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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문맹에서 벗어나기: ‘회계야학’ 이고잉 인터뷰

높다란 벽으로 둘러싸인 고고한 성.

‘전문성’이라는 엄숙한 단어로 거대한 벽으로 쌓고 외부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단절하는 분야가 있다. 법률 분야와 의료 분야가 대표적이다. 그 전문 분야는 전문용어로 자기 자신을 ‘무장’한다. 그리고 문외한을 자신의 영토에서 적극적으로 추방한다. 그렇게 대다수 비전문가, 그러니 평범한 절대다수는 그 영토에서 영영 추방된다. 그것은 민주적이라기보다는 독재적이고,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의도적이다. 권력과 지식의 공모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전략적인 차별화다.

‘회계’도 그런 전문성이 강조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교양은 힘이 세고, 교양은 그것을 습득하려는 이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노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교양이 위대한 이유는 그것이 권위파괴적기 때문이다. 교양은 어떤 전문 영역을 영영 외딴 곳으로 금기시하거나 특별한 이들의 성지로 성역화하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주체가 되어 거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영역을 바라보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에 관해 논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교양의 힘은 그런 점에서 민주적이다.

이고잉은 ‘생활코딩이라는 공개 교육과정으로 널리 알려진 개발자다. 그는 회계와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회계 문맹에서 벗어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혁명적으로 확장되는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그는 ‘생활코딩’이나 ‘코딩야학’이 아니라 ‘회계야학’이라는 수업을 최근 새로 만들었다.

왜 개발자가 ‘회계야학’이라는 수업과정을 만들었을까? 회계야학을 만든 개발자 이고잉에게 직접 물었다.

  • 2018년 5월 24일
  • 인터뷰이: 이고잉
  • 인터뷰어: 민노씨

= 회계야학, 왜 만들었나.

오픈튜토리얼스라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다보니까 후원회원들에게 투명하게 조직의 살림을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비영리는 일반적인 기업 회계와는 다르다. 그동안 여기에 적응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얻은 노하우가 있다. 그래서 그걸 수업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마음은 있었는데 못하고 있다가 2017년도 재무제표를 후원회원들에게 공유하려고 하니까 그 내용을 후원회원들이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직접 수업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 관련 사이트: 

회계1. 

회계1을 중심으로 본 '회계야학' 전체의 수업 개요(출처: 오픈튜토리얼스, 회계1) https://opentutorials.org/module/3483

‘회계1′(빨간색 원)을 중심으로 본 ‘회계야학’ 전체의 수업 개요. 검정색으로 표시된 원은 완성된 수업을, 회색으로 표시된 원은 준비 중인 수업을 표시한다. (출처: 오픈튜토리얼스, 회계1)

 

= 누가 ‘회계야학’을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

회계를 모르는 누구나.

= 회계를 모르는 누구나? 

시중에 나와있는 회계 수업들은 회계를 직업으로 하려는 분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컨텐츠라서 어렵다. 또 일반인을 위한 컨텐츠는 ‘팁’ 위주의 컨텐츠가 많다. 교양으로 회계를 접근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부족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과하지 않은 수업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수업대상

  • 사회가 동작하는 원리가 궁금한 분
  • 투자를 하고 싶은데 재무제표 읽는 법을 모르는 분
  • 가족이 늘어나고, 받아야 할 돈과 갚아야 할 돈의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는 분
  • 개인사업을 시작하면서 직접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분
  • 기업의 임원이 되어서 부서의 재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분
  • 비영리 단체의 후원자에게 단체의 재무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분

(출처: 오픈튜토리얼스, 회계1)

 

= 마지막 수업에서 “쉬운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는데. 

내 전문 분야는 코딩 교육이다. 15년 이상 해온 일이다보니까 초심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생활코딩을 통해 7, 8년 동안 코딩을 일반인들에게 쉽게 설명하려고 많은 노력해오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발견한 거랄까, 느낌 점이 ‘쉬운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고, 회계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 회계에 관해 알아가는 일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혁명적으로 확장되는 체험”이라고 말했다.  

