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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프레임: 스타트업 대표로 살기

나는 스타트업 대표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다. 나는 이해완의 동료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는 차미현의 아들이다. 나는 혁오의 팬이다. 나는 최종욱의 친구다. 나는 서울 시민이다. 나는 나이키 소비자다. 나는 영동고등학교 졸업생이다. 나는 동아빌딩의 세입자다.

이 모든 정체성들은 언제나, 반드시, 사사건건, 쉴 틈 없이 충돌한다. 모두에게 좋은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선택하고 있고, 그로 인해 내가 선택한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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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순위와 예견가능성 

되는 대로 사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겠지만, 이왕이면 나는 내가 살면서 내리는 선택들에 일관성이 있길 바란다. 그러려면 나의 수많은 정체성을 잘 정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름의 논리로 설정된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그게 나와 직간접적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도 더 좋은 일이라 여긴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겐 네가 제일 중요해’라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미안, 나는 아무래도 일에 집중해야겠어’라고 말하면 당황스럽지 않은가. 예견가능성은 신뢰가 쌓이도록 하는 필수 덕목이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독서 모임을 기획하고, 관리하며, 서비스하는 스타트업 대표로서의 윤수영이다. 그러니까 나는 회사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 시간, 감정, 지능, 자본, 네트워크 등 나는 내가 가진 에너지의 거의 전부를 회사를 위해 쓴다.

여기까진 심플하다. 그렇지만 여기서부터 복잡해진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 

회사에 좋은 건 무엇이고, 나쁜 건 무엇인가. 매출이 늘면 좋은가. 수익이 늘어야 좋은가. 고객 수가 많아지면 좋은가. 직원이 많아지면 좋은가. 세상을 더 지적으로 만들면 좋은가. 사람들이 더 친해지면 좋은가. 지적인 건 뭐고, 친한 건 또 뭔가.

이쯤 되면 회사도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지성을 위한 수단. 사회적 자본(공동체)을 위한 수단. 돈, 명예, 뿌듯함을 위한 수단. 그런데 그러면 회사 대표가 제일 중요한 정체성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나에겐 회사가 우선인가.

내가 회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회사가 나에게 복잡한 세상살이에서 최대한 많은 가치를 가장 조화롭게 추구하고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회사에 이해관계 조율과 우선순위 설정을 어느 정도 위임한 셈이다.

선택 굿 배드

회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다 보면, 먹고 살 수 있다. 사회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좋은 사람과 지속적으로 부대낄 수 있다. 회사에만 봉사하면 된다. 나머지는 회사가 알아서 다 해준다.

그러나 회사는 가끔 경제적 지속가능성 때문에 다른 가치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의미 있다고 믿는 일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복잡도를 견딜 수 없어 위임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위임장을 받은 대리인이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게 싫어서 위임했는데, 위임이 잘 되고 있는지 감시하느라 아무것도 못 하면 그것처럼 우스운 게 없다. 그래서 항상 위임의 구조에 대해 고민한다. 이 회사는 어떤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누구와 함께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나가는 집단인가. 이 구조는 자연스럽게 여러 가치를 조화롭게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인가.

타임프레임 

이 때 제일 고민이 되는 건 타임프레임(timeframe)1이다. 오늘은 A를, 내일은 B를 선택한다고 해보자. 하루짜리 프레임으로 보면 나는 오늘과 내일 각각 B와 A를 포기 또는 실패한 사람이 된다. 그렇지만 이틀짜리 프레임으로 보면 나는 둘 다 성공한 사람이 된다.

너무 단기적인 시야로 가면 매번 너무 지독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 단기간에 최대한 모든 가치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위임을 한 보람이 없다. 반대로 너무 느긋하면 결과적으로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된다. 우리는 ‘언젠가는’이라는 말만 되뇌다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내 경우, 타임프레임의 단위는 4개월, 1년, 그리고 3년이다. 어쩌다 보니 4개월 단위로 돌아가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4개월이 가장 짧은 단위가 되는 건 내겐 무척 자연스럽다. 4개월은 내게 단기적인 단위를 의미하고, 보통 나는 4개월 단위로 무언가를 뽀개려 한다.

1년은 중기적인 단위다. 어느 정도까지는 예측할 수 있는, 회사의 실무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협업을 하고 성과를 측정할 것인지. 이런 변화는 한 시즌, 두 시즌, 그리고 세 시즌 안에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이루어져야 한다.

예측 가능할 수 있는 최장 기간이 1년이라는 뜻은, 회사가 경제적, 지적, 사회적 자본 축적을 다 해내야 하는 시간의 단위가 1년이라는 뜻이다. 올해엔 돈만 벌고, 부족했던 의미는 내년에 채워 넣어야지 같은 건 없다. 1년이 넘어가면 ‘언젠가는’이 된다.

'언젠가는'은 대개 영원히 오지 않을 시간을 의미한다.

‘언젠가는’은 대개 영원히 오지 않을 시간을 의미한다.

3년은 장기적인 단위다. 세상은 갈수록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나는 1년이 넘어가는 시점 이후의 회사가 어떤 모습일지 알 자신이 없다. 그래서 3년은 회사를 본질부터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VR이 발전해서 더이상 오프라인으로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면? 생체 칩이 발달해서 누구나 주사 한 방에 훌륭한 지성인이 되면? 인공지능과의 사랑과 우정으로도 충분해지는 세상이 온다면?

3년은 내게 돈은 어떻게 벌 거고, 우리가 풀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단위다. 회사로 치면 비즈니스 모델(존재하는 방식)과 비전(존재하는 이유)이 바뀔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3년 이후의 삶과 세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의미가 별로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끔 내가 ‘10년 안에’ 같은 소리를 한다면, 아예 머릿속에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일 거다.

물론 앞으로도 위와 같은 타임프레임을 가지고 살 거라는 보장은 없다. 회사가 커지거나 사회가 안정되면 예측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높은 예측가능성은 우리에게 좀 더 장기적인 시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외면과 지연의 핑계가 아니라면, 시야는 장기적일수록 좋다.

신나고 감사한 일 

삶에는 참 중요한 게 많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그 중엔 소중하다 못해 절대 포기해선 안 되는 숭고한 것들도 있다. 경영의 본질은 선택과 집중일 수 있지만, 삶과 세상이 선택과 집중을 너무 잘 해버리면 안 되는 것 같다.

포기해선 안 되는 것들이 양립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쉽게 무기력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허무로, 어떤 사람들은 냉소로 그 무기력을 달랜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어떻게든 나름의 조화를 만들어내려 한다. 그 노력은 대부분 실패하고, 성공하더라도 아주 잠깐만 반짝이고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를 결정해볼 수 있다는 건 참 신나고 감사할 일이다. 어쩌다 보니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지능이라는 걸 가지게 됐으니까. 여기에 교육까지 받아서 높은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삶은 복잡하다. 그래도 깔끔하게 잘살아 보고 싶다. 그래서 회사에 다양한 가치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작업을 위임했다. 그리고 나는 이 위임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일을 한다. 그래야 다른 많은 사람들도 안심하고 회사에 위임할 수 있을 테니까. 감시의 사이클은 4개월, 1년, 그리고 3년이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1. 사전적으론 ‘기간’, ‘시간 범위’. 본문에서는 ‘의식적으로 구획된 시간 단위’. 더 자세히 설명하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계획해서, 결정한 기간. 즉 어떤 일의 시기와 종기를 구획하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시간 단위. 본문의 ‘타임프레임’은 이런 개념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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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윤수영
초대필자. '트레바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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