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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0일 저녁, 서울 서초동 인근의 한 음식점에서 두 명의 판사와 두 명의 검사가 만났다. 론스타코리아 대표 유회원의 구속 영장이 세 차례나 기각된 뒤의 만남이었다. 4인 비밀회동으로 불리는 이날 모임의 명단은 이렇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 이상훈
  •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민병훈
  •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검사 박영수
  •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 채동욱

수사 검사와 영장 전담판사, 그리고 그들 상급자들의 부적절한 만남. 이상훈은 “왜 유회원에 대한 구속에 집착하느냐”면서 “법원·검찰 사이의 갈등으로 비치는 만큼 그냥 불구속으로 기소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채동욱이 거세게 반발해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끝났다.

론스타코리아 유회원 구속 여부를 둘러싼 법원-검찰 4인의 비밀회동 (개요)
론스타코리아 유회원 대표 구속 여부를 둘러싼 법원-검찰 4인 비밀회동 개요

검찰은 다시 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또 기각했다. 검찰은 준항고를 했고, 기각되자 재항고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했으나 유회원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론스타 사건에는 여러 판사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여러 재판과 이들의 네트워크를 추적해 보면 한국 사회 엘리트 기득권 동맹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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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리스트는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것이다. 이르면 3월 말에 출간될 [투기자본의 천국] 개정판에 들어갈 원고 가운데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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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씩 탈탈 털어보기로 하자.

당시 구속 영장이 네 차례나 기각된 이유는?

먼저 민병훈은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였다. 검찰이 2006년 11월 론스타코리아 대표 유회원의 구속 영장을 신청했는데 기각한 사람이 민병훈이다. 검찰이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유회원의 구속 영장을 신청했는데 모두 기각됐다. 결국, 유회원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법원이 유회원을 비호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서슬퍼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청구한 영장이 네 차례나 기각된 것도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민병훈은 하종선 사건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하종선은 론스타에게 로비 자금 명목으로 105만 달러를 받고 변양호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변양호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국장으로 2003년 9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매각 실무를 맡았던 사람이다. 민병훈은 “접대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고 볼 수 없고 부정한 청탁을 의뢰받았다고 볼 증거가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판사와 피고인이 변호인과 의뢰인으로

공교롭게도 민병훈과 하종선은 둘 다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고, 하종선이 사법시험 21회, 민병훈이 26회로 하종선이 선배다. 놀라운 사실은 또 있다. 하종선은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08년 5월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으로 옮겨갔고, 2008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받았다. 현대그룹 역시 무죄를 확신했던 것일까.

민병훈은 석 달 뒤인 2009년 1월, 갑작스럽게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승진을 앞둔 시점이라 갑작스런 사임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1년 2월, 민병훈이 현대그룹 사건을 수임했다. 과거 판사와 피고인으로 만났던 선후배가 5년 뒤 의기투합해 변호인과 의뢰인으로 만난 것이다. 민병훈은 변호사로 개업한 뒤 SK그룹 회장 최태원과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 등 거물급 인사들의 재판을 맡아왔다.

민병훈을 삼성 특별검사 재판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2008년 7월 경영권 불법 승계와 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회장의 재판을 맡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한 바 있다. 민병훈은 “탈세로 볼 수는 있어도 배임을 적용할 수는 없다”면서 검찰의 부실한 기소에 책임을 떠넘겼다.

“불구속 기소해달라” 너무나도 부적절한 만남

한편 민병훈이 유회원의 첫 번째 영장을 기각했을 때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 부장 판사를 맡았던 사람이 나중에 대법관이 된 신영철이다. 그리고 신영철의 후임이 이상훈이다. 이상훈도 대법관이 된다. 형사수석 부장은 원장과 함께 판사들에게 사건을 배당하고 중요 재판의 방향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법관의 독립은 헌법으로 보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형사수석 부장이 근무 평정과 승진·보직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기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신영철 (출처: 법무법인 광장) http://www.leeko.com/kor/professionals/detail.asp?mmIdx=731&orderby=&gotopage=7&firstStr=&UpIdx=17&searchChr=&namedesc=asc&subdesc=desc
2008년 ‘촛불재판’ 개입 사건으로 판사 수백 명의 집단행동을 초래하기도 한 신영철 전 대법관 (출처: 법무법인 광장)

