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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부키
장하준 (출처: 도서출판 부키)

2.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경제성장’

(1)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더 이상 힘들다?

장하준에게 이렇게 물었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에서 보듯 현재 한국 경제는 지표와 체감이 괴리되는 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제는 과거 같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주장도 많다. 일각에서는 ‘통큰치킨’ 논란에서 보듯 과거 과감한 설비 투자로 경제 성장에 이바지했던 재벌기업이 이제는 중소 자영업 영역까지 진출하는 것도 한국경제가 성장 여력을 없어지면서 나타나는 제 살 깎아먹기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장하준은 이렇게 대답했다.

-일부에선 끊임없이 ‘성장동력이 없어진다, 먹을 게 안 보인다’ 하는 비관론을 펴면서 ‘제조업 시대는 끝났으니 금융과 서비스업으로 가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근거가 아주 없진 않겠지만, 단순하게 말한다면 성장동력을 찾기 귀찮으니까 자꾸 그런 얘길 하는 것이다. 국가 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률 자체는 낮아지는 게 맞다.

만약 경제 수준이 높아져서 자연스럽게 성장이 둔화하는 것이라면 그 추세가 완만해야 하는데 한국은 외환위기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떨어졌다.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라면서 추진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 개혁’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증거다.

‘중국이 쫓아온다.’라는 샌드위치론도 말도 안 되는 궤변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와 제일 못하는 나라를 빼고는 세상 모든 나라가 언제나 샌드위치 신세다. 중국이 어려운 경쟁 상대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가령 태국은 1990년대까지 노동집약을 무기로 한국을 추적했지만 크게 걱정할 게 없다. 임금이 낮은 대신 기술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상대적인 임금 수준도 낮고 기술력도 일정 수준 이상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고 게임 끝났다고 볼 게 아니다. 왜 쫓아오는 국가만 걱정하고 도망가는 국가는 무서워하지 않는지 반문하고 싶다.

중국 추적 때문에 이제는 금융업과 서비스업으로 가자는 얘기가 많지만, 그 분야는 이미 선진국들이 단단히 똬리 틀고 앉아 있다. 금융업이 겉보기엔 좋아 보여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금융혁신이란 사실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로비를 통해 규제를 완화한 덕분에 생겨난 허상에 불과하다. 그런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더구나 정부가 정말 심각하게 금융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우겠다면 과거 고도성장기처럼 수십 년짜리 목표를 세우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금융 허브라는게 지금처럼 적당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부나 재계가 ‘금융업 해서 쉽게 먹고 살 수 있는데 우리가 왜 이 고생하나.’라는 생각을 하니까 자꾸 제조업 끝났다는 담론을 확산시킨다. 결국, 설비투자하고 기술 개발하고 노동자들을 훈련시키는 게 힘들고 귀찮으니까 성장동력 없어진다는 얘기가 자꾸 나온다. 언제는 경제여건이 쉬워서 경제발전했나? 언제는 선진국들이 낮잠 자는 틈에 경제성장했나? 충분히 할 수 있다. 불과 수십년 전에 우리는 전쟁으로 모든 게 잿더미가 된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1960년대 포항제철 건설할 때를 생각해보자. 전세계가 다 미쳤다고 비웃었지만 결국 해냈다.

(2) 기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주식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장하준에게 이렇게 물었다.

돈줄이 막혔다고 하소연하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주식시장에서 기업 자금조달이 이뤄지지 않고 과거 개발 독재 당시처럼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간접금융방식도 없어진 지금 어떤 방식이 필요할까.

장하준은 이렇게 대답했다.

-외환위기 이전 방식은 은행중심 경제 시스템이지만 지금은 주식시장 중심 시스템이다. ‘기왕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되돌리느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좋은 게 있으면 되살려야 한다. 주식시장을 활성화할 필요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외환위기 이전 은행중심 경제시스템을 되살려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은행은 기업대출을 꺼리고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구실을 전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을 떠올려보자. 우리나라 은행은 기업대출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제일은행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에는 총대출금 중 80% 정도가 기업대출이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몇 년 만에 가계대출이 85% 정도가 돼 버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게 뭘까. 지금 은행들은 엄청나게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 소비자한테 주택을 담보로 잡고 대출해준 뒤 문제가 발생하면 압류하는 방식으로 은행이 쉽게 돈 벌게 해줘선 안 된다.

주식시장도 개편해야 한다. 1972년부터 1991년 사이에 한국의 투자자본 조달에서 주식발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13.4%로 영국(7.0%)이나 미국(-4.9%)보다도 훨씬 높았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은 기업에서 돈을 빼 가는 장치가 돼 버렸다. 거기다 인수합병(M&A)을 자유화하면서 세계에서 M&A가 가장 쉬운 나라가 돼 버렸다.

이제는 대기업조차 과거처럼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외국자본이 단기간에 몰려왔다 나가는 과정에서 거시경제까지 불안해진다. 이제는 M&A를 좀 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포이즌 필(경영권 방어 장치의 하나)이나 스웨덴·벨기에처럼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수도 있다. 독일식으로 노조 대표가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을 골고루 참고하면 된다. 구체적인 방법은 더 논의해야겠지만 기존 선진국 장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경제성장을 위한 길이다?

장하준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EU FTA 등 적극적인 FTA 정책을 추진하면서 FTA가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경제규모가 비슷한 나라끼리 FTA를 체결하는 것까지 비판할 생각은 없다. 서로 시장도 커지고 경쟁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규모와 수준에서 차이가 큰 나라와 FTA를 하게 되면 문제가 다르다. 한국은 현재 국민소득도 그렇고 많은 분야에서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생산성이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한마디로 시기상조다. 한국이 미국이나 EU와 FTA를 한다면 자동차나 전자 등 일부 분야는 이득을 좀 볼지 모르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이나 농업 등에선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부품소재를 비롯해 한국이 GDP 4만 불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산업들의 성장 잠재력을 꺾어 버릴 것으로 본다. 한국이 언제는 FTA 덕분에 고도성장했나. 남들이 미쳤다고 비웃어도 기를 쓰고 기술 개발해서 성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미 FTA가 갖는 장밋빛 미래를 홍보하는 글을 읽어봐도 한미FTA가 경제성장에 미미한 도움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온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국책연구기관에서 한미 FTA 타결 시 1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2% 증가라고 했다가 그것밖에 안 되느냐는 비판이 나오니까 나중에는 6%로 전망치를 바꾼 전례가 있다. 경제학 예측에서는 변수를 어떻게 가정하고 어떤 모델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조차도 한미 FTA 명분으로 삼기엔 한참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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