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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의 택시일기 1: 아들과 딸

전직 정치인인 울산 택시기사 김창현 님은 하루 하루 겪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합니다. 이 택시 일기를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에도 연재합니다. 택시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담담하게, 또 때론 깊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들을 거울 삼아 우리는 삶을 돌아봅니다. 그 삶의 풍경을 매주 조금씩 공들여 담아볼까 싶습니다. (편집자)

Jinho.Jung, "택시 드라이버" (CC BY SA)

Jinho.Jung, “택시 드라이버” (CC BY SA)

(2012년 10월 11일) 아침저녁으로 춥다. 그러나 낮에는 많이 덥다. 일교차가 심하면 감기 걸릴 위험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기침이 낫질 않고 서서히 천식으로 발전한다. 가끔씩 기침이 터지면 멈추질 않는다. 약간 걱정이다. 다음 주 큰 병원에 진료를 신청했다.

새벽 5시경 그린카운티 2차 정문 앞에서 시외버스 터미널을 가는 아주머니를 태웠다.

“꼭두새벽에 어딜 가시나요?”
“군에 간 아들 면회 갑니다.”
“언제 갔나요?”
“두 달 되었네요. 이제 막 부대 배치받았다고 연락이 왔어요.”
“많이 보고 싶으시죠?”
“그럼요. 하루도 걱정하지 않은 날이 없는데요.”
“많이 우셨겠군요.”
“이제는 안 웁니다. 처음 보낼 땐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슬슬 장난기가 동했다.

“강원도에 벌써 눈이 내릴 텐데…”
“…”
“유격훈련, 올챙이 포복 이런 걸 하고 나면 무척 힘들거든요. 다들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는 그 때 갑자기 일어나게 한 후 ‘어머니 마음’을 부르게 하면 다 큰 녀석들이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그 한 줄도 다 못 부르고 엉엉 울고 했지요.”

“아저씨가 나를 울리려고 하는데, 그 정도로 안 웁니다.”
“하하 그런가요? 들켰네요.”
“원래 말도 잘 못하던 녀석이 지금은 아주 달라졌어요. 의젓하고요. 말도 곧잘 잘하네요.”
“아들도 어머니를 무척 보고 싶어 할 겁니다. 예전 군 생활을 떠올려 보면 그렇게 어머니가 보고 싶더라고요. 지금 마누라가 된 애인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가장 보고 싶었던 시절 같아요.”
“우리 아들도 그런 비슷한 말을 하던데요. 난생처음 ‘그리운 어머님께’라고 편지를 보내왔어요. 어찌나 반갑던지. 예전 남편이 보내던 연애편지보다 더 좋은 것 같았어요.”

“새로 연애하는 겁니다. 아들하고.”
“맞아요. 남편은 점점 귀찮아지는데 아들은 점점 좋아지네요. 더 의지가 되고.”
“그러니 어느 날 그 젊은 애인이 엄마를 배신하고 엉뚱한 여자를 데리고 오니 무시무시한 시엄씨가 되는 겁니다.”
“호호. 그런가요? 난 안 그래야지 하는데 다들 시어머니 용심은 하늘이 낸다고 하긴 하데요.”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리는 그 아주머니의 발걸음은 무척 가볍다. 아들 가진 엄마들은 모두 똑같다. 강원도 산골짜기. 여러 차례 차를 바꿔 타며 가야 하지만 그리운 젊은 애인이 기다리니 먼 줄도 모른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병영 사거리에서 웬 아저씨와 여고생을 태웠다.

“수업 시간일 텐데 어딜 가시나요?”
“대학 면접하러 가요.”

여학생이 대답한다.

“그래요? 수시 면접이군요?”
“예.”
“어디로 가세요?”
“대구에 있는 00 대학이예요.”
“과는?”
“치위생학과예요.”
“치과에서 근무하게 되겠네요.”
“예.”
“아버지와 함께?”

이때 아버지가 말을 받는다.

“딸래미가 대학 면접을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회사 하루 쉬고 함께 갑니다. 차가 고장 나서 기차를 타고 가려고요. 오랜만에 딸하고 데이트도 하고요.”
“보기 좋네요. 아빠의 사랑. 딸과 함께!”
“앞에 있지만, 우리 딸 정말 착하고 이뻐요. 참 반듯하게 컸어요.”
“오늘 새벽엔 아들을 애인처럼 좋아하는 엄마를 태웠는데 이젠 딸을 사랑하는 아빠를 만났네요.”
“아무래도 이성 자녀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아들은 든든하긴 한데 귀여운 구석이 없어서…”

갑자기 딸이 “아빠. 너무 착각하지 말아요. 세상에 믿을 딸년 하나도 없대요.” 한다. 아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비겁하게 니가 나를 배신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렇게 대학 면접에 따라가는 아빠가 세상에 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한다.