이상훈은 4인 비밀회동을 주선한 사람이다. 민병훈이 유회원의 영장을 계속 기각하자 검찰이 거세게 반발했고, 이상훈이 담당 검사와 담당 판사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사실이 KBS 등 보도로 알려지자 법원과 검찰이 발칵 뒤집혔다. 검찰에서 흘렸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소송 관계자를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만나서는 안 된다는 법관 윤리강령을 위배한 것일 뿐만 아니라 수사 검사를 상급자와 함께 불러내 불구속 기소를 제안한 것은 부당한 청탁이나 압력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다분했다. 매우 부적절한 모임이었지만, 이상훈은 경고 조치를 받는 데 그쳤다.

한편 유회원의 구속 영장이 네 차례나 기각되자 검찰이 법원에 준항고를 했는데, 그때 담당 판사가 이강원(외환은행 행장과 동명이인)이었고, 이때도 이상훈과 이강원이 독대 회의를 한 사실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민병훈과 신영철-이상훈, 이용훈의 연결고리

유회원의 첫 구속 영장을 기각했던 민병훈이 세 번째 영장 실질심사를 다시 맡은 것도 논란이 됐다. 같은 영장을 같은 판사가 다시 심사하는 일은 거의 없다. 보통은 다른 판사에게 배당한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새로운 혐의가 추가돼 사실상 새 영장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아니나 다를까, 민병훈은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할 필요가 보이지 않는다”며 유회원의 구속 영장을 다시 기각했다.

외환은행 불법 매각 사건은 장성원에서 김용석으로, 다시 이규진으로, 판사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이때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 부장판사가 바로 신영철이었다.

진행 중인 중요한 사건의 재판부를 변경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결국 이규진은 2007년 1월, 변양호와 이강원(외환은행 행장), 이달용(부행장) 등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김앤장과 싸우다 김앤장의 품에 안긴 열혈 수사 검사

이규진과 심재돈의 기구한 행보도 흥미롭다.

이규진은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심재돈이 증인 신문이 더 필요하다며 결심 공판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미 불렀던 증인을 다시 부를 필요는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심재돈은 문을 박차고 나갔고 심재돈은 결심 공판을 강행했다.

결국, 변양호 등에게 무죄 선고가 난 뒤 심재돈은 이규진에게 메일을 보내 거세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잘 되는지 두고 보자”는 등의 모욕적인 표현이 논란이 됐고 대법원이 대검찰청에 공식 항의한 뒤 심재돈이 이규진을 찾아가 사과를 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런데 그 뒷이야기는 더 놀랍다. 심재돈은 항소심 재판 도중에 공주지방검찰청으로 발령이 난다. 명백한 좌천성 인사였다. 심재돈은 서울을 오가면서 재판에 참석했으나 결국 변양호 등은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는다. 심재돈은 상고심 도중 다시 서울지방검찰청으로 발령났으나 2010년 외환은행 최종 무죄 선고 이후 2013년에 검찰을 그만두고 김앤장법률사무소로 옮겨간다. 알다시피 김앤장은 론스타의 법률 대리를 맡았던 로펌이다. 김앤장과 싸웠던 수사 검사가 김앤장의 품에 안긴 것이다. 론스타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앤장과 싸우다 김앤장의 품에 안긴 심재돈 검사. (출처: http://www.spo.go.kr/_custom/spo/_common/board/board_chief/skin/view/chief_view.jsp?article_no=68863&ptype=B&site_id=gongju )
김앤장과 싸우다 김앤장의 품에 안긴 심재돈 검사. (출처: 검찰)

이규진은 부산고등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로 옮겨가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판사 블랙리스트 파문에 휘말렸다. 이규진이 법원행정처 심의관 이탄희에게 “행정처가 관리하는 판사 동향 리스트를 관리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리자 이탄희가 사표를 제출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그러나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별다른 조사 없이 블랙리스트 문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서둘러 결론을 냈고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추가 조사를 요구했지만 당시 대법원장 양승태는 이를 거부했다.

이규진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대법원에 비판적인 주제를 다루는 학술대회를 연기 또는 축소하라고 압력을 행사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법원은 2017년 8월, 이규진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감봉 4개월 조치를 내리는 데 그쳤다.

