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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의 녹음 기록을 최소한의 편집을 통해 재구성한 인터뷰집의 일부입니다. 전체 인터뷰집은 ESC 청년과학기술인 위원회의 협력과 도움에 힘입어 [어떤 대화: 청년 과학기술인의 목소리](pdf)로 발간되었습니다. (필자)

  1. 청년 수학자와의 대화
  2. 청년 생태학자와의 대화 
  3. 공룡 꿈나무와의 대화
  4. 과학고 교사와의 대화 
  5. 청년 유기화학자와의 대화
  6. 제약회사 연구원 출신 마케터와의 대화
  7. 어느 학생연구생과의 대화
  8. 청년 전자공학자와의 대화 
  9. 청년 프로그래머와의 대화 
  10. 청년 천체물리학자와의 대화

¶ 이 인터뷰는 2014년 11월에 있었던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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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공이 물리학이고,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론물리학이라고 생각하는 중력 이론 쪽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분야는, 일단 물리에서는 물리적대상을 다루는 지가 중요한데요, 제가 다루는 대상은 우주나 천체입니다.

– 스티븐 호킹이 하는 연구 같은 분야인가요?

관련이 있죠. 하지만 그 수준은 아닙니다. 제가 거기까진 잘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물론 제가 연구하는 부분 중에 호킹이 했던 몇 가지 작업이 관련이 되는데, 그건 호킹의 작업 중에 요만큼, 한 1% 정도죠. 워낙 한 일이 많은 사람이라서.

디자인: 노수리
디자인: 노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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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상대성

– 어쨌든 같은 업계에 종사하시는 동업자 정도로 정리를 하죠.

정말 아는 사람이 들으면 큰일 날 말이지만… 네, 비슷한 분야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어떤 이론을 사용하냐가 중요해요. 저는 일반상대성 이론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방법론도 중요합니다. 방법론은, 보통 이론물리학자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막 칠판에다 수식을 복잡하게 쓰고 쳐다보고 그런 모양새인데요.

물론 관련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저는 좀 수치적 방법이라고 해서 컴퓨터를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구합니다. 정리하자면,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한 천체나 우주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상들을 관찰합니다. 이 분야를 수치상대론이라고 부릅니다.

–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도 관찰인가요? 굉장히 애매한 단어인데, 보통 시뮬레이션 한다고 하면 예측을 한다, 돌려본다 라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시뮬레이션을 통해 관찰을 한다고 하는 것도 말이 되는 건가요?

그렇죠. 실제 천체 관측하고 다르긴 한데, 그래도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들을 볼 수가 있죠. 효율적으로. 물론 그 시뮬레이션이 맞다고 가정을 하죠. 원래 천체 관측이 멀리서 오는 어떤 흔적을 보는 거잖아요. 시뮬레이션 같은 경우는 아예 다 모든 값을 계산하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죠.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할 때, 가령 물리학자들이 우주가 어떤 모양이라는 것을 공식으로 많이 말하잖아요. 일반상대성 이론도 저희는 공식으로 배웠는데요. 지금 여기서는 공식을 쓰기는 쓰는데 공식 자체에 집착을 하는 것은 아닌 느낌 이네요.

일반상대성 이론이 무엇인가 하면, 이런 방법을 외삽이라고 하나요? 일정 영역에서 식을 만든 다음에 이게 전체영역에서 맞겠거니 하는 것이 외삽법(Extrapolation)이잖아요. 같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일반상대성 이론은 실험실 영역에서 혹은 태양계 정도의 영역에서 잘 맞으니까 이걸 바탕으로 전체 우주에 적용하는 거에요. 물론 그게 실제로 맞고 틀리고는 아직까지 잘은 모르죠. 지금도 하고 있는 작업 중의 하나입니다.

태양계 우주

– 일단 이 논리가 맞다는 전제 하에 확장해보는 것이군요.

