게 합니다. 분류 기준은 “국정화 반대 이력”, 얼마나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는가에만 맞추어서 구성돼 있죠. 기사의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 첫째, 올 수능부터 한국사가 필수인데 교육 현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
  • 둘째, 국정교과서가 빈틈없이 제작되기 때문에 발행되는 순간 우려가 사라질 수 있다.

악의적인 기사입니다. 제가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집필자도 숨긴 채 진행 중인 국정교과서 

국정교과서는 집필 기준, 집필자가 모조리 공개되지 않은 채로 진행 중입니다. 이는 명백히 불법이며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행태입니다. 국정교과서를 시작했던 유신 시절 당시에도 전 과정을 공개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래 집필 기준, 집필자를 모르는 상태에서 교과서를 집필한 경우가 있었나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발행의 결과물이 문제가 아니라 발행 과정 자체가 문제입니다.

누가 집필하는지도 모르는 교과서?
누가 집필하는지도 모르는 교과서?

이런 교과서에 대한 ‘우려’는 당연한 것 아닌가요?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가지고 왜 말들이 많냐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왜곡입니다. 초등학교 국정교과서에 이미 우려했던 문제점들이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얼마 전 새로 임명된 국사편찬위원회 위원들은 국정화에 찬성한 지극히 편향적이며 학계에서 소수의 인사들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역사인식에서 심각한 문제를 보였던 문창극 씨가 국무총리로 지명되었고, 그 전에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이 있었습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하나님이) 남북분단을 만들게 해 주셨어. 그것도 저는 지금 와서 보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획/디자인: 써머즈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제주도에서 4.3 폭동 사태라는 게 있어 가지고 공산주의자들이 거기서 반란을 일으켰어요."
한때 총리 후보자였던 사람의 역사 인식

다시 그 전에는 교과서 포럼의 대안교과서가 문제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검인정 기준, 교과서 수정명령 사건 등등 온갖 문제들까지 고려한다면 지금의 ‘우려’는 매우 현실적이며 설명 가능한 우려입니다.

2. 교육현장에 혼란을 초래한다? 

기사는 교육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학부모와 학생들이 반발한다고 전합니다. 어떤 학부모와 어떤 학생들이 반발합니까. 지난 십여 년간 검인정 제도가 정착된 상태에서 어떤 혼란이 있었습니까.

혼란이 일어났던 적은 단 두 차례입니다. 심각한 역사 왜곡을 포함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출간된 때였고, 작년 말 국정교과서 고시 강행 때였습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집단적인 반발을 보였던 것은 단 이 두 사태였고 이런 것들을 무시하면서 강행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국정교과서입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더구나 무엇이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겁니까? 수능 시험 보는데 문제가 생기나요? 학교 내신 시험 보는데 문제가 생기나요? 어떤 혼란이 초래될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십시오. 이를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혼란을 운운하는 것은 결국 왜곡과 선동에 불과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교육청과 교육부 그리고 산하 교육 기관 내에서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수많은 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여러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그중에 단 하나라도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은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을 콘스탄티누스나 야곱에 비유하며 연구를 넘어 찬양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던 류영익 교수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을 한다든지, 이명박 정부 당시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에 의해 교학사 교과서가 교육부 검정 기준에 턱없이 미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통과가 되었을 때, 주로 뉴라이트 진영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접근했을 때 파문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김무성 이승만

그런데 이런 사건들은 주로 이번 국정교과서 제작을 지지하는 진영 쪽에서 일으킨 일들 아닌가요?

3. 서울시교육청 ‘역사교육위원’에 대한 악의적 폄하 

왜 서울시교육청 ‘민주사회를 위한 역사교육위원회’에 선발된 인원에 대해 함부로 말합니까.

주진오 교수 주진오 교수(사진)가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주진오 교수가 교육부와 대립했습니까? 당시 교육부의 검정 기준에 맞추어서 제작되었고 이를 문제 삼은 것 역시 보수 진영이나 뉴라이트 진영이었습니다. 더구나 주진오 교수가 단순한 교과서 제작자입니까? 한국 근현대사 부문을 대표하는 권위 있는 연구자입니다. 이미 오랫동안 연구 성과를 통해 학계에서 인정을 받았고 그 결과 중 하나로 교과서를 집필하였습니다.

김한종 교수 김한종 교수(사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김한종 교수가 국정교과서를 비판하는 책을 쓴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김한종 교수는 역사교육 분야의 권위자입니다. 한국 역사 교육 발전사에 대한 수많은 연구 결과를 내놓았고 동종의 책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역사교육 분야에 독창적인 학자입니다. 역사학계의 대표적인 학자, 역사교육계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응당 그 수준과 지위에 맞게 선임이 돼서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권위는 무시한 채 입맛에 맞추어서 특정 부분만 끄집어낸다면 그것은 이미 특정한 목적으로 쓰인 기사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육훈 더구나 김육훈 교사(사진)에 대해서는 국정교과서에 대해 ‘모욕적’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김육훈 교사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이 만들어지는데 산파 역할을 했으며 한국사, 동아시아사 등 뛰어난 교양서들을 연달아 출간하면서 역사 대중화에 엄청난 업적을 세운 분입니다. 현장 교사로서의 권위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교사를 대표하는 교사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난 국정교과서 파동 당시 거의 모든 역사학자들과 거의 모든 역사교사들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했습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하거나 뉴라이트 진영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던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인사들을 위원회에 참여시켜도 이런 식의 규정이 가능합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했고 뉴라이트 진영에서 누구보다도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며 밀어붙였던 권희영 교수는 기존의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를 90% 이상 좌파라고 규정했습니다. 지금 그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겁니까.

4. 역사교육을 위한 더 큰 목표와 계획 

서울시 교육청 ‘역사교육 기본계획’을 발표하는 기자 회견 그리고 이에 대해 다시 간단히 정리한 주진오 교수의 글을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하는 ‘역사교육 기본계획’의 목적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됩니다.

  1. 토론을 통한 역사교육의 방향 정립
  2. 역사수업 개선을 위한 연구 및 자료개발과 보급
  3. 전문성 신장을 위한 역사교사 연수 운영
  4. 학생들의 탐구활동 지원

역사교육계는 그렇게 편협하지 않습니다. 국정교과서 문제 당연히 해결돼야 합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역사교육의 문제 자체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국정교과서로 촉발된 최근의 문제를 좀 더 근본에서 해결하고자 합니다. 권력에 의해 교과 교육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넘어서 역사교육 자체가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진행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교실 학생

따라서 실질적인 토론수업을 확대하고, 역사를 더 재밌고 흥미롭게 배우며,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등을 염두에 둔 포괄적인 행보를 목표로 합니다. 이에 맞춰 5월 9일과 23일에 진행되는 시민과 함께하는 행사 역시 역사 교육의 개선이 핵심적인 주제로 설정되었고, 이미 행사가 준비 중입니다. 그런데 기사에서는 이런 중요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현 상황을 그저 국정화 찬성이나 반대냐로 이분화하고, 위원들의 이력을 함부로 규정하며, 위원회의 활동 목적에 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는 기사. 결국, 정부 입장과 국정교과서만을 옹호하는 ‘프레이밍’을 의도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기자와 역사가는 다른 직업이지만 동일한 원칙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신성하되 견해는 자유다. 역사가는 사료에 근거한 실증적 사고를 하며, 연구 결과에 대해 합리적인 본인의 논변을 펼칩니다. 기자 역시 견해와 입장을 지니지만, 해석으로 사실을 훼손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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