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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와 취재윤리: 정말 뉴욕타임스처럼 할 자신 있나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가 식사 자리에서 그릇된 언론관을 내보인 것이 화제가 되면서, ‘녹취가 취재윤리상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나왔다. 사실 녹취가 일상화하면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은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딱딱한 이야기만 하게 될 것이다. 자칫 자기가 한 말이 자신의 목을 조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일, 이라고 공격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취재윤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은 문화적인 것이다. 문화적인 것이라 하는 이유는, 취재윤리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보도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인용한 뉴욕타임스의 취재윤리준칙(Ethical Journalism Guidebook) 27번을 보자.

27. 소속 기자들은 모든 대화 상대의 사전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만 녹음 사실을 알고 있으면 녹음이 합법적인 곳에서일지라도, 그런 행동은 속임수다. 최고위 편집자들은 비밀 녹음이 합법적인 곳에 한해 드물게 이 제한의 예외를 둘 수 있다.

27. Staff members may not record conversations without the prior consent of all parties to the conversations. Even where the law allows recording with only one party aware of it, the practice is a deception. Masthead editors may make rare exceptions to this prohibition in places where recordings made secretly are legal.

뉴욕타임스의 취재윤리준칙 (Ethical Journalism)

분명히 뉴욕타임스는 이와 같은 취재윤리준칙을 갖고 있고, 아마도 잘 지켜나가고 있을 것이다. 무척 훌륭한 전통이다. 하지만 이것은 뉴욕타임스의 전통이다. 만약 다른 언론사에 이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윤리’ 준칙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발상이 된다. 만약 녹취가 정말 부당한 행위였다면 미국의 모든 주가 그런 법을 채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타임스는 자신들의 기사 신뢰성을 담보하는 방법 중 하나로 녹취를 하지 않는다는 제한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것이 ‘취재윤리준칙’이다.

뉴욕타임스 취재윤리준칙의 배경

특히 뉴욕타임스가 저런 준칙을 갖게 된 데는 미국 내 일부 주에서 쌍방의 합의가 없는 녹취가 불법이라는 사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미국 내 일부 주에서는 어느 한쪽의 동의만 있으면 녹취가 불법이 아니다. (대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녹취를 하는 도청과 감청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같은 미국 언론이면서 ‘세계 뉴스의 시작’ 격인 AP의 ‘AP 뉴스 기준과 원칙'(AP NEWS VALUES & PRINCIPLES) 문서에서는 녹취와 관련한 원칙을 따로 찾아볼 수 없었다.

요컨대 녹취 금지는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취재윤리는 아니다. 특정 언론사가 녹취를 금지하는 준칙을 가진 것이 이완구 총리 후보의 식사 자리에서 녹취한 기자들을 비난하는 데 이용돼서는 안 된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통신비밀보호법 14조에 따라 제3자가 녹취를 하면 불법이다. 하지만 동석한 사람이 녹취하면 상대의 동의와 상관없이 합법이고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뉴욕타임스의 취재윤리준칙 1번이다.

1. 뉴욕타임스의 목표는 ― 우리 시조(始祖)인 아돌프 옥스가 “두려움과 편애 없이”라고 말한 대로 ― 뉴스를 불편부당하게 보도하는 것과 우리 독자와 취재원, 광고주를 공정하고 숨김없이 대하는 것, 그리고 대외적으로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1. The goal of The New York Times is to cover the news as impartially as possible — “without fear or favor,” in the words of Adolph Ochs, our patriarch — and to treat readers, news sources, advertisers and others fairly and openly, and to be seen to be doing so.

뉴욕타임스의 목표를 선언하고 있는 이 준칙이야말로 녹취 금지를 포함해 155개 항목으로 된 모든 준칙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부언하자면 뉴욕타임스가 녹취를 금지하고 있는 이유는, 뉴스를 ‘두려움과 편애 없이’ 불편부당하게 보도하고 독자∙취재원∙광고주를 공정하고 숨김없이 대해야 하는 원칙 때문이다.

한국 언론이 뉴욕타임스의 공정보도준칙도 지킨다면?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이완구 총리 후보를 비호하기 위해 뉴욕타임스의 취재윤리 규정을 끌어와 ‘녹취가 취재 윤리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뉴욕타임스 취재윤리의 존재 이유(뉴스를 ‘불편부당하게’ 보도하는 것)를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 된다. 그것은 그냥 새누리당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조항만 내세워 현 상황에 뒤집어씌운 ‘프레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취재윤리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만약 한국 언론이 뉴욕타임스의 기준을 금과옥조로 삼아 지키게 된다면 어떨까? 뉴욕타임스 취재윤리준칙을 좀 더 보자.

내가 가장 관심을 두고 지켜본 것은 13번 조항이다. 13번 조항은 자신들이 뉴욕타임스의 ‘공정보도준칙'(Guidelines on Integrity)을 준수한다고 밝히면서 그 준칙에서는 익명의 취재원을 자신들이 기피한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취재윤리준칙은 2004년에, 공정보도준칙은 1999년에 제정된 것이다. 공정보도준칙은 취재윤리준칙보다 더 앞서서 제정됐고, 더 오랜 기간 지켜온 것이다.

공정보도준칙에는 익명의 취재원을 사용한 데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는 뉴스가치가 있고 의지할 만한 정보를 보도할 수 없을 때가 아니라면 확인되지 않은 취재원을 통해 기사를 쓰는 것은 보류한다. (…) 일반적인 규칙은 독자들에게 취재원의 위치와 의도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정보를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취재원이 “익명을 요청했다”고 타성적으로 쓰는 것을 피하고 기자와 취재원 사이에 어떤 이해가 이뤄졌는지 간단명료하게 밝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취재원의 근거를 밝힐 수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The use of unidentified sources is reserved for situations in which the newspaper could not otherwise print information it considers newsworthy and reliable. (…) the general rule is to tell readers as much as we can about the placement and known motivation of the source. While we avoid automatic phrases about a source’s having “insisted on anonymity,” we should try to state tersely what kind of understanding was actually reached by reporter and source, especially when we can shed light on the source’s reasons.

입맛에 맞는 것만 끌어다 쓰지 말자

그러나 한국 언론에는 이른바 ‘정치권 관계자’, ‘업계 관계자’, ‘사정기관 관계자’ 등의 이름으로 익명의 취재원이 넘쳐난다. 오죽하면 이명박 정부 시절 이동관 전 홍보수석의 별명이 ‘(청와대) 핵심 관계자’를 줄여 ‘이핵관’이었을까. 새누리당은, 그리고 뉴욕타임스의 취재윤리준칙을 거론한 중앙일보는 과연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는가?

뉴스에 등장하는 수많은 "관계자"

한국의 뉴스에 등장하는 수많은 관계자

선진국의, 선진 언론의 취재윤리 규정을 끌어오려면 기본적으로 전체적인 의의를 따져서 함께 도입해야 한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만 가져와서 ‘당신 기자 윤리 어겼어’라고 정죄하는 것은 곤란하다. 각 나라에는 각 나라에 맞는 문화가 있는데, 이를 무시해서도 곤란하다. 더구나 특정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스스로 불편부당하지 않고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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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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