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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비만인의 노래 1: 성장기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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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예민한 사람의 경우에는 다르겠지만, 고도비만인 사람이 ‘내 비만이 사회적으로 타당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시기는 대체로 청소년기인 것 같습니다. 제가 살이 쪘다는 말을 듣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이 처음이었고, 그다음엔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고도비만인에 대한 편견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이때의 별명 역시 ‘돼지’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남중-남고를 나왔더니, 아는 여자가 전혀 없어서 저를 감춰야 할 만큼 마음이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아, 고1 때 맞췄던 교복이 2학년 때부터 잠기지 않아서 풀고 다닐 때만 빼고요. 넥타이를 매야 하는 교복이었는데 넥타이도 걸쳐만 놓고 다녔었지요.

이 시기의 저를 비롯한 고도비만인들을 바라보는 눈은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1. 미련하고 착하고 멍청한 순둥이 돼지
  2. 힘이 세고 성격 더러운 일진 돼지

‘고도’ 비만까지 가면 보통 1번이 다순데 체격이 엄청나고 화끈한 성격을 가졌을 때 간간이 2번이 가능한 경우가 있지요. 제 경우는 1번이었습니다. 그저 그런 보통의 성격을 가졌지만, 체구로 인해서 눈에 띄는 미련하고 더러운 아이.

만약 제가 남자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면 정말 상처가 컸을 겁니다. 남자애들은 저를 돼지라 놀리고 같이 다니는 걸 약간 부끄러워했었지만 그래도 분명 제게 애정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본다면 꽤 괜찮은 청소년기를 보낸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의 시선은 그나마 따뜻했지만, 주변에 보통 나이 많은 분들은 “게으르다”는 말을 꼭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폭력적으로. “가슴이 크니까 브래지어 입으라”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났습니다. 이런 언사에는 보통 “내 자식은 살이 안 쪘는데 너는 쪘으니 너는 내 자식보다 못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습니다.

고도비만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다

저는 분명히 게을렀습니다만, 생활습관이나 식습관이 통상적인 수준을 절대 넘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이 다 그렇잖아요. 밖에 잘 놀러 다니면서 집에서는 계속 누워있고. 비교적 정상 체형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만인 사람이 게으르다는 것이 대한 반례로, 저희 집안의 친척 중엔 고도비만이 많습니다. 그들이 모두 게으르다고 보긴 어렵죠.

그들 중엔 지금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고도비만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탓인데, 부모님 세대는 제 세대에서처럼 기름진 걸 많이 먹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번 글에서도 강조했던 건 ‘고도비만이 아닌 사람은 고도비만의 마음을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게으르고 많이 먹는다’고 넘겨짚고 무시하는 경향이 문제입니다.

제 주변 지인은 제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잘 이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초면인 사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오해에 가깝습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고도비만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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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 아닌가요? 안 먹으면 현기증 나고, 좀 지저분해 보이고, 의지 없고.

인간의 생리에 저항할 정도로 큰 의지

비만인 중 게으른 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많이 먹는 사람이 있는 것도. 반대로 마른 분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어요. 제 경우에는,

  1. 안 먹어도 현기증이 나지 않습니다. 현기증이라 하더라도 마른 분들이 느끼는 현기증과는 다릅니다.
  2. 지저분하지 않습니다. 빨래는 부모님이 해주셨고, 굉장히 잘 씻는 편이었습니다.
  3. 의지가 없다: 고도비만인 당시에는 의지가 없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나중엔 의지를 갖췄지만요.

1번의 ‘현기증’이 마른 분들과 다른 것은 이렇습니다. 날씬한 제 어머니는 아침을 거르고 일할 경우 주저앉을 만큼 현기증을 느낍니다. 비만인 제가 아침을 거르면 위가 쪼그라드는 공허함을 느낍니다. 이것을 현기증이라 표현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3번인데요. 여러분도 당시의 제가 대책 없고 살 뺄 의지 없이 막 먹는 아이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있고 없고’의 개념이 모호합니다. 제가 살을 빼고자 했을 때 깨달은 건 ‘고도비만인이 가져야 할 의지’는 인간의 생리에 통째로 저항해야 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습니다.

첫사랑, 살을 뺄 결심

어떻게 살을 뺄 결심을 했는지 묻는 분들이 있는데요. 제가 살을 빼기로 결심한 건 너무도 평범한 이유였습니다. 바로 첫사랑 때문이었죠. 그때의 저는 거울을 볼 때 딱 얼굴 언저리만 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보기 싫은 건 안 보려고 했죠. 가끔 길을 지나다 쇼윈도에 몸이 비치면 그 쇼윈도가 잘못된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약간 날씬해 보이는 거울이나 쇼윈도를 자신이라 속였죠.

그러다 첫사랑을 만난 겁니다. 그 후에는 어땠을까요? 처음으로 옷에 신경을 쓰고,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짧은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렸죠. 스킨과 로션도 이때 처음 발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고도비만에게 옷은 ‘맞는 것 찾기’의 전쟁입니다. 지금처럼 ‘빅 사이즈 숍’이 없었을 때는 시장에 가서 천막 재질로 만든 청바지를 사 입고 돌아다녔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해결책으로 미국에서 구제로 들어온 옷이나 나이키의 옷을 사 입었어요.

