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문화 » "살아라" – [덩케르크], 스펙터클 대신 사람을 택하다

"살아라" – [덩케르크], 스펙터클 대신 사람을 택하다

이 글은 스포일러 노출을 최소화한 글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신 독자는 피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1939년 10월, 나치 독일은 소련과 힘을 합쳐 폴란드를 함락시킨 뒤 폴란드를 양분한다. 나치 독일은 이후 눈을 프랑스로 돌린다. 나치 독일 A집단군 참모장 에리히 폰 만슈타인은 프랑스 침공을 위해 ‘낫질 작전(Sichelschnitt Plan)’을 입안한다.

“영국·프랑스 연합군에게 착시 효과를 주면서 기갑부대를 주력 삼아 벨기에 아르덴 숲(Ardennes)을 돌파시켜 우회한 뒤 빨리 포위망을 만든다.”

낫질작전

이렇게 해서 하인츠 구데리안이 지휘하는 제19기갑군단은 아르덴 숲을 돌파했고, 프랑스·벨기에 방면의 연합군은 허를 찔려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제1전차여단·프랑스 제3경기계화사단 등은 프랑스 북부 ‘아라스(Arras) ‘에서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독일 제7기갑사단의 보급부대를 급습했다. 제7기갑사단은 이를 격퇴했지만, 롬멜과 히틀러는 “쾌속 진격하던 기갑부대의 보급선이 끊길 때의 결과”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아라스 전차전’은 전세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전투는 아니었다. 하인츠 구데리안의 제19기갑군단은 여전히 쾌속 진격해 프랑스 동북부의 칼레(Calais)와 불로뉴(Boulogne)를 함락하며 포위망을 완성했다.

이에 따라 영국·프랑스·벨기에군 30여 만 명은 프랑스 북부 해안 됭케르크(Dunkerque)1에 고립된다. 연합군에게 남은 선택은 오직 하나, 탈출이었다. 이때가 1940년 5월이었다.

하늘과 바다의 기적, ‘됭케르크 철수 작전’

압도적인 기세로 포위망을 완성해 진격하는 나치 독일군이었기 때문에, 됭케르크마저 함락될 경우 수십만 병력의 운명은 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때 아돌프 히틀러는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전군 진격 정지’를 명령한다. 6·25 전쟁에서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뒤 3일 동안 진격을 멈춘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 쾌속 진격에 따라 피로해진 병력에 휴식을 제공하려고 했다거나
  • 연합군의 반격을 경계했다는 설도 있고,
  • 헤르만 괴링이 “공군으로 됭케르크의 연합군을 전멸시키겠다”고 주장했다는 설 등이 있다.

어쨌든 이 3일간의 정지는, 윈스턴 처칠이 이끄는 영국 정부에게는 철수 작전을 위한 귀중한 시간을 줬다.

됭케르크에서 후퇴하는 영군군(1940)

됭케르크에서 철수하는 영군군(1940)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3세는 이미 나치 독일에 항복했고, 항복에 동의하지 않던 벨기에 내각은 런던에서 망명정부를 구성했다. 프랑스군은 “포위망 내부와 외부에서 한꺼번에 공격하겠다”는 작전을 구상 중이었다. 따라서 단독으로 영국 본토 철수 작전을 진행해야 했던 영국 정부로서는, 이 3일간의 진격 정지는 대단히 귀중한 시간이었다.

전쟁을 할 때는 가급적 전투를 피하고 최소한의 피해만 입은 승리를 거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가급적 신속하게 퇴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즉, 패배에도 천운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5월 26일부터 됭케르크에서의 철수,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을 시작한다. 문제는 철수 작전에 동원돼야 할 선박이었다. 한꺼번에 30여만 명을 철수시켜야 하는 초대형 작전이었다. 영국군은 30여만 명을 한꺼번에 철수시킬 만한 선박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민박의 선박을 징발하는 명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수많은 ‘바다 사나이’들이 저마다 소유하고 있던 배를 몰고 됭케르크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됭케르크 철수 작전

됭케르크 철수 작전

어부들의 소형 어선·귀족들의 요트 등 배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중 1척은 ‘타이타닉’의 생존자였던 ‘타이타닉’의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의 배였다. 찰스 라이톨러는 영화 [타이타닉]에서 허공에 총을 쏘며 무질서한 군중들을 자제하려고 했던 선원으로 묘사된 바 있다.

공중에서는 헤르만 괴링의 루프트바페(Luftwaffe)와 영국 공군의 치열한 싸움이 진행됐다. 루프트바페의 폭격기들은 선박들을 향해 끊임없이 폭격을 시도했고, 영국 조종사들은 피로를 느낄 새도 없이 지속적으로 출격하며 선박들을 공중에서 엄호했다.

민간 선박들은 정원 따위는 무시하면서 가라앉기 직전이 될 정도까지 병력을 수송했다.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됭케르크의 하늘과 바다에서는 이렇게 치열한 생존 싸움이 진행됐다.

