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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렌 인터뷰 1: 보이지 않는 것, 그 발견의 즐거움 – 봉다방 서수 씨 편

‘설렌 인터뷰’는 삶과 예술, 예술과 정치, 정치와 삶이 별개가 아니라는 믿음 속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삶, 그 속에서 다양한 빛깔로 아름다운 실천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인터뷰어 ‘설렌’이 그들을 찾아갑니다. 초대 인터뷰이는 봉화산에서 다방을 운영하는 서수 씨입니다. (편집자)

서수 씨는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많다.

서울 지하철의 끝. 6호선 종착역인 봉화산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오면 삐죽삐죽 솟아오른 아파트단지와 비 현실적일 정도로 거대한 아파트 상가가 보인다. 한 블록 너머로 보이는 홈 플러스는 이 곳 주민들의 주말 먹거리 쇼핑은 물론 여가까지도 책임지고 있는 듯 하다. 아파트와 아파트상가, 그 네모진 구역 안엔 오직 일과 집만을 오가는 서울 외곽지역의 일상성이 침잠해있다.

봉화산엔 코스모폴리탄 서울의 인상이 없다. 그곳은, 다음날 밥벌이의 터전으로 나서기까지의 지친 몸을 누이는 공간이다. 그곳엔 자기 집과 차를 소유하고 자녀들에게 사교육을 시키며 노후보장을 위해 오늘 연금보험을 들어두는 것으로 일상이 짜인 이들이 산다. 어떤 새로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녀가 봉화산역 근처에 카페를 열 계획이라고 했을 때 가까운 사람들은 봉화산역이 어디에 있는 지부터 지도에서 찾았다. 그리고 도대체 거기에 무엇이 있냐고 물었다.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듯한 동네.

봉다방. 서수 씨가 직접 디자인한 간판은 2011년 서울시 좋은 간판으로 선정됐다.

현재 봉화산 커피(이하 봉다방)는 봉화산역 근방에서 가장 사랑 받는 공간이다. 서수 씨는 따분한 일상에 지친 주부들과 학교와 학원의 무한진자운동에 질린 학생들, 조용히 은거하며 작업해온 동네예술가들을 순식간에 한 자리로 끌어 모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동네가 작은 카페를 중심으로 약동한다.

카페 한 벽은 그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채워져 있고 동네 일러스트레이터와 학생들이 그린 그림들이 또 한 켠, 서수 씨가 직접 작업한 인디 앨범의 표지 작업도 전시돼 있다. 크리스마스같이 특별한 때에는 친분이 있는 밴드를 초청해 라이브 공연을 열기도 한다. 유난한 야심가는 아닌 것 같은데도 느릿느릿 많은 일을 해치워버리고 있는 서수 씨를 만나 도대체 무슨 작당을 하는 것인지 물었다.

새로 개발한 메뉴라며 직접 구운 호두쿠키를 건네는 서수 씨.

– 처음 만들었다면서 쿠키맛이 좋다.

“그런가?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싶다. 카페를 하면서 수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우선은 음식의 질이 더 중요하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음식을 내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모든 게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함께 공명하려면 내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고 이 곳에서 그 마음은 음식에 담겨있다.”

– 음식에 담겨있다면?

“여기에는 학생과 가난한 예술가들도 많이 찾아 온다. 나름대로 그들을 위한 정책이 있다. 이 두 그룹은 모두 돈이 없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해서 문화를 향유할 권리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간혹 돈 없이 오는 경우에는 그냥 먹이기도 한다. 예술가와 학생이 우리 카페에 와서 조금이라도 삶의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 특히나 어린 학생들에게 각자 삶의 가치를 생각해 볼 여지를 주고 싶다. 자본주의에 찌든 어른들을 욕하지만 또 한편 ‘돈돈돈’ 하는 것이 요새 청소년들이다. 뭔가 좀 슬프달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봉다방 내부 모습

– 예전 개인 홈페이지에서 ‘난 싸구려 좋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것과 통하는 것인가?

“그렇다. 여기서 싸구려란 질의 싸구려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물건이라도 낮은 가격에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것들을 누리고 이 것은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한다.”

– 가능성이라면?

“확실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많다. 봉화산에도 미술과 음악을 좋아하고 관련 작업을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동네에서 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어린 학생들도 예술을 하려면 홍대로 가야하고 커피를 마시려면 삼청동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봉화산에서도 봉화산 사람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 이들을 한 곳으로 모아 함께 교류할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봉화산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 하지만 예술이 특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거나 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반대한다. 어떤 특정 분야만 추앙 받는 것에는 불편함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어울리고 그 다양한 목소리가 다 존재할 때 새로운 가능성이 더 많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해왔나?

