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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기토와 신비가 운영하는 서울 약수역 근처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카페의 이름은 [어쩌면 사무소]. 근사한 인테리어를 ‘구경’하거나, 숙련된 바리스타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쩌면 사무소]엔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꿈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은 그 꿈을 매일 조금씩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 소박하지만 멋진 모험담을 슬로우뉴스에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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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어스름이 지날 무렵, 세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도시 안에서 생활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꿈을 이야기하는 작은 모임이었다. 카페는 개방되어 있으면서도 매우 사적인 공간이어서 되도록 손님들의 대화를 흘려보내려고 하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솔깃할 때가 있다.

“그런데 여기 꼭, ‘귀를 기울이면’에 나오는 그 가게 같지 않아? 애니메이션 있잖아, 어떤 소녀가 고양이 쫓아가다가 계단을 올라오자마자 갑자기 딱 나타나잖아.”

어머나. 여기 이 공간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서울 신당동 모처, 약수역에서 불과 5분 거리인데도 아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거의 없는 조용한 동네가 하나 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에서 주인공 소녀가 고양이를 쫓아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비밀스러운 마을 같은, 그런 곳이죠. 그런데 이 마을 초입에 서 있는 크림색 예쁜 건물 1층에서 지금, 무언가가 수상한 일이 부스럭 부스럭 일어나고 있어요.

/2012년 8월 진행한 ‘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몰라 – 어쩌면사무소‘ 소셜펀딩 소개글

반가운 마음에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었지만, 초면에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서 꾹 참고 다시 손에 쥔 코바늘에 정신을 집중했다. 협동조합형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그분들의 이야기는 늦도록 계속되었고, 내 머릿속에서는 그분들이 만들 공동체의 그림이 제멋대로 그려지고 있었다.

도시의 언덕 위, 어쩌면 사무소

제1회 어쩌면 사생대회에서 만화가 박해성 님이 그린 어쩌면사무소 앞 풍경.
제1회 어쩌면 사생대회에서 만화가 박해성 님이 그린 어쩌면사무소 앞 풍경.

여기는 어쩌면사무소다. 읽기에 따라 어쩌면-사무소일 수도 있고, 어쩌-면사무소일 수도 있다. 실내는 나름 카페인 척을 하고 있다. 서울 중구 약수역 부근. 지하철에서 불과 3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지만 터널 옆 언덕 속에 살포시 숨어있어 그냥 지나가는 길에는 절대 만날 수가 없다.

이곳을 만든 코기토와 신비는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관심이 많다. 둘 다 시민단체 활동을 오래 해 왔는데, 최근에는 뭔가 또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해 조직으로서, 직장으로서의 단체 활동을 그만두고 어쩌면 프로젝트라는 꿍꿍이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재미나게 저지르면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어쩌면사무소는 그런 꿍꿍이를 지속가능하게 해 줄 플랫폼으로, 지난해 9월에 문을 열었다.

도시에서 뭘 하겠다고, 지금은 농촌으로 지역으로 내려갈 때라는 충고에도 아랑곳없이, 우리는 도시의 언덕 위, 가깝지만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 ‘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일을 시도하고, 기다리고, 겪어내고 싶었다. 그로부터 5개월. 망해도 1년 정도는 까먹을 생각하고 열었는데, 지내보니 다행히도 까먹는 속도가 느려서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일기’에서는 이곳을 오가는 면민들의 이야기, 불과 다섯 달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우리에게 다가온 크고 작은 인연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놓을 것이다. 때론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날씨, 새들과 길냥이들의 일상에 대해서도 써나가려 한다. 말하자면 ‘별 일 없는 하루하루’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시작은 당연하게도, 어쩌면사무소의 최고위직 어쩜 면장님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겨울 햇살에 노릇노릇 익어가는 어쩜 면장님
겨울 햇살에 노릇노릇 익어가는 어쩜 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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