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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콜드케이스] 미디어를 통해 반영·증폭·구성되는 문제적 현상과 사고방식을 ‘캡콜드’ 김낙호 교수가 명쾌하게 분석합니다.


케이스 02. 미연방대법원

  1. 50년간 약속을 미룬 대가: 미연방대법원의 역습
  2. 뒤집힌 판결, 변절한 작가, 멈춘 시스템: ‘로 대 웨이드’ 폐기로 본 미국
  3. 업데이트 멈춘 미국, 이제 롤 모델이 아니라 반면교사 (끝)

캡:콜드케이스

50년간 약속을 미룬 대가

미연방대법원의 역습

미연

미 연방대법원의 영향은… 낙태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총기 규제, 건강보험, 인종차별 교육 같은 문제들도 마찬가지죠. 결국 이런 미국적 사고는 다른 나라에도 전파됩니다. 미국 우익의 담론을 그대로 수입하는 한국 우익,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우익의 행태에는 이런 영향이 느껴집니다.

김낙호(캡콜드)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교수

2019년 4월 11일, 우리 헌법재판소는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에 관해 헌법불합치 결정했습니다. 이로써 낙태죄를 폐지하고, 낙태권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월 1일 0시, 낙태죄는 드디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국회가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체입법을 마련하지 못했으니까요. 우리나라 국회, 참 한결같이 일 안 하죠?

한편 아일랜드도 2018년에서야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금지법(수정 헌법 제8조)를 폐지했습니다. 이건 참 의외죠? 아일랜드는 최근 세속화의 영향으로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톨릭 국가라는 점을 상기하십시오.

낙태,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헌재는 판결문 속에서 “자신과 태아의 미래의 삶에 대한 총제적이고 심증적인 고민에 기반하여 내려지는 결정”이라고 말합니다(판결문을 좀 더 살펴보고 싶은 독자들께선 아래 ‘참고’를 눌러주세요). 하지만 분명한 방향은 있습니다. 낙태에 관한 선택권은 국가가 아닌 여성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낙태 행위를 죄로 처벌해선 안 된다는 것.

임신한 여성이 낙태 여부를 결정할 때에는 태아에 대한 애착, 태아의 생명 박탈에 대한 윤리적 문제와 더불어 출산 후 양육을 담당하면서 부담해야 할 막대한 사회적·경제적·신체적·정서적 책임과 태어날 아이의 미래의 삶을 종합적으로 깊이 고려하는 것이 통상적이고, 이러한 결정은 임신한 여성이 자신과 태아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중 압감 속에서 자신과 태아의 미래의 삶에 대한 총체적이고 심층적인 고민에 기반하여 내려지므로, 그 결정의 무게에 비추어 낙태에 대한 형사처벌의 가능성이 위와 같은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여 낙태가 증가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자료를 찾기 어렵고, 오히려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 국가가 낙태를 처벌하는 국가에 비하여 낙태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는 실증적 결과가 있을 뿐이다.

또한 그간의 낙태죄 처벌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본래의 입법목적과는 다른 목적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았는데, 헌법불합치의견이 밝힌 것처럼 자기낙태죄 조항은 종종 헤어진 연인, 남편 등의 복수 혹은 괴롭힘의 수단이나 가사·민사 분쟁에서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되었다.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어 사실상 사문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실제로 기소되어 처벌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사례들이 위와 같은 악의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은 낙태를 예방하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위 조항들에 의하여 형사처벌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미미하며 실제 형사처벌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대부분이 본래의 입법목적과는 다른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되는 등으로 형벌조항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들 조항이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재판소 2019. 4. 11. 선고 2017헌바127 전원재판부 결정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중에서
수정헌법 8조를 폐지하라! (“Repeal the 8th”) ‘폐지’라는 캠페인 셔츠를 입고 걷는 아일랜드 여성들. 역사적인 2018년 5월 26일 국민투표일에 촬영한 사진. 위키미디어 공용.

21세기를 꽤 멀리, 꽤 길게 통과한 뒤에야 낙태권은 아일랜드(2018)와 한국(2019)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뒤늦게 도착’한 진보와 인권은 아쉽지만, 그래서 더 소중합니다.

