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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는 ‘해결’됐을까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새로운 사랑이라면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상처는 영영 극복할 수 없다. 씨랜드 참사 유족들은 15년이 지나도 아이들의 기일에 위령비를 보며 울었다. 태안 해병캠프 참사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참사 관련자들을 원망만 하며 살다 사회복지사로 최근 1년 간 일하기 시작했다.

“우리 00이가 제가 이러고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원래 하던 학원 일은 그만뒀다. 교복 입은 학생들을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식의 생전 사진을 보여줄 때 가장 밝은 표정을 지었다. 범죄로 딸을 잃은 부모는 한 민간단체가 만들어준 온라인 추모관의 딸의 친구가 안부 메일을 남기는 것을 보며 위로받는다.

일찍 세상을 뜬 대학 선배의 아버지도 자신이 몰랐던 생전 아들의 이야기를 가장 궁금해했다. 이런 부모들을 향해 누가 “죽은 자식 잊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천사

자식 잃은 부모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자녀를 잃은 부모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죽은 자식 잊고 살아야지”라고 한다. 비록 선의일망정,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속상해서이건, 불가능한 요구가 우리 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다. 그래서 자녀를 잃은 사람들은 친척들과도 멀어진다고 한다.

선의가 아니라, “네가 울면 내가 불편하니 그만 잊어”라는 말까지 듣는다면 더 이상 이전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너만 자식 잃은 것이 아니다. 너만 비참한 것 아니다. 그러니 유난 떨지 말고 그만 잊어.” 이것은 한국전쟁 때 형성된 논리 아닌 논리일 것이다.

그러나 슬픔과 그리움은 해결되지 않는다. 영원히 그 문제로 슬플 것이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슬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슬픔을 없애고자 하는 시도는, 슬픔을 없앨 수는 없으니 밖으로 보이지 않게 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시도는, 특히 타인의 시도는 아무리 좋게 해석해줘도 결국, 본인이 불편하기 때문인 것이다.

ⓒ 권성원 http://shawnsstyle.com/220500582475

권성원, “가족의 모습”

‘해결’에 대한 열망 

위안부 문제가 꼬이게 한 원인에 대해 많은 이들이 한 축에서는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함을 들고 다른 한 축에서는 반일민족주의를 든다. 그런데 이번 사안을 보면서 다른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결주의’라고 해야 하나. 여기서 해결은 “clear”의 느낌이다. ‘세월호 종식 선언’과 ‘메르스 종식 선언’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수술로 환부를 도려내는 것처럼, 사회 갈등의 원인을 말끔하게 제거해 더 이상 이 사회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없애버리는 것. 여기에 ‘조속한 해결’이라는 수식어도 왕왕 붙는다.

외교부를 질타하는 목소리에는 왜 ‘우리의 뜻대로 해결하지 않았는지’란 분노도 짙게 섞여 있다. 이번 협상을 긍정 평가하는 중국 정부 역시 비슷한 관점을 공유한다. 해결은 업적이 된다. 그 이전에 해결에 대한 열망은 ‘해결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 불가능’에 있다.

매듭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정말 해결하고 싶어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으로 인해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쪽은 체면을 위해서라도 빨리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사회적 압력이 있다. 할머니들 다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 그러지 않으면 무능한 정부라는 것. 물론 한미일 동맹과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참여 등의 정책을 매끄럽게 추진하려면 국민의 반일감정을 넘어야 한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응시하는 것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지 못하는 것을 ‘수치의 역사’로 간주하고, 수치를 극복하기 위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라는 압력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압력을 지고 테이블에 나간 외교부의 선의까지 굳이 굴절시키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부담과 짐으로부터 탈출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다. 연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서울의 한 대학 단체채팅방 언어 성폭력 사건에서 ‘위안부’란 단어가 등장했다. 역사학과 학생들이었다. 전쟁범죄에 대해 모르지 않았을 터, 여성을 성 노예를 거느리는 판타지를 공유했고 ‘위안부’로 표현했다. 위안부 문제는 이런 식으로 존재한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더라도 이렇게 존재한다.

