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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렌 인터뷰 4: 부산의 숨은 멋집, 프롬더북스

“요새는 대형마트가 많죠. 마트에 물건이 많은 것 같지만 그래서 고를 것도 많은 것 같지만 결국 사람들은 마트에서 정해놓은 제품 중에서 고르는 거거든요. 영화도 멀티플렉스가 골라준 영화를 보는 거고. 그런 게 싫었어요.” (성진)

“저희가 좋아하고 보고 싶은 책이나 그림이 있는데 구하기는 힘드니깐…… 그럼 우리가 해보자 해서 한 거예요.” (지원)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그 두 가지가 실타래처럼 얽혀 지금의 프롬더북스(from the books)가 되었다.

DSC_1068소개가 늦었다. 프롬더북스는 젊은 예술가나 출판인들이 자비로 출판하는 독립출판물, 또는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수입서적, 소규모 디자인팀에서 제작하는 문구용품을 취급하는 동네서점이다.

나무를 키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꾸준함이다. 성실과 절제이다. 연약한 종일수록 더 그렇다. 신경 쓴다고 해서 나무의 필요에 안 맞게 물을 너무 자주 줘서도 비료를 듬뿍 줘서도 안 된다.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 지킨다는 마음으로 욕심부리지 말고 은근하게 지속해야 한다.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프롬더북스는 첫인상은 마치 작은 화분에 심은 지 얼마 안 된 연약한 떡잎 같았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 구석에 있는 동네서점. 전철역하고도 먼, 여기까지 과연 누가 찾아올까 싶은 곳에 아련하게 있었다. 1년 후 인터뷰를 위해 갔을 때에는 첫인상보다는 조금 단단해 보였다. 주인장들이 욕심부리지 않고 꾸준히 키워 온 느낌이 났다. 그런 나무 같은 느낌이 났다.

–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을 때 기억하신다 하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원: 여기 오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다 기억해요, 몇 번 오신 분들 같은 경우엔 취향을 기억해 두었다가 추천하는 경우도 있어요. 아무래도 일부러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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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천지원 씨 (사진: 김규리)

잘 웃고 활달하신 분은 천지원 씨. 그리고 진지한 표정을 잃지 않는 분은 박성진 씨다. 이 둘은 벌써 7년째 함께 하고 있는 오래된 파트너다. ‘그린그림’이라는 디자인 프로젝트팀을 운영하면서 이곳 부산, 거제동에 프롬더북스를 연 지는 약 2년이 됐다.

– 처음 시작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독립출판물 시장은 서울에서도 홍대 정도에서나 유통될 정도로 아주 작은데요, 부산에서 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요?

지원: 처음부터 동네서점을 하려던 건 아니었고 ‘이런 독립출판물만 다루겠다’도 아니었어요. 우리가 디자인한 제품을 팔 수 있는 쇼룸 형태였어요. 그런데 우리 것만 팔면 공간이 아까우니깐 우리도 볼 겸 책도 들여보자. 부산에도 소개해 보자 해서 시작하게 된 거죠

성진: 인터넷이 발달해서 원하는 책은 어디에 살 건 살 수 있죠. 서울로 안가도 되고. 그래도 책을 직접 보는 게 좋잖아요. 저희가 서울 가면 교통비, 숙박비 들여서 이런 책(독립출판물) 하나 사오는 거잖아요 .그런 거 아쉬웠어요. 부산에 이런 게 활발하지 않으니까 필요하지 않나.

– 동네의 거점 마련을 하신 건데요, 근처에 비슷한 성향의 분들이 모여 있어서 함께 네트워킹하면 좋잖아요.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요.

성진: 그렇죠, 최고죠.

– 홍대 같은 곳도 다 그렇게 커지고 있는 거고

지원: 여기는 저희밖에 없어요.

– 그런 점이 힘드실 거 같아요. 오며 가며 나누는 웃음과 한숨이 없다는 게.