어떤 기관이나 단체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많은데, 예전에는 거긴 유명한가? 유명하지 않은가? 그 곳에 대해 느끼는 어떤 막연한 이미지랄까. 홍보나 마케팅처럼 ‘그쪽’에서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팬이나 안티와 같이 바깥에서 나를 객체로 삼아 이야기하는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회계 공부를 하니까 매우 엄격하게 통제된 단정한 숫자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인터넷에 대한 수업을 만들 일이 있었는데 인터넷을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가 ‘ICANN’이다. 나도 모르게 이 단체의 재무제표를 찾아보고 있는 나를 보면서 매우 뿌듯했다.

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서울대학교는 얼마나 큰가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역시 재무제표를 검색해봤다. 서울대는 자산이 약 4조 규모의 학교였다.

2015년도 서울대학교 종합재무제표 (출처: 서울대학교) http://www.snu.ac.kr/downloads?bm=v&bbsidx=124037&

2015년도 서울대학교 종합재무제표. 1시간짜리 회계1 수업을 들으면 회계 ‘까막눈’에서 벗어나 이 재무제표를 읽고, 그 의미를 대체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출처: 서울대학교)

또 국민은행과 삼성전자의 규모를 비교해봤는데 국민은행은 자산이 329조, 삼성전자는 301조였다. 국민은행이 더 큰 것이다. 그런데 국민은행은 갚아야 할 빚이 300조이고, 삼성전자는 87조이다. 삼성전자가 순수한 자기 돈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살림살이 규모는 얼마나 될까? 검색해보니 2000조 정도의 규모다.

이런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어떤 공부가 이것만큼 노력 대비 효과가 높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감이 컸다. 나는 앞으로도 재무제표를 찾아보게 될 것이고, 그런 경험이 축적될수록 사회에 대한 수 관념이 정교해질 것이다.

= 교양으로서의 ‘회계’ 지식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재무제표도 파악하지 않은채 투자하고, 재무제표도 모른채 회사에 입사를 하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재무제표에 담긴 수치의 의미를 아는 건 사실 어렵지 않다. 재무제표가 있다는 것조자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서 벗어났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 회계를 접하면서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단체와 미팅할 때, 어떤 기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찾아보는 게 ‘재무제표’다.  회계라는 교양의 핵심은 어떤 기업, 비영리단체, 국가기관 등의 재무 상태를 파악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정보의 (비)대칭성이 좌우되는 것 같다.

= 많은 이들이 회계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그런데 회계라고 하면 너무 막연하게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피하게 된다. 회계를 공부하고 나니까 가장 먼저 재무제표를 찾아보게 되더라. 회계 전체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교양으로서의 회계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핵심인 재무제표를 이해하는 건 더욱 그렇다.

회계1. "부채와 자본" 수업 중에서 (출처: 회계1, 오픈튜토리얼스) https://opentutorials.org/module/3483/20842

회계1: ‘부채와 자본’ 수업에 쓰인 삽화. 회계야학은 사례를 들어 쉽게 회계의 핵심 개념을 설명한다. (출처: 회계1, 오픈튜토리얼스)

= 개발자로서 회계와 관련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재무제표를 비교해주는 앱이라든지, 어디서든지 기관이나 기업의 재무제표를 빨리 알려주는 앱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안하겠지만 웃음) 하지만 그런 앱을 있어봤자 10분이면 알 수 있는 ‘교양'(회계)이 없으면 소용이 없어진다.

= 회계를 공부하면서 혹은 수업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복식부기의 ‘대변과 차변’ 개념을 이해하는 게 어려웠다. 왜 그렇게 쪼갰는지도 어려웠고. 2~3년 전에는 그 개념 때문에 ‘포기’했는데, 이번에는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

여기에는 좀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회계하라’는 스터디모임이 있는데, 참석자의 출석이 불규칙해서 수업이 파행(?)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진도를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스터디를 담당하는 ‘선생님’은 계속 했던 수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6주를 지냈더니 이해가 되더라.