하지만 훨씬 우리나 아일랜드보다 훨씬 더 일찍 도착했지만, 정반대로 도망가는 나라도 있습니다. 네, 미국입니다. 2015년 가을에서 2016년 봄까지, 우리가 타락한 대통령 박근혜를 그 권좌에서 몰아내던 바로 그때, 미국 유권자들은 ‘미치광이 삐에로’ 도널드 트럼프를 권좌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트럼프의 미국은 기어코 2022년, 헌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고 ’50년 동안 착각’한 낙태권을 폐기했습니다.

1973년은 미국 사회의 분기점이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에서 미 헌법 14조가 낙태권을 보장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 6월 24일은 정반대로 분기점이었습니다. ‘도브스 대 잭슨 여성 건강 기구 사건'(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 평결을 통해 미국 헌법 14조가 ‘더는’ 낙태권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으니까요. 아래 ‘참고’를 누르면 이 판결이 가지는 의미와 그 후폭풍을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캡:콜드케이스’에서 다룰 사건은 ‘미 연방대법원’입니다. 이제 미국 연방대법원은 그 존재 자체로 사건입니다. 다이너마이트입니다. 그것의 다른 이름은 트럼프로 상징되는 미 민주주의의 위기입니다. 미국은 아직 트럼프의 악몽을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 불안을 우리보다 잘 아는 국민도 또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 미 연방대법원에 의해 계속 뒤집히고 있는 미국의 평등과 인권에 관해 김낙호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미 대법원이 2022년 6월 24일 금요일 낙태 합법화를 이룬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50년만에 뒤집었다. 앞으로 낙태권은 개별 주에서 결정되며, 미국 내 거의 절반의 주에서 낙태 금지법 및 금지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다.

사무엘 앨리토(Samuel Alito) 대법관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약한 추론을 기반으로 결정된 판결이며, 그 판결로 인해 극심히 해로운 결과가 초래되었다. 낙태 문제의 국가적 해결이 아닌 분열을 심화시켰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번복이 동성애 권리와 피임약 복용 관련 선례 역시 흔들 수 있다고 예측한다. (중략)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고 낙태에 대한 헌법적 권리를 폐지한 후 “이 나라 여성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고 단언했다. 또한 “이 나라에서 정의를 뒤집고 여성의 기본권을 박탈하기로 한 오늘 결정의 핵심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명한 세 명의 대법관이 있다”라며, 이번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은 대법원의 전례 없는 비극적 오류이며, 이는 근본적인 헌법상 권리 박탈이기에 즉각적으로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단언했다.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하원의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여성에 대한 모욕이다. 대법원은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고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대법원이 50년에 가까운 오래된 판례를 뒤집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변덕이 초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개인적인 결정으로 인해 수백만 미국인의 본질적 자유가 공격당했다”고 비판했다.

5월에 실시된 CNN 여론 조사에서 미국인은 66%대 34%로 대법원이 결정을 뒤집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1989년부터 진행된 CNN의 여론 조사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을 찬성하는 대중의 비율은 36%를 넘은 적이 없었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자동으로 발효되는 이른바 ‘방아쇠(trigger) 금지령’이 시행되고 있다. 켄터키, 루이지애나, 사우스다코타 3개 주는’방아쇠 금지령’으로 낙태 금지를 시행하고 있다. 다른 10개 주는 일정 기간 후 금지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국제 동향: 미 대법원,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 확정, 2022. 7. 13.
연방대법원 앞에서 낙태 찬반을 표현하는 시민들 모습. Victoria Pickering, Dobbs v. Jackson, 2021. 12. 2. CC BY NC ND

민노: ‘로 대 웨이드’ 사건(1973)을 통해 미국에서 헌법적 권리로 사실상 인정받았던 낙태권이 지난해(2022) 50년 만에 뒤집혔습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인데요. 사건의 의미를 일단 평가하신다면요.

김낙호(캡콜드): 오늘 우리가 나눌 이야기에서 먼저 전제해야 하는 건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이 차지하는 위상이에요. 미국 사회는 250년 전 재미있는 실험 같은 거였습니다. 당시 유럽 정치철학자들의 이론을 실현하고 관찰할 수 있는 실험장이었던 거죠.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의 사회 체제를 디자인하면서, 특히 삼권분립에 관해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일을 진행하는 행정부, 규칙을 만드는 입법부, 일이 잘 진행되는지 시시비비를 가려줄 사법부까지. 특히 선출직 권력인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무소불위적 권력 추구와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사법부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사법부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강했어요.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법 원칙만으로 움직이는 독립적인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 위에서 사법부가 출범하죠. 그래서 연방대법원 판사가 종신임명제인 겁니다.