끝판왕 이용훈?

신영철과 이상훈 두 사람을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한 사람이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이용훈이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이용훈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대법관을 지내고 변호사로 개업했다가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대법원 원장을 지냈다.

이용훈은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사법 개혁을 주도했으나 평가는 일부 엇갈린다. 공판중심주의에 근거해 불구속 수사 원칙을 강화하는 동시에 영장실질심사를 제도화했고, 전자소송과 국민참여 재판을 도입하는 등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도 앞장섰다.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토론을 활성화했고, 소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제왕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중심의 관료적 승진 구조가 강화되면서 법관 사회 관료화가 더욱 심화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2014년 모습, 출처: 인촌기념회) http://www.inchonmemorial.co.kr/memory0.html
이용훈 전 대법원장 (2014년 모습, 출처: 인촌기념회)

이용훈의 아킬레스 건은 삼성과 론스타였다.

대법원장으로 임명되기 전 변호사 시절, 이용훈은 2004년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맡아 허태학과 박노빈 등을 변호한 바 있다. 이용훈은 이들이 헐값에 전환사채를 매각했더라도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는 논리를 펴서 집행유예 판결을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도 판사가 바뀌고, 선고 기일이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심은 이현승에서 이혜광으로, 항소심은 이홍권에서 이상훈으로, 그리고 조희대로 바뀌었다.

이용훈은 대법원장이 되면서 삼성 사건에서 손을 뗐지만, 이용훈의 비서실장이 된 김종훈이 변호인단에 남았다. 김종훈은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뒤 2017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 기소된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의 변호사로 등장했다.

대법원장 없는 초유의 재판

이 사건은 상고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배당됐는데 이용훈과 안대희는 제척[footnote]법관이나 사무관 등이 특정사건의 피해자이거나 또는 피해자나 피고인의 가족·친척관계일 때는 그 사건의 집행에서 제외시키는 것(위키백과 ‘제척’에서 발췌). [/footnote] 사유라 재판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용훈은 변호인단이었고, 안대희는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였다. 결국,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재판에 빠진 초유의 사건이었다. 결국,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했고,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장이 한때 삼성의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재판의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

이때 5대 5로 의견이 엇갈렸는데 양승태가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 배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그 양승태가 이용훈 후임으로 대법원장이 된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대법원을 박근혜 정권의 주구로 전락시켰다는 역사적 평가에 직면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대법원을 박근혜 정권의 주구로 전락시켰다는 역사적 평가에 직면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2004년 삼성에버랜드 사건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 ‘배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관여했던 다른 판사들의 행적도 흥미롭다. 1심 재판 판사였던 이혜광은 2009년 김앤장법률사무소로 옮겨가고, 이상훈은 2011년 이용훈의 임명 제청으로 대법관이 된다.

“삼성 무죄” 공공연히 외쳤던 판사를 왜?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 특별검사 재판에도 민병훈이 등장한다. 1심 재판을 맡았던 민병훈은 이 사건을 배당 받을 때부터 논란이 있었다. 2006년 11월, 민병훈이 유회원의 구속 영장을 기각해 검찰이 반발하자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을 찾아 해명하면서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언급한 적 있다. 민병훈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은 회사의 손해가 아니라 주주의 손해였다”면서 “회사에 대한 배임으로 기소한 것부터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에버랜드처럼 론스타도 배임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설명이었지만, 한겨레21 기자 이순혁은 “민병훈은 재판 전부터 이건희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었다”면서 “개별 사건에 대해 확고한 선입견이나 확신을 공표하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사건을 맡아 재판을 진행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짚고 넘어갈 대목은 민병훈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는 무죄, 삼성SBS 신주인수권부 사채는 면소 판결을 내리면서 내세운 논리가 4년 전인 2004년, 이용훈이 삼성에버랜드 사건 변호사로 있을 때 내세웠던 논리 그대로라는 데 있다.

외환은행 변호사가 론스타 재판을?

