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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웹툰, 소수의 희망과 다수의 불합리 사이에서

지난 5월 27일, 한국웹툰작가협회가 설립되었다는 공지가 한국만화가협회(이하 ‘만협’)의 SNS와 만화업계 소식을 전문적으로 전하는 언론 ‘웹툰인사이트’를 통해서 들려왔다. 회장으로는 네이버 웹툰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일상툰 [마음의 소리]를 그리는 작가 조석이 협회 발기인들의 투표를 통해서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이 함께 전해졌다.

'17년 5월 27일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웹툰작가협회 창립총회의 모습. (출처: 한국만화가협회)

’17년 5월 27일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웹툰작가협회 창립총회의 모습. (출처: 한국만화가협회)

웹툰작가협회 창립 

하지만 그 이후로 이렇다 할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올해 초 웹툰작가협회가 탄생하기 전 만협의 SNS을 통해 ‘웹툰 작가의 복지 차원’에서 만협이 웹툰작가협회 설립을 추진한다는 말 정도밖에는 이렇다 할 활동 계획이나 설립 이유를 찾기 쉽지 않았다. 모두가 웹툰작가협회에 대해 의구심을 보낼 무렵, 6월 18일이 되어서야 웹툰작가협회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협회 설립의 변과 함께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냈다.

웹툰작가협회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만협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웹툰 작가들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고 있었다.

¶. 만협은 지난 몇 달간 3차례의 권고를 통해 문제 업체에 시정요청을 보냈으나,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만협은 그 원인을 법적인 제재와 합의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웹툰작가협회의 설립 목적은 웹툰 작가들을 대신해 다음 사항을 실현하는 것이다.

  1. 공정한 창작 환경 조성
  2. 웹툰 작가들의 복지 개선
  3. 포럼, 간담회 등 각종 사업을 통한 기술 나눔

¶. 웹툰작가협회는 비영리 단체로 운영할 것이며, 임원에게 돌아가는 별도 혜택은 없다. 대신 임원들은 경력 있는 작가로 구성되어 작가들의 불공정 계약 문제나 힘든 노동 환경에 대해 따지는 역할을 할 것이다.

웹툰작가협회

¶. 현재 웹툰작가협회는 여러 웹툰 플랫폼에서 문제가 되는 다음 각 항목의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6월 13일부터 관련 제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1. 강제 완결 종용
  2. 지각비
  3. 연재 컷 수 제한
  4. 2차 저작권 관련 불공정 계약 등 ‘피해 사례 제보’ 수집 중

¶. 앞으로도 웹툰작가협회는 웹툰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관계 부처에 법 제·개정 및 웹툰 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 마련을 요구하고 업체와의 소통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 곧 MG(미니멈 캐런티) 1, 성별 간 임금 격차, 매절 계약 등에 관한 간담회를 웹툰 작가들과 자주 가질 것이다.

덧붙여 웹툰작가협회는 아직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정식 설립 인가를 받지 않은 상황이기에, 인가가 내려지면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며 협회 소개 및 활동 방향에 대한 안내가 늦어진 것에 대해 해명했다. 약 한 달의 시간을 허비한 참으로 궁색한 해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라도 어떤 문제 의식을 지니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밝힌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작지만, 큰 차이 

웹툰작가협회의 출범에 대해 모두가 반가운 마음만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SNS 일각에서는 실제 창작자들뿐만 아니라 업계와 관련된 다양한 인사들이 포진한 타 협회와 달리 마치 만협이나 우리만화연대(이하 ‘우만연’)과 같은 기존 만화가단체들처럼 실제 창작가들로만 구성된 단체의 활동력에 의문을 보내는 의견이 보인다. 문제에 대한 지적만 있을 뿐, 실질적인 활동 방안은 부실하다면서 벌써부터 혀를 차기도 한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시국 사안이 아니면, 어떠한 입장 표명도 보이지 않던 우만연은 물론, 2014년 웹툰 작가 위주로 집행부가 교체된 이후 지속적으로 작가의 권익과 관련된 움직임을 보였던 만협도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족히 10년을 질질 끌던 ‘만화가 표준계약서’를 만들고, 물의를 일으킨 작가를 협회에서 제명하고, 자체적으로 만화계 내부의 불공정 계약-내부 성폭력 사건을 수집하는 등 노력을 한 지점은 분명 있으나 여전히 부족한 점은 많다.