기본 전제는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그 모든 사건이나 분쟁을 헌법에 담긴 철학과 기준 그거 하나로 본다. 그 외에 행정이나 입법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 틀을 갖춰놓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시작한 거죠.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철학과 정신, 기준이 있더라도 그걸 200년 넘게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그 이상대로 굴러가지는 않죠.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 헌법에 서명하는 모습. 1787년 9월 17일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에서 미국 헌법에 서명하는 제헌회의를 묘사한 그림이다. 하워드 챈들러 크리스티 1940년 작.

대법원… 보수적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


김낙호: 우선 대법원이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헌법이라는 것도 더 옛날의 기준이란 말이죠. 그리고 그런 헌법적 기준에 맞춘다면, 당연히 옛날 기준, 보수적 기준이 될 수밖에 없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한동안은 꽤 오랫동안 거의 기계적일 만큼 헌법 정신으로만 판단했고, 그래서 행정부와 입법부가 부침을 겪는 동안에도 사법부는 높은 대중적인 신뢰와 공신력을 가지고 권위와 권한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사법부의 권위와 사법부를 향한 신뢰가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해요. 정확히는 60년대, 70년대부터 그 균열이 시작됐는데요. 원래 60년대에 들어오면서 흑인인권운동이 강하게 치고 올라옵니다. 거기에 페미니즘 운동도 부상하죠. 그 밖에도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요구하는 다양한 운동들이 굉장히 빠르게 사회적 이슈로 올라왔어요.

1963년 워싱턴 기념비에서 링컨 기념비까지 행진하는 모습.

그리고 그런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입법이 많이 움직입니다. 예를 들면 인권법을 만들어서 인종적인 평등을 구현한다든지 하는 활동이 있었죠. 사실 그게 당초 미국 건국의 이상향에 가깝죠. 그러니까 대중의 요구가 있고, 시대가 변화하면 그 변화를 법을 통해 반영하고 구현한다는 것.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갈수록 그런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법안들이 점점 더 많아지다보니 그걸 구현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반동(백래시)과 갈등도 커졌어요.

그렇게 사회적인 갈등이 커지고, 입법의 속도가 줄어들면서, 입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판례’(법원의 판결)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점점 늘었어요. 아직 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례를 통해 그 문제를 일단 잠정적으로는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 거죠. 가령, 어떤 주법이 헌법정신에 비춰서 합헌이다 위헌이다는 식으로 기준을 세웠어요.

낙태권, 왜 법이 되지는 못했는가


김낙호: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게 바로 ‘로 v. 웨이드’ 판결입니다. 그 절차를 요약하면요. 텍사스에서 낙태와 관련한 소송이 있고, 그 소송의 기준법이 되는 주법이 있고, 관련 행정기관들이 엮인 상태에서,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금하는 주법이 옳지 않다고 판결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입법이 되기 전에 사법으로서의 판례가 낙태를 사실상 헌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개인의 자유라고 결론을 내려준 식입니다.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으로, 연방대법원이 ‘일시적으로’ 해결해 준 셈입니다.

그런데요. 낙태라는 것은 워낙 ‘지뢰밭’이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지만 50여 년 전에는 더욱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에 그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하지 않은/못한 겁니다. 입법으로 밀어붙이지 못한 거죠. 어느 쪽이든 정치적 후폭풍이 신경 쓰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50년 동안 뭉개면서 지나간 거죠.

그러니까 낙태 찬성 진영에서도 그걸 입법으로 확실하게 보장하려고 하기보다는 ‘어차피 대법원 판례가 있으니까 헌법적으로 보장된 거야’라고 하면서 대충 넘어갔습니다. 낙태 반대 진영에서도 이미 연방대법원에서 결정된 걸 뒤집기는 너무 힘들단 말이죠. 그래서 괜히 건드리지 말고 그냥 물 밑에서 계속 낙태 반대 운동을 하면서 여론을 바꿔 나가는 쪽으로 활동하면서 50년이 흘렀어요.

결국 낙태는 법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연방대법원 판례로만 그 헌법적 권리가 인정돼 왔던 거죠. 그 점에서 이미 미국의 체계적 취약성이 드러난 셈인데요. 이후 50년 동안 어떻게 상황이 악화했느냐면요. 대법원이 갈수록 정치적인 압력에 강하게 노출되기 시작했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법원이 갑자기 정치세력에 의해 타락했다는 것은 아니고요.

