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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참여와 권력 분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기업 모델은 누구나 고민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게 됐다. 현재 대다수 신문사는 위기에 봉착해 있는데 새로운 모델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책이다.”

“대다수 신문사는 주식회사의 형태를 취하고 신임의 의무가 없는데도 양질의 뉴스 생산에 온 힘을 쏟기 보다는 이윤을 추구한다. 언론 재화의 특성상 이윤 추구와 거리가 먼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디어 구하기]는 줄리아 카제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쓴 책이다(이하 직책 생략). 카제는 이 책에서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를 저널리즘 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해법이라기보다는 주식회사 언론사의 한계를 고민하고 토론을 제안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2013년에 [한국의 경제학자들]에 썼던 기업 지배구조의 고민과도 맞닿아있는 책이기도 하다. 몇 가지 흥미로운 포인트를 정리해 본다.

미디어 구하기

카제가 비영리와 주식회사라는 충돌하는 두 가치를 연결시켜놓은 건 그게 언론사(미디어 기업)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슬만 먹고 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해관계가 저널리즘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의 지분 구조에 대한 설명이 매우 부실하다. 아래 숫자와 그래프는 카제의 설명을 기초로 내가 만든 것이다.)

내가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회의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언론사와 주식회사는 맞지 않는다. 해마다 주주들에게 수백억 원의 배당을 안겨주는 자칭 ‘1등 신문’ 조선일보나 미디어 재벌로 변신하고 있는 중앙일보, 애초에 상업방송으로 출발해 주가 끌어올리기에 혈안이 된 SBS 등과 달리 상당수 언론사들은 어차피 주주 배당이 큰 의미가 없다. 이익이 나야 배당도 하는 것이지만, 이미 뉴스를 팔아서 돈을 벌 수 없는 시대다.

주식회사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에 가장 확실하고 간편한 방식이다. 돈을 내면 지분을 확보하고, 지분만큼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카제는 “상장은 신문사와 민주주의에 있어서 실수였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상장 여부를 떠나 주식회사라는 제도 자체가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이익을 늘리기 위해 인력을 줄이고, 비용을 삭감하면서 뉴스의 품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되고 있다. 수익성이 선택과 집중의 기준이 된다는 이야기다.

많은 언론사가 주류 정치와 거대 기업 이슈에 집중하면서 정작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거대 담론과 정책 이슈는 넘쳐나지만, 진지하게 시대정신을 고민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심판자 역할을 자처하고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정작 지역 이슈는 관심 밖이고 민주주의의 확장이나 민중의 삶의 문제에도 큰 관심이 없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주식회사 언론사는 주주의 이해에 복무할 수밖에 없다. 태생적 한계다.

나는 오래전부터 주식회사+언론사는 이질적인 조합이라고 생각해 왔다. 애초에 주식회사로 출발했는데 주주의 권리를 제한할 방법이 있는가? 영리적 목적이 아니라면 주식회사로 시작하면 안 되는 것이고 이미 주식회사로 출발했다면 소유와 경영의 제도적 분리, 쉐어 홀더(주주)와 스테이크 홀더(이해관계자)의 이해 상충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주주들의 선의에 기댈 문제도 아니고 희생을 요구해서 해결할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공익적인 목적의 기업은 애초에 주식회사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굳이 주식회사일 필요가 없는 기업들이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에 주식회사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지분이 곧 기득권이고 그 기득권이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구성원들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일단 주식회사로 출발하고 나면 돌이킬 방법이 없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카제의 해법은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주식회사의 장점을 살리되 비영리적 목적을 강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첫째, 납입된 자본금은 회수가 불가능하다. 이익이 나더라도 주주 배당도 없다. 둘째,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대신 직원 조합과 독자 조합에 의결권을 할당한다. 투자금액의 상한이 아니라 의결권 상한을 둬서 일정 비율 이상 지분이 늘어나면 의결권이 늘어나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이른바 카제식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참조: 아래는 번역 원문인 영어본).

  1. 지분율 1% 미만의 주주들은 조합을 만들 수 있다(지분 조건은 달라질 수 있다. 아래도 마찬가지).
  2. 지분율 10% 이상의 주주들은 10% 초과 지분의 의결권을 3분의 1로 제한한다. 예: 30% 지분이라면 의결권은 10+(20÷3)%.
  3. 후원자들에게도 의결권을 부여한다.
  4. 10% 이상 주주들의 줄어든 의결권만큼 소액주주(직원+후원자)들의 의결권을 늘려 총액을 100%로 맞춘다.

