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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최근 ‘우리민족끼리’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선전 동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북한의 사진애호가인 주인공이 꿈 속에서 우주비행선 ‘광명성 21호’를 타고 기쁨과 환희 속에 우주를 여행한다는 내용이다. 화제가 되는 이유는 △동영상을 통한 선전물이라는 점 △최근 북한의 로켓 발사나 핵 개발과의 연관성을 담고 있다는 점 △유튜브에 올렸다는 점 △배경 음악으로 ‘위 아 더 월드’를 쓰고 게임 타이틀 [콜 오브 듀티]의 이미지를 썼다는 점, △그래서 저작권 침해 문제가 되자 유튜브에서 사라졌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대도시가 불타는 장면이 들어 있다는 점 등이다.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 장면이 들어있었더라면 한국이 펄쩍 뛰었겠지만, 미국이 불타고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화들짝 놀랄 만하다. 한국 매체들은 이 동영상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몇 가지 기사로 전달하고 있다. 대체로 미국 일부에서 이를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거나 미국 언론이 불쾌하게 여긴다는 식으로 보도했는데, 실제로는 어이없어하거나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깝다. 이 동영상을 전하는 미국 언론들이 ‘crazy(미친)’ ‘comical(코믹한)’ ‘surreal(초현실적인)’ ‘hilarious(재미있는)’ 같은 말들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일부에서 나오는 각 잡은 듯한 반응도 동영상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로켓 발사나 핵 실험 기도 같은 현실의 문제 때문이다.

다음은 이렇게 미국의 반응을 전하는 기사 중 일부다.

북한이 최근 미국 뉴욕이 불타는 모습 등이 담긴 선전용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데 대해 미국 정부가 불쾌감을 표시했다.

빅토리아 뉼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공개한 동영상을 봤다”면서 “이 자리에서 그 영상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마치 중요한 일인 것처럼 만드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내용이 거의 비슷한 또 다른 기사다.

북한이 최근 인터넷에 올린 선전용 동영상이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빅토리아 뉼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공개한 동영상을 봤다”면서 “이 자리에서 그 영상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마치 중요한 일인 것처럼 만드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한국일보)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두 가지다. 첫째, 늘 있는 정례 브리핑 자리에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실제로 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I’ve seen it. I’m clearly not going to dignify it by speaking about it here.” (그걸 보긴 했다. 여기서 그에 대해 말함으로써 그게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주지는 않겠다.)

따라서 위 기사들에서 쓰인 인용문은 정확하지 않다. 대변인은 “그걸 봤다”고 했지, “북한이 공개한 동영상을 봤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변인 자신이 먼저 북한 동영상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라, 기자들이 이를 거론하며 그녀의 생각을 물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위에서처럼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공개한 동영상을 봤다”고 말했다’고 옮겨 쓰면, 마치 대변인이 이 문제를 꺼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미국 국무부가 이 동영상을 중대한 일로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일인 것처럼 만들어 주지 않겠다’는 대변인의 말 자체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직접 인용의 문제는 여러 번 지적했지만, 한국 언론은 남의 말을 실제와 다르게 따서 쓰면서 따옴표를 치는 잘못된 일을 흔히 저지른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를, 가 보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미국 언론들에 그렇게 보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는가?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쓰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의 인용문을 보고 그런 확신을 할 수 있는가? 없다.

둘째, 인용한 기사 중 하나는 뉼런드의 말을 인용하며 “-고 불쾌감을 표시했다”라고 썼다. 이런 서술은 저널리즘에서 금기시되어 있는, 그리고 역시 한국 언론이 아무렇지도 않게 늘 쓰는 인용 방식 중 하나다. 대변인이 불쾌하게 생각했다면 그녀의 말 중에 그런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대변인이 직접 한 위의 말만 가지고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할 수 없으며, 이것은 결국 기자의 상상이나 판단이 대변인의 이야기에 덧입혀진 표현이다.

뉼런드의 말을 전하는 미국 언론들은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저 단순히 ‘말했다(said, told)’라는 표현을 쓴다.

“I’ve seen it,” State Department spokeswoman Victoria Nuland told a press conference in Washington, referring to the video that was released at the weekend. “I’m clearly not going to dignify it by speaking about it here.” (로이터)

“I’ve seen it, I’m clearly not going to dignify it by speaking about it here,” Victoria Nuland, State Department spokesman, said at a briefing. (msnbc)

저널리즘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말한 대로 써라’는 것이고, 그 다음 중요한 원칙은 ‘말했으면 그냥 말했다고 하라‘이다. 영미 신문들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할 때 쓰는 동사는 99%가 말했다(said) 다. 인용이 많을 때 자꾸 said를 반복하게 되어 눈에 좀 거슬릴 정도다. 꾸밀 줄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그게 원칙이니까 그렇게 한다.

반면 한국 언론은 많은 경우 기자 자신이 취재원의 말을 평가하고 자신의 시각을 집어넣으며 인용한다. 그래서 ‘강조했다’ ‘비판했다’ ‘질타했다’ 같은 식으로 쓴다. 심지어 ‘-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식으로 감정까지 추정하여 보도한다. 이 말들은 모두 바로 위에 인용한 기사 한 꼭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 기사뿐만 아니다. 이런 식의 인용 표현은 어느 한국 기사에서나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라고 당부했다’ ‘-라고 혹평했다’ ‘-라고 우려했다’ 하면서 극본의 지문 쓰듯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하는가 하면, ‘-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라며 는 식으로 답답한 마음을 대신 풀어주러 나서기도 한다. 가려운 데가 있으면 ‘-라며 꼬집었다’라고 대신 꼬집어 준다. ‘-라며 몸을 낮췄다’라고 낮춰주기도 하고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라고 높여주기도 한다. 말이 무슨 절대 자원인지 걸핏하면 ‘-라며 말을 아꼈다’라고 한다.

모두 불필요할 뿐 아니라 기사의 객관성을 크게 해치는 사족들이다. ‘-라고 밝혔다’ ‘-라고 설명했다’ ‘-라고 지적했다’ 같은 표현은 그나마 주관이 덜 개입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역시 본질적으로 인용문의 성격을 기자가 규정하는 표현이다.

말했으면 그냥 말했다고 하면 된다. 독자에게 선입관이 담기지 않은 기사를 전달하는 초보적인 원칙이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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