이용훈은 변호사 시절 외환은행 사건도 수임한 적이 있다. 그때 이용훈에게 사건을 의뢰한 사람이 외환은행 사외 이사로 있던 하종선이었다.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넘어간 게 2003년 9월, 이용훈이 외환은행 사건을 수임한 건 2004년 12월이었다. 뒤늦게 드러났지만, 하종선은 론스타의 로비스트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이용훈은 검찰이 악의적으로 대법원을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유회원의 영장이 세 차례나 기각된 직후라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용훈과 하종선이 만난 자리에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출신으로 당시 외환은행 부행장을 맡고 있었던 김형민이 함께 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이용훈은 하종선과 김형민을 만났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유회원을 함께 만난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외환은행 사건을 준비하던 도중 대법원장 지명을 받았고 수임료 대부분을 반환했다는 게 이용훈의 해명이었지만, 이용훈과 하종선의 관계, 이용훈에서 출발해 신영철, 이상훈, 그리고 민병훈으로 이어지는 라인에 어떤 종류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용훈과 삼성과 론스타와 김앤장의 연결고리

당시 대법원의 해명에 따르면 이용훈은 외환은행이 극동도시가스를 상대로 낸 민사 소송 사건을 맡으면서 수임료로 2억 2,000만 원을 받았다가 대법원장에 내정된 뒤 1억 6500만 원을 돌려줬다. 대법관에서 물러나 다시 대법원장으로 임명되기 전 5년 남짓한 동안 이용훈이 수임한 사건은 400여 건, 수임료가 6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대법원 관련 사건이 70%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관예우도 문제였지만, 전관예우를 받았으면 다시 공직을 맡지 않았어야 했다. 이용훈은 대법원장 취임 이후에도 삼성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2009년 2월, 대법원 2부가 맡고 있던 삼성에버랜드 사건이 대법관들 사이에 일치된 결론을 내리지 못해 전원합의체로 넘어가게 됐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소부 개편으로 사건이 대법원 1부로 넘어갔다. 원점에서 다시 심리를 시작하기로 했다는 게 대법원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당연히 특정 대법관을 배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삼성이 환호했을 갑작스런 재판부 변경

당시 1부에는 대법관 김영란, 김지형, 이홍훈, 차한성, 2부에는 양승태, 양창수, 김능환, 전수안, 3부에는 박시환, 박일환, 안대희, 신영철이 배속돼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개편으로 김지형이 1부에서 2부로, 김능환이 2부에서 1부로 옮기고 1부가 맡고 있던 삼성 특별검사 사건이 2부로, 2부가 맡고 있었던 삼성 비자금 사건이 1부로 넘어가게 됐다. 김능환이 삼성에버랜드 사건의 주심 대법관이었고 김지형이 삼성 특별검사 사건의 주심 대법관이었다.

당시 대법원에는 진보적 성향의 이른바 독수리 5남매가 있었다.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등이다. 당초 독수리 5남매가 1부에 3명(김영란, 김지형, 이홍훈), 2부에 1명(전수안), 3부에 1명(박시환)씩 배속돼 있었는데 소부 개편으로 1부에 2명(김영란, 이홍훈), 2부에 2명(전수안, 김지형), 3부에 1명(박시환)으로 바뀐 것이다.

대법원 독수리 5형제(남매)로 불린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을 다룬 한겨레21 기사 "대법 '독수리 5형제'의 성적표"(2012. 5. 15.) 중에서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2060.html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을 다룬 한겨레21 기사 “대법 ‘독수리 5형제’의 성적표”(2012. 5. 15.) 중에서

삼성에버랜드 사건은 1심과 2심에서 유죄, 삼성 특별검사 사건은 1심과 2심 모두 무죄를 받은 뒤라 대법원이 교통정리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두 사건 모두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이라 당연히 전원합의체로 가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삼성 입장에서는 항소심까지 유죄가 인정된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진보 성향 판사들이 3명이나 몰려 있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박시환이 강력하게 유죄를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 사회부장 출신으로 JTBC 보도국장을 맡고 있는 권석천이 쓴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용훈이 박시환을 불러 “소부에서 합의가 되면 소부에서 하면 좋겠는데……”라고 압박을 했는데도 박시환은 완강하게 맞섰다. “안됩니다, 전원합의체에 넘겨야 합니다.” 결국 2부에서 최종 결렬됐고, 전원합의체로 넘어갈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소부 개편이 단행된 것이다.

