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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언저리에서 원자력계에 보내는 조용한 외침

원자력이 난립니다. 신문 지면을 매일 그것도 비중 있는 시간과 공간을 원자력이란 단어가 이렇게 누볐던 적은 없습니다. 원자력으로 인해 시끄러웠던 적은 꽤 있습니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건설과 관련하여 안면도, 굴업도, 부안 사태가 그랬습니다. 원전과 관련하여 비리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원전 수출이 그랬습니다.

이 외에도 종종 1면을 차지했던 일이 있습니다. 대부분 부정적 기사였습니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서 권고문을 발표했을 때 일제히 신문들은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하지만 길게 가지 않았습니다. 신문사가 직접 나서 무언가를 주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고 이를 지지하는 입장은 이렇고, 반대하는 입장은 저렇다 이야기할 뿐이었습니다.

탈핵 vs. 원전

지금은 다릅니다. 신문사 대 신문사가 한쪽은 탈원전 아니 탈핵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다른 한쪽은 탈원전 선언을 성토합니다. 과거 대부분 원자력 관련 기사들은 비판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원자력계는 늘 야단맞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물론 한쪽이긴 하지만 원전의 필요성을 신문사가 먼저 나서서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전을 그만두면 어떤 안 좋은 일들이 국가와 국민에게 발생할 수 있는지 미처 원자력계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따지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은 당분간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싸움 대결 갈등 승부

이러한 주장이 원자력계를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원전 자체가 안전하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정적 삶을 고려할 때 준비 없이 덜컥 그만두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시점에서 탈원전의 위험이 원전의 위험보다 더 실질적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탈원전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원전이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원전 없이 전력을 지금처럼 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느끼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로서의 양심을 갖고 바른 이야기를 하고자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마음으로 전하는 게 관건입니다. 잘못 알고 있는 걸 바로 잡거나, 비틀어진 인식을 곧게 펴는 것은 그다음 일입니다.

원자력계가 경계해야 하는 네 가지 

지금 이 순간 원자력계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우리 편’을 늘려가야 한다는 조급증입니다. 일단 편을 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원자력계는 어느 편에서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고민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공적인 집단이고 또 국가로부터 소위 혜택받은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원전의 시스템이나 확률을 토대로 판단하기보다는 원자력계를 보고 판단합니다.

결국, 시스템도 확률도 ‘사람’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원전을 그만두면 어떻게 되는지 협박성 주장은 원자력계의 몫이 아닙니다. 원자력계는 철저히 전문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원전의 안전을 담보하고 있는지, 이를 위해 어떻게 실제로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론과 숫자보다는 생각과 실천을 설명해야 합니다.

원자력계가 경계해야 할 두 번째는 좌절입니다. 권력의 힘에 눌려 있지도 않은 죄목을 스스로 나열해가며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탈원전을 하든 짓고 있던 원전 건설을 멈추든 현재 돌아가는 원전이 당장 멈춰서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원전은 전력을 생산해야 하고 안전은 담보되어야 합니다.

어차피 멈춰질 원전이라고 대강 돌릴 순 없는 일입니다.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마치 퇴출의 대상인 양 취급받는다고 진짜 비전이 없는 것처럼, 퇴출의 대상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선 안 됩니다. 지금이야 말로 담담하게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할 때입니다. 여기에는 매번 치명적인 약점으로 불리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도 포함됩니다.

좌절 고독 사람 남자

원자력계가 경계해야 할 세 번째는 통제하지 않는 분노입니다. 화가 날 만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국가대표로서 박수를 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적폐의 주범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모양새니 당황스러운 건 당연합니다. 비난의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거나 알고 그러는 건지 진짜 몰라 그러는 건지 의심되는 허위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계끼리 모여 다시 그들을 같은 자세로 비난하고 몰아붙이는 건 현명하지 못합니다. 분노가 아니라 성찰이 필요합니다.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지 돌아보고 또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칠 게 있으면 고치고, 잘라 낼게 있으면 잘라내고, 더할 게 있으면 더해야 합니다.

원자력계가 경계해야 할 네 번째는 낙관입니다. 유력 언론들이 나서 탈원전의 부조리를 지적한다고, 그리고 이에 대한 호응이 만만치 않다고 상황이 곧 뒤집힐 거로 생각한다면 이야말로 오만일 수 있습니다. 여론은 아주 사소한 실수로도 그리고 생각하지 못했던 한순간에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론은 그 여론을 반영합니다.

지금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성찰을 계속 강조하는 까닭은 40년의 원전 역사에서 가장 결핍된 것이 성찰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못마땅해했던 부분이 여기이기 때문입니다. 성찰의 의미는 무조건 과거를 부정하거나 반성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찰의 의미는 정말 원전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사람들이 우려하는 위험이 발현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할 수 있는 위기관리 역량은 충분한지,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이 진심에서 나오는 것인지 차분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고리원전 반경 30km 내외 주요 경제 구역 (출처: 그린피스)

고리 원전 반경 30km 내외 주요 경제 구역 (출처: 그린피스)

체질 개선 위한 마지막 기회 

급작스러운 탈원전의 선언은 원자력계를 패닉에 빠뜨리기도 했지만, 사실은 뒤돌아볼 새도 없이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한 관성을 거두고 현실을 철저히 분석하여 지금부터 미래까지 최적화된 체질로 개선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열어준 것이기도 합니다.