철수된 병력은 총 33만 8천여 명이었다. 영국은 철수 작전의 성공으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고, 런던에서는 프랑스와 벨기에의 망명정부가 활동하기 시작한다. 1940년 6월, 앙리 필리프 페탱이 이끄는 프랑스 정부의 항복으로 프랑스에서는 ‘비시 프랑스’ 정부가 수립됐지만, ‘자유 프랑스’는 엄연히 런던에서 살아 있었다.

됭케르크 철수 작전으로 극적으로 포위에서 벗어난 군인들.

됭케르크 철수 작전으로 극적으로 포위에서 벗어난 영국군.

‘사람’을 주목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 [덩케르크]에서, 전쟁이라는 압도적 스펙터클의 ‘전체적 규모’가 아니라 그안에 있는 ‘부분’, 즉 사람을 주목한다. 전쟁영화는 스펙터클에 주목하다가, 그 속에서 사람이 고통을 겪고 죽는다는 사실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 (2014)이 주목할 작품이었던 이유는, 칠천량 해전의 패배 이후 극도의 절망감에 휩싸였다가 ‘능력 있고 엄격해서 믿을 수 있는 리더’의 등장과 솔선수범으로 다시 힘을 내는 과정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물량으로 밀고 올라오는 일본 수군을 물리치는 민초들과 조선 수군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제 아무리 명장도 따르는 군대가 없으면 싸울 수 없고, 역전의 용사들도 ‘무능한 장수’를 만나면 ‘칠천량 해전’과 같은 어이없는 패배를 당할 수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이지만, 전쟁을 극복하는 것도 사람이다.

놀란은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묘사를 선택한다. ▲살기 위해 처절하게 총알을 피해 도망 다니는 영국군 병사 ▲살기 위해 영국군 철수 행렬에 숨어든 프랑스군 병사 ▲루프트바페와 처절한 공중전을 치루는 영국 공군 파일럿 ▲주저 없이 배를 몰고 됭케르크로 향하는 민간인 등은 놀란이 애정을 가지고 묘사했던 사람들이었다.

윈스턴 처칠·샤를 드 골·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아무리 유능한 연합국 지도자였어도, 일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울 병사와 전쟁의 고통을 감수하고 지지해줄 국민이 없다면 나치 독일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덩케르크

그리고 병사는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것이고, 국민은 어떤 병사들의 가족이었을 것이다. 33만여 명이 각각 살기 위해, 그리고 그 33만여 명을 구하기 위해 됭케르크로 몰려드는 ‘바다 사나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절하고 뭉클하다.

놀란은 자신의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초기 연출작에서 보여줬던 특징들을 재구성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제시하는 과정에서는 [메멘토] (2000)에서의 속도감 있는 편집을 구사하며, 자신의 존재를 가급적 감추며 최대한 냉정한 분위기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상황[인섬니아] (2002)와 유사하다.

메멘토 인섬니아

그 과정에서 톰 하디, 킬리언 머피, 케네스 브래너 등 명배우들이 철저하게 영화에서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다. 이는 놀란의 영화 전반에 대해 지적됐던 논쟁적 사안이기도 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무엇인지, 전쟁은 어떻게 사람을 둔감하게 하는지 철저한 메시지를 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희망과 격려가 어떤 결과를 끌어내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마저 항복한 상황에서, 영국은 어떻게 나치 독일의 거센 공격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윈스턴 처칠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테렌스 멜릭의 걸작 [씬 레드 라인] (1998)이 광기 어린 태평양 전선을 묘사하며 전쟁의 끔찍함을 전해줬다면, 놀란의 [덩케르크]는 살고자 하는 노력과 처절함 끝에 맛보는 희망을 느끼게 해준다. [덩케르크]는 [씬 레드 라인]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 놀란이 [씬 레드 라인]에 대해 만 19년 만에 화답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씬 레드 라인 테렌스 멜릭


  1. ‘Dunkerque’는 프랑스어다.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됭케르크’다. 영어로는 ‘덩커크'(Dunkirk)인데, 영어와 프랑스어 표기가 섞인 ‘덩케르크’가 되었다. ‘됭케르크’의 표기와 발음이 낯설어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글에선 영화 [덩케르크]를 빼고는 ‘됭케르크’로 쓰는 걸 원칙으로 삼는다.

좋은 기사 공유하고 알리기
슬로우뉴스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후원해주세요. 필자 원고료와 최소한의 경비로 이용됩니다.

필자 소개

박형준
초대필자. 기자

저는 '샤브샤브뉴스' 기자입니다.

작성 기사 수 : 28개

©슬로우뉴스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슬로우뉴스 안내 | 제보/기고하기 | 제휴/광고문의
등록번호: 경기아51089 | 등록일자: 2014년 2월 10일 | 발행일: 2012년 3월 26일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동판교로 153 802-902 | 발행인: 김상인 | 편집인: 강성모 | 청소년보호책임자: 강성모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