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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말라는 협치 vs. 개혁하라는 협치

김이수 재판관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부결에 즈음하여, 많은 언론이 ‘협치’를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소위 보수 언론에서만 보이는 현상은 아니다. 가령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경향신문의 한 기사를 보자.

“정부·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검찰개혁, 방송개혁 등 각종 개혁입법을 처리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보수야당과 손잡고 저지하면 돌파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 이번 일로 확인됐다. 국회를 우회하는 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경향신문, [김이수 임명동의안 부결]청 “상상도 못했다” 지지율에 가려져 있던 ‘여소야대 한계’ 절감 (’17. 9. 11) 중에서

개혁을 위해선 입법이 필요하고, 입법을 위해선 국회 과반수가 필요한데, 민주당과 정의당만으로는 과반에 미달하니,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터로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게 해당 기사의 요지다. 기사는 결국 “개혁입법을 위한 현실적 대안은 야당과의 협치밖에 없다. 여당이 의회정치의 복구와 활성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언론이 '협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많은 보수 언론이 ‘협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보’ 언론 경향신문도 협치를 주문한다. 과연 협치는 만능인가.

그야말로 ‘협치 풍년’이다. 가령, 중앙일보는 “김이수 낙마는 ‘협치 실종’과 ‘코드 인사’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훈계하고, 서울신문은 “‘김이수 부결’ 협치 부활 전기로 삼으라”고 경고한다. 조선일보도 이낙연 총리의 발언(“문재인 정부의 가장 아쉬운 점 가운데 하나가 협치”)을 인용하면서 “지지율 믿고 ‘야대’ 무시하면 스스로 발목 잡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협치’가 필요하다는 원론에는 동의한다. 결국, 입법은 입법부의 몫이고, 입법부에선 끊임없이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겉으로는 싸우고 볶고 지지더라도 내부에서는 계속해서 조율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건 굳이 언론이 아니더라도, 장삼이사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의 지적이다. 싸움보다 대화가 좋다는 얘길 그 누가 못하랴. 문제는 그게 지금 현 상황에 얼마나 적절한 조언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 야당은 정상이 아니다

우선 정의당을 제외한 야 3당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자유한국당은 극우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30% 미만의, 그러나 안정적이고 TK란 지역 기반도 확고한 ‘콘크리트’를 끌고 가는 길을 선택했다. 더는 논평할 가치를 찾기 어려운 지경이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다음 선거까지 당을 존속시킬 수 있을지가 의심받는 중이다. 바른정당은 이혜훈 전 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리더십이 무너졌고, 국민의당의 리더십은 김이수 인준안 부결에 ’20대 국회의 캐스팅보터는 나야 나!’를 외치는 듯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근시안적 소아병에 걸린 안철수에게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200903.html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전략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리더십이 아예 실종된 바른정당은 둘째치고, 국민의당은 사실상 호남 지역당이면서 호남 출신 인사를 부결시키는 황당한 짓을 저질렀다.

협치는 곧 개혁의 후퇴를 의미한다

야당이 이처럼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문제는, ‘협치’가 곧 ‘개혁의 후퇴’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협치’란 청와대와 민주당만의 뜻을 강요하지 않고,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나아가 자유한국당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은 좋은데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암담하다. 그들의 요구는 검찰 그냥 놔두고, 언론노조가 장악(?)한 MBC를 김장겸에게 돌려주고, 동성애는 금지하고, 사법 개혁도 포기하자는 것이다.

물론 야당의 요구 중에는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사퇴 요구처럼 온당한 것도 있지만, 그런 온당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협치’가 이뤄질 수 없다는 건 협치를 주장하는 이들이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야당의 반개혁적이고, 차별적이며, 수구적인 요구가 ‘협치’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이것을 ‘협치’라고 칭찬할 것인가? 아니면 ‘야합’이라며 비판할 것인가? 답은 뻔하다. 그 맥락에서 ‘진보’ 신문 경향의 협치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협치의 결과에 대해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그뿐만 아니라 그 협치의 결과에 대해 날 세워 비난을 쏟아부을 것이면서도 ‘협치’를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이 없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

김이수의 '좌절'이 검찰 개혁의 좌절로, 방송 개혁의 좌절로, 적폐 청산로 이어진대도 '협치'가 중요한가.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200903.html

