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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tip”]슬로우뉴스가 연재하는 시리즈 ‘부엉이 날다’는 학계의 흥미로운 연구를 독자에게 전해 드리려는 취지로 마련되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논문 중에서 우리 일상과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의미있는 것을 택해 간단히 정리해 드립니다. 분야는 인문 사회 과학을 위주로 하여, 조금씩 넓혀갈 예정입니다.

시리즈 제목 ‘부엉이 날다’는 헤겔의 [법철학] 서설에 나오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깔리고 나서야 날개를 편다’는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현실에 늘 뒤처져 가는 학문은 굼뜬 부엉이처럼 느린 존재라 할 수 있지만,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임은 틀림없습니다.

느리게 날아오른 부엉이가 어떤 지혜를 줄지 함께 따라가 봅니다. (편집자)[/box]

자신이 대기업에 다니는 것을 가문의 영광처럼 여기는 이를 만난 적이 있다. 입만 열면 자기 회사 자랑을 해서, 그가 창업주거나 그 식솔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애사심과 자부심이 넘친 결과라고 좋게 볼 수도 있는데, 함께 있던 중소기업 사람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에서는 정이 뚝 떨어졌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갑(甲)질이라고 할까.

‘잘 나가는 조직’ 사람은 불친절하다? 

자신이 어떤 기준에서 순위가 높은 빵빵한 그룹에 속해 있다면 목에 힘이 들어가게 마련인 것 같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니,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그룹이 잘 나갈수록 겸손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자신도 모르게 목은 세우고 목소리는 깔며 표정은 근엄해지게 되는 모양이다.

본인은 몰라도, 보는 사람은 쉽게 알 수 있다. 이게 실제로 근거가 있는 현상일까. 잘 나가는 조직에 속한 사람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게 되기 마련일까.

이런 궁금증을 가진 학자 몇 명은, 개인이 속한 조직의 위치가 그 개인이 보이는 친절함에 영향을 미치는지, 보는 사람이 그런 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이런 인식이 개인 간 협상을 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해 보았다. 실험 내용이 무척 기발하며 재미있다.

연구자들은 세 가지 실험을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첫 번째 실험 

첫째,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매긴 경영대 순위를 기준으로 하여 상위 20개 학교의 경영대 학장들 사진을 확보하고, 이를 무작위로 늘어놓고 연구 참여자에게 ‘사진 속 인물이 얼마나 협조적으로 보이는가’ 하고 물어보았다.

물론 학장들의 소속 학교와 같은 정보는 모두 삭제하였다. 그 결과, 순위가 높은 학교의 학장일수록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오로지 사진만 보여주었는데도, 응답자들은 높은 순위 학교의 학장들이 비협조적으로 보인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놓고 ‘잘 나가는 조직은 소속 사람을 불친절하게 만든다’라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원래 불친절한 사람이 잘 나가는 조직에 들어간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실험 

그래서 두 번째 연구에서는 그런 차이를 고려하여 실험을 설계했다. 여기서는 가짜 상황을 제시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연구원 한 명(A)을 타학교에서 온 학생으로 꾸민 뒤, 연구 참여자(특정 대학 학생들)에게 이 가짜 외부 학생과 간단한 게임을 하도록 요청했다.

참여자 절반에게는 외부 학생이 자기네 학교보다 훨씬 순위가 높은 학교(AH)에서 왔다고 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훨씬 순위가 낮은 학교(AL)에서 왔다고 했다. 게임이 끝난 뒤 연구 참여자들은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 개인들의 사진을 제3의 평가자에게 보여주어, 이들이 얼마나 친절하게 보이는지 평가하도록 했다.

이 실험은 말하자면 사람들이 자신보다 순위가 높거나 낮은 조직의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 태도에서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 조사하려고 한 것이다. 실험 결과, 자기보다 순위가 높은 학교에서 왔다고 한 사람(AH)과 대결한 학생들이 훨씬 협조적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거꾸로, 자신이 높은 순위일 경우에는 덜 협조적인 인상을 주었다는 것.

세 번째 실험 

세 번째 실험은 ‘잘 나가는 조직에 속한 사람은 비협조적으로 보인다’는 인식이 실제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시도되었다.

연구자들은 첫 번째 실험에서 사용한 경영대 학장들 중 상위 5명 중에서 한 명을 무작위로 뽑고(B), 역시 하위 5명 중에서 한 명을 무작위로 뽑았다(C). 이들의 사진을 각각 가짜로 만든 두 개의 홈페이지에 넣고, 이들이 학생처 부처장이라고 밝혔다.

실험 참여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이들이 어떤 학생 조직의 대표자로서, 이 조직의 예산을 놓고 학생 부처장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시나리오를 주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나온 (가짜) 부처장이 얼마나 협조적으로 보이는지, 이들에게 예산을 신청할 때 (3천~5천 달러 사이에서) 얼마를 요구할 것인지 대답하도록 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상위 랭킹 학장(B)의 사진을 쓴 가짜 부처장은 하위 랭킹 학장(C)보다 덜 협조적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첫째 실험의 결과와 같다.

  2. 이러한 인식은 각각의 부처장이 자신(학생 조직 대표)의 요구를 얼마나 잘 받아들일 것인가를 예상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3. 더 나아가 금액을 신청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즉 [상위 랭킹 학장 사진 = 덜 협조적으로 보임 = 요구를 잘 받아들이지 않을 듯 = 예산 금액을 적게 신청]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갑질은 숙명? 

연구를 정리하면, 잘 나가는 조직에 속한 사람(갑이라고 하자)은 그보다 하위인 조직에 속한 사람(을이라고 하자)보다 비협조적이고 불친절하게 보이며, 이런 상황과 인식은 실제 업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실험에서는 소속 조직 같은 정보를 모두 제외했는데도 그런 결과가 나왔으므로, 조직의 서열이 알게모르게 그 구성원의 특성으로 번져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잘 나가는 조직의 인간들이 왜 그렇게 보이게 되는지는 이 연구에서 밝히지 않았다.

이런 연구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 결과는 좀 우울하다. 세상의 인간 관계가 갑-을이라는 위계적인 구도로 정리되는 게 당연시되는 마당에, 개개인의 은근한 일거수 일투족까지 이러한 위계 구도에 따라 표현된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남들이 뭐라건 자신의 소신과 가치관에 따라 겸허한 태도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도 결코 없지 않다고 믿고 싶다.

위 실험 연구에서는 각종 가짜 시나리오가 사용되었는데, 이런 테크닉들은 실험 대상자에게 아무런 해가 없어야 하며, 실험이 끝나는 즉시 그 실제 의도를 참여자에게 알려준다는 점도 참고로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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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사의 부엉이:

Chen, P., Myers, C. G., Kopelman, S., & Garcia, S. M. (2012). The hierarchical face: Higher rankings lead to less cooperative looks.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97(2), 479-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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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얼굴은 마음의 그림종이지요.
    나이는 그림을 그리는데 걸리는 세월이구요
    그그림을 그리는 도구는 선택입니다.
    마음은 얼굴로 행동은 몸으로 반드시 나타납니다.
    잔주름 하나조차도 허투루 생겨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것은 나에게 나타납니다.
    선택은 단지 찬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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