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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한참 분주하게 00복지원을 돌며 조사를 하던 중이었다. 사법연수생 xx 씨가 다가와 머뭇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법률봉사를 위해 내가 일하는 단체에 찾아와 연수 중이던 xx 씨는 이날 시설 인권실태조사에 조사원으로 참여해 조사를 돕는 중이었다.

“네 물어보세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내 눈은 부지런히 시설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었다. 00복지원은 미신고시설을 양성화하려는 보건복지부의 정책에 의해 조성된 로또기금을 지원받아 건물을 신축했다. 새로 지은 건물은 나름 깔끔했다. 30여 명의 거주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을 위한 생활동과 새로 지은 예배당. 전형적인 시설의 모습이었다. 가운데 커다란 공동 거실을 둘러싸고 사무실, 부엌, 5~6인 규모의 거주인 방이 둘러쳐져 있었다. TV에서는 노래자랑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별다른 느낌 없이 그저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시설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을 지켜보거나 누워있었다.

방문을 열고 함부로 들어오는 손님들

낯선 이들이 집에 찾아와 이곳저곳을 살피며 원장님과 선생님, 자신들에게 질문하고 다니는 모습이 거주인들 입장에서 불편하고, 약간은 두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곳 거주인들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아니 낼 수 없었다. 아마도 거주인 입장에서는 ‘오늘도 외부에서 손님이 온 것이려니…. 늘 그렇듯 우리 의사는 상관없는 것이려니….’ 했을 것이다.

누구도 거주인에게 00복지원에 찾아와도 되는지, 그네들 방문을 열고, 그들의 방에 들어가도 되는지를 묻지 않았다. 거주인들은 그곳에 살고 있지만, 그곳은 그들의 집이 아니었다. 정해진 시간표대로 생활하되 대문 밖을 나서는 것은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곳이었다. 사람 많은 백화점에 가는 게 ‘꿈’인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사실 허락을 받아 실제로 나갈 수 있는 곳도 별로 없었다.

대부분 가족에 의해 그곳에 들어왔으며 그곳을 나가는 것 역시 그들의 뜻과는 무관했다. 나라에서 생활보조금과 장애수당 등이 나오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보거나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없는 곳이었다. 물론 연애도 결혼도 불가능했다.

시설입구에는 거주인들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 개개인의 성격이 적힌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이름 “000” 주민등록번호 “8820111-0000000” 성격 “명랑하지만, 거짓말을 잘 함” “수줍음이 많고 신경질적임” 대충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마치 동물원의 표식과 같은 것이었다.

친절한 표지판
친절한 표지판

연수생 xx 씨가 머뭇거리며 질문을 꺼내놓았다.

“제가 보기에 이 시설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데, 도대체 뭐가 문제죠? 이만하면 살만한 거 아닌가요? 건물도 깨끗하고 식사도 제 때 나오고, 사람들도 비교적 친절해 보이는 데… 도대체 왜 시설이 문제라는 거죠?”

서울에서 전라도 ## 시까지 먼 길을 달려와 종일 시설조사에 시달린 데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한참 남아 있었다. 그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기 어려웠다. 문득 시설입구에 붙어 있던 표지판이 떠올랐다. 거주인 한 사람 한 사람 사진과 이름과 주민번호와 성격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표지가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걸까. 왈칵 짜증이 솟구쳤다. 예비법조인이 그 정도의 인권 감수성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단 말인가. 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는 암묵적인 표시를 하고 돌아서며 짧게 한마디 했다.

“음…그러니까… xx 씨는 이곳에서 살고 싶어요?”

어떤 상상: 내가 ‘친절한’ 표지판 속 거주인이라면…

사람들은 그 친절한(?) 표지판을 보고 내 이름과 나이와 성격을 알아 와서는 날 아는 체하곤 했다. “명랑하지만 거짓말을 잘함!” 내 이름 아래 써 있는 이야기다.

오늘 찾아온 사람들은 우리와 놀아줄 생각보다는 우리가 사는 형편을 살피는 데 관심이 있었다. 별일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만 들을 뿐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온 사람들은 우리 한명 한명에게 식사로 뭘 먹었는지? 외출은 언제 했는지? 외출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지? 벌서거나 맞거나 한 적은 없었는지? 꿈이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원장님과 선생님이 함께 있으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다며 따로 면담해야 한다고도 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꿈…. 그런 건 누구도 내게 묻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해주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 사람들을 믿어도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어차피 돌아가면 그뿐인 사람들에게 내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해도 달라질 것도 없을 거다. 어쩌면 지난번 ‘아무개’처럼 두고두고 시설로부터 앙갚음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타자화 넘어서기: 당신과 나는 모두 존엄하다

돌아오는 길 사법연수생 xx 씨가 다가왔다. 얼굴이 굳은 듯 창백해 보였다.

“선생님 오늘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 같으면 살고 싶으냐’는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벼락을 맞은 것 같았어요. 만약 저라면 어떨지를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제가 어떤 잘못을 하고 있었는지가 보였습니다. 정말 그곳에서 살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그날 xx 씨는 시설 거주인에 대해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그들을 차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으리라. 장애가 있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에 그 정도 시설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자신을 그제야 발견하고, 그래서 그 시설에 막상 자신이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보니 시설 문제를 선명하게 보게 되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는 내가 탈시설운동(장애인 자립운동)을 시작하던 2004년 여름 미신고시설 조사 중에 있었던 이야기다. 그 당시 우린 문제가 많은 미신고시설들을 조건부신고시설로 등록받아 신고시설로 전환하려는 복지부 정책에 반대하며 문제 제기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미신고시설들과 조건부신고시설로 등록하여 신고시설로 전환하려던 시설들 대부분은 참으로 문제 많은 시설들이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전문 인력을 갖추고 있는 시설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대부분 시설들은 시설장과 그의 친인척에 의한 족벌운영이 일상적이었다. 인력 및 물리적 여건을 갖춘 경우에도 시설은 구조적 한계로 문제가 크지만, 인력기준조차 갖추지 못한 이런 시설의 거주인 인권실태는 대개 처참하기 마련이다.

나라면 여기에 살고 싶겠는가

그런 상황의 시설에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은 보장되기 어렵다. 매일 똑같은 일상 똑같은 얼굴들과 마주하며 정해진 시간표대로 먹고 살면서 사람들은 점점 꿈을 잃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잃어간다.

여전히 사람들은 시설보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우리들에게 묻는다. 왜 시설이 문제냐고? 그나마 효율적인 대안이 아니냐고? 원칙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냐고? 그들에게 여전히 난 할 말이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이렇게 되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여기에서 생활하고 싶으세요?

인권 감수성의 시작은 ‘타자화’를 넘어서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며 서로 동포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타자에 대한 이중 잣대를 넘어서는 것, 그것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인권, 그 인격적 존엄을 향한 첫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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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아. 예전 군생활 할 때, 복지원에서 느꼈던 복잡미묘한 감정이 있었는데 그 때는 몰랐었는데 이 글을 보니 느낌이 왔습니다. 그때 그 감정이 바로 이거였군요. 말로는 표현하기가 힘들지만 “여기서 살고 싶어요?” 라는 말이 지금 제 뒤통수를 아주 쎄게 후려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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