결국, 삼성 재판은 주심인 김지형 1명 빼고 판사가 모두 바뀐 데다 진보 성향 판사도 2명으로 줄어들게 됐다. 박시환은 아예 2건의 삼성 재판에서 모두 손을 떼게 됐다.

민감한 시점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개편이었고, 가뜩이나 삼성 변호인단 출신의 대법원장이 여전히 삼성 뒤를 봐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 상황에서 매우 부적절한 개편이었다.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할 사안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으나 이용훈은 끝까지 임기를 채웠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정국이 급변하면서 여론의 관심이 크지 않았던 때문이기도 했다.

독수리 5남매의 일원이었던 김지형의 모호한 태도도 석연치 않았다. 김지형과 박시환이 멱살잡이까지 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박시환이 가볍게 항의하고 김지형이 “법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사건”이라고 답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김지형은 대법관에서 물러나 변호사로 개업해 2014년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 관련 협상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가 졸속 합의를 강요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재판 외압 논란, 끝까지 신영철을 감싼 이용훈

신영철은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원장 시절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들에게 판결을 서둘라 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른바 5차 사법파동의 장본인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두고 위헌 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실상 유죄 판결을 압박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는 메일이었다. 특히 “대법원장의 생각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대목이 논란이 됐다. 판사들과 회식 자리에서 위헌 제청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에 앞서 촛불집회 관련 사건이 보수 성향 판사들에게 집중 배당돼 판사들이 항의한 사건도 있었는데 역시 신영철이 서울중앙지방법원 원장 시절 일이다. 형사수석 부장판사를 맡고 있었던 허만은 신영철의 지시로 관련 사건을 특정 성향의 판사들에게 집중 배당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 김형연은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근무평정 권한과 배당권 등을 갖고 있는 법원장이 특정 사건에 관해 여러 차례 걸쳐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을 거명하며 처리방향을 암시한다면 어느 판사가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겠느냐”며 신영철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대법관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결국 이용훈은 신영철을 징계위원회가 아니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했고 별다른 징계 없이 단순 경고에 그쳤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름과 달리 공직자 재산 등록을 관리하는 위원회다.

“사법 스캔들 핵심은 이용훈”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곽노현은 2009년 3월 프레시안 기고에서 “삼성 사건 재배당 및 코드 배제 스캔들은 하급심에서 발생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법 스캔들이 대법원에서, 그것도 삼성 재판과 관련하여, 더욱이 대법원장의 주도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삼성 사건에서 소수 의견을 고집하며 전원합의체 회부를 요구한 특정 대법관을 향후 심의 과정에서 눈 딱 감고 배제함으로써 전례 없는 코드 배제의 주인공이 됐다. 다시 한 번 삼성 사건에 걸려 넘어진 셈이다.

삼성 재판에 관한 배당 관련 스캔들은 대법원의 재배당 스캔들이 처음이 아니다. 심각한 코드 배당 의혹이 삼성 특별검사 사건에 대한 중앙지법의 1심에서 이미 제기된 바 있었다. 요체는 사안의 성격상 형사24부나 25부로 가야 마땅한 경제범죄 사건이 이례적으로 형사23부에 배당됐다는 것.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형사23부 민병훈 부장판사는 에버랜드의 저가 발행은 배임이 되지 않는다는 법리적 소신을 삼성 사건을 맡기 1년 전에 중앙지법 기자실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삼성 사안이 민 부장에게 돌아간 것은 결국 민 부장의 배임 무죄 소신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1심 판결 후에 불거진 코드 배당 의혹의 요지였다.”

– 곽노현, “‘사법 스캔들’ 주인공은 바로 이용훈 대법원장”, [기고]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고함 (프레시안, 2009. 3. 11.)