네. 전 우주에 이 규칙이 맞다는 가정에서 연구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외삽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판단 하려면 전체 우주를 보고 검증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주론적인 실험 데이터나 관측 결과가 굉장히 오차가 심하기 때문에 이게 신뢰할 정도로 딱 맞다고는 아직까지는 결정이 안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변형의 여지가 생겨서 일반상대성 이론을 변형한 이론이 많아요. 온갖 중력 이론들이 파생이 되고 있는 거죠.

– 이런 환경에서는 좀 다르게 적용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예. 그래서 ‘내가 만든 수정 이론은 오차 범위 이내니까 아직 살아있다.’ 이렇게 주장하죠. 아직 선택지 중에 하나다. 저는 그런 변형이론에 관심이 있지는 않고, 그냥 일반상대성 이론이 맞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 자체가 그 모든 중력 이론 중에 가장 단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복잡해요.

– 상대적으로는 가장 심플하지만, 절대적으로는 여전히 복잡하군요.

네. 그래서 손으로 계산해서 나올 수 있는 부분이 한계가 있고 특히 물리에서 대칭성을 많이 가정 하면 식이 간단해 지는데 그 대칭성이 다 없다고 했을 때 계산을 하려면 결국 시뮬레이션 해 봐야죠.

– 조건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요?

일반 상대성 이론의 식이 이제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 인데요. 이게 텐서식이라고 해서 행렬식으로 16개의 방정식입니다. 식만 16개인데 대칭성에 의해서 10개로 줄어요. 자유도가 10이에요. 그러니까 방정식이 10개인 식이 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까 또 10개가 미분 방정식이고, 당연히 논-리니어(non-linear, 비선형)이고 게다가 커플도 되어있죠 (coupled).

그래서 대칭성을 굉장히 많이 주면 쫙 정리가 되는데 그게 없다고 하면 식이 굉장히 복잡해요. 심지어 이 식에 해가 있기는 하냐는 질문을 가지고도 결론을 내는 데에 오래 걸렸어요. 그 움직임이 한 70년대 정도의 이야기이고, 결국 증명이 되어서 그러면 이제 컴퓨터로 풀 수 있겠거니 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죠.

아인슈타인

– 그러면 이 문제가 컴퓨터로 계산을 하면 답이 나오나요?

세팅을 잘 해야 합니다. 컴퓨터라도 무한대로 계산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큰 수를 다뤄도 안되고, 신뢰성이 높으려면 너무 값들이 막 튀어도 안되고 하다 보니… 일반 상대성 이론에는 좌표계 선택에 자유가 있어서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좌표계인 X, Y, Z, T, 이런 것을 다 꼬아놔요. 가령 X 와 T를 섞은 새로운 좌표계 같은 것을 설정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가 잘 풀 수 있는 좌표계 시스템 선택이 중요해요.

–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런 선택은 실제로 해보기 전에는 잘 모르지 않아요?

그것도 어느 정도는 수학적인 예측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하면 컴퓨터가 풀겠거니 해요. 그래서 이쪽 분야를 수학적 형식주의(formalism)라고 부르는데, 그 분야도 굉장히 커요. 컴퓨터로 풀 수 있는 문제로 좌표계를 바꾸는 거죠.

블랙홀만 봐도 X, Y, Z, T로만 보면 블랙홀의 특성이 잘 안보여요. ‘사건의 지평선’이란 게 있잖아요.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이라고 부르죠. 외부에서는 들어갈 수 있는데 내부에서는 밖으로 못 나가는 그런 경계요.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 (1997, 폴 W. S. 앤더슨)의 한 장면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 (1997, 폴 W. S. 앤더슨)의 한 장면
여기만 해도 좌표계를 잘못 고르면 거기에 특이점이 생겨요. 문제는 이것이 좌표계를 잘못 선택 했기 때문에 생기는 특이점이라는 거죠. 이것은 인위적인 특이점이기 때문에 없애야 해요. 그래서 시뮬레이션 하려면 이런 인위적 특이점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좌표계를 선택해도 무조건 특이점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어요. 그건 진짜 특이점이죠. 물리에서는 ‘물리적 특이점’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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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션 

– 정리를 하자면, 일반 상대성 이론을 기반으로 우주를 공부를 하는데 사람 손으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고, 이 문제들을 수치적으로 계산하고 관찰하기 위해서 컴퓨터로 풀 수 있는 문제로 치환해서 시뮬레이션으로 돌린다라는 거군요.

