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adsense]2014년 2월 송파구 세 모녀

생활고 끝에 세 모녀는 함께 죽음을 결심했다. 일명 세 모녀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이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는 큰딸,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작은딸과 실직한 모친은 집주인에게 ‘사람 죽은 집주인’이라는 불명예를 안기고 싶지 않았는지, 친절하게 월세와 공과금을 남겼다. 그 액수는 70만 원이다.

2014년 10월 동대문구 최 노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최 노인은 공사장 현장에서 일용근로를 하다 3개월 전부터는 일을 하지 않았다. 전세를 살다가 퇴거당할 상황에 빠진 최 노인은 목을 매기 전에 장례비와 공과금, 아마도 찾아올 경찰을 위한 ‘국밥값’을 남겼다. 그 액수를 전부 합치면 176만 원이다.

그리고 2015년 1월……

지적장애 1급 언니를 돌보다가 ‘할 만큼 했는데 지쳐서’ 여동생 류 씨는 번개탄을 피웠다. 류 씨는 언니를 좋은 시설보호소에 보내달라 부탁하고, 역시 사회에 맨입으로 부탁할 수는 없었는지 월세 보증금을 사회에 기부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덤으로 약식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장기의 가격이 얼마인지는 계산하지 않겠다. 보증금은 아마도 176만 원보다는 확실히 많을 것이다.

Bruno, CC BY SA https://flic.kr/p/7UKo1B
Bruno, “천사의 기도”, CC BY SA

악의 평범함… 중학교 시절의 기억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을 떠나서 장애 등급이 뭔지를 정확히는 모른다. 근처에 장애인은 없고, 백만이 넘는 장애인은 철저한 빈곤 속에서 입자처럼 존재하니까. 대중이 장애인이 나타나면 불편해하기에, 그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시설로, 자기 집으로, 움직일 때는 대중교통이 아닌 장애인 차량으로 ‘숨는다’. 그래서 장애 등급이 1급이 가장 심한지, 3급이 가장 심한지도 사실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참에 말하자면, 1급이 가장 심하다.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m.vop.co.kr/view.php?cid=624265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10여 년 전 중학생 시절에, 지적장애 1급 장애인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일을 거든 적이 있었다. 별다른 것이 아니라, 중학생들에게 흔히 필요한 봉사활동일 따름이다. 많은 일화가 있었지만, 사실 기억도 많이 끊겨서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느낌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가령 이런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당시 ‘수발 당번’을 돌아가면서 맡았다. 수발 당번이 피하고 싶은 아이들은 당번을 돈 주고 팔았다. 그 액수는 1학기보다 2학기가 훨씬 더 컸다. 그리고 ‘그 아이’에 대한 언어는 바뀌어 있었다. ‘OO이’ 에서 ‘그 놈’, ‘그 새끼”로… 기억나는 건 이 정도다.

내가 기억하는 ‘지적장애 1급’의 느낌은, 소년들에게 사람을 이유 없이 괴롭히면 안 된다는 당연한 도덕률을 무시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다르게 표현하면, 불쌍함을 압도하는 ‘악마적 충동’을 일으키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이 문제인 느낌을 줬다.

위키백과에 ‘아이큐와 사회성숙지수가 34 이하인 사람으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적응이 현저하게 곤란하여 평생 타인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으로 정의된 지적장애 1급이란, 내 기억에는 그런 느낌이었다. 존재 자체가 더는 동정이 아닌, 악의를 일으키는 것.

교실

류 씨는 마지막까지 언니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사무실에서 류 씨 자매의 기사를 읽었다. 류 씨의 언니가 경찰 조사에서 “동생이 높은 곳에서 같이 뛰어내리자고 했지만 죽기 싫어서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과거의 기억에 불이 켜졌다. 나와 급우들이 갖게 되었던 악의가 기억났다. 그렇다. 지적장애 1급이란 분명히 내 기억엔 그런 것이었다. ‘급우다. 친척이다. 불쌍한 사람이다…’ 그런 감정을 완전히 찢어버리는, 그런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다. 떠올리는 순간, 언니의 발언에서 어떤 행간 역시 알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언니의 진술은 단순한 진술이 아니었다. ‘지적장애 1급’ 언니의 말이 갖는 진짜 의미는, 그 언니가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동생이 앞으로 없을 거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앞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웠던 어떤 생각마저 났다.