 

  1. Below a certain threshold(e.g. 1%), “stockholders” are allowed to gather to form an association(e.g. editors’ association or readers’association). Compared to existing model of crowdfunding, they obtained voting rights: they are no longer considered as crowdfunders/donors but as stockholders.
  2. Above a certain threshold(e.g. 10%), voting rights increase less than proportionally with capital shares. E.g. above this threshold, investments might yield only 1/3 of a vote per share.
  3. Tax-deductions offset this loss of power.
  4. Below this threshold (for small stockholders), investors would receive a proportionate boost in their voting rights(so that the total is always 100%).

주식회사 시스템에서는 돈을 많이 낸 사람이 더 많은 지분을 가진다. 투자 시점에 따라 배수가 달라지겠지만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1주 1표의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카제식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는 대주주의 의결권을 축소하는 대신 직원과 독자 후원자들의 의결권을 대폭 늘린다. 비영리적 정체성과 주식회사로서의 자본 조달, 그 미묘한 균형 지점을 찾는 게 관건이다.

회사 설립에 22억 원이 필요하다고 가정해 보자. 설립자 2명이 각각 4억 원씩, 그리고 직원 40명이 500만 원씩 출자해서 2억 원을 만들면 10억 원이 된다. 나머지 10억 원은 펀드의 투자를 받으면 자본금 20억 원의 회사가 된다. 설립자들은 각각 20%씩, 투자 펀드는 50%의 지분을 확보하고 직원 100명은 10%의 지분을 나눠 갖게 된다. 부족한 2억 원은 독자 2,000명에게 10만 원씩 크라우드 펀딩으로 조달한다고 가정하자. 후원 개념이라 지분은 없다.

카제식 주식회사에서는 10% 이상 주주는 10% 초과분의 3분의 1만 의결권을 인정하고 나머지를 1% 미만 소액주주 그룹에 배분한다.
카제식 주식회사에서는 10% 이상 주주는 10% 초과분의 3분의 1만 의결권을 인정하고 나머지를 1% 미만 소액주주 그룹에 배분한다.

그러나 카제의 시스템이라면 10%를 초과하는 지분은 3분의 1만 의결권을 인정하게 된다(물론 이 기준은 정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직원들은 직원조합(editors’ association)을 만들고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독자들은 독자조합(readers’ association)을 만들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주주의 의결권이 줄어든 만큼 직원 조합과 독자 조합의 의결권이 늘어나게 된다. 1주 1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분과 의결권이 다르다는 게 핵심이다.

이 경우 설립자들은 각각 의결권이 13.3%로, 투자 펀드는 23.3%로 줄어드는 대신 독자 조합과 직원 조합이 각각 25%씩 의결권을 확보하게 된다. 직원들은 의결권이 2.5배로 늘어나고 단순 후원자였던 독자들은 지분이 전혀 없는데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의결권을 행사하는 주체가 많아지면 곤란할 수도 있으나 어느 정도 이상 기준을 둘 것인지는 역시 정하기 나름이다.

카제식 주식회사에서는 우리사주와 크라우드펀딩에 세제 혜택을 주기 때문에 외부 주주의 투자 없이도 자본을 확충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직원과 독자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구조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카제의 주장이다.
카제식 주식회사에서는 우리사주와 크라우드펀딩에 세제 혜택을 주기 때문에 외부 주주의 투자 없이도 자본을 확충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직원과 독자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구조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카제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 경우 투자 펀드의 투자 메리트가 떨어진다는 데 있다. 자금 회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는 꿈도 꿀 수 없다. 설립자(창업자)들도 일정 부분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대신 비영리 주식회사의 출자 또는 후원을 기부금으로 인정하고 세제 혜택을 준다면 직원과 독자 회원들의 참여를 크게 늘릴 수 있다. 투자 펀드의 목돈을 포기하는 대신 소액 주주들을 대거 모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만약 직원들이 1,500만 원을 출자할 경우 1,000만 원을 세액공제로 돌려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면 500만 원을 출자할 여유가 있는 직원들이 기꺼이 1,500만 원을 출자할 것이라는 게 카제의 가정이다. 이 경우 직원들 40명의 출자 금액이 2억 원에서 6억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독자들 역시 단순 후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세제 혜택에 의결권까지 받는다는 조건이라면 후원이 4배 정도 늘어날 수 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이 경우 설립자 2명이 각각 4억 원, 직원들이 6억 원, 독자들이 8억 원을 모아 22억 원을 확보하게 된다. 같은 금액이지만 완전히 비영리적인 자립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실제로 의결권은 설립자들은 13.3%씩, 직원들 40명은 0.79%씩 합계 31.5%의 의결권을 직원조합에서 행사하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41.9%의 의결권이 독자조합의 몫이 된다. 독자 8,000명으로 나누면 한 사람에 0.005%밖에 안 되지만, 전체 독자조합으로 보면 최대 의결권자가 된다.