거기에 온갖 방법론이 들어가고 컴퓨터가 활용 되고 그 결과 해석에 대해서도 다양한 옵션이 있죠. 굉장히 융합적인 분야라고 보시면 됩니다.

– 이걸 통해서 우주의 모습을 관측하는 게 되는 거에요? 관찰?

그렇죠. 저는 이게 실험 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그리고 실험은… 잘 안되죠.

– 그렇죠.

실험의 핵심은 잘 안 된다는 현실이니까.

– 잘 안되니까 실험이죠, 사실.

시뮬레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일단 하면 의미가 있어요, 실험은. 실험만 딱 해 놓으면 거부할 수 없잖아요, 실험 결과를. 아무리 이론에 안 맞는다고 하더라도 이론이 문제이지 결과를 부정할 수는 없잖아요.

시뮬레이션도 그런 영역이 있어서, 결과로 생산해내면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가지죠. 그리고 실험이라는 건 우리가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건물을 짓고 에너지를 투입하는데, 시뮬레이션의 장점은 그런 거 없이 그냥 해 볼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블랙홀을 만들어 볼 수 있고 섞어 볼 수도 있고.

– 물리적으로 정말 블랙홀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수치적으로 설정할 수 있겠네요.

예. 우리가 블랙홀을 만들어 볼 순 없잖아요.

궁수자리 A*의 모델로 제안된,[1] 전리물질의 토러스를 두르고 있으면서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의 상상도
궁수자리 A*의 모델로 제안된,[1] 전리물질의 토러스를 두르고 있으면서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의 상상도
– 큰일 나겠죠.

그래서 시뮬레이션으로 해 보는 거죠.

– 여전히 저희 머릿속에서는 관찰이라기보다는 그럴 것이다라는 예측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렇죠. 원론적으로 말하면 그런데, 이것이 굉장히 발전을 하면서 거의 이제 실험에 가까운 수준으로 왔죠. 분야가 발전을 했어요. 지금 아직 중력파가 발견이 안되었어요.

참고로, 중력파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예측하는 여러 가지 현상들 중 마지막 지표입니다. 중력파만 관측하면 이제 일반 상대성 이론은 그냥 맞다고 봐야죠. “론”을 빼고 “일반 상대성” 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아요. ( 인터뷰 당시에는 ‘중력파 관측‘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음. – 필자.)

중력파 관측 발표 논문
중력파 관측 발표 논문

– 이론(theory)이 아니네요? 

네, 이제 이론이 아니죠. 이미 이 쪽 분야 사람들은 이론이라는 말을 잘 안 써요. 그냥 “일반 상대성” 이라고 하죠. 어쨌든 중력파가 발견이 되어야 과학사적 의의가 있는 건데. 이거를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굉장히 큰 어떤 L자형의… 혹시 마이켈슨 간섭계라고 일반 물리학 책에 나오는 내용이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어요.

굉장히 큰, 빛이 L자 모양으로 왔다갔다 하는 장치가 있어요. 중력파가 여기를 지나가면 주위의 시공간이 출렁이면서 얘가 흔들려요. 그렇게 되면, 빛이 왔다 갔다 하는 경로가 바뀌니까 두 빛이 합쳐졌을 때 위상이 바뀌어서 패턴이 막 보여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중력파를 관찰하는 겁니다.

– 간접 관측하는 건가요?

