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한가?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가진 것이 ‘시간’밖에 없는 사람들은 시간을 팔아야만 먹고살 수 있다. 시간을 팔아서 먹고사는 이를 노동자라고 부르고, 남의 시간까지 사용하는 이를 사용자라고 부른다.

남에게 판 시간은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그 시간만큼 남에게 종속 된다. 많이 팔수록(많이 일할수록) 제 삶을 사는 시간은 줄어든다. 그래서 적게 팔아도(적게 일해도) 먹고살 수 있어야 비로소 제 삶을 살 수 있다. 노동자들이 온전히 제 삶을 살 수 있도록 투쟁해온 역사가 곧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이고, ‘하루 8시간 노동’으로 상징되는 노동법의 역사이다.

시간 시계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시간: 근로시간, 휴게시간, 대기시간의 개념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근로시간을 1주 40시간, 1일 8시간으로 제한하면서, “휴게시간은 근로시간에서 제외”하고 있다(법 제50조 제1항 및 제2항).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자의 지휘·명령권에서 완전히 해방된 시간이기 때문이다(제54조 제2항).

그런데 당장 업무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쉬는 것도 아닌 시간이 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시간, 지시가 있으면 언제라도 업무에 착수할 수 있도록 대기하는 시간이다. 대기시간은 노동자가 사용자의 지휘·명령에 응할 수 있는 일정한 장소 내에서 작업준비 상태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작업시간 도중에 현실적인 작업에 종사하지 않는 시간이다.

사용자는 대기시간을 휴게시간으로 보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려 한다. 동시에, 업무를 위해 대기시간에도 노동자를 어느 정도 구속하고자 한다. 노동자는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보아 임금을 더 받고자 한다. 동시에, 대기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인정받아 사용자의 지휘·명령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롭게 이용하고 싶기도 하다. 이처럼 대기시간근로시간과 휴게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시간”으로 근로기준법에 별도의 규정이 없다.

Charles C. Ebbets, "Lunch atop a Skyscraper", (1932년 작)
Charles C. Ebbets, “Lunch atop a Skyscraper”, (1932년 작)

법률의 공백 속에서, 법원은 시외버스 운전기사의 운행 대기시간(대법원 1992. 4. 14. 선고 91다20548 판결) 및 우편물운송차량 운전기사의 격일제 근무 중 대기시간(대법원 1993. 5. 27. 선고 92다24509 판결)이 근무시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이라 함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근로계약상의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을 말하는 바, 근로자가 작업시간의 중도에 현실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은 대기시간이나 휴식, 수면시간 등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휴게시간으로서 근로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하에 놓여있는 시간이라면 이를 당연히 근로시간에 포함시켜야 할 것.”

이후 법원은 일관되게 사용자의 지휘·명령권이 배제되지 않은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즉, 법원은 대기시간에 관한 명시적인 법률 근거가 없을 때에도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용자의 지휘·감독권이 미치는 대기시간은 당연히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보았고, 대기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인정하는 데 사용자의 엄격한 입증을 요구했다.

이러한 판례가 집적되어 2012. 2. 1. 개정(2012. 8. 2. 시행)된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에서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비로소 대기시간에 관한 법률적 근거가 생긴 것이다.

[box type=”info”]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①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

제54조(휴게)

①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box]

노동자에게 전가된 대기시간 판단 (대상판결의 쟁점과 요지)

대상판결의 사건에서 시내버스 운전기사들은 회사의 지시에 따라 통상적으로 하루에 3회 내지 7회 노선운행을 하는데, 그 운행과 운행 사이에 대기하는 시간이 근로시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box type=”info”]

광장에 나온 판결 

  • 대법원 2018. 6. 28. 선고 2013다28926 판결
  • 쟁점: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노선운행(하루 3회~7회) 사이의 대기시간이 근로시간인지 여부

[/box]

버스

원고들(노동자)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 대기시간이 교통상황, 날씨, 승객의 수 등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일정하지 않고,
  • 배차 담당자의 지시에 따라 대기시간에 차량 정비와 검사, 차량 청소 등 운행준비를 하여야 했으므로

이에 대해 피고들(사용자)은 다음 근거를 들어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사전에 작성된 배차시간표에 운행버스의 출발 시각이 미리 정해져 있었고,
  • 운전기사들이 대기시간 중에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하는 등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으므로

제1심과 제2심 재판부는 운행 대기시간이 근로시간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운행 대기시간에는 근로시간에 해당하지 않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기시간 전부가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1심과 2심을 뒤집고, 대기시간의 범위를 축속하는 해석을 한 대법원
1심과 2심을 뒤집고, 대기시간의 범위를 축속하는 해석을 한 대법원

대법원은 판결이유로

  1. 회사가 대기시간에 운전기사들에게 업무지시를 하였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고,
  2. 도로 사정 등으로 버스운행이 지체되어 배차시각을 변경하여야 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피고들이 소속 버스운전기사들의 대기시간 활용에 대하여 간섭하거나 감독할 업무상 필요성도 크지 않으며,
  3. 대기시간이 다소 불규칙하기는 하였으나 다음 운행버스의 출발시각이 배차시간표에 미리 정해져 있었으므로, 버스운전기사들이 이를 휴식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었다.

