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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주의: 전적으로 위아래 없는 ‘프로불편러’의 시선으로 쓴 글입니다. (필자)[/box]

저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KCON 2016 행사[footnote]전 세계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K-POP 갈라 콘서트와 컨벤션이 결합된 한류 페스티벌. 2012년 미국 KCON, 2015년 일본 KCON이 열렸다.[/footnote]에 통역으로 참가했습니다. 문화 적응을 위해 파리에 온 이후 주로 프랑스인과 어울리다 보니 위아래 없이,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말하고 저의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 중요하며, 여성은 그 자체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프랑스 파리에서의 한국인들을 위한, 한국인들에 의한, 한국인의 행사를 보며, 그리고 근혜 님의 용안을 실제로 영접하며 받은 깊은 감명에 대해 나름의 후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대통령이 오는데 나는 왜 예뻐야 하나

먼저, 이번 행사에 필요한 여러 자리(한복모델, 행사도우미, 통역담당 등)는 대부분 현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로 꾸며졌습니다. 20대의 어린 학생들로요. 그리고 저는 사전에 받은 자료를 보며 눈을 의심했습니다. “용모단정, 예쁜 분”이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KCON 구인 관련 문서 중에서
KCON 구인 관련 문서 중에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통역 등 언어가 1순위이고, 외모는 문제가 아닐 텐데 말입니다. 프랑스에 살면서 이렇게 채용기준에 “예쁜 분”이라는 천박하고 성차별적인 단어를 노골적으로 명시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차별금지법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차별로 고소당하기 딱 좋은, 굉장히 남성 중심적이고 구시대적인 표현이 적혀있었습니다. 여전히 여성은 능력이 아닌 외모를 요구받습니다. 제가 목격한 바로는 이번 행사에서 ‘예쁘고 용모단정’이 필수적인 미션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게 찝찝한 마음을 안고 6월 2일, 추운 날씨와 교통파업을 뚫고 오전 9시 행사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서 한식세계화 팀, 비비고 부스 팀, 평창올림픽 팀, 모델 팀, 한복 부스 팀, 중소기업 부스 팀 등 각자 자리를 배정받았고 행사는 10시부터 일반 방문객을 대상으로 시작했습니다.

KCON 2016

사실 방문객 대부분은 한국 아이돌 문화에 관심이 많은 10대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즉, 아직 한국문화는 보편적인 프랑스 소비자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 혹은 하위문화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한국문화라고 해봤자 소개된 게 아이돌밖에 없는 게 제일 한계지만요.

[box type=”note”]이 행사에 오는 대중들은 10대 소녀들이 다인데, 중소기업청에서 중소기업을 데리고 나와서 이러고 있으니 타겟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과 기업을 위한 시장조사와 마케팅을 좀 더 제대로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습니다.[/box]

이렇게 일반 대중에게 5시까지 공개를 하고 오후 5~6시쯤 모두가 밖으로 나와 청와대의 철저한 수색과 신분검사를 마친 뒤, 오후 6~8시까지 VIP에게 오픈이 됐습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모두가 '밖에서' 근혜 님의 안전을 위한 수색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모두가 ‘밖에서’ 근혜 님의 안전을 위한 수색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의 행사?

먼저,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한국 정부의 오랜 염원이죠. 세계인이 한국 먹거리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고요. 한국 정부에서 준비해 온 음식의 면면을 보면, 호두과자, 호떡, 뻥튀기, 붕어빵, (식감 때문에 대부분 선호하지 않는) 떡 등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준비한 붕어빵
한국에서 준비한 붕어빵
한국에서 준비한 호떡
한국에서 준비한 호떡
한국에서 준비한 떡과 약과. 식어서 돌 씹는 줄 알았다.
한국에서 준비한 떡과 약과. 식어서 돌 씹는 줄 알았다.

그에 반해 옆 부스의 프랑스 요리학교 페랑디(Ferrandi)에서 준비한 음식은 밤과 대추를 넣은 한국식 소고기찜 요리와 복분자와 식혜에서 영감은 받은 음료 등을 준비했더군요.

페랑디 학생들이 준비한 머스타드 소스를 뿌린 조개관자 요리
페랑디 학생들이 준비한 머스타드 소스를 뿌린 조개관자 요리

뻥튀기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올려놓고 한식이라고 소개하는 걸 보니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해외시장 소비자 성향 조사를 조금이라도 하셨으면, 그리고 좀 제대로 이 프로젝트가 진행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들은 얘기로는 항공료만 억대라고 했거든요. 파리에서 돈만 엄청 쓰고 우리끼리 정신 승리하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요.