이 정도면 직접 관측이라고 봐야죠. 중력파가 지나가면서 실제 시공간이 변했고 그 때문에 빛의 상황이 변했으니까요. 중력파의 간접 증거들은 이미 있어요. 예를 들어 두 개의 별이 이렇게 돌다가 중력파를 방출 하면서 에너지를 잃는데, 에너지를 잃으면서 주기가 바뀌는 패턴이 일반 상대성 이론 예측하고 완벽하게 동일하거든요. ‘헐스-테일러’라고, 노벨상을 받은 실험 결과죠.

중력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새로운 종류의 펄서를 발견한 공로로 러셀 앨런 헐스(왼쪽)과 조지프 후턴 테일러 주니어는 노벨 물리학상(1993)을 받았다.
중력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새로운 종류의 펄서를 발견한 공로로 러셀
앨런 헐스(왼쪽)과 조지프 후턴 테일러 주니어는 노벨 물리학상(1993)을 받았다.

이렇게 간접 중력파 증명은 검증되었고, 실험적으로 증명하려는 노력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죠. 과학사를 보면, 처음에 누가 중력파를 발견했다고 주장을 했어요. 70년대인가 아마 80년대인가. 요셉 웨버라는 사람이 했는데, 그 때 사람들한테는 인정을 못 받았던 이유가 아무도 재현 시험을 못 했고, 그 당시 기술 수준으로 그걸 어떻게 했을까하는 의심이 있는 거죠.

그리고 과학사 학자 중에 해리 콜린스 아시나요? 이 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무언가 발견했다고 주장 할 수 없다는 거죠. 중력파가 있으려면 그걸 발견 할 수 있는 측정기가 있어야 되는데 그럼 측정기가 맞는지 알려면 중력파를 넣어봐야 하는 것이고.

– 아. 순환논리라는 거네요.

그래서 그 사람이 주장한 것은 “모든 발견은 과학자간의 사회적 합의다”라는 건데요. 물론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것보다 더 많은 종합적인 정황이 있기 때문에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여하튼, 그런 식으로 과학사적 논쟁도 있었고. 중력파는 큰 아픔이죠, 그 쪽 과학자들에게는. 한번 그런 일이 있었다보니 요즘 하는 것도 아주 조심스러워요.

– 그렇군요. 한 번 그랬던 적이 있으니까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네요.

중력파를 실제로 관측하는 장치가 ‘리고’(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라고 해서 미국에 있어요. 한 팔의 길이가 몇 키로 정도 돼요. 4km 쯤 되는데, 우리가 발견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수 많은 테스트를 설정해 놔요. 그 조건을 막 엄청나게 만들어 놓는데 이게 진짜로 엄청나요. 듣다 보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입니다.

핸포드 관측소의 북쪽 다리 (Umptanum, CC BY SA 3.0)
핸포드 관측소의 북쪽 다리 (Umptanum, CC BY SA 3.0)

– 집요하군요. 

여기를 다 통과해야 발견했다고 결정한다라는 조건을 이미 다 세워 놓은 거죠. 테스트를 만들어 놓은 것인데, 아직까지는 발견했다고는 안 했는데 최근에는 발견했다라는 소문도 조금 들려요. 이제 논문을 준비 중이다라는 말도 들리기는 하는데 그건 봐야 아는 거죠. 또 거기서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는 거니까. (* 인터뷰 당시에는 ‘중력파 관측‘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음. – 필자.) 그런데 무슨 말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죠?

– 일반 상대성과 수치 상대론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맞다. 그래서 수치 상대론이 왜 중요한지 보자면, 중력파에서 이렇게 신호가 있는데 워낙 노이즈(잡음)가 많아요. 그런데 그 중에서 내가 정말 중력파를 발견했는지를 판단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이게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보면, 누가 이런 비교를 했는데 태양 속에 중성자가 움직이는 것까지 잡아낼 수 있다고 해요.

