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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를 복습한다

급박한 현안을 앞에 두고 글을 쓰는 이유는 야당 분열의 책임을 안철수에게 돌리기 위함이 아니다. 총선, 대선을 앞둔 야권에 훈수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은 문화 텍스트로서의 ‘안철수’, ‘안철수 현상’에 대한 복습이다.

한 개인을 통해 현실을 살핀다는 것이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다. 다만 박근혜의 시대, 지도력 부재의 야권에서 안철수 개인이 가진 성향이 현 정치적 국면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라고 본다. 또한, 그 안철수를 불러낸 우리 사회의 문화, 권력 지형 역시도 짚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안철수를 복습하다 보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풍향계

인간 안철수

한 인간으로서 안철수를 떠올려 본다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옳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무난하고 착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믿지 말자. 이건 오래된 신조 같은 것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은 정치적인 사람이고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박근혜와 안철수의 공통점은 생각보다 많다. 무엇보다 언제나 옳은, 무의미한 말을 하는 어법이다. 이러한 어법의 사람들은 대체로 철학이 명확지 않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박근혜는 자신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옳다고 생각하는 듯하고, 안철수는 사람들이 자신을 훌륭한 사람이라 여겨주는 것으로 자신이 그러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언제나 엘리트의 길을 걷고 성공했기에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으로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의 유형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리하기에 힘을 가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한다.

안철수와 박근혜은 사실 닮은 점이 많다. (출처: 위키백과 공용) https://ko.wikipedia.org/wiki/%EC%95%88%EC%B2%A0%EC%88%98#/media/File:Ahn_Cheol-Soo.jpg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A%B7%BC%ED%98%9C#/media/File:Park_Geun-hye_(8724400493)_(cropped).jpg

안철수박근혜는 사실 닮은 점이 많다. (출처: CC BY SA, 위키백과 공용)

대선, 안철수는 양보한 것이 아니다

그런 숨은 권력의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은 지난 대선 단일화 과정이었다. 안철수는 왜 대선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일방적으로 진행했는가? 사실상 지난 대선은 그 지점에서 완전히 끝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적어도 내겐 안철수는 지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

현실적으로 당시 여론조사의 흐름이 문재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올 때였다. 일반적인 경선을 통해 패배했을 때 그는 정몽준처럼 혹은 이인제처럼 되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처음부터 의심했던 철학과 진정성의 부재는 그 시점에서 내겐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 되었다.

MB 정권을 지나며 붕괴하는 민주적 가치에 대한 강렬한 위기감, 그에 대한 응징으로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상황에 대한 절박함 같은 것은 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확실해 보였다. 아마 그러한 것들이 단일화를 한다면 그 단일화의 대의 같은 것이었으리라.

2012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당시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 사퇴의 뜻을 밝히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567004.html

2012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당시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 사퇴의 뜻을 밝히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그는 자신이 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고 자신은 언제나 옳기에 자신이 지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었다. 경선을 치르기 전에 사퇴한 것은 여론조사가 불리했다는 뜻이었고, 그럼에도 자신이 패배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안철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말을 한다. 자신은 구태정치를 벗어나 보려고 노력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단일화 방식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것은 국민의 뜻에 어긋난다.’ 이런! 자신은 새정치를 하려 했지만, 협상파트너가 구태정치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한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은 기본적으로 ‘양쪽 모두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있고, 차기가 도래해도 전통적 야당지지자들은 새누리당을 찍을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이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은 양쪽 모두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이다. 안철수는 자신의 정치적 지지층을 단일화를 통해 넘겨주는 척 넘겨주지 않았고 이는 대선 패배를 확정 지어 버렸다. 안철수는 내겐 대단히 호감이 안 가는 정치인이었다.

안철수를 다시 한 번

그러다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된 동기는 순전히 새정연 때문이었다. 야당의 이 끝없는 무능은 이명박이 오뎅을 물고 돌아와 대운하를 파더라도 정권을 바꿀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무능은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무능이다. 물론 이런 무능을 낳은 것에는 노무현 정권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결과적이었든 어쨌든 말이다.

