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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우리 안의 괴물을 보여주는 방식

‘순실올림픽’이라는 오명이 아니더라도, 평창올림픽이 순수한 스포츠 행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여기엔 수많은 정치적 고려가 끼어있죠. 지역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 또는 욕망. 올림픽이란 이벤트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상승효과를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

그런 ‘욕망’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한 편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매일경제의 “평창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 (최재원, 김강래, 2018. 1. 16. 인터넷 기준)이라는 기사죠.

매일경제, 평창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

매일경제, 평창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 (2018. 1. 17.일 자, 지면 기준) 정말 부끄러운 건 이런 기사가 2018년 1월에도 여전히 유력 신문 1면에 실리고 있다는 게 아닐까요?

이 기사가 말하는 평창가는 첫 길목이란 강릉행 KTX의 초입인 용산역 일대를 말하며, 부끄러운 민낯이란 골목의 낡은 폐가들을 말합니다. 용산 개발이 좌초하며 생긴 대조적인 풍경이죠.

서울올림픽을 생각하다

용산 개발 좌초의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매경은 ‘도심 개발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방식’이라 진단하지만, 이건 너무 포괄적이라 사실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무의미하죠. 매경은 여기에 “임시 펜스라도 설치해 서울 도심의 민낯이 드러나는 걸 최소화”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보며 서울올림픽을 생각했을 겁니다. 30년 전 우리는 식민지였으며, 분단국가였고, 전쟁의 참상을 겪었던 나라가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지를 보여주었지요.

서울올림픽

하지만 그만큼 이 이벤트는 정치적이었습니다. 체제 경쟁에서의 우위와 한강의 기적이란 경제적 성취를 내세웠지요. 그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는 화려하게 빛나는 조명 아래에 괴물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강제 이주

우리는 세계에 한국의 긍정적인 면만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도시는 도시다워야 했죠. 그 방식은 이랬습니다. 미관을 해치는 낙후된 주택들을 철거해버렸습니다. 거지와 장애인은 수용시설로 보내버렸습니다.

올림픽 행사의 ‘동선’에 있는 낙후된 단지들은 철거되고 재개발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강제 퇴거당한 사람 수만 72만 명. 저항하는 사람은 구타당하고 구금당했습니다. 당시의 재개발이란 오늘날처럼 철거민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주민들은 말 그대로 쫓겨난 것입니다.

빈민가에 살던 사람들은 이렇게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성화 봉송 중에 눈에 띈다는 이유로 가주택마저 철거되었죠. 심지어 올림픽 기간 동안 땅굴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계동 올림픽

상계동 올림픽 (김동원, 1988)

상계동 올림픽의 한 장면 (상계동 올림픽 Sanggyedong Olympic 김동원 | 1998 | Documentary | Color | 27min) 올림픽에 오는 외국손님들에게 가난한 서울의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는 도시미학적(?) 관점에서 진행된 달동네 재개발사업.이 때문에 상계동 주민들을 비롯한 서울 200여곳의 달동네 세입자들은 아무 대책도 없이 몇십년씩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설명 출처: 다음영화)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1988 ) “올림픽에 오는 외국손님들에게 가난한 서울의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는 도시미학적(?) 관점에서 진행된 달동네 재개발사업. 상계동 주민들을 비롯한 서울 200여곳의 달동네 세입자들은 아무 대책도 없이 몇십년씩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설명 출처: 다음영화)

박정희·전두환 시대는 야만의 정점이었죠. 광주대단지 사태는 정말 끔찍한 폭력이고 유린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서울 빈민층 10만 명을 주거단지를 조성해준다는 거짓말로 허허벌판으로 내쫓았죠. 그 이후에도 상황은 악화일로, 결국 주민 봉기로 이어집니다. 그때의 철거 재건축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광주대단지사태를 비롯한 박정희 시대의 강제 이주 정책부터, 88 서울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한 빈민가 철거에 이르기까지. 철거민협의회 등의 단체가 이 ‘도시 정비’ 사업 과정에서 창설되었습니다.

괴물을 감시하는 언론? 오히려 괴물이 되라는 언론

600년 역사의 수도가 마치 SF 속 미래도시처럼 마천루로 가득찬 모습이 정말 현실적인가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도심과 비도심의 차이, 개발지와 미개발지의 차이, 결국 궁극적으로 빈부의 차이를 없는 것인 양 숨기면 숨겨지나요? 오히려 더 비웃음거리가 되겠지요.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똑같은 일을 하려 합니다. 물론, 덜 야만적이죠. 하지만 본질은 유사합니다. 올림픽은 순수한 스포츠 이벤트가 되기에는 덩치가 너무 큽니다. 경기장 주변의 생태는 파괴되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지만, 수익은 그에 미치지 못하죠. 스포츠와 페어플레이, 세계 평화를 그 근간으로 하는 올림픽 정신은 헛된 꿈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여기엔 무언가 다른 게 낄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근대 올림픽의 역사는 사실상 스포츠 ‘정치’의 역사였습니다. 때로는 냉전이, 때로는 개발과 환경 보호 사이의 싸움이, 때로는 부동산이란 노골적인 욕망이 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인제 와서 순수한 스포츠의 성과를 이야기하는 것도 우스운 일일지 모르죠. 처음부터 잘못된 걸음을 내디딘 걸지도. 그래도 말입니다. 괴물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스스로 괴물이 될 것을 주창하는 것은 좀 너무한 것 아닐까요? 권력과 자본에 더 괴물이 되라 부추기는 언론은 도대체 존재 가치가 무엇일까요? 작금의 경제지에 꼭 던지고 싶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몬스터 종이신문

epSos.de,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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