–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맞아요. 말도 안 되는 실험 장비에요, 진짜로. 그래서 그 안에서 우리가 중력파 패턴 파형을 알고 있어야 그게 섞여 있나 안 섞여 있나 알 수 있잖아요. 그러면 중력파 파형을 알아야 하니까 우주에서 오는 중력파 중에 무엇이 좋을까 봤을 때 블랙홀이 두 개 정도 돌아야 엄청나게 강한 중력 현상이 오거든요. 그 정도는 되야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중력파가 나온다고 여겨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블랙홀이 두 개에요. 질량이 얼마고 스핀 방향이 어떻고 이런 변수를 설정했을 때 어떤 중력파 파형이 생기는지 알아야 우리가 그 시그널을 얻고 알아차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템플릿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템플릿들이 엄청나게 만들어져 있어요.

– 그래서 그 템플릿 내에서 하나만 일어나면 잡아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거군요.

그렇죠. 그래서 그 템플릿을 만드는데 수치상대론이 쓰이죠. 손 계산이 안되니까.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이제는 믿어도 되는 수준으로 시뮬레이션이 완성되었어요. 실제 사용이 될 수 있는 정도로.

– 그러면 본인은 템플릿 하나 정도 만드셨나요?

저는 심지어 수치 상대론을 하는데 그쪽 분야는 또 안 했어요. 좀 다른 걸 했어요. 더 장기적으로 보고. 물론 그렇게 안 갈 수도 있어요, 연구 방향이.

– 그래서 어떤 걸 하셨나요? 미래 먹거리를 위한 연구?

제가 한 건, 앞서 말씀드렸던 것은 천체들의 현상인데 이것이 우주적 스케일로는 아직까지 적용이 안되고 있어요 수치 상대론이. 블랙홀 두 개 해봐야 거리가 이제 태양계 사이즈 정도죠.

– 스케일이 너무 크네요, 저희에게는.

그런데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가 139억광년. 엄청난 크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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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론 

– 그러면 결국 우주가 어떻게 생겼냐 이런 문제가 되는데, 여기까지 가는 건가요?

그렇죠. 그런 분야를 이제 우주론이라고 불러요. 코스몰로지(cosmology)라고 하는데, 많이 또 연구는 됐어요. 여기서도 일반상대성 이론을 써야 하는데 사용하는 이론이 보통은 다 대칭성을 굉장히 많이 준, 그래서 간단하게 풀리는 수준이죠. 시공간이 되게 단순하다고 가정해요.

그런데 우주의 시공간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잖아요. 블랙홀 근처만 가도 막 일그러져있고. 그래서 그런 조건들을 도입한 우주론, 시공간이 복잡한 우주적인 부분들이 있다고 했을 때 전체 우주구조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 연구를 하는 거죠.

– 블랙홀이나 엄청 큰 질량의 이상한 것들이 있다면 우주가 이런 모양일 것이다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뭔가 다른 점을 발견하셨나요?

아직 초기라… 제가 좀 연구해 봤는데 별로 이게 엄청 특이한 현상은 아직 안 나왔어요. 사실 간단한 모델로 아직까지는 설명이 잘 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좀 특이한 결론 내보려고 블랙홀 회전도 시켜보고 있는데 뭐 이렇게 엄청 진전은 없고요.

– 어떤 설정을 해보셨어요?

블랙홀을 회전시켜 봤을 때 그게 우주 전체 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는데요, 모델링이죠. 모든 걸 다 넣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부분적으로 내가 어떤 특정효과를 보기 위해서 위해서 어떤 부분은 과장하고 다른 건 단순화 시키죠.

보통 은하 중심부에 블랙홀이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추정이 있고, 대부분의 은하는 돌고 있어요. 회전 블랙홀은 은하를 표시할 수 있는 적합한 모델이라서 이것이 좀 현실성 있는 모델이 아닌가 생각해요.

– 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군요 우주에서. 그래서 우주를 돌려봤더니 특이한 점이 있었나요?

주변 연구자들이 듣고 막 뭐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초벌 연구라서 그냥 제 마음대로 말하겠습니다. 어차피 저랑 같은 연구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그냥 제가 마음대로 말 해볼게요.

– 지금 한국에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이 없나요?

