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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90년생 임예인

임예인 씨는 올해로 스물 아홉입니다. 현재 미혼으로, 경기 남쪽 공단 지역 공장에서 일하며 5평짜리 원룸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보증금 천 만원에 월세는 삼십, 관리비 사 만원짜리 집이죠.

그는 경기도 남쪽의 한 공업도시에서 1990년 12월 3일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왜소한 몸집, 소심한 성격에 늘 어깨가 축 쳐진 채 다녔어요. 이런 아이는 학교의 먹이사슬에서 제일 밑바닥에 있기 마련이죠.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멍이 들고 어디가 찢어질 정도로 맞진 않았어요. 툭툭 머리 얻어맞고, 심부름이나 숙제 좀 대신 해주고, 돈 좀 뜯기고 뭐…

Emilien ETIENNE, "The Boy", CC BY https://flic.kr/p/nsG7iq

Emilien ETIENNE, “The Boy”, CC BY

하지만 그에게 가장 괴로웠던 건 그게 학교폭력이란 이름으로 바깥에 ‘알려진’ 후였어요. “치고받고 싸워보기라도 하지”, “남자 새끼가 뭐 했냐” 하는 그런 시선. 어떤 사람은 한심한 눈빛으로 보기도 했지만, 그에게 그것보다 더 견디기 괴로웠던 건, 주변 사람들의 동정이었어요. 남자답지 못한 그에 대한 동정이요.

교사들은 ‘남자’와 ‘여자’를 나누어서 다루었어요. 남자아이들은 그 구별에 넌더리를 냈죠. 지저분하거나 위험한 일에는 으레 ‘남자’를 불렀으니까요. 똑같은 잘못을 해도 남자애들은 대걸레자루로 패면서 여자애들은 손바닥 몇 대 때리는 식으로 차별하는 교사들이 있었죠. 평균 성적에서 여자애들이 이길 때면, 교사들은 ‘남자 새끼들이, 고추 떼라’는 소리를 했어요.

그는 평범한, 충청도 소재의 한 대학교에 들어갔어요. 처음 들어가자마자 선배들에게 배운 건 믿음 쌓기라는 이상한 얼차려였고, 선배들은 학과 행사에 후배들을 강제 동원했죠. 빠져나가는 여자애들을 보며 어딘가 배알이 꼴렸지만, “계집애들은 개인주의에 빠져서 공동의 일을 무시한다”는 선배들의 질책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2년 후엔 군대에 갔어요. 좀 늦은 편이죠. 임예인 씨는 유약한 성격이었고, 어떻게든 군대만은 가기 싫었거든요. 일주일 전부터 ‘확 죽어버리면 안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지만, 결국 죽진 않았어요. 주변에선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데라고들 했거든요. 입대 후, 임예인 씨는 생각했어요. ‘이게 사는 건가.’

이등병 군대 훈련병

군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스무 명이 함께 쓰는 막사, 위생 상태는 최악. 참으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이 된다는 극악의 인권 상황. 군 생활에서 폭행을 당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 예비역의 육십 퍼센트 정도가 ‘그렇다’고 대답한다고 하죠. 임예인 씨는 그 통계를 보며, 사실 고작 60%만 나온 건 사소한 폭행은 군대에선 폭행 축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군대에서 2년을 허비하고 돌아오니 동기 여자애들은 이미 일을 하고 있었죠. 2년 동안의 단절로 임예인 씨는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가 더욱 힘들었어요. 대학 생활은 한결 외로워졌고,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아무래도 벅차고요. 심심풀이로 접속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임신 대 군대’ 니 하는 글들이 쏟아졌고, 임예인 씨는 별 생각 없이 본 글에 ‘군대로 유세 떠는 거 찌질하다’는 댓글들이 달린 걸 보곤 했죠.

성차별 문제가 심각하다는 언론의 근엄한 칼럼을 보면서도 임예인 씨는 그걸 실감할 수 없었어요. 대학 3, 4학년을 어찌 저찌 버텨내고 취업준비생이 되고서도, 주변엔 이미 사회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잘 나가는 여자 동기들만 보였거든요.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가 심각하다는 얘기가 뉴스에 나왔지만, 그건 임예인 씨에게는 실감나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20대 초반에는 오히려 여자 동기들이 훨씬 앞서갔고, 20대 후반까지도 여전히 비슷한 수준이었으니까. 고용률도 마찬가지였어요. 20대 남성 고용률은 55%대에 그쳐 20대 여성에 비해 3% 이상 낮았어요.

소심하고 몸집 작고 못생긴 임예인 씨는 연애도 썩 잘 하지 못했죠. 누군가 호의를 갖고 다가올 때도 움츠러들기 일쑤였어요. 여자에게 고백을 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근사한 저녁까지 사고 그럴듯한 멘트를 준비했지만, 자신 없는 태도가 묻어난 탓인지 역시 잘 되진 않았죠. 대신 그의 ‘같잖은’ 고백은 어딘가에서 놀림감이 되었어요. 임예인 씨의 귀에 들릴 정도로.

부모님의 등쌀도 있으니 이제 어떻게든 결혼은 해야 하겠죠. 남성의 결혼 비용은 평균적으로 약 8천 만 원 정도, 여성의 2.5배 정도라고 하네요. 임예인 씨는 왜 일한 경력도 짧은데 훨씬 더 큰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 억울했어요. 더 해올 건 기대하지 않지만, 적어도 반반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죠. 하지만 그걸 어디 어필할 수는 없잖아요? 찌질이 취급이나 받을 텐데요. 딱히 부모의 덕을 볼 수도 없고, 외모도 평균보다 이하인 것 같고, 스펙은 그보다도 이하인 것 같은 내가 조건을 잴 입장도 아니었고 말이죠.

결혼 혼인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귀도 먹먹하고, 눈은 충혈되고, 분진에 기침을 달고 살죠. 일이 끝나고 땀범벅이 되어 냄새나는 아재 취급을 받으며 버스에 몸을 싣고 오늘 있던 일을 생각했어요. 나이도 어린 갑 회사 대리가 팀장을 오라가라 하더니, 팀장이 거기서 뭔 얘길 들었는지 아주 욕을 하고 난리가 났었거든요.

어디 가서 스트레스라도 풀어야 하는데 여기 공단 지역에서 도심이라도 나갈려면 하세월에, 아, 출퇴근 시간대를 빼면 애당초 버스도 없어요. 티비엔 맨날 홍대니 강남이니 하는 데가 나오는데, 그건 뭐 임예인 씨랑은 아~무 상관 없는 별세상이죠. 임예인 씨는 슈퍼에서 소주나 사다가 김치에 라면에 대강 때우고 자기로 했어요.

소주 한 병 반이 들어가니 알딸딸하네요. 잠깐 쉴까 하고 들어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보여요. 어떤 서울 유명 대학교의 남자 대학 교수가, “성차별이 이렇게 심각한데, 20대 남자 새끼들이 왜 이렇게 인정 않고 찌질하게 구냐”고 일갈했다네요. 걷지도 않고 출근했던 요에 그대로 도로 누워서는 되뇌어봐요. X발 X같은 새끼가.

필자 후기.

이 글은 제목으로도 강조했지만,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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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 편집위원, ㅍㅍㅅㅅ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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