나이키는 2XL 사이즈의 옷을 팔았습니다. 2XL면 성인 세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입니다. 남성복 가게에서 40인치 사이즈의 면바지를 사 입었고요, 그게 약간 작았으니까 허리가 42인치 정도 됐던 것 같아요.

살고 싶어서 먹지 않았다

당연히 제 사랑은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죠. 그 남자는 거의 모델급의 몸매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때 해결책이 떠오른 거죠. ‘아! 살이구나.’ 그래서 다이어트를 시작했어요.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기로 하고.

운동과 식이요법, 모든 것을 했습니다. 모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기 시작했고, 하루에 한 시간씩 걷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농구나 축구를 세 번씩 했습니다. 그래서 살이 빠졌느냐고요? 아뇨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모든 음식을 한달 동안 전혀 안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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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하지만 이렇게 무턱대고 장시간 굶는 건 굉장히 위험한 방법입니다. 함부로 따라 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이 글도 무용담으로써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입니다. [/box]

운동 때문에 살이 빠졌다고 말했던 건 당시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마케팅일 뿐이었습니다. 최고 몸무게는 133kg이었는데 한 달을 굶으니 40kg이 빠졌습니다. 결국, 안 먹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탈 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분이 많은데요. 여러 번 쓰러졌었습니다. 학교와 집만 오가던 때라 큰 사고가 나지 않았던 겁니다. 쓰러져도 감수할 만큼 절실했습니다.

이때 살이 빠진다는 쾌감은 있었지만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많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보편적 관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죠.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일 겁니다.

인간 → 살고 싶다 → 먹어야 한다

당시 저는 이랬습니다.

인간 → 살고 싶다 → 먹으면 안 된다

그럼 저는 무엇인가요. 인간이 아닌 건가요? 인간은 살기 위해 먹습니다. 그런데 저는 살기 위해 안 먹어야 했습니다. 그럼 저는 저를 죽이고 있는 거죠? 그러니 저는 살기 위해 죽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처음 다이어트를 한 게 18살 때 정도였으니 결국 받아들이는 데 5년 정도 걸렸습니다. (해당 내용은 성인 편에서 쓰겠습니다) 한 달 동안 밥을 먹지 못하는 고통은 거울로 상쇄했습니다. 가끔 쓰러지곤 했어도 대수롭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이걸 굉장한 일로 받아들이면 내세우고 싶어지니까요. 내세우지 말고 보통 인간이 사는 것처럼 죽었습니다. 그래야 사니까요.

살 빠져도 예쁘고 잘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최종 몸무게는 다이어트 개시 후 4달 뒤 85kg이었습니다. 통통하지만 일반인이 된 것이죠. 그런데 그토록 그리던 일반인이 되면서 처음 받는 충격이 있었습니다. 흔히 “뚱뚱한 여자는 긁지 않은 복권이다.”라고 하잖아요. 저도 이 말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정관념은 살이 빠진 후에 철저히 파괴됩니다. 살 빠져도 예쁘고 잘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살 빼면 잘생겼을 거라는 이야기 정말 많이 듣고 자랐어요. 이목구비가 큰 편이거든요. 그런데 살을 빼고 나니 광대가 있고 얼굴이 길더군요. 부모님도 놀라실 정도였어요.

외모뿐 아니라 성격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자신감이 생겼고 사람 만나는 게 즐거워졌습니다. 과도한 자신감에 주변 사람 마음에 부담을 주기도 했고요. 쫄티를 입는다거나 뭐 그런 거죠. 살 빼서 날씬해진 여성분들은 옷을 정말 섹시하게 입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것과 비슷합니다. 살 빠진 여러분 섹시하게 입으세요!

물론 처음 살 뺀 이후 저는 다시 뚱뚱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첫 다이어트로 마인드가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의 목적은 ‘제발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혹은 ‘죽어야 살 수 있다’였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을 그대로 갖고 사는 중입니다.

85kg이 됐던 시기는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친구도 많이 늘었고 자신감도 생겼죠. 이전만 해도 저는 수업을 마치면 늘 집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구들과 거의 5년간(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2학년) 내외하던 터라 1년 만에 친구들과 많이 놀러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다시 살이 쪘습니다.

여기서 마무리하고 3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후는 성인이 된 상태(대학교, 직장인)에서 요요와 더불어 지금의 온건적인 체중이 되기까지의 이야깁니다.

[box type=”note”]페이스북 쪽지로 다섯 분 정도가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저보다 심각한 상황이 많아 도와드리기가 어려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물론 유의미한 상담도 있었습니다. 이글을 보는 그분께서는 힘내서 다이어트하시고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세요.

비만인 여러분. 여러분은 또 다른 저입니다. 계속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주신 슬로우뉴스 편집진 여러분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필자)[/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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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페메로 상담드렸었죠!
    (제 신체적 특성탓에)다소 난감할수도 있는 제 질문에 정말 세밀히 고민하고 답변 해주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신경써주셔서 깊은 감사를 느꼈습니다. (이번편이 언제 올라오나 매일 체크하는데 직접 알려주시기도 하셨죠)

    이번 편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살기위해 죽어가고 있었다’

    ‘쓰러져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극한의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합니다.

    많은 힘이되었고 앞으로도 그럴것 같습니다.

    다음편이 매우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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