새누리당의 과거를 살펴보면 언제나 한쪽에 원희룡, 남경필 같은 비주류들을 두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같은 편이지만 자신들이 생각해도 부끄러운 짓은 욕해주고 그래서 당이 다시 정권을 잡아야 할 때 이미지 세탁에 나서주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이준석이 그 역할을 충실히 준비하고 있다. 당내에 대립각을 가진 세력들을 키워줌으로써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당내에서 세력교체, 혁신 같은 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원희룡 남경필

원희룡, 남경필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경기도 홈페이지)

야권에서는 재야 세력의 영입을 통해 기존 당권파와의 균형추를 잡았던 것이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국면을 지나 열린우리당이 탄생하며 구 당권 세력이 인위적으로 걸러졌던 것이 나름의 생산적 대립을 약화시켰고 경험으로 축적된 정치력을 약화시켜버렸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권 이후 야권이 지역 소 기득권에 매몰되게 만들었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내가 안철수를 긍정적으로 보려 했던 부분은 포퓰리즘적 정치전략에서였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 정원수의 축소, 기초 자치단체 공천 폐지 같은 공약들이다. 나는 그 정책들이 국민감정에 부합할지는 몰라도 바람직한 정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치 혐오증에 기댄 포퓰리즘 적인 정책인 것이다. 하지만 야당의 끝없는 무능을 보며 기능적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차라리 정치력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안철수는 강한 권력의지를 가지고 있고, 직업 정치인으로서 대중추수에 충실했다. 이것이 박근혜와 안철수의 또 다른 유사점이다. 다만 박근혜는 정권을 잡은 것이기에 행동으로 다른 시그널을 보여주고 있고 안철수는 그럴 수 없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사회 시스템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나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사건에 빠르게 대처한다는 점이다. 재빠르게 대통령이 강림하여 권력으로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이다. 전두환 추징금 환수 추진1이나 여당 주도의 황제노역 방지법이 대표적이다.

2013년 5월 16일 오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앞에서 5.18민중항쟁서울기념사업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연대 등 참여단체 회원들이 '전두환 불법 비자금 추징금 체납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633961.html

2013년 5월 16일 오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앞에서 5.18민중항쟁서울기념사업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연대 등 참여단체 회원들이 ‘전두환 불법 비자금 추징금 체납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사실 이런 식의 정치는 근본적으로 국민을 적당히 무시하고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국민 눈높이’라는 겸손한 말이 내포하고 있는 뜻은 오만함인 것이다. 안철수는 어떤 정치적 성과도 없는 텔레비전에서 만들어진 깨어지기 쉬운 이미지를 대부업체의 이자처럼 불려 대선에서 승리할 수도 있었다. 박찬종이나 문국현의 선례들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얇은 자산을 이토록 잘 보존한 정치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진정성은 없지만 지지 않기 위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정치력도 새누리당을 이기려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야당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특정한 지지층의 열광적인 애정과 염원이 담기지 않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능적인 정치인이 된 것이다. 이기면 밀어줄게! 합당의 타이밍까지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적은 자산을 불리고 보존하는 정치력만은 인정해 줄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리스크

하지만 우려가 되는 지점은 리스크가 너무 커 보였다는 것이었다. 안철수의 그 모호한 이미지가 깨어지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노무현의 그것처럼 뿌리 깊지 않기에 깨어지기도 쉽다. 한때 그가 고집했던 기초공천 폐지 공약은 안철수의 입장에서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안철수는 ‘국민에게 약속을 지키는 안철수’ vs ‘약속을 어기는 박근혜’의 단순한 매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층위에서 대립하게 된다면 그의 정치력, 수권능력, 철학 등 모든 면에서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열정적인 지지층이 없는 정치인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또한 든다. 안철수의 얼굴로 다음 총선과 대선이 진행된다면 과연 적극적으로 투표할 맛이 날 것인가? ‘신상’  선호로서의 안철수 열풍은 식어 버렸고 대안 부재 상황에서의 냉정한 지지만이 그에게 있다. 그리고 과연 안철수가 정권을 잡았을 때 새누리당보다 더 나을 수 있을 것인가도 의문이었다. 방향성도 중요하지만, 수권능력 자체가 더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라는 '신상' 정치상품이 지니는 리스크.