전시장 안에서의 젠더 계급 차이

CJ와 유네스코가 함께하는 소녀 교육 캠페인 ‘Better Life for Girls’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었는데요. 이 캠페인 홍보대사인지 걸그룹 IOI가 초대돼서 왔습니다. 저는 처음엔 누군지 몰랐는데 ‘101명의 어린 여성들이 미디어에 노출돼고, 경쟁을 통해 한 명씩 탈락시켜, 최종 데뷔 멤버를 뽑는 비인간적이고 저급한 방식’에 관해 예전에 프랑스 친구들이랑 얘기한 적이 있는, 바로 그분들이라길래 좀 더 관심이 갔습니다.

제 눈에는 정말 아기들이더군요. 이분들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성인 여성이 아닌, 한눈에 봐도 미성년자인 듯 어려 보이고 (정확히 말하면 ‘미성숙해 보인다’가 맞는 표현입니다) 옷 자체도 교복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애교와 웃음을 강요당하고 있는 모습과 배경에 쓰여있는 ‘Better life for girls’ 캠페인의 타이틀이 모순적이었습니다.

저희 팀과 IOI가 함께 찍은 사진 (일반인들을 지우고 합성한 사진입니다)
저희 팀과 IOI가 함께 찍은 사진 (일반인들을 지우고 합성한 사진입니다)

소녀들의 교육권을 위한 캠페인인데 정작 홍보대사는 시장논리에 의해 교육권을 박탈당한 소녀들이라니…

그리고 성 상품화가 왜 유독 저런 아동성애의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의문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걸 진심 좋다고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한국 남자들도 이해가 안 갔습니다. 전시장 안의 30~50대 정장 입은 성인 남성들이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교복 입은 어린 여성들에게 열광하는 걸 몇몇 프레스로 들어온 프랑스 사람들이 굉장히 신기하게 보고 있더군요.

IOI분들이 피곤해 보이길래 언제 파리에 왔냐고 물었습니다. 행사 전날 밤에 도착해서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고 몇 시간째 혹사당하고 있더군요. 중간에 VIP를 위해 대기해야 하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으니 시멘트와 먼지가 풀풀 날리고 공사 장비로 발 디딜 곳 없는 위험한 부스 뒷공간에서 대기하더군요.

IOI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한국사람들이 인간을 일개 소모품쯤으로 취급한다는 걸 더욱 느낀 건,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행사를 진행하면서 점심조차 30분 이내에 그것도 무대 뒤편 발 디디기도 어려운 곳에서 해결하고 오라고 한 점입니다.

“네? 아니 상식적으로 이런 공사현장에서 어떻게 식사를 해요? 앉을 자리조차 없는데…”

제가 이렇게 쏘아붙였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먹었어요. (그런데 왜 너만 유난이니?)”

도술을 가지고도 헬조선을 개혁하지 못하고 율도국을 세워 떠나던 홍길동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오후 6시 즈음 근혜 님이 들어오시고 저희는 구석으로 치워지게 됩니다. 대통령을 수행하는 사람들, 경재계 인사들, 기타 고위층으로 구성된 무리에서 여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여성이라곤 IOI, 그리고 저희 같은 부스에서 통역이나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뿐이었습니다.

젠더에 따른 계급 차가 그렇게 피부로 와 닿을 수가 없었어요. 아직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중앙 권력에서 여성은 철저하게 배제당하고 그 수조차 희박한데, 무슨 역차별을 운운하고 여성할당제가 불공정하다며 헛소리를 하는지.

출처: YTN 보도 화면
출처: YTN 보도 화면

그렇게 근혜 님은 샤이니 민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우아하게 둘러 보시다 콘서트를 보러 가셨습니다. 저도 콘서트장에 따라갔는데 정말 즐거워 보이시더군요.

하지만 대통령님. 정말 재밌기만 하셨어요? 짧은 치마 입은 미성년 소녀들의 다리를 노골적으로 훑으며 클로즈업하는 카메라 워크를 보며 진짜 아무 생각 안 드셨나요?

나라를 위한 일이니 책임감을 느껴라?

이번 미션을 위해 받은 메일에 누군가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적어놓으셨더군요. 애국심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가 스스로 만드는 국격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겁니다.

사람을 일개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는 행위, 지배권력인 남성들의 소비 대상으로서 주체성과 능동성을 제거당하는 여성의 지위, 그리고 정말 아무 생각 없는 명예 남성 대통령까지…

초대받은 귀빈 중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문화부 장관과 잠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전혀 권위의식도 없고 인간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격 혹은 예의를 차리는 것과 권위주의는 전혀 다르죠. 온종일 권위의식과 비상식으로 무장한 사람들만 보다 처음으로 정화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장관이 같은 나라 사람이었다면 자부심이라는 걸 조금은 가지지 않았을까요?

KCON 2016 플뢰르 펠르랭과 함께

이 글이 분명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유 없는 피해가 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여기서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자격이 있고 그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한다고 배웠으며 2015년 1월 파리 리퍼블릭 광장에 모인 수많은 프랑스인에게서 어떤 상황에서도 이 표현의 자유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엿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글을 쓰고 삭제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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