성진: 여기 공간이 임대료가 참 싸서 다른 분들께 소개해 드릴 때도 있어요. 하지만 막상 하게 되면 자기 취향이 있잖아요. 같이 작업하는 친구도 있고 쉽게 이쪽으로는 안 오시더라고요.

– 부산은 이런 쪽에 관심 있는 분이 있는데 띄엄띄엄 있어서 에너지를 모으는 게 쉽지 않아 보여요. 책방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지?

지원: 손님이 많이 올 때. 여기 걸어오기 쉽지 않거든요.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걸어오시면서 이런 곳이 생겨서 좋다는 말씀 해주실 때.

성진: 그리고 많이 팔릴 때. 한 번 오신 분 또 오실 때. 이런 쪽에 관심이 있어도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도 보람 있고요. 관심사 나누는 게 좋은 거지요. 그 외에는 특별히 크게 보람을 느끼는 부분은 없는 거 같아요.

박성진 씨와 천지원 씨는 대학에서 미술 전공을 하면서 만났다. 대학교 때는 모두 네 명이 함께 어울려 이런저런 디자인적 시도를 하며 지냈지만 지금, 다른 두 친구는 직장을 찾아 서울로 갔다고 한다. 부산에서 디자인하는 많은 사람이 일거리를 찾아 서울로 간다고 한다.

– 이렇게 인프라가 부족한데 부산에 남아계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지원: 인터뷰 때마다 그 질문을 받는데요(웃음). 부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서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여기 있어도 다 소통되고 저희 필요할 때 서울 가면 되고, 집이 편하잖아요. 벗어나면 고생이란 걸 알기 때문에.

– 새로운 아이디어는 주로 어떻게 얻으세요?

지원: 저희는 둘이서 얘기하다가 나와요. 다른 사람들과 모여서 얘기할 때도요. 작업하는 시간은 별로 안되고 쓸데없는 얘기만 많이 해요. (웃음)

– 두 분을 채우는 문화적 소스는 어디인가요? 부산인가요? 아니면 책, 영화, 음악?

지원: 부산의 영향을 받거나 그런 건 없는 거 같아요.

성진: 부산에 특별히 애착이 가거나 아닌데 부산에 태어났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거, 그런 거죠. 제 생각에 전 ‘슬램덩크’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동시대에 공감하며 봤던 것들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요. 저는 슬램덩크나 드래곤볼 같은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었어요. 슬램덩크 보면서 농구도 해야겠다, 그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디자인과까지 간 거고요. 슬램덩크 작가와 농구를 1대1로 해보고 싶다 그런 꿈도 꿨었고, 슬램덩크에 나오는 부분이 제 꿈이 되기도 하고요.

– 어떤 부분이요?

성진: 29편을 보면 정우성이라는 캐릭터의 아버지가 뒷마당에 농구코트를 해주거든요. 저도 농구코트가 있는 집을 가지는 게 지금도 꿈이에요. 또 하나는 스타트랙. 스타트랙 주인공 중에 스팍을 항상 배우고 싶어하죠.

– 이건 방금 만화의 주인공들과 너무 극과 극인데요? (웃음)

지원: 스팍은 이성적인데 본인(성진)이 이성적이지 않으니까 닮고 싶은 거죠.

성진: 저는 스팍보다는 커크에 가까워요. 돌진형이죠. 지원인 스팍이구요.(웃음). 지원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잘 내리고 저는 사실 꽂히면 일단 해버리는 성격이라. 일 벌리고 후회도 많이 하고 경험을 해야지만 깨닫는 스타일이에요.

– 두 분의 개성이 한 공간을 이뤄내는 데 적절한 역할배분이 돼 있다는 느낌이네요.

성진: 서로가 하려는 일에 반대하는 성향이 있었다면 같이 하기 힘들었겠죠. 어느 정도 지향점이 같은 곳에 있어서 같이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혼자서는 힘들죠.

지원: 혼자서는 못해요.

–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여기서 공연도 하고 있었는데요, 지금도 기획 중이신가요?