설립자 입장에서는 당초 투자한 금액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어서 아쉽겠지만, 여전히 단일 주주로는 최대 주주인데다 수익 창출 목적이 아닌 선의의 소액 주주를 다수 확보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카제의 표현에 따르면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는 기존 주주의 의결권을 보호하는 한편 당순 기부자 이상의 역할을 하는 소액 기여자에게 권력을 부여해 정치적 권력의 희석이라는 문제를 색다르면서도 한층 민주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일반적인 주식회사는 증자하면 할수록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희석되지만, 카제식 주식회사에서는 직원조합이 손쉽게 의결권을 방어할 수 있다. 만약 자본금 20억 원의 회사에서 20억 원을 증자한다면 신규 주주가 50%의 지분을 확보하고 기존 주주들 지분은 반토막이 나겠지만, 카제식 주식회사에서는 직원 40명이 20만 원만 추가 출자해도 10% 지분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한국 번역본에서는 번역자가 지분과 의결권을 헷갈리는 것 같다.)

(자본금 40억 원 회사에서 직원 40명이 5%를 나눠 갖고 있는 상황이니까 일반적인 주식회사에서는 직원들이 10% 지분을 확보하려면 추가로 2.2억 원을 출자해야 한다. 직원 1명당 550만 원이 된다. 그러나 카제식 주식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이미 25%의 의결권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 들어온 주주가 20억 원을 출자해서 50% 지분을 확보해도 의결권은 23.3%밖에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직원들이 의결권을 방어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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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제식 주식회사에서는 투자 메리트가 크지 않은 반면 직원조합의 의결권 방어는 매우 쉽다. 일반 주주의 7분의 1 정도 금액으로 비슷한 수준의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고 투자 금액이 늘어날수록 의결권 승수도 높아진다.

(이 경우 자본금이 2배가 되면서 직원조합의 의결권이 25%에서 20.9%로 줄어들고 최대 의결권자 자리를 내주게 된다. 25%의 의결권을 유지하려면 추가로 출자해야 하는 금액은 9,090만 원. 40명으로 나누면 227만 원이지만, 3분의 2를 소득공제로 돌려 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면 실제로 직원들이 부담할 금액은 76만 원 밖에 안 된다. 일반 주식회사라면 2.2억 원이 필요하겠지만, 카제식 주식회사에서는 3,030만 원으로 의결권을 지킬 수 있게 된다.)

(20억 원의 증자가 이뤄진 상황에서 직원조합이 25% 의결권을 지키려면 일반 주식회사에서는 10.6억 원을 추자 출자해야 하는데 그래도 20억 원을 투자한 새 주주가 39.5%의 압도적인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 카제식 주식회사에서는 직원조합이 10.6억 원을 투자할 경우 지분 비율은 25%지만 의결권은 44.2%로 늘어나게 된다. 자본금이 50.6억 원인 주식회사의 의결권을 44.2% 확보하면 의결권의 가치는 22.4억 원. 실제 투자금액의 2배가 넘는다.)

카제의 시나리오는 몇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일단 한국에서 주식회사는 지정기부금단체가 될 수 없다. 비영리 주식회사라는 건 아직 법적 규정조차 없다. 언론사 후원금에 소득공제 혜택을 주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 기존의 주식회사를 비영리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것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주식 매매가 불가능하다면 초기 투자가 가능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언론사를 빙자한 우회적인 탈세를 막을 방법이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후원자에게 의결권을 준다는 발상은 매력적이지만, 누가 독자조합을 대표해 의결권을 행사할 것인지, 그리고 여러 후원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후원금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독자조합의 의결권이 늘어나는 구조인데 시간이 지나면 지분은 전혀 없는 독자조합이 지배적인 의결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자칫 주인 없는 회사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고, 역으로 독자조합이 편집에 개입할 우려도 있다.

게다가 소득공제는 돈을 돌려주는 마법이 아니다. “15만 원 후원하고 연말에 10만 원 돌려받으세요” 같은 캠페인이 유행할 텐데 간과해서 안 될 부분은 그 10만 원만큼 정부의 세수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독자 후원이 전제돼야 하지만 결국 세금으로 언론사를 지원하는 셈이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의 경우 광고 매출 비중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카제가 비영리+주식회사라는 모델을 제안한 것은 세계적으로 저널리즘 생태계가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생존의 위기가 저널리즘의 질적 추락으로 이어지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자 후원이 마지막 희망이지만 근본적으로 지배구조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후원 모델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카제의 문제의식이다.