참 보기 좋았다. 수시로 얼굴도 꼬집고. 뭐가 그리 좋은지 약간 샘이 나는 부녀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믿었던 딸래미가 엉뚱한 녀석을 데리고 와 결혼한다고 하면 얼마나 눈에 불이 나겠는가? 그래서 예식장에서 아빠들이 우는 거 아냐?

매곡 주공 306동에서 꼭 나를 찾는 단골이 있다.

“드디어 차를 신청했어요. 이제 보름이면 차가 나와요. 모닝 2013년 판인데 재고가 하나도 없는 인기차종이라네요. 제가 그 이상의 차를 타면 우리 아파트에서 쫓겨날 판이라 모닝이 아주 딱 이예요.”

다짜고짜 차에 오르자마자 섭섭한 말을 한다.

“이제 택시에서 만날 일은 없겠네요.”
“아직 보름 남았으니 그동안 부지런히 부를게요.”

이 아주머니는 늘 활기가 넘치고 또 매사 자신감에 차 있다. 스스로 옷을 만들고 이를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가까운 친인척에게 옷을 보내 판매하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옷을 만들어 파는 것은 참 드문 경우인 것 같아요.”
“그렇지요. 어떻게 인터넷으로 다 팔겠어요? 저와 잘 아는 늘씬한 친구가 있거든요. 이 친구에게 옷을 만들어 공짜로 줘서 입고 다니게 하면 조만간 주변의 사람들이 옷을 주문해요. 제 딸아이 친구 중에서 키가 170센티가 되고 날씬하고 이쁜 친구가 있는데 이 아이도 저의 모델이지요. 똑같은 방식으로 옷을 입히면 곧 주변 친구들한테 주문이 들어오지요.”

“하하,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모델이자 판매책이네요.”
“그럼요. 조만간 딸아이 졸업하면 그 친구들 몇 명하고 함께 옷을 만들어 보려고 해요. 그러다가 커지면 공장을 차려야죠.”

“지금은 아파트에서 모여 하고?”
“예. 향후 꿈이지요. 딸이 디자인 소질이 있어요. 저는 일반 여성용, 딸은 제 또래 옷을 만들거든요. 우리 모녀가 함께 줄기차게 학원을 다니며 기술을 익히는 것도 그런 것을 내다보고 하는 것이에요.”
“대단하네요. 지난번에 말씀하시길 양산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셨는데…”

“예. 남편하고 이혼하고 아무런 인연도 없는 울산에 오게 되었어요.”
“이혼은 왜? 남편의 외도인가요?”
“아니요. 도박 때문이에요. 글쎄 이 남자가 지난 10년 동안 도박으로 날린 돈만 5억이 넘어요. 공장을 경영했는데 다 도박 빚으로 넘어갔어요. 그 빚 다 꺼주고 몸만 빠져나왔어요. 그 빚 안 갚아주면 계속 저를 따라다닐 것 같아서요.”

이 아주머니는 생활력이 뛰어나고 참 부지런한 분이다. 그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나는 것 같다. 그 지긋지긋한 결혼생활을 접고 여고생 딸과 함께 살면서 이것저것 돈을 벌어보니 너무 재미가 넘친다고 한다. 같이 사는 여고 2학년 딸은 친구처럼 모든 걸 의논하고 때로 다투면서 살아간다. 패션사업도 함께하는 동업관계이기도 하다.

“재혼할 마음이 전혀 없겠군요.”
“당연하지요. 미쳤다고 또 결혼합니까? 제 생활 제가 먹고살 수 있으면 되지요. 남자요? 아휴 진절머리 납니다. 걸핏하면 가야 하는 시댁 제사도 없어졌고 속 시끄럽던 시누이도 없고. 너무 좋아요. 지금이.”

“자식은 지난번 보았던 착하고 이쁜 그 딸 하나인가요?”
“아들이 한 명 더 있는데요. 대학을 다닌다고 독립해 있거든요. 대학 근처에서 자취하는데 아빠 몰래 저를 찾아와 ‘빨리 졸업해서 엄마 잘해주겠노라’고 해요. 아주 효자지요. 공부도 아주 잘하고 늘 장학금만 받아요.”

“복 받으셨네요. 이제 새 인생을 성공하는 것만 남았네요. 파이팅하세요.”
“호호. 고마워요. 아주 자신 있어요.”

부부의 굴레를 벗어나 아주 신바람 나게 살아가는 그녀를 보며 서로에게 짐이 되고 삶을 갉아먹는 결혼생활은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더욱 굳힌다.

이 여성에게 희망은 잘 커 준 아들과 딸이다.

2012년 10월 11일 전형적인 가을날 쾌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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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창현
초대필자, 통합진보당 울산시대표

울산에서 택시 운전하는 김창현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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