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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정치인인 울산 택시기사 김창현 님은 하루하루 겪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합니다. 이 택시 일기를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에도 연재합니다. 택시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담담하게, 또 때론 깊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들을 거울삼아 우리는 삶을 돌아봅니다. 그 삶의 풍경을 매주 조금씩 공들여 담아볼까 싶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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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의 택시일기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고운 할머니와 서너 살로 보이는 아이가 손을 잡고 택시에 오른다. 한손에는 짐꾸러미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손준가 보지요?”
“외손주예요.”

“뒤늦게 아이 돌보미가 되셨네요.”
“나이 먹은 미친년이 되었지요. 왜 있잖아요? 나이 들어 큰 집 사는 년, 나이 들어 애 봐주는 년 다 미친년이라면서요?”

“하하. 맞아요. 미친년 소리 들어가며 또 다들 그 일을 하더구먼요.”
“좋은 걸 어떡해요. 힘은 들어도 너무 이쁜데 봐줘야지요. 젊어서 애들 기를 땐 모르잖아요. 이 좋은걸.”

“지금 딸네 집에 가십니까?”
“아니요. 딸네 집에 갔다가 애만 데리고 집에 가는 길이지요.”

“무슨 말씀?”
“딸네 집에 애가 둘인데 맞벌이한다고 하도 정신없이 살아서 한 놈은 내가 이렇게 데리고 가서 길러요. 딸네 집에 오랜만에 가서 놀다가 가는 길이지요.”

“짐꾸러미가 많으면 보통 딸네 집에 가거든요. 하하. 선물을 많이 받아 가시네요.”
“내가 지 새끼 그마이 봐줬는데 많이 받아도 됩니다.”

친정엄마가 딸네 아이를 봐주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한결같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아프지 마세요. 혹시 허리나 관절은 괜찮으세요? 우리 어머니는 허리와 관절이 안 좋으셔 많이 걷지를 못해 걱정이거든요.”
“몸은 약한데 허리, 관절 다 괜찮아요. 아픈 데가 없어요.”

“복 받으셨네요. 많이 놀러다니세요. 아프면 놀고 싶어도 못 놀아요.”
“안 그래도 얼마 전 몇 달을 몸이 많이 아파 누웠다가 일어났어요. 그 때 아. 내가 조금이라도 건강이 있고 아프지 않을 때 손자를 더 안아주고 봐줘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누웠다가 일어나 얻은 결론이 그겁니까?” ‘내가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여행도 다니고 놀러다녀야겠다.’가 아니고요?”
“그러게 말이지요. 정말 맞는 말인데요. 생각하는 게 그저 애들밖에 없어 자꾸 그렇게 머리가 돌아갑니다. 한심하지요?”

사위자랑을 하신다. 현대자동차 다니고 딸도 맞벌이한다. 둘이 돈을 잘 번다. 그래서 선물 많이 받고 대우받고 산다. 맞벌이하느라 아이들 키우기 힘들어하니 그걸 도와주고 계신다. 그때 마침 콜 무전이 계속 들어왔다.

“아저씨. 하나 물어봅시다. 늘 궁금했는데요. 저 무전은 무슨 뜻인가요? 도무지 못 알아듣겠던데요?”

처음 콜 들어 올 때의 상황, 두 번째 찾을 때 5분, 다시 찾으면 7분대, 손님이 없을 때 상황 등 몇 가지 경우를 설명해 드렸다. 그동안 많이 궁금하셨던지 아주 즐거워하신다. ‘아 그렇구나.’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신다.

“할머니. 무전 배워 콜택시하려고요?”
“호호. 지는 운전 배워 줘도 무서워 못해요. 그냥 알고 싶었던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 싶어 이래저래 물어보니 홀로 된 둘째 딸이 얼마 전부터 택시를 시작했다고 한다. 늘 신경이 쓰이고 택시만 보면 그렇게 안쓰럽단다. 결국, 택시 콜까지 관심이 생겼다. 참 자식이 뭔지… 태화강 역 지나는데 라디오에서 한반도 전쟁위험에 대한 보도가 나온다.

“전쟁이 정말 날까요?”
“글쎄요.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것은 사실 같네요. 택시 타면서 전쟁위험을 이야기하는 분은 처음이시네요. 모두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는 표정인데…”

젊은 층일수록 전쟁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다.

“제가 자식이 넷인데 막내가 군인이거든요. 중사지요. 전방에서 근무하는데 지난 설에 휴가를 나와 하는 말이 정말 위험한가 보더라고요.”

“전방 분위기는 그런가 보지요?”
“아들 말이 ‘군사훈련 기간에는 정말 전쟁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라서 오발탄만 날아와도 바로 보복공격을 하게 되고 그건 곧 전쟁이다.’ 이러더군요.”

그렇다. 군사훈련 중 전쟁으로 커져 버린 경우가 왕왕 있다. 훈련은 실전처럼. 군대에서 흔히 외치는 구호이다. 실전처럼 실탄을 손에 쥐여주고 훈련을 하는데 가상적국은 극도로 긴장이 걸리고 이는 전시태세를 갖추게 된다. 일촉즉발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남과 북이 오고 가는 말이 험악하다. 국민들은 의외로 담담하게 생활한다. 자식이 군에 가있는 어머니만 자그만 소식에 가슴 졸인다. 진짜 안보는 국민이 마음 편하게 생업에 종사하고 사는 것인 것 같다.

“국민이 맘 편하게 살아야지요. 자꾸 서로 불바다 만든다고 하니 설마 하다가도 불안해지네요. 아들도 걱정되고 손주 보고 있노라면 이런 애들한테 전쟁의 고통을 넘겨줘서 되나 이런 걱정도 되네요.”

어머니. 아무튼, 앉으나 서나 늘 자식 걱정이다.  군에 가 있는 자식 걱정만이라도 덜어드리면 좋겠다.

2013년 3월 16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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