“예전에는 영화를 찍는 것이 꿈이었다. 시나리오 공모에 지원해 당선된 적도 있다. 영화제작동아리에서 연출한 경험이 있다. 그 때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작업을 한다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영화 연출을 하면서 나는 사람들 위에 서서 지시를 내리고 한가지 방향성을 주장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각자의 것을 내놓고 이 각자의 것이 한데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가운데 더 많은 창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멋쩍어 하는 서수 씨

– 영화 외에도 다양한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제작시 소품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고 2년 전에는 미술대학교에서 청강을 하며 판화작업을 해보기도 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그 동안 찍어 온 사진이 실린 책이 두 권 출판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앨범표지 등, 일러스트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이런 작업의 결과물들을 모아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전시를 하기도 했다.”

– 일련의 작업들이 경제적 활동이나 사회적 명예를 얻는 것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보수에 상관없이 즐거움을 위해 작업 해온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작품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선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내 창작물을 드러내는 것에도 심리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홍대 프리마켓 활성기에 작가로 등록해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팔아본 적이 있다. 판매수익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 입맛에 맞춰 디자인을 하지는 않았다.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했다. 사람들한테 인정받기 위한 작업보다는 스스로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한다. 좋아하는 일만을 선택해서 해온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

– 그렇게 사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나?

“많이 힘들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경제적 수입을 얻거나 지위에 도달할 수 없었다. 한국 사회에는 나이대별로 도달해야 할 스펙이 있지 않나? 그걸 추구하지 않다 보니 사회에서 소외된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어머니의 잔소리도 많이 들었다. 나 자신을 스스로 긍정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긍정하는 사고법을 터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다시 보았다. 지시 받지 않고 내가 선택한 다른 삶을 살아감으로써 성공만능주의적 사회분위기에 저항하는 셈이다.”

카페 한 벽은 동네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일러스트로 가득!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한국사회는 그냥 놀게 하는 법이 없다. 무엇을 하든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행을 갔다 오면 여행기를 써야 하고 어떤 경험이든 돈이 되는 이력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냥 순수하게 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즐기는 문화가 없다.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만족감만을 위해 무언가를 벌일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개인 각자가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새로운 사회적 대안이 될 수 있다.”

– 현재 동네 예술가들의 작품을 발표하는 잡지를 기획한다고 들었다.

“아직은 구상단계이다. 일단 봉다방이라는 곳에 와서 판을 벌이고 보니 이런 판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단골이기도 한 작가들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아이디어이다. 학생들 또한 작품을 싣고 싶어한다. 지금 준비하는 잡지는 프로페셔널하고 세련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뜻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고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 시도해 보려 한다. 잡지를 통해 봉화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적 움직임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을 것이다. 예술은 특별한 동네에서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좋아하기로는 개인작업을 더 좋아한다. 공동작업을 하다 이견이 생기면 주로 내가 양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면 결과적으로 만족도가 떨어질 때가 많았다.”

일러스트는 엽서로 제작해 판매도 하고 있다.

– 그렇다면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무엇을 기대하나?

“작업보다는 삶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아메리칸 원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부모, 가족 정도가 아니라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삶은 근본적이고 훨씬 복잡하다. 그럼에도 오래 전부터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삶을 꿈꿔왔다. 물론 이상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도 서로 한데 어울려 욕심 없이 나누며 사는 삶에 대한 로망이 있다.”

– 작품에 가족과 관련된 것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인가?

“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 어머니 사진을 찍거나 미술대학원 청강시절 막내 외삼촌을 테마로 작품을 제작한 것도 이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또한 이들 삶이 인생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제는 봉다방을 중심으로 만난 사람들의 공동체가 중요해졌다. 잡지 작업을 통해 느슨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의미의 공동체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시작단계라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이르다.”

– 카페를 운영하는 지금도 동시에 앨범 일러스트 또한 일러스트 엽서를 제작하고 있다. 봉다방 로고라든지 브랜드 라벨도 모두 직접 작업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카페 경영도 바쁜데 지속적인 예술작업을 하는 원동력이라면?

“물론 작업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대단해 보이지 않아도,  있는지 없는지 드러나지 않아도 존재하는 작은 것들. 그런 것들을 드러내는 것이 재미있다.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1년 여름, 봉다방에서 펼쳐진 ‘바이루피타’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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