과연 류 씨는 마지막까지 언니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무슨 미친 질문이냐고 손가락질받아도 할 말이 없지만, 분명히 내가 본 것은 그랬다. 류 씨가 죽음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류 씨의 초점이 자신의 죽음에 있는지, 언니를 포기하는 것에 있는지, 자살을 택한 과정에서 죄책감과 후련함 중 대체 어느 쪽의 감정이 들었을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가족이 장애인을 버리는 것이야 흔한 일이다. 하물며 중증 장애인이란 말이다. 평범한 사람은 그 존재를 참기 어렵다.

LMAP, CC BY https://flic.kr/p/4B7Ew6
LMAP, CC BY

죽음조차 미안하게 만드는 사회 

앞서 언급한 세 사건에서 죽은 이들이 남긴 것은 미안함 혹은 죄스러움이었다. 그리고 그 죄스러움은 점점 더 커졌다. 월세와 공과금을 더한 70만 원, 거기에 장례비와 처리비를 더한 176만 원, 거기에 월세 보증금과 값을 따지기도 어려운 장기 기증… 이상했다. 분명히 공교롭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언니를 사회에 맡기는 비용도 있다. 그러나 액수는 분명히 커졌다. 액수를 떠나서, 사회 밑바닥을 살면서 사회에 근본적인 분노와 원한을 품기에 충분한 사람들이 사회에 똥을 뿌리기는커녕, 사회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집 주인에게 들이닥칠 기자들과 나쁜 평판을 걱정하고, 뒤처리 해줄 사람들이 뜨신 국밥이라도 못 먹을까 걱정하고, 언니를 사회에 그냥 내던지는 것 같은지 부탁을 하며 어차피 세상 볼 일 없어진 마당에 장기를 기부한다. 평생 가도 못 만져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냉동인간’이 되어 영생을 꿈꾸기도 하는 사회에서.

Jenavieve, "The joke is on me", CC BY SA https://flic.kr/p/88PSfA
Jenavieve, “The joke is on me”, CC BY SA

버림받은 사람들… 죽음조차 폐를 끼치지 않도록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확신을 느꼈다.

어느 순간, 사회에 의해 버림받은 사람이 죽는 과정에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방식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이 전부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일관성이 있었다. ‘죽음으로 존재를 알리는’ 것이 거부당하고 있었다. 죽음이 최소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월세, 공과금, 장례비, 장기 기증……

그다음엔 무엇이지? 더는 내놓을 것이 없다. 있다면 딱 하나다. 존재 그 자체를 ‘원래 없었던’ 것으로 치는 것이다. 죽는 것이 아니라, 실종되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서울의 달동네가 사라지고, 지방에 공단이 남은 것처럼.

N i c o l a, CC BY https://flic.kr/p/aBvdLz
N i c o l a, CC BY

이유가 무엇인지는 지금 이 순간엔 잘 모르겠다. 단지 세 모녀 사건에서 세 모녀가 세상을 뜬 방식이, 사회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에 모종의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생각이 스쳤다. 세 모녀가 죽은 방식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사회의 최약자들에게 심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일들은 있었다.

그러나 세 모녀 사건은 범사회적인 이슈가 되었고, 지방 농촌에서 벌어지는 고독사는 잘해야 그 마을의 일일 뿐, 여론을 이끌어가는 도시의 사람들에겐 사실 잘 전해지지도 않을 일이었던 것이다. 그 차이였다.

사회를 원망하는 것마저 막는 어떤 힘 

분명히 어떤 힘이 있다. 그 힘이, 사회에 똥을 뿌려버리고 떠나는 것도 어렵게 하고 있었다. 간디의 ‘비폭력 투쟁’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발휘하는 철옹성 같은 생각 때문에,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것에 더 가까웠다.

과연, 그 사람들이 전부 ‘엄청나게 착한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했다고 말해야 하나. 그렇게 하면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라서, 평생 그렇게 할 일이 없었던 건가. 절대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확인한다. 오히려 사회가 자신들을 다루는 방식을, 죽은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진 못했어도 느꼈던 것 같다.

복잡하기 짝이 없고 제한사항은 수도 없이 걸려 있는 지원규정, 과중한 업무 때문에 자신을 근본적으로 귀찮아하는 공무원들과 관계자들의 피로와 짜증에 시달린 표정, 태연하게 자신과 언니를 힐끗힐끗 보며 수군댔을 어떤 사람들, ‘가난하기 때문에’ 물게 되는 불안정한 고용과 빚의 이자 등, 수많은 가난의 비용까지. 그런 파편들이 모두 합쳐지면, 남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낙오자에겐 절대로 시선을 주지 않는 사회.