세계적으로 없죠(…)

일단, 첫 번째 의문이 있어요. 우주론에서 많이 가정하는 대칭성이라는 것이 균질성입니다. 어딜 가나 우주가 비슷하다는 거에요. 코페르니쿠스 원리(Copernican principle)라고 하는데, 코페르니쿠스가 맨 처음에 지동설을 얘기 했잖아요.

여기서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 vs. ‘태양이 지구를 돈다’ 이 대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사실 좌표계 중심에 태양을 놓냐 지구를 놓냐 그 차이인데, 코페르니쿠스의 철학적 핵심은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의 특별한 곳이 아니다” 라는 거죠. 어디든 중심이 될 수 있어요.

코페르니쿠스(1473년 2월 19일 - 1543년 5월 2일)
코페르니쿠스(1473년 2월 19일 – 1543년 5월 2일)

두 번째 가정은, 어디로 보든지 다 우주가 비슷하다는 등방성 입니다. 이 두 가지가 사실은 가정이에요. 이 두 가지를 가정하면 굉장히 깔끔하게 아인슈타인 방정식이 풀려요. 굉장히 강한 대칭성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우주론을 해 왔던 것이죠. 이것이 굉장히 강한 조건이 되어서 열 개의 방정식이 두 개로 줄어요.

– 엄청나게 강력한 조건이네요.

강한 가정이죠. 굉장히 과한 가정이죠. 그거 가지고 우주론을 했는데 생각보다 이게 우주를 잘 설명하고 있어요. 그런데 과연 우리 우주가 정말 그럴까. 균질한 건 맞는 것 같아요. 전체 우주를 스캔하고 이런 실험들이 있거든요. 다 비슷해요 어디를 봐도. 더 큰 스케일로 갈 수록 계속 균질해져요. 그러면 과연 등방성은 어떻게 될까. 과연 우주가 등방적일까?

가령, 지구가 자전하니까 자전축이 있죠. 특정방향이 있는 거에요. 즉, 등방적이지 않죠. 모든 천체들이 다들 특정 방향을 가지고 있잖아요. 돌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것들을 다 합친다고 전체구조가 등방적이라는 보장은 없죠. 그래서 이 분야를 파고 들어서 비등방적인 우주 모델을 호킹이 만들었죠.

– 스쿨 오브 비등방성, 비등방성 우주 학파 소속이시군요.

논문에 호킹 논문 인용을 하는데 되게 떨리더라고요.

스티븐 호킹 (1942년 1월 8일~)
스티븐 호킹 (1942년 1월 8일~)

– 진짜 멋있네요.

너무 두근대면서, 제가 비교해 볼 모델은 그거라고 정의한 거죠. 그런데 제가 우주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아직 우주를 전체적으로 설명을 한다고 자신하기엔 좀 초라해요 이론들이. 가정도 너무 많고 불확실성도 높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주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 미묘하네요. 완성된 수준의 과학적 지식으로써 우주에 대한 내용은 어찌 보면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네요. 다만 지금 생산되고 있는 후보들은 훨씬 다양하고 자세하게 알고 계시죠?

그렇죠. 경쟁하는 이론들은 알고 있죠. 그런데 가끔 그 과학 저술하는 사람들 중에 확정된 것이 아닌데 막 쓰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뭐 브라이언 그린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초끈이론이 대표적인데, 초끈이론은 아직 실험적으로 확정된 이론이 아니에요. 이걸 증명하려면 태양계마다 입자 가속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요. 에너지는 태양에서 뽑아 써야 하고.

– 우주적 스케일의 실험을 해야 하네요. 

그래서 우리의 문명이 이 방향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옛날 만화에 나오는 악당 과학자 같은 이야기인데, 좀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신중해야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거기에 현혹되어서 이 분야에 뛰어 들었어요. 아직까지는 판타지에요.

– 실제로 과학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티븐 호킹 같은 사람들의 책을 읽고 혹해서 오지 않나요?