안철수라는 ‘신상’ 정치상품이 지니는 리스크.

이후 당 대표로서 재보선 과정에서 보여줬던 안철수의 리더쉽은 그런 우려가 사실이었음을 보여주었다. 현재 분열로까지 치닫고 있는 야권의 상황 역시 안철수 만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그의 여러 리스크들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모호하지만 참신한 이미지는 특별한 콘텐츠를 보여주지 못한 채 낡아버렸고,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그의 행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현실정치의 장에서 안철수는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안철수 현상은 이미 자연 소멸되어 가고 있다. 나는 지난대선 한국사회에 도착한 안철수 현상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노년층의 집단적인 새누리당 지지가 사회적으로 무력해졌지만, 버릴 수 없는 동물적 자존심을 지키려는 젊은 세대에 대한 인정투쟁의 측면이 있다면, 안철수 현상은 정치혐오라는 현상에 살며시 기대 크게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 쿨하게 옳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국민들의 허영심과 ‘신상’ 선호의 산물이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허망한 정답희구 심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안철수 탈당 사태는 기형적으로 탄생한 정치 신인의 처절한 현실 검증과정을 보여준다. 대단히 우려스러운 지점은 그 좌충우돌이 야권 전체의 명운을 뒤흔들고 있고, 그것이 전혀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상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그럼에도 생각해볼 만한 점은 이번 탈당 사태가 상당한 파괴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야권 성향의 커뮤니티 반응을 살펴보면 안철수를 비판하는 사람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예상보다는 많은 사람이 그의 행보에 공감을 보내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나는 그것이 온전히 안철수의 행보 그 자체에 대한 지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안철수보다 더 오랜 시간 야권을 움직여온 현 주류 세력의 한계를 절박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으로 읽혔다. 현 주류중심으로 무난하게 통합을 이룬, 문재인 체제하의 총선, 대선에 회의감을 가지는 것은 이해할만한 감정인 것이다. 그것이 이번 사태에서 안철수의 선택을 지지할만한 합당한 이유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 상식적인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은 충분히 합리적인 감각이다.

이런 에너지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 정권 들어 야권의 이슈만으로 이 정도까지 집중적인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미디어 중심의 정치 환경에서 정치적 중량감이란 이슈의 중심에 서서 언론의 관심을 받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때가 많다. 야권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 리스크를 높임으로써 절박한 지지층이 결집할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과 현 주류세력은 살아남기 위해 평시라면 하지 않을 혁신적인 정치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야권의 역동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

2015년 12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안철수 의원. 안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사진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970425.html

2015년 12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안철수 의원. 안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사진제공: 민중의소리)

하지만 문제는 과연 그러한 에너지를 정치적 성과로 이끌어낼 능력이 현재의 야권에 있는지다. 총선을 희생해서라도 대선 가능성을 높이는 데 무게를 둔 안철수의 구도는 총선에서의 야권 승리를 힘들게 만들었다. 개헌선 붕괴가 언급될 정도로 높아진 리스크는 그 기회를 잡아내지 못했을 때 야권 전체의 공멸을 낳을 위험성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안철수의 개인적인 성향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지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리스크마저도 천천히 쇠락해갈 것 같은 지지부진한 야당의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어느 것이 더 나쁜 것인지조차 쉽게 판단할 수는 없었다. 또한, 탈당 결과가 우려스러운 방향으로 흐른다 할지라도 그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결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이번 안철수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더 빠른 결론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해진 것 같다.


  1.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6월 11일 국무회의에서 “(전두환) 추징금 문제도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고, 6월 27일 ‘전두환 추징법’으로 불리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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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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