원자력계가 지금 온 힘을 기울여 쟁취해야 할 것은 과거 원자력계의 영화 재건이나 원전의 지위 보장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게 된 지 오랩니다. 원자력계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스스로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것은 확률론적 위험을 넘어 인식 속에 팽배한 위험 그 자체를 불편하지만 인정하는 것입니다.

단, 인식 속의 위험을 마치 과학적 분석에 의한 위험인 양 왜곡하고 치장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전문성에 근거하여 과학적으로 반박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용기 있게 따지되 감정은 배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치졸한 싸움으로 매도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끼리 논쟁을 벌일 때는 지독하리만큼 과학적 근거에 뿌리를 두고 끝까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전 밀집도 전 세계 1위의 대한민국 (출처: 그린피스)

원전 밀집도 전 세계 1위의 대한민국 (출처: 그린피스)

원자력계가 양치기 소년으로 불린 이유 

원자력계가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으로 불리기도 한 이유는 정말 거짓말을 해서 그런 경우도 배제할 수 없지만, 위험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 차이에 의한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경우도 ‘위험 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우리 집 천장이 무너질 확률도 0%가 아닙니다. 신나는 여행을 기대하며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할 확률 역시 제로가 아닙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달걀 살충제 이슈로 들끓는 상황이나 환경과 보건에 철저한 독일에서 소시지 위험물질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을 보면서 우리의 일상 곳곳에 얼마나 위험이 똬리를 틀고 있는지 새삼 챙겨보게 됩니다. 원전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사고가 날 확률이 제로가 아닙니다. 그게 백만분의 일이건 만분의 일이건 그건 국민 입장에서 보면 큰 이슈가 아닙니다.

일단 사고가 날 확률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고가 바로 우리 옆집인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분명히 내 눈앞에서 원전에서 폭발음이 솟구치고 사람들이 피난을 가고 있는데 원자력계는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면서 괜찮다고 하니 안심이 되기보다는 믿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그러니 괴담에 귀가 솔깃해지고 원전 반대 목소리에 한 표 보태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과도한 욕망은 그 필연적 결과로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백만분의 일이라도 일단 사고가 날 확률이 있다는 것, 그런 사고가 바로 우리 옆집(후쿠시마)에서 일어난 것, 그리고 사고가 생기면 그 결과가 치명적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자력계가 무조건 잘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그리 말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건 전문가들끼리 이야기할 때입니다.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과 이야기하기 위해선 먼저 국민들의 우려가 무엇인지를 헤아리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게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국민이 불필요한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는 것도 전문가에게 주어진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이라는 이름의 ‘장벽’ 깨기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한 공론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과를 달라지게 할 수 있는 변수는 무궁무진합니다. 지금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아닙니다. 건설 중단이 되건 건설 재개가 되건 큰 틀에서 보면 그건 작은 과정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언제든 다시 원점으로 복구될 수 있는 탄력성 역시 갖고 있습니다.

원자력계가 주력해야 할 것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을 막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원자력계와 국민과의 사이에 쌓아올려진 1.2m 두께의 콘크리트 장벽을 깨나가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국민이 원자력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무엇인지, 진짜 원자력계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원자력계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일해 왔는지 또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일해 나갈 것인지를 국민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필요하면 질책을 받고 또 필요하면 양해를 구하고 나아가 다짐을 하는 그런 장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신뢰 회복의 근간을 세울 수 있다. 그래야 탄력성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핵 마피아의 공고한 카르텔/ 출처: 뉴스타파(링크: http://newstapa.org/17390 )>

왜 국민이 원자력계를 ‘핵 마피아’로, 정부와 업계, 학계와의 관계를 ‘카르텔’로 바라보는지 원자력계의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출처: 뉴스타파)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이 중단된다고 해서 원자력계가 패배하는 것이 아니 듯,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이 지속된다고 해서 원자력계가 승리하는 것 역시 아닙니다. 원자력계는 이러한 일에 승패를 겨루고 있어선 안 됩니다. 이제 원자력계는 스스로 책임을 추스르고 안전을 더욱 더 강화할 뿐 아니라 사고가 났을 경우 어떻게 하면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정상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 가에 대한 명확하고도 속  시원한 시나리오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더 획기적인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나누고 필요하다면 협력을 통해 방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건, 건설하던 원전을 중단하건, 탈원전을 하건 원전을 지속하건 무관하게 원자력계가 세대를 거듭해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국민은 원자력계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이러한 숙제를 풀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며 무엇을 준비하며 얼마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그 부분을 평가합니다.

국민이 평가하는 건 원전이 위험한가 아닌가를 뛰어넘어 원자력계가 얼마나 믿을만한가 아닌가라는 것임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원자력계 한 분이 매서운 눈초리와 함께 저런 여자가 무엇인데 원자력계에 대해 감히 말을 하느냐며 던졌던 무시와 비난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돕니다. 이번에도 또 삿대질과 함께 그런 소릴 듣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그런 일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외치려고 합니다. 국민이 기대하는 건 원전의 100% 안전 보장이 아니라 원전을 책임지고 있는 원자력계에 대해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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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조성경
초대필자. 교수

과학기술과 인문 사회를 커뮤니케이션으로 연결하고 또 융합하기 위해 애쓰는 에너지 전문가. 에너지 공학과 언론학을 동시에 전공하고 전문가와 시민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기 위해 창의적 도전을 쉬지 않고 있다. 사람을 참 좋아하는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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