Matteo Parrini, CC BY NC SA  https://flic.kr/p/FsFGH
Matteo Parrini, CC BY NC SA

그런 배제의 기억은 결국 자신을 없애는 과정도 조용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매번 안 된다는 말만 들으면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철옹성같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무엇을 느꼈을까.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 같은 마무리를 하진 않겠다. 내가 느끼는 것은, 그저 예전부터 공기와 같았던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빈곤의 고착, 일상화된 저성장, 풍요를 포기하고 지금이 풍요롭다 세뇌하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까지.

지금 ‘인간’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 

더 말할 것 없다.

사회는 누군가를 배제했고, 배제당한 사람들이 아예 죽는 과정에서조차도 그걸 처리할 비용을 분명히 짜냈다. 개개인이 착하고 말고는 사실 별 상관이 없다. 그저 그 자리에서 없어진 것이다.

그것에서 무엇을 볼지는 개개인의 자유다. 단지 나는 그저 원론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인간이란 단어는 어떤 의미냐고.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은 어떤 사회냐고.

무슨 결론이 나올 수 없다. 그저 옳음을 고민해야 하고, 없어져 버린 사람들을 초대하고, 상상해야만 한다. 아이큐가 류 씨 언니처럼 34 이하가 아니라 100이라는 사실은 다가오는 빈곤과 양극화의 파도 앞에선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래서 고민해야만 한다. 그래서 어떤 답을 줘야만 한다.

그렇게 믿고 산다.

송파구 세 모녀가 살던 반지하 월세방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731411.html
송파구 세 모녀가 살던 반지하 월세방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관련 글

11 댓글

  1. 그러니까 이게 왜 사회적 타살이냐는거죠 ㅋㅋ 장애인 가족 둔 사람 한두사람 아니고 형편 힘든 독거노인도 한두분이 아닌데

  2. 장애인 가족 둔 사람과 힘든 독거노인이 모두 죽으면 그건 타살이 아니라 학살이겠죠.

    그리고, 이걸 왜 사회적 타살인지 이해를 못하는 댓글을 보면서, 과연 사회적 타살이었음을 더욱 확실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3. 같은 글을 이렇게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니 놀랍네요. 학살이 일어나도 학살로 인지하지 못 할거라는 예측과 함께요.

  4. 우문현답 짧고 강한 엑센트라 생각합니다. 어찌 물어보는 사람이 그 물음을 이해하지못했는데 답을말해도 알아들을수 있겠는가.

  5. 뭐 세상이란게 그런거아니겠음
    나쁜놈 밑에 착한놈있고 뛰는놈 위에 날아다니는놈 있고 잘먹고 잘사는사람 한두픈 별거아니지만
    잘못먹고 못사는 사람에겐 그 값어치를 느끼게 하죠
    항상 개인 밖에 생각 못하니 어찌 행복을추구하며
    자살 과 죽음을 피할수있겠는가 또한 자살하는 사람의 최종적 심정 은 왜 못알아주는것일까
    하루살이 같은 사람들에게 힘 을 보태줍시다

  6. 어차피 우리는 뭐 자본주의의 굴레에 엮여 있는데요 뭐… 그리고 그 자본주의라는게 돈, 수치라는 것으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을 통제한다는 목적으로도 만들어졌을텐데 지금은 왠지 그 허점을 잘 파고드는 방법만 팽배해진 사회가 된 것 같네요
    예상되었던 일이었겠지만 인간은 소외되고 있습니다.
    두서없이 갑자기 쓴거라 좀 그렇지만
    뭔가 대책이 필요한건 맞죠
    인간성을 되찾으려면 우리사회는 뭘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참 생각이 많아지네요
    뭔가 뿌옇게 문제가 분명히 있는건 맞는데 구체적으로 콕 집어서 생각해보고 알아내기가 힘들었는데
    잘 정리된 글 하나 잘 보고 갑니다
    뭔가 우리는 또 좋은 걸 생각해 낼 수 있는거겠죠?
    사회라는게 인간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니까
    할수있는 걸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자구요.
    누가 굳이 안알아줘도 초연히.

  7. 양심조차 못 찾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 의 잘못도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들 참..이게 인간들의 본성 인가
    인간답게 살아야되는데 정령 그렇게 살고있지않네 인간들;;
    인간다운 사람은 5%도 없는걸까 흠…정말 대한민국심각하다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