전쟁으로 망가진 사회적 심성을 극복하는 일, 위안부 문제를 기억해야 할 이유인 것이다. 사죄와 배상은 그 과정을 위해 존재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특히 법적으로 까다로운 문제는 포기할 수도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다음의 진실이다. 위안부 문제는 수치의 역사 맞다. 인류가 인류를 상대로 저지른 잔혹한 짓이니까 여기서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그 수치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응시하는 일이야말로 진정 수치로 인한 몸부림에서 해방될 길이다.

“내 나이 열여섯. 일본인 선생님의 강요로 가게 된 근로정신대. 고된 노동과 극심한 배고픔에 친구들이 죽거나 미쳐버리던 어느 날. 도망치다 헌병에게 잡혀 그 길로 군 위안부가 되었다오. 서러운 시절, 힘없이 짓밟혔던 우리를 잊지 말아주오.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도록 부디 힘을 모아주오." - 고 강덕경(1929년~1997년) 할머니의 글과 그림("배를 따는 일본군")

“내 나이 열여섯. 일본인 선생님의 강요로 가게 된 근로정신대.
고된 노동과 극심한 배고픔에 친구들이 죽거나 미쳐버리던 어느 날.
도망치다 헌병에게 잡혀 그 길로 군 위안부가 되었다오.
서러운 시절, 힘없이 짓밟혔던 우리를 잊지 말아주오.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도록 부디 힘을 모아주오.”
– 고 강덕경(1929년~1997년) 할머니의 글과 그림(“배를 따는 일본군”)

수치를 응시하지 못하는 나라 

한일 양국 모두 수치를 응시하지 못한다. 일본은 ‘과거사를 기억하며 참회하는 멋있는 일본’이라는 모습을 연출해 자신들이 동아시아의 맏형이라고 우기지도 못한다. 한국은 수치를 수치스러워하며 일본을 무릎 꿇리는 것을 통해 수치를 없애려 한다. ‘나’의 수치일 뿐, ‘인류의 수치’로 끌어올리지 못해서 ‘사죄’와 ‘배상’에 집착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실패를 엄하게 뒤집어쓰는 정대협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상당 시각이 그러하다.

외교부는 그 의지를 실현했다. 그러기 결과가 이 꼴이라는 것. “문제는 해결됐으니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기본적인 매듭을 지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라는 협상이 필요했으나 불가능했다. 자존감 바닥인 동아시아 사회에서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만이 전쟁과 여성의 성 동원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 윤리로 남았다. 수치에서 탄생한 절대 윤리를 응시하지 못한 한일 양국의 몸부림은 결국 위안부 해결의 열망이 아니라 각자의 수치심 탈출의 열망이라 해석해야 맞겠다.

문제 제기 과정에서 형성된 절대 윤리가 해결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을 반일민족주의라고만 부르면 뭔가 놓친 기분이다. 배상과 같은 특정 미션을 클리어해 ‘환부를 도려내듯’, ‘리본을 끊어내듯’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고,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 해결을 방해한다. 해결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종군위안부

전쟁에서 생존한 한국인 위안부의 모습. 위안부 중에는 십대 소녀가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1945년 9월 3일, 중국 윈난 성)

그래도 늦지 않았으면…  

고령인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씩 숨져 끝끝내 누구도 살아서 ‘정의의 실현’을 목격하지 못하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배상’과 ‘사죄’라는 결과가 아니라 양국 사회가 질적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한을 해소해가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선택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선의에서 나오는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만 잊어” 조차도 결국은 산 사람의 ‘조속한 일상복귀’를 위해 던지는 말이다. 조속하게 문제가 없는 상태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에게 있다. 여기에 정부가 함께 강박에 시달린다. ‘세월호 종식 선언’, ‘메르스 종식 선언’, ‘위안부 해결 선언’ 아니 강박을 지도한다. 문제는 그대로 있거나 원대한 과제가 있는데 문제가 없어졌다고 조속히 선언하고 싶은 정부는 자존감 없는 정부일 것이다. 거꾸로 이 문제 해결에 사회적 자존감이 달렸다.

세월호 종식 선언 이후 세월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문제 행위가 됐다. 종식선언 이후 폭식투쟁이 나온 것처럼. 위안부 문제는 어떠할까. 피해생존자들이 구축한 정신에 부합하는 더 원대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면 당장 마음 없는 사과나 배상 따위 안 받으면 어떤가, 라고 말하고 싶어도 늦은 목소리가 됐다. 그래도 늦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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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은하
초대필자. 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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