골프치며 어울렸던 그들의 놀라운 승진

삼성 특별검사 사건 항소심을 맡아 무죄를 선고했던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 판사 서기석의 변신도 놀랍다. 1심에서 민병훈은 배임으로 얻은 이익이 50억 원이 안 되기 때문에 행위의 공소 시효가 지났다고 면소를 선고했는데 항소심에서 서기석은 금액과 관계 없이 주주의 손해를 회사의 손해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의 주식 가치가 쟁점이었는데 2심에서는 1심의 논리를 깨고 파격적으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서기석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실 실장 출신의 김용철이 쓴 [삼성을 말한다]에도 등장한다.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에서 함께 골프를 친 판사 중에 서기석이 기억에 남는다. 2002년께 몇몇 검사들과 서기석 판사가 나와 함께 골프를 쳤다. 훗날 서기석은 내 양심고백을 계기로 열린 삼성 비리 사건 2심 재판을 맡아서 삼성에 면죄부를 줬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관리 판사'로 지목했던 서기석 헌법재판관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관리 판사’로 지목했던 서기석 헌법재판관

삼성 관계자와 접대 골프를 쳤던 판사가 삼성 재판을 맡아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이다. 김용철에 따르면 당시 제일모직 부사장이었던 황백이 서기석을 관리했다. 서기석은 나중에 헌법재판관 임명 동의 청문회에서 “책이 나온 이후 김 변호사에게 ‘그런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항의했고, 그래서 이후 개정판이 나올 때 그 내용이 삭제됐다”고 밝혔지만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는 개정판에서 일부 바뀐 부분이 있지만 경남고등학교 관련 부분만 일부 빠졌을 뿐 삼성이 조직적으로 서기석을 관리해 왔다는 내용은 그대로다.

서기석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원장을 거쳐 2013년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된다.

삼성 특별검사 사건의 파기환송심 재판을 맡은 김창석은 2012년 대법관에 임명된다. 김창석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재판을 맡았으면서 애초 항소심과 같은 형량을 선고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삼성은 만족한 듯 재항고를 하지 않았고,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삼성에버랜드 사건 1심 판사였던 이현승과 논쟁을 벌였던 동료 판사 김상균은 삼성그룹으로 옮겨갔고, 아직까지 법무실 사장을 맡고 있다.

조준웅 삼성 특별검사의 아들 조아무개 씨가 삼성전자 과장에 특채 입사한 것도 논란이 됐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과장으로 진급하기까지 8년 이상이 걸리는데 조씨는 별다른 경력이 없었고 공개채용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별도로 입사지원서를 받아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참고로 이 글의 맨 앞에 나왔던 열혈 검사 박영수와 채동욱의 이름도 익숙할 것이다. 박영수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퇴임해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가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로 임명됐다. 채동욱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내고 검찰총장까지 올라갔으나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조선일보가 보도한 혼외자식 사건 직후 스스로 물러났다.

삼성과 론스타, 그들의 약한 고리

권석천은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의 맺음말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이용훈 코트와 독수리 5남매에 주목한 까닭은 이용훈 코트가 유독 공정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섯 대법관의 소수의견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다. 논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논쟁은 한국 법원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권석천의 글에 몇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이용훈은 삼성과 론스타 앞에 약했다.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구속 영장을 기각한 판사가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그 판사였다. 불구속 기소하라며 압력을 넣은 선배 판사는 대법관이 됐다. 권석천도 지적했듯이 한국 법조계의 가장 큰 문제는 검찰 정치와 관료 사법이다. 코드 배당을 했던 판사도 대법관이 됐다. 이들을 대법관에 임명제청한 사람이 바로 이용훈이고, 이용훈 역시 코드 배당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용훈은 대법관에서 물러나 변호사 개업을 하고 전관예우로 5년 동안 60억 원을 챙기면서 삼성과 론스타(외환은행)를 변호했던 사람이다. 다시 대법원장이 되고 나서도 유독 삼성과 론스타에는 몸을 사렸다. 심지어 삼성을 위해 임의로 재판부를 바꾸고, 특정 판사를 배제하는 꼼수를 뒀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용훈의 논리 그대로 1심과 2심 판결이 나왔고 ,이용훈이 제척 사유로 빠진 대법원 재판에서도 결국 삼성은 면죄부를 받았다.

독수리 5남매가 돌연변이였을 뿐, 단독 판사들은 부장 판사의 눈치를 봤고, 부장 판사는 수석 부장 판사의 눈치를 봤다. 대법원을 보고 알아서 기거나 조직적으로 기었다. 이용훈이 몰랐다고 발뺌할 수는 있지만, 제대로 징계하지 않았거나 적극적으로 주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토론을 만들었지만, 그 토론은 재벌과 금융자본 앞에 취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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