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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컴퓨터 봉인 해제로 끝날까?

시민 참여와 개입을 통한 사법부 개혁을 꿈꾸며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 개요 

이명박 정권에서 임명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11년 9월 ~ ’17년 9월)  법원행정처는 판사 성향과 동향을 조사해 명단을 작성하고, 관리했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자 ’17년 4월(양승태 재임기) 첫 조사가 있었고, ’18년 1월(현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기) 추가 조사가 있었다. 두 조사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 첫 조사(’17년 4월 18일, 양승태): 일부 사법행정권 남용이 있지만, 블랙리스트는 실체 없다.
  • 추가 조사(”18년 1월 22일, 김명기): 블랙리스트 존재 확인, 특히 법원행정처가 ’12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댓글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와 연결 고리 확인.1

추가 조사위 발표 문건은 블랙리스트라는 표현 대신 이렇게 규정한다. “인사나 감찰 부서가 아닌 담당자들이 법관의 동향이나 성향 등을 파악하여 작성한 문건”. 그렇다. 줄여서 ‘블랙리스트’. 2

그런데 놀랍게도, 중앙일보, 매일경제,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는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는 ‘정신승리’를 시전한다. ’17년 말에 국민이 밝힌 촛불 이후에도 대한민국 보수 언론계의 기득권 연대가 얼마나 강력하고, 또 시대착오적인지를 보여주는 ‘해프닝’이었다. 언론계 버전 ‘영구 없~다’.

  • ‘판사 블랙리스트’ 없었다 (중앙일보, 1면) 
  • “1년 들쑤시고… 법관 블랙리스트 없었다 (매일경제, 29면) 
  • “판사 동양수집 등 문건 발견… 사법부 블랙리스트 없었다” (연합뉴스)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는 제목의 1면 하단 중앙일보 지면 기사 제목(2018년 1월 23일 자)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는 제목의 1면 하단 중앙일보 지면 기사 제목(2018년 1월 23일 자)

그렇다.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그들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국가권력의 감시’라는 오래된 근심을 다시 불러온 ‘어게인 1984’ 사건이라면, 사법계 블랙리스트는 민주주의 권력 체계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민주주의 자체를 ‘농담’으로 만들어버린 사건이다. 둘 모두 민주주의의 근간을 그 뿌리에서 훼손하는 사건이다.

하지만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소식은 하루가 멀게 계속 터지고, 블랙리스트 사건에만 관심을 집중하기엔 우리네 삶은 너무 바쁘고, 너무 팍팍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은 질문해야 한다:

국민이 사법부를 믿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불신에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그 나라의 사법부는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블랙리스트의 핵심 당사자들(특히 임종헌 차장이 숨겨왔던 파일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고, 앞으로 블랙리스트 사태가 어떤 해법을 가져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로 작성된 글이다. 작성자는 여러 명의 법조인이므로 공동 필명을 사용하였다. (편집자)

지난달 23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위원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이하 ‘특별조사단’)이 드디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를 확보하고, 일부 심의관들이 제공을 거부해왔던 약 760여 개의 암호화된 파일의 비밀번호도 넘겨받았다.

하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몇 달씩 고위 공무원인 판사들이 조사를 방해하기 위하여 공용 PC를 건네주지 않았고, 업무 파일들에 설정한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현 김소영 대법관 역시 이를 비호하면서 불필요한 논란만 증폭되면서 대법원장의 사법부 개혁 동력을 과도하게 소진해왔다(참조 기사).

블랙리스트 판사

컴퓨터 봉인해제는 출발점일 뿐 

그러나 이제라도 컴퓨터 봉인해제로 조사가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된 이상 다음의 점들이 반드시 조처되어야 한다.

첫째, 조사의 진행을 현저히 지연시킨 대법관을 포함한 전·현직 판사에게 반드시 권한을 남용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들은 신의를 다해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였어야 함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지체해 왔다.

둘째, 관련 파일 등이 훼손·멸실된 일이 있다면 누가 어떤 의도에서 훼손하였는지도 반드시 밝혀져야 하며, 이러한 행위에서 증거인멸 등의 범죄 혐의가 포착된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고발해야 한다.

셋째, 조사 대상이 되었던 자료들의 원 데이터, 조사과정 및 그 결과를 대법원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법으로 시민들 앞에 한 치의 왜곡도 없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 위원회]는 2018. 1. 22. 관련 조사위원회를 “법원 내부게시판(코트넷)”에 올리고, 언론브리핑도 하지 않았는데, 이번 조사 결과는 이렇게 제한적으로 제시되어서는 곤란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조사와 관련 후속처리는 판사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통하여 시민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들이 우회적 경로를 통해서 부분적이고 제한적으로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조사내용과 그 과정은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시민의 참여와 개입을 통한 사법개혁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사결과 최종적으로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자들, 또는 관련된 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법관들을 포함하여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대법원장은 조사결과에 따른 이러한 후속 절차까지 사법행정권 남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

대법원 블랙리스트 사건과 기득권의 이익에 충실한 판결로 대법원을 박근혜 정권의 주구로 전락시켰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장. 블랙리스트 사건의 책임자를 엄정하게 묻지 못하면, 블랙리스트 사건은 해결될 수 없다.  

대법원 블랙리스트 사건과 기득권의 이익에 충실한 판결로 대법원을 박근혜 정권의 주구로 전락시켰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장. 블랙리스트 사건의 책임자를 엄벌하지 못하면, 블랙리스트 사건은 해결될 수 없다.

‘사법불신’ 콜롬비아와 어깨를 나란히 

그 동안 법원행정처에서는 법관들의 공정한 재판을 방해하면서까지 판사들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판사들의 뒷조사하고 이를 기록하고 인사에까지 영향을 주는 갖은 악행을 행하여 왔음이 이미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바 있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호하고 있는 이유는, 보호된 벽 안에서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지금이라도 투명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하여 이러한 위헌적인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관련 조치들이 엄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더 나아가 법원 본연의 업무인 [재판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 역시 이번 조사 및 향후 관련 업무의 본질적인 내용이 되어야 한다. 2015년 OECD가 발표한 사법 시스템 신뢰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42개국 중 39위(27%)를 차지했다. OECD 국가 평균은 54%이며 우리보다 낮은 신뢰도를 보인 나라는 콜롬비아, 칠레, 우크라이나뿐이다.

2016년 형사정책연구원이 실시한 형사 사법기관 조사에서도 법원에 대한 신뢰도는 24.2%에 불과했다. 즉, 이번 사법행정농단을 시민들의 공정한 재판권 실현측면에서 제대로, 철저하게 풀지 않는다면, 그저 법원 내부에서의 일로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조사는 끝이 아니며, 이번 조사를 시작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당사자를 충분히 배려하는 재판을 위한 치열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컴퓨터 봉인해제가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을 푸는 시작일 뿐, 본질적 의미의 사법부 독립의 보장은 지금부터 시민들과 법원이 함께 숙의하여 그 방향과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


  1. 참조: 머니투데이, [전문]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18. 1. 22.)

  2. 2018년 1월 22일 대법원의 블랙리스트 조사 발표문에 따름. 재인용 출처: MBC, [새로고침] 사법부 블랙리스트 있다? 없다? 조사 발표 짚어보니…, 2018.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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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봄날의 민들레
초대필자. 법조인

우리 사회에도 봄날이 오기를 바라는 한 떨기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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