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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 노출을 최소화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스포일러의 불안을 염려하는 독자는 이 글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box]

탈북자 중 가장 거물급이었기 때문에 주목받은 사례가 있다면 故 이한영 씨와 故 황장엽 전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를 들 수 있다.

특히 故 황장엽의 망명 과정에 대한 보도로는 “국가안전기획부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의 비선 라인이 개입돼 있다”는 취지의 ‘신동아’ 1998년 5월호 기사 [한보사태와 황장엽 미스터리 – YS, “K선생, 황장엽 좀 데려다 주소”]가 있었다.

황장엽 (黃長燁. 1923년 2월 17일 ~ 2010년 10월 10일)
북한의 ‘주체사상’을 정립한 황장엽 (黃長燁. 1923년 2월 17일 ~ 2010년 10월 10일)

박훈정 감독의 신작 [VIP]는 ‘거물급의 기획 탈북’을 소재로 했다. 국가정보원과 CIA가 의도적으로 탈북 시킨 거물급 탈북자 ‘김광일(이종석 분)’이 연쇄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국정원·경찰·CIA·북한이 뒤엉켜 막싸움이 벌인다.

‘국익’으로 포장된 ‘그들만의 이익’ 

현재의 국가정보원은 ‘댓글’에 몰두했다가, 그 ‘댓글’ 때문에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광범위하게 받고 있다. [VIP]가 주목하는 것은 영화에서도 흔히 묘사되는 첩보기관이 늘 운운했던 ‘국익’이라는 단어의 허상이다.

[VIP]의 흐름은 어느 정도는 전형적이다. 진실과 ‘국익’이 부딪치는 상황에서, ‘국익’을 추구하는 첩보기관 직원들은 진실을 틀어막는 편에 선다. 하지만 그 ‘국익’에 반발하면서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영화 속 긴장 관계는 그 파열음으로부터 비롯된다.

[VIP]가 다루는 첩보기관의 국익은 국가 전체의 이익으로 포장된, 전형적인 ‘그들’만의 이익이다.

김광일은 첩보기관이 군침을 흘릴만한 ‘떡밥’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토대로 북한과 남한을 오가며 자신의 일탈된 욕망을 충족시킨다. 김광일이 첩보세계의 관습을 정확하게 관통하면서 농락하는 흐름은 꾸준히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소리 없는 헌신”을 한다는 국가정보원의 무기력과 무능이다.

이종석 (김광일 역)
김광일 (이종석 분)

일반이 쉽게 예상하는 ‘폼 나는 국가정보원’도 묘사되지만, 간접적으로 묘사되는 정황과 이야기 흐름 속에서 [VIP] 속 국가정보원은 끊임없이 조롱당한다. 겉보기에만 멀쩡할 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한 채 혼란을 겪으며 무기력한 국가정보원의 모습은 꽤 흥미진진하다. 살아남기 위해 비열해지고 비정해지는 내부의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진실을 추구하다가 상처받은 이들을 위하여 

남과 북에는 각각 김광일을 추적하다가 벽에 부딪치는 이들이 있다. 북한의 리대범(박희순 분)과 남한의 채이도(김명민 분)는 각각 자신의 조국에서 ‘진실’을 추구하다가 김광일 때문에 고난을 겪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리대범과 채이도는 서로 다른 성격과 환경에서 살아가던 추적자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김광일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다는 점에서 인상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그들이 고난을 겪는 과정에서 다시 부각되는 것은, 첩보기관이 말하는 ‘국익’의 허상이다. 김광일로 인해 무너진 것은 비단 진실뿐이 아니었다.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김광일이 가는 곳마다 저지르는 악행 때문에 무너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이었다. ‘국익’은 민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맞지만, 첩보기관의 ‘국익’은 민생의 희생쯤은 초월하며, 애초부터 고려 대상도 아니다.

V.I.P. 브이아이피

[VIP]는 느와르 장르의 극치를 보여준다. 힘 있는 악과 악을 비호하는 어둠의 배경들 때문에 힘없는 정의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런 가운데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몸부림을 보여주는지, 세상은 어떻게 믿음을 배신하는지에 대해 낱낱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잘 생긴 배우 이종석의 이미지는 박훈정 감독의 연출력으로 극대화한다. 하지만 너무 소름 끼쳐서였을까? 관객을 염두에 둔 배려가 결말에 나오기는 하지만, 큰 위안을 얻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쳤던 정치의 비극, 국익의 비극이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가 지켜야 할 그 국익은 허상 속에 자리 잡은 형체 불명의 국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복이라는 평범한 진리여야 할 것이다. 평범한 행복은 우리 모두에게 더없이 소중한 보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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