더군다나 2016년 여름 성우 김자연이 자신의 SNS에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를 지지하는 의미로 펀딩하여 받은 페미니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인증하고, 이외에도 페미니즘적인 지향을 드러내는 문구를 계속해서 올리자 몇몇 누리꾼들이 이에 반발한 끝에 그녀가 계약되어 있던 넥슨 사의 게임 [클로저스]와 계약이 해지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김자연 성우를 지지했던 웹툰 작가들이 피해를 겪을 때도 두 단체는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었다. 가뜩이나 작가의 기본적인 권리를 수호하는 것도 미약한 상황에서, 작가의 처우에 영향을 주는 사회 이슈에도 침묵하는 이중고가 닥친 것이다.

웹툰 플랫폼 '탑툰'의 운영사 탑코믹스(현, 탑코)는 연재작 [동창모임]의 스토리 작가 ‘달곰’이 성우 김자연의 행동을 지지하고, 페미니즘적인 발언을 해 독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작품의 연재 중단을 선언했다. 무척이나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어떤 단체에서도 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은 발표하지 않았다.

웹툰 플랫폼 ‘탑툰’의 운영사 탑코믹스(현, 탑코)는 연재작 [동창모임]의 스토리 작가 ‘달곰’이 성우 김자연의 행동을 지지하고, 페미니즘적인 발언을 해 독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작품의 연재 중단을 선언했다. 무척이나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어떤 단체에서도 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은 발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웹툰작가협회는 공식적으로 MG는 물론 ‘성별 간 임금격차’와 같이 작가의 권리는 물론 젠더와 연관된 문제를 직접 언급한 점에서 한 걸음은 나아갔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웹툰 창작 현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어떤 식으로든 인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록 정식 활동을 보이기 전부터 여러 한계를 드러내고 있지만, 문제 인식을 속으로만 꼭꼭 숨겨두는 것과 직접 드러내는 것은 작지만, 큰 차이다.

웹툰, ‘희망의 상징’과 ‘불합리의 장’ 사이에서

아직 구체적인 활동 계획이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웹툰작가협회만을 가지고 더 왈가왈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웹툰 작가 내부의 문제 제기가 조금씩 SNS나 작가 사이의 네트워크를 통해 조금씩 커진 상황에서, 만협이 웹툰작가협회 설립을 지원한 건 더는 단체 내부에서 현 한국 웹툰이 처한 문제를 묵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는 동시에 너무나도 역설적이다. 웹툰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양산된 언론의 각종 기사는 물론 정부, 공공기관, 경제 관련 단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웹툰을 한국 만화의 희망으로 이야기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선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잡지 만화가 급속도로 몰락하는 와중에서 포털을 중심으로 탄생한 한국 웹툰은 활력을 잃어가던 한국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2017년 현재, 몇몇 전문가는 1~2년 안에 한국 만화산업의 규모가 1조 원을 넘길 것으로 예측하는 등 1990년대 이후 다시 찾아온 한국 만화의 부흥에는 ‘웹툰’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웹툰 플랫폼과 만화계 인사, 언론들은 ‘억대 연봉 작가’의 탄생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러나 ‘억대 연봉’을 부르짖는 소리가 커질수록, 그 이야기가 극히 소수의 상황에 불과하다는 작가들의 목소리 또한 점차 커지는 것 역시 현실이다. 예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웹툰을 그리는 만화가들은 온당히 인정받아야 할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난국에 처해있음을 드러내는 이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서울시가 6월 12일 발표한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만화·웹툰)’ 결과가 담긴 보도자료의 모습.