즉, 대법원은 기존에 대기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인정하는 데 사용자의 엄격한 입증을 요구한 것과 달리, 대상판결에서는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대기시간 중 사용자의 지휘·명령권의 존재를 엄격히 입증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운전기사들의 대기시간 중에 차량 정비와 검사, 차량 청소 등 운행준비 외에 운전기사들이 자유롭게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으므로 이를 구별하여 사용자의 지휘·감독권이 분명히 존재한 때에만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과로 없는 사회를 꿈꾸며: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은 종래 법원의 해석과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의 입법취지에 반하여, 새삼 노동자들에게 대기시간 중 사용자의 지휘·명령권의 존재를 엄격히 입증할 것을 요구했다. 종래 대기시간에 관한 명시적인 법률 근거가 없을 때에도, 법원은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를 새기며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되지 않은 대기시간은 당연히 근로시간에 해당하고, 대기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인정하는 데 사용자의 엄격한 입증을 요구했다.

이후 국회는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을 신설하여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명문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법원의 해석과 국회의 입법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법의 목적에 부합했다.

2012. 2. 1. 개정된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은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대기시간에 관한 유일한 법적 근거인 위 조항에 따라 “작업을 위하여”,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은 전부 근로시간으로 보아야 한다.

위키미디어 공용, (jmk2765, CC BY SA )
위키미디어 공용, (jmk2765, CC BY SA )

대상판결의 시내버스 운전기사는 배차담당자의 지시에 따라 하루에 3회 내지 7회 운행하므로 운행과 운행 사이에 대기시간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대기시간은 다음 운행을 위한 시간이므로 당연히 “작업을 위한” 시간에 해당한다(다음 운행이 없다면 대기시간도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피고 회사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시내버스 운수회사에는 운전기사 외에 배차담당자가 있다. 배차담당자는 대기 중인 운전기사들에게 당일의 교통상황에 따라 앞차와의 일정한 시간간격을 두고 운행을 지시하고 운전기사들은 배차담당자가 설정한 배차간격에 맞추어 앞차와 일정한 간격으로 운행을 할 의무가 있다.

비록 배차시간표에 회차별 출발시간이 공고되어 있더라도 전 회에 출발한 버스가 교통상황, 날씨, 승객의 수 등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정시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차량의 정비가 필요하거나 동료기사의 지각 또는 결근 등으로 회차 순번이 바뀌는 경우가 있으므로, 대기시간 중에도 배차담당자의 지시에 따라 운행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항소심 판결이 “대기시간이 2분 또는 5분, 8분 등 10분 미만인 경우도 수회 있다”고 하고, 대상판결도 “대기시간이 다소 불규칙하다”고 한 것도 이러한 운행 대기시간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운전기사들은 대기시간 중에도 ‘사용자(배차담당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작업 지시 감독

대상판결은 대기시간 중 자유롭게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과 차량 정비와 검사, 차량 청소 등 운행준비 시간을 구분하라고 요구한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휴게시간을 부여하였다고 하려면 원칙적으로 미리 그 시간을 뚜렷이 정하여 노동자가 그 시간동안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휴식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대상판결 사건은 매회 달라지는 전 회 차량의 도착시간과 배차간격, 개별차량의 상태, 동료기사들의 출퇴근 상황 등에 따라 배차담당자가 그때그때 대기시간을 부여하였으므로, 대기시간 중 운행준비 시간과 휴식시간은 사전에 일정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운전기사들은 대기시간 중에 배차담당자의 지시에 따라 그때그때 운행준비를 하거나 식사를 하여야 했으므로 대기시간 내내 사용자의 지휘·감독권 아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대상판결의 원고들이 승객과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된 대중교통 종사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기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인정하는 데 보다 엄격한 해석이 필요하다. 서울행정법원은 시내버스 운전기사에 대하여 “운전업무자로서 승객을 비롯한 교통관여자들의 생명, 신체를 보호할 의무는 근로계약 이전에 사회공동체에 의하여 부과된 것으로 원고(사용자)와의 근로계약으로 그 본질적인 내용을 바꿀 수 없다.”고 하여, 대중교통 종사자의 승객과 시민에 대한 안전보호의무는 사회공동체에 의해 부여된 것으로 사용자와의 근로계약으로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서울행정법원 2018. 2. 9. 선고 2017구합3601 판결, 원고가 항소를 포기하여 확정).

이처럼 시내버스 운전기사는 대중교통 종사자로서 승객들과 시민들에 대해 고도의 안전의무를 부담하고 있다. 또한 일반 사무직 노동자들과 달리, 운행 도중에 식사를 하거나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도 없다. 대기시간 없이 운행업무만 계속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안전을 위해서라도 일정 시간 운행 후 반드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버스

따라서 시내버스 운전업무에 있어서 대기시간은 업무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업무보조 시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대상판결 사건의 경우 대기시간이 2분, 5분, 8분 등 10분 미만으로 부여된 경우도 상당한데, 이러한 초단기의 대기시간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휴식시간이라기보다는 식사와 생리현상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업무준비 시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대중교통 종사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대상판결은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운행 대기시간에 대해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시간’ 

노동자들이 더 이상 제 시간을 남에게 내어주지 않고 온전히 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절실하다. 대기시간은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시간’이다.

노동자들이 편히 쉴 수 없는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쉽게 인정하면 근로시간은 더 늘어난다. 특히 대중교통 종사자와 같이 시민의 안전문제와 직결된 업무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업무 도중에 필수적으로 휴식시간을 부여하여야 하고, 더 엄격한 기준으로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법원은 노동법의 역사와 함께 흐르는 노동시간 단축의 의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시간을 빼앗긴 노동자들에게 삶을 돌려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대기하는 노동자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

[box type=”note”]

¶. 버스기사 대기시간 사건(대법원, 2018): 이 칼럼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기획 연재 ‘광장에 나온 판결’ 중 하나로, 필자는 손명호 변호사(민변 노동위)입니다.

[/box]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