카제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1950년대 초부터 1990년대까지 신문 지면이 늘어났으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지면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판형도 줄어들었고, 활자 크기가 커지면서 기사도 줄어들었다. 단순히 기사가 줄어든 게 문제가 아니다. 카제는 콘텐츠의 질적 하락에 주목한다. 세계적으로 많은 언론사들이 뉴스의 품질을 포기하면서 비용을 줄이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게 카제의 분석이다.

통신사 기사를 베껴넣으면서 이슈 추종형 기사로 지면을 채우는 게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카제의 설명에 따르면 “무료 뉴스가 실시간으로 재생산되는 사회에서 탐사 보도에 필요한 비용을 투자해가면서까지 특종을 터뜨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점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제목과 리드만 바꿔 동일 기사를 반복 전송하는 관행도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수익구조의 위기가 지면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카제는 ‘허상의 종말’이라는 장에서 광고의 허상과 경쟁의 허상을 이야기한다. 뉴스의 선호도 아래 숨겨진 이질성이 높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론사가 늘어난다고 해서 뉴스의 스펙트럼이 넓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프랑스의 경우 전체 기자 수도 늘어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기사 길이도 짧아졌고 다루는 주제 범위도 오히려 좁아졌다.

더욱 놀라운 건 뉴스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지방선거 투표율이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신문사들의 경쟁이 심할수록 투표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저널리즘의 위기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격언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카제는 “경쟁의 제한을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면서 “독점도 해답은 아니지만, 미디어의 수를 늘려 미디어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해법은 올바르지 않다”고 강조한다.

카제의 주장에 따르면 온라인에 독자가 더 많다는 것도 허상이다. 르몽드는 1회 방문당 페이지뷰가 4건, 뉴욕타임스는 1회 방문당 체류시간이 4.6분밖에 안 된다. (한국 언론은 훨씬 더 참담한 수준이다.) 여전히 종이신문 독자들이 더 열독률이 높고, 광고 수익에 기여도도 크다는 게 카제의 주장이다. 디지털 혁신에 해법이 있을 거라는 많은 언론사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다.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제프 베조스나 피에르 오디미야르 등이 수억 달러를 들여서 신문사를 사들이고 있는 것도 허상이라는 게 카제의 지적이다. 저널리즘의 해법이 아니라 결국 갑부들의 취미생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새로운 미디어 제국의 권력 집중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당장 현금이 돌긴 하지만, 결코 영속적이지 않은 방식이 때문이다. 카제는 “민주주의를 빛내기 위해 국민에게 제공되는 뉴스를 온전히 시장 논리에 맡길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언론사들이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사례를 알고 있다. 카제는 노동자경영참여주식회사(SAPO)도 사례가 많지 않다. 카제는 묻는다.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민주적 경영 시도가 항상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언론사도 기업이라 민주적 원리만으로 굴러가지는 않는다. 철저한 경제적 원리(1주1표)와 철저한 민주적 원리(1인1표) 사이의 중간점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신문 독자 종이신문 저널리즘 언론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회의에서 내가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다. 주식회사일 필요가 없는 언론사들이 관행적으로 주식회사로 출발하고 스스로 한계를 규정한다. 이익이 나든 나지 않든 이 회사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가치에 복무하는지에 따라 콘텐츠의 방향이 결정되고 독자와의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배구조만으로 뭔가를 바꿀 수는 없지만, 지배구조가 조직의 권력 관계를 규정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의의 후원으로 자립할 수 있는 언론사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된다. 한국에서 뉴스타파 같은 모델이 둘 이상 나오기는 쉽지 않다. 억만장자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미국의 프로퍼블리카(ProPublica) 같은 모델이 대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제프 베조스나 피에르 오디미야르가 저널리즘을 구원할 것인가? 공짜 뉴스의 시대, 독자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한다면 먼저 독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핵심을 함축한다. “아무런 대가 없는 후원 대신, 언론이라는 공공재를 후원하는 시민에게는 공공재를 집합적 지혜로 함께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 크라우드 펀딩 투자자가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의결권과 정치적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 또 이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권력을 다시 줘야 한다. 핵심은 자본주의, 크라우드 펀딩,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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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X에 실린 글을 필자의 양해를 얻어 슬로우뉴스에 맞게 추가 보완한 글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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