지원: 시작할 때 워크숍도 하고 공연도 하고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올해 들어서는 일이 많아서 염두도 못 내고 있어요. 일단 공간도 너무 비좁고요.

성진: 저희는 이런 문화공간이 부산에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운영해보니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죠. 생각처럼 못하고 있는데 부산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핑계 같았어요. 적극적으로 다양한 기획을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성의 시간도 가졌었죠. 부산이니깐 안 된다는 생각도 좀 들어요. 하지만 저희 생업이 있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요새는 좀 못하고 있어요.

지원: 그래도 조금씩 노력은 하는 편이에요. 이번에 샵메이커즈(프롬더북스와 함께 부산에 있는 인디출판물 서점 2곳 중 하나.)와 함께 6개월 정도의 책 제작 교육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있거든요. 17명 정도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기획을 조금씩 하다 보면 만드는 사람이 소비하는 사람이 되잖아요. 좋아하는 사람도 늘어나고요.

– 작가들이나 편집자들은 왜 굳이 자비를 들여서까지 출판하는 걸까요?

성진: 첫째는 자기만족이겠죠.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을 좋아하는 거죠. 현실에서 자기 것을 끝까지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이 없잖아요.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하다가 자기 스스로 움직여서 작업을 하는 것에서 치유도 되고요. 또 결과물을 만들면 적든 많든 호응을 받잖아요. 작지만 그런 피드백도 힘이 되고요.

지원: 안 만들 수가 없어요, 그럼.

– 두 분도 책을 내신다고요?

성진: 저희는 약간 기술적인 실험을 더 고려해요. 다양한 종이를 써보고 이런 식의 작업을 해보고 이런 식의 인쇄를 해보고.

– 디자인작업에서 어떤 목표가 있으세요?

지원: 빵집 같은 디자인작업실을 생각하고 있어요.

성진: 구상하고 있는 스튜디오 형태가 있거든요. 그래서 공간을 더 넓은 곳으로 옮겼으면 해요. 쇼룸과 작업실과 제작소가 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공간이 너무 좁아서요. 또 마음 맞는 팀이 좀 모였으면 하는 바램도 있어요.

지원: ‘grgm’이라고 가방, 파우치, 노트, 달력, 엽서 등을 만드는 자체 브랜드는 이미 있어요. 좀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은 거죠. 그 날 구운 빵을 팔듯이 그렇게.

직접 제작한 노트와 가방 (사진: 김규리)

직접 제작한 노트와 가방 (사진: 김규리)

– 한국에서 이런 활동을 하시면서 부산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한국사회라서 어려운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성진: 영화를 보더라도 작은 극장에서 영화 볼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하는 거요. CGV를 가야지만 영화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랑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이 잘못된 것 같아요. 사는 게 피곤하니까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게 싫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러면 활동범위가 좁아지죠.

지원: 문화생활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요 일상에 대한 시각이 좁아지고요.

성진: 전형적인 데이트코스 같은 것을 볼 때 느껴요. 보통은 ‘무슨 영화 볼까’, ‘뭐 먹을까’ 이런 고민들 많이 하잖아요? 다른 방식의 데이트도 있을 수 있는데 다른 방식을 고민하는 자체가 힘든 사회이지 않나 생각해요.

–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성진: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인생은 유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원: 직장을 다니는 것도 모두 ‘유지’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성진: 좋아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스트레스 받고 힘든 일도 많거든요. 그런 것들을 잘 넘기고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거요. 사소한 일,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동전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만하고 싶다, 취직하겠다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그런 거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 하는 일, 꿈을 유지하고 싶어요.

– 성진씨의 뒷마당 농구코트 같은 꿈을 지원씨도 가지고 있나요?

지원: 제가 요리하는 거 좋아하는데요, 서양식 요리나 베이킹은 접해보지 못해서 배워보고 싶어요.

– 집에 오븐 두는 것을 꿈으로 하실 수 있겠네요?

지원: 네, 그 정도요(웃음). 구워서 이웃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정도요. (웃음)

독립출판물은 프롬더북스  온라인스토어에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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