이슬비에 옷 젖듯… 아주 느린 타락, 정치화


김낙호: 미국에서 입법부가 가면 갈수록 제 역할을 못 하게 됐어요. 미국 국회가 움직이는 방식들이 훨씬 더 정교하게 진화한 정치 전략 전술들, 선거공학적 방법론에 지배당해서, 새로운 입법을 통해 큰 체계를 바꿔내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단 말이에요. 새로운 법이라도 만들려고 시도하면, 필리버스터고 뭐고 해서 저지하려고 하고,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만큼 압도적인 정치적 상황 자체도 벌어지지 않고요. 그런 식으로 입법부가 사실상 마비에 가까운 상태가 됐단 말이죠.

입법부가 그런 식으로 마비되니까 심지어 행정부가 뭔가를 하려고 해도 입법부 차원에서 그걸 승인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시도를 차단함으로써 행정부도 상당 부분 마비된 상태가 되었고요. 그렇게 입법부도 마비되고, 사법부도 마비되면, 결국 남는 건 사법부밖에 없단 말이죠. 그렇게 사법부의 권한이 과도하게 커지고, 특히 사법부의 최종 보스, 최종 관문인 대법원이 사회적인 안건,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안건에 관한 최종 결정권이 갈수록 커진 거죠.

거기에 연방대법원 판사들은 선출된 권력도 아니란 말이죠. 대통령이 추천하고, 그 추천을 입법부인 상원의회에 올려서 다수당인 데가 그냥 자기네들 고무도장 찍어서 올려버리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자리에 한 번 오르면 평생 연방대법원 판사인 거고, 그러다 보니까 연방대법원은 당연히 더 노골적으로 정치화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요.

균열 혹은 반동, 5:4 → 4:4 → 3:6


김낙호: 특히 가장 중요한 변화랄까 중요한 사건은 오바마 정권 후반부에 기존 보수와 리버럴 5:4였던 연방대법원의 구도가 보수 성향의 판사 스칼리아(1936-2016. 2.13.)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정치적인 구도가 4:4가 되죠.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대통령도 민주당이니 진보적인 성향으로 공석을 채웠어야 했는데, 하필 그때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이었어요. 당시 상의원장 맥코널(Addison Mitchell McConnell III) 의원은 스칼리아 유명을 달리한 그다음 날 스칼리아의 대체자(새로운 연방대법원 판사)로 오마바가 추천하는 사람을 대체하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성명을 발표했죠.

“맥코널 도전장을 던지다: 오바마 정부하에서 스칼리아 대체는 없다!”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는 폴리티코 기사. 갈무리.

스칼리아가 별세한 지 한 달쯤 뒤에 오바마가 메릭 갈랜드(Merrick Garland)를 후보로 임명했지만 맥코널은 관례를 깨고 오바마가 임명한 후보를 심의하지도 않았죠. 맥코널은 오바마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아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2020년 9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암으로 별세하자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2016년의 오바마보다 훨씬 짧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지명한 후보의 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고 발표했어요. 그야말로 내로남불을 시전한 거죠.

그렇게 연방대법원 4:4의 구도가 유지되어 오던 와중에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 세계적인 극우화의 물결 속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고, 트럼프 임기 동안에는 연방대법원 판사 2명을 거의 날치기 수준으로 후다닥 교체했죠. 그러게 진보적인 성향의 판사는 1명이 줄어서 3명이 됐고, 보수적인 판사는 2명이 늘어서 6명이 됐어요. 3:6의 구도가 된 거죠.

기존에 연방대법원 판례는 실질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정말 사회적인 변화가 극심하거나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은 그 판례는 유지됐죠.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구도가 완전히 깨져버린 3:6 연방대법원 구도 속에서, 그동안의 전통이 논리적인 원칙이 아닌 정치적 힘의 구도였을 뿐이라는 게 드러났죠. 이것저것 막 판례가 뒤집히기 시작한 거예요.

미국 연방대법원. 2022년 6월 이후~ 현재 로버츠 대법원장의 대법원.
뒷 줄(왼쪽부터): 에이미 코니 배럿,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앞 줄(왼쪽부터): 소니아 소토마요르, 클래런스 토머스와 대법원장 존 로버츠, 새뮤얼 알리토,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

그리고 그렇게 뒤집힌 가장 대표적인 판결이 ‘로 v. 웨이드’ 판결(1973)인 거죠.

민노: 이제 본격적인 질문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네요.

김낙호: 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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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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