회계1을 통틀어서 가장 어려운 수업인 '복식부기'. 이해를 돕기 위해 도식화한 그림까지 준비했다. (출처: 회계1, '복식부기') https://opentutorials.org/module/3483/20846

이고잉 스스로 회계1 수업을 통틀어서 가장 어려운 수업이라고 밝힌 ‘복식부기’. (출처: 회계1, ‘복식부기’)

= 회계야학 수업은 전체가 약 1시간이고, 동영상 단위의 개별 수업시간은 3분~6분 정도다. 이렇게 잘게 쪼갠 특별히 이유가 있나. 전체 개별 수업 수는 13개다. 

수업을 세 번에 걸쳐 만들었다. 첫 번째 버전을 만들었을 때 피드백을 접했다. 5분이 넘어가면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하더라. 그래서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 번을 만들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게 줄이는 거였다. 내 말을 한 마디 줄이면 동영상을 시청하는 수강생의 이탈을 한 명 막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줄이고 줄였다. 그래서 5분 안에 하나의 수업을 맞춘다는 생각으로 찍었다. 5분이 넘어가면 내용을 다시 줄였다. 도저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면 내용을 분리했다.

= 회계와 관련해 더 만들고 싶은 수업은 어떤 게 있나. 

‘회계1’에서는 ‘회계가 무엇인가’라는 큰 틀의 이야기를 했다면, 후속 수업에는 현실에서 직접 부딪히는 문제들에 관해, 처음 시작하는 문외한의 입장에서 쉽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예를들면, 현대의 회계가 발전한 이유는 소프트웨어 기술 덕분이다. 그런 맥락에서 회계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업을 만들고 싶다. 또 회계에서는 거래의 종류를 ‘계정’이라고 하는데, 계정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수업으로 만들고 싶다. 예를들어, 보험, 신용카드, 외상, 어음과 같은 것들이 무엇이고, 이것이 회계적으로는 어떻게 표현되는지 수업으로 만들고 싶다.

= 코딩 야학처럼, 회계 ‘야학’인데. 

야학 수업을 꾸준히 만들 예정이다. 아직은 코딩야학과 회계야학, 이 두 개뿐이지만.

= 끝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해준다. 또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줄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시대가 심화할수록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지식의 양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즉, 약간의 지식만으로도 꽤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교양의 힘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게 될 것으로 본다. 우리가 교양에 관해 가지는 인상이 예전에는 ‘비타민’처럼 있으면 좋은 것 정도였다면, 앞으로는 ‘진통제’ 처럼 없으면 굉장히 괴로울 수도 있는 것으로 교양에 대한 인상이 바뀔 것으로 예측해본다. 공부하기 좋은 시절인 것 같다.

협력 화이팅 협조 단합 단체

 

후기: 작지만 소중한 무기로서의 ‘교양’  

지난 5월 22일 PD수첩이 폭로한 ‘소리박사’ 배명진의 실체는 충격적이다. 배명진 교수는 아주 오랫동안 언론을 통해 넉넉하게 인정되어 왔던 사회적 신뢰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PD수첩이 보여준 그의 모습은 진실을 두렵게 생각하는 학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마저 손쉽게 왜곡할 수 있는 사기꾼의 모습에 훨씬 더 가까워 보인다. 그 모습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전문가라는 이름값에 취약한지, 우리 사회의 검증시스템이 얼마나 느슨하고, 비합리적인지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전문가의 기준은 '25년'? (출처: PD수첩)

전문가의 기준은 ’25년’? (출처: PD수첩)

교양이 전문가를 대신할 수는 없다. 전문 영역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전문가는 지금까지 그랬듯 긴요하다. 하지만 전문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스스로 무관심해지는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교양이 전문가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교양은 전문가의 비합리적인 일탈과 권한 남용을 감시하고, 전문 영역이라는 ‘벽’으로 위장한 그 위선과 비합리성을 상식의 이름으로 비판할 수 있는 무기를 우리에게 준다.

내가 ‘회계1’ 수업을 들으면서 얻은 건 그 작지만 소중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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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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