김이수의 ‘좌절’이 검찰 개혁의 좌절로, 방송 개혁의 좌절로, 적폐 청산의 좌절로 이어진다면, 그때도 협치가 우선인가.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협치와 야합 사이 

‘협치’와 ‘야합’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이나 국민의당이 주장하는바, 예를 들어, 김장겸을 그냥 두어야 한다거나 동성애를 금지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이들을 청와대가 수용한다면 이걸 국민은 ‘협치’로 볼 것인가, ‘야합’으로 볼 것인가? 김이수 부결로 인해 개혁의 동력이 상실되었음을 걱정하지만, 개혁의 의지 자체가 꺾여버린다면 국민은 청와대와 여당을 계속 지지할 것인가?

몇몇 사람들을 ‘낙마’시킴으로써 야권 체면을 살려줬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 같은 경우에는 사실 야권 체면 같은 건 차치하더라도 낙마가 맞는 방향이다. 하지만 정말 공직자 후보자를 낙마시키면 야권이 체면이 살고, 야권이 협조적으로 나올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부에서 어떤 정치적 거래가 이뤄질지 필부필부(匹夫匹婦)로서는 모를 노릇이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딱히 상관관계가 없지 않았던가.

MBC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김장겸을 사장으로 그대로 두는 게 협치의 '결과'라면?

MBC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김장겸을 사장으로 그대로 두는 게 협치의 ‘결과’라면?

심지어 국민의당도 (아마 호남의 이탈이 두려워서 하는 말이겠지만,) 김이수가 결격 후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결시켰다.

청와대와 여권의 정무적 판단 착오를 질책할 순 있다. 하지만 이것이 우선이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야권은 소수자 인권 보호에 매진해온 후보자를 지저분한 정치 선동을 앞세워 세 과시를 위해 낙마시켰다. 마땅히 이것이 우선 비판받아야 하는 일 아닌가.

개혁하지 말라는 협치 vs. 개혁하라는 협치 

그런데 언론은 소위 ‘정치평론가’ 따위를 내세워 사태를 비평하면서 소위 ‘정무적’ 판단이나 ‘정치공학적’ 측면을 위주로 조망한다. 마치 삼국지에서 제갈량과 사마의의 전략 싸움을 감상하듯, 바둑에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수를 평가하듯 말이다.

정치 철학과 정책에 대한 토론은 없고, 수 싸움, 세 싸움에 대한 훈계만 난무한다. 그것이 과연 언론의 본령인가? 이 ‘정치평론’의 수준은, 옛날 이발소에서 담배 물고 고스톱 치던 아저씨들의 정치 얘기에서 대체 몇 발자국이나 전진한 것인가?

조선, 중앙, 동아, 문화 같은 신문이 협치를 주문하는 의도는 분명하다. 개혁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경향이 협치를 주문하는 의도는 정반대일 것이다. 개혁하라는 것이다.

문재인으로 상징되는 시대정신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출처: @knuepck) https://twitter.com/knuepck/status/816546973452935168

촛불혁명과 그 현실적 결과물로서 문재인 대통령.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시대정신을 우리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출처: @knuepck)

둘 중 어느 한쪽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수 언론은 명백하게 협치를 통해 개혁하지 말라고 말하고, 진보 언론은 협치를 통해 개혁하라고 말한다. 개혁하지 말라는 협치 요구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하지만 개혁하라는 협치 요구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경향신문은 언론의 불편부당함이라는 덕목을 잃지 않기 위해, 실제 협치의 결과에선 눈을 돌리고 하나 마나한 조언만 한 것은 아닐까. 난 이 불편부당함이 결코 진짜 불편부당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협치? 중요하다. 개혁?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협치는 본질에서 방법론(수단)이고, 개혁은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시대정신(목적)이기 때문이다. 협치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최후까지 ‘협치’를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그 협치 때문에 ‘개혁’을 무너뜨려선 안 된다. 그래서 협치라는 이름을 내세운 반개혁 세력의 카르텔이 적폐 청산의 걸림돌이 된다면, 그 걸림돌은 마땅히 제거되어야 한다. 협치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더 중요한 개혁을 망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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