서울시가 6월 12일 발표한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만화·웹툰)’ 결과가 담긴 보도자료의 모습.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만화·웹툰)’의 결과는 이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오랜 시간 동안 표류한 끝에 겨우 통과된 ‘만화가 표준계약서’는 단 23%의 작가만 사용한다.
  • 30% 내외의 작가들은 불공정한 문제를 경험한 바 있다고 답했다.
  • 여전히 다수 작가는 월 200만 원 내외의 고료를 받는다. ‘200만 원’이 현재 웹툰 플랫폼 사이에서 형성된 MG의 평균 금액임을 생각하면, 다수 작가가 ‘기본급’ 정도만을 받는 셈이다.
  • 그나마도 여성에 스토리 작가, 또는 어시스턴트라면 고료의 액수는 더욱 낮아진다.
  • 조사에 참여한 만화가의 수가 315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조사 결과가 현실을 모두 반영하는 건 아니지만, ‘억대 연봉 작가’라는 말과 실제 현실은 크게 달랐다.

한쪽이 맞고, 다른 한쪽이 틀린 걸까? 아니 질문이 틀렸다! 

이러한 간극을 더욱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지난 6월 1일, JTBC의 직업 소개 예능 프로그램 [잡스]의 시즌 1 마지막화이다. 그 날 [잡스]가 다룬 직업은 ‘웹툰 작가’였고, 동 방송사의 인기 요리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고정 출연 중인 김풍을 비롯해 [프리드로우]의 스토리 작가 권선욱, [노병가]와 [패션왕]의 작가 기안84, 그리고 웹툰작가협회의 이사로 선출된 [신과 함께]의 주호민 작가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해당 화에서 작가들은 마감 기한을 지키는 등 어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점이 웹툰 작가의 매력이며, 이전에 비하면 고료도 많이 올랐음을 강조했다. 물론 방송 프로그램의 특성상 이 발언들이 모두 작가의 진심인지는 알 수 없으나, SNS상에서는 주호민 작가가 웹툰작가협회의 이사로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직업이 겪고 있는 문제 상황을 말하지 않고 좋은 지점만을 언급한다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논란이 된 JTBC의 직업 소개 프로그램 [잡스]의 ‘웹툰 작가’편의 장면. 김풍 작가는 현재 웹툰 작가의 연봉이 어지간한 대기업 사업의 초봉에 육박한다고 언급했다.

논란이 된 JTBC의 직업 소개 프로그램 [잡스] ‘웹툰 작가’ 편. 김풍 작가는 현재 웹툰 작가의 연봉이 어지간한 대기업 사업의 초봉에 육박한다고 언급했다.

왜 한쪽에서는 웹툰을 통해 억대 연봉을 받는 만화가들이 줄줄이 탄생했다는데, 왜 다른 한쪽에서는 웹툰을 연재하며 온갖 불합리한 상황에 작가들이 시달린다는 하소연이 들리는 것일까. 한쪽이 맞고, 다른 한쪽이 틀린 것일까? 아니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는 결코 이분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다층적으로 형성된 한국 만화의 2000년대 이후 상황을 살펴보지 않으면 단선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고, 이는 해법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분명 중요하지만, 그간 잘 다뤄지지 않았던 지점을 살펴보려 한다. 한국 웹툰은 어떻게 형성되어, 지금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는가. 그리고 지금의 자리에는 어떠한 굴곡들이 곳곳에 놓여 있는가. 생각은 저마다 달라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은 있을 것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달콤한 향에 취해있다가는, 바로 앞에 놓여있는 낭떠러지에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계속) 


  1. MG: Minimum Guarantee, 미니멈 개런티. 분야마다 뜻은 다소 차이가 나나, 웹툰계에서는 ‘유료 매출 여부와 상관없이 작가에게 최소한으로 지급하는 수익’의 의미로 사용된다. 작가들은 웹툰에서 통용되는 MG가 웹툰 결제로 발생하는 배분 수익이 MG를 넘기지 않으면 지급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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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성상민
초대필자. ACT! 편집위원

2000년대 중반 무심결에 글을 쓴 이후로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주로 만화, 영화, 미디어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씁니다. [미디어스]에 정기적으로 기고 중이며,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격월간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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