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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edictus는 베네딕토일까, 베네딕투스일까

2013년 2월 28일 공식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전임 교황을 한국의 대다수 전국 단위 언론들은 베네딕토 16세라고 지칭했다.

아시아경제가 2월 18일 자 인터넷판 기사 “교황청 추악한 권력 다툼 드러나” <워싱턴포스트>에서 오타인 듯 ‘베네딕트 16세’라고 표기했고, 헤럴드경제는 이를 베낀 듯 교황 퇴위, 권력다툼 때문? 제하의 같은 날 지면 기사에서 똑같은 오타를 냈다. 뉴스1은 ‘베네딕토 16세’‘베네딕트 16세’를 혼용했다.

하지만 전임 교황의 이름은 영어권에선 Benedict, 독일어권에선 Benedikt, 불어권에선 Benoît 등으로 다르게 쓰인다. 존 John이 언어권에 따라 요한, 한스, 장, 조앙, 후안, 조반니, 이반 등으로 달리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키백과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베네딕트 Benedict는 라틴어 베네딕투스 (Benedictus)에서 온 말로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이름은 언어권에 따라서 이렇게 다양하게 표기된다:

  • 덴마크어: Benedikt 베네틱트, Bendt 벤트, Bent 벤트
  • 체코어: Benedikt 베네딕트, Beneš 베네시
  • 네덜란드어: Benedictus 베네딕튀스
  • 영어: Benedict 베네딕트
  • 프랑스어: Benoît 브누아
  • 독일어: Benedikt 베네딕트
  • 이탈리아어: Benedetto 베네데토, Benetto 베네토, Benito 베니토
  • 노르웨이어: Bendik 벤디크, Benedikt 베네딕트, Bengt 벵트
  • 포르투갈어: Benedicto 베네딕투, Benedito 베네디투, Bento 벤투
  • 스페인어: Benedicto 베네딕토, Benito 베니토

전임 교황에 대한 교황청의 공식 표기는 라틴어인 베네딕투스 16세다. 교황청의 언어별 홈페이지는 라틴어 표기 외에도 중국어인 번두(本笃; 한어병음 běndǔ)와 독일어 베네딕트, 영어 베네딕트, 스페인어 베네딕토, 프랑스어 브누아, 이탈리아어 베네데토, 포르투갈어 벤투를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전임 교황을 베네딕토 16세로 적고 있는가? 라틴어인 베네딕투스도 아니고 20세기 후반 이후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언어권인 영어의 베네딕트도 아니고, 교황의 출신 국가인 독일어의 베네딕트도 아니고 바티칸시티를 둘러싸고 있는 이탈리아어의 베네데토도 아니고 말이다.

이는 국립국어원이 외래어 표기 용례에서 Benedictus XVI 를 베네딕토 16세로 표기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천주교 주교회의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의 2005년 4월 21일 자 인터넷판 기사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 베네딕토? 베네딕트?에 따르면 천주교 주교회의는 당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새 교황의 이름을 ‘베네딕토 16세’로 확인하면서 이런 결정이 한국 천주교의 관행을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주교회의가 ‘베네딕토 16세’라고 표기하기로 한 것은 한국 천주교의 오랜 관행이라는 게 천주교의 전례 전문가인 김종수(가톨릭대 교수) 신부의 설명이다. 그는 “예수의 제자이자 초대 교황의 라틴어 이름은 페트루스(Petrus)지만 그동안 천주교는 관행에 따라 ‘베드로’라고 해 왔고 사실상 굳어진 상태다. 이 때문에 그레고리우스 1세 교황도 그레고리오 1세 교황으로 표기해 왔다”고 밝혔다.

즉 라틴어의 어미 ‘us’로 끝나는 고유명사는 ‘오’로 발음해 왔고, 그 관행에 따라 이번에도 베네딕토 16세라고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라틴어 고유명사의 -us를 -os로 대체하는 것은 그 말밑(語原)이 헬라어(그리스어)인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헬라어 어미 -os가 라틴어로 옮겨오면서 -us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고대 라틴어에서는 헬라어의 -os가 남아있었으나 고전 라틴어로 오면서 -us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헬라어 이름 다이달로스(Daidalos)와 이카로스(Icaros)가 라틴어로 오면서 다에달루스(Daedalus)와 이카루스(Icarus)로 바뀐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선화로도 번역되는 나르키소스(Narkissos)는 라틴어에서 나르시수스(Narcissus)로 바뀌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쓴 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os)조차 라틴어로는 호메루스(Homerus)로 표기된다.

예수는 아람어를 했지만, 그 말을 기록한 신약성서는 헬라어로 쓰였으므로 우리가 베드로라고 부르는 인물은 당연히 페트로스(Πέτρος Petros)라고 표기됐을 것이다. 이것이 불가타 성서를 거쳐 라틴어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Petrus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페트루스를 베드로로 옮기는 관행은, 헬라어 신약성서 원문의 발음을 살려 표기하는 걸 반드시 ‘관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옳다.

하지만 이 관행을 베네딕투스에도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베네딕투스는 본래 말밑이 라틴어이기 때문이다. 현대 헬라어는 베네딕투스에 해당하는 표기 Βενέδικτος Benedhictos를 갖고 있지만, 고대 헬라어에는 이 말이 없었다. ‘축복’이라는 뜻의 영어 benediction의 헬라어 대응어는ευφημια(effimia) 또는 ευλογία(evlogia)다.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뜻의 영어 blessed의 헬라어 대응어도 μακάριος(makarios)로 베네딕투스와는 전혀 다른 낱말이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결국 전임 교황 베네딕투스 16세의 한국어 표기는 역시 베네딕토 16세가 아니라 베네딕투스 16세가 돼야 바르다고 본다.

필자 노트

위키백과 Benedict 항목은 이 이름에 대응하는 아랍어 이름으로 무바라크 مبارك 를 제시한다. 이탈리아어 이름으로는 베니토 Benito도 있으니 이 축복받은 이름을 가지고도 독재질로 이름값을 날려버린 정치인이 벌써 두 대륙에 둘이다. (편집자주: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여기에 한반도에도 복(禧)의 뜻으로도 읽히는 글자 ‘빛날 희(熙)’를 이름 끝에 새겨둔 채 군사 쿠데타에 독재까지 저지른 정치인이 있으니 그 숫자는 세 대륙에 셋으로 세는 게 온당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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