호킹도 판타지가 있었죠. 얼마 전에 일반상대론 100주년 학회 하는데 블랙홀에 대한 연구가 재미있어요. 안에 들어가면 뭐가 있을 거고 내부 구조가 어떻고 막 이야기를 하다가 누구 한 명이 이런 결론을 내리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우리가 확인 할 수 있냐.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오잖아요. 인생의 낭비다.

– 어차피 이 분야에 연구하는 사람은 혼자라고 했잖아요. 범위를 넓혀도 얼마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비슷한 맥락에서 우주의 블랙홀이나 이런 것들이 있을 때 우주적으로 어떻게 될까 이걸 연구하는 논문들이 몇 개 있어요. 주로 참고하는 건 영국의 어떤 사람, 그 다음에 일본에 계신 박사님. 일반상대성 이론을 제대로 적용한 우주론, 완벽하게 적용한 우주론으로 한정 지으면 굉장히 또 좁아져요.

그러니까 많이 아직 안 한 거죠. 앞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이걸 다 할 것 같다고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셔서 뛰어들긴 했지만…10년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이건 그런 날이 안 올지도 모르겠고…

– 한국에 몇 명이나 있나요?

수치 상대론으로만 한정하면 네 명 있어요. 그런데 네 명 중에 대학원생이 두 명 이고 한 명이 포닥.[footnote]포스트닥터(Post Doctor): 포스트닥, 혹은 ‘포닥’이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의 상태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실 박사 학위를 마친 모든 연구자는 포닥에 속하지만 그렇게 사용되지는 않는다. 주로 학위를 받은 후 비정규직 상태로 연구 경력을 쌓는 연구 초년생을 지칭하며, “박사-포닥-교수”라는 일종의 정형화된 연구직 커리어 진행 과정의 일부를 구성한다. “인턴-레지던트-의사”와의 비교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footnote] 나머지 한 명이 정규직 연구자입니다.

토론 회의 아카데미 대학 사람 남자

– 굉장히 간단한 피라미드네요. 학회에서도 네 명이서 이야기하나요?

매주 텔레컨퍼런스(tele-conference)를 합니다. 좀 더 큰 곳으로 가도 사람이 별로 없어요. 20~30명 모이려나. 다만, 아까 이야기 했던 중력파 관측 그룹은 좀 더 커요. 거긴 워낙 뜨거운 분야니까요. 돈도 들어가고 국제적으로 크니까요.

원래는 중력파와 수치상대론 두 가지가 함께 가는 분야였는데 수치상대론은 많이 죽었죠. 그런데 중력파 발견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그걸 이용해 물리적 정보를 얻어서 새로운 관측 도구가 되요 이것이. 중력파를 분석을 할 수 있으면, 원래는 우리가 광학적으로만 관측을 해왔는데 중력파를 이용하면 더 엄청나지죠. 탄탄대로에요. 새로운 관측분야가 되는 겁니다.

– 완전히 새로운 분야가 하나 탄생하는 거구나.

우주가 처음에 막 이렇게 생기잖아요. 그러면 빛이 처음부터 있지 않았어요. 빛이 있어도 어떤 어떤 전하를 가진 물질하고 부딪히면 그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 한마디로 빛이 직진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것은 온도가 뜨거울 때 상황이고, 점점 식으면 이제 빛이 직진이 가능해지고 여기저기 이동이 가능해요. 그 순간이 대략 우주의 온도가 3,000 K. 그 정도까지 떨어졌을 때이자 동시에 첫 번째 빛이 생겨나는 순간이죠.

– 신이 말했다는 “거기에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가 시점이군요. 

창세기 전에 중력파는 있어요. 빛은 없지만 중력파는 있어요. 사실 “거기에 중력파가 있으라”(Let there be gravity)라고 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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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길… “하지 마”  

– 이제 연구자의 길을 계속 걸으실 텐데, 지금까지 해왔던, 막 우주를 이렇게 가지고 놀고 돌리고 지지고 볶고 하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하시나요? 저희가 이렇게 듣는 건 정말 재미있는데요 (…)

저는 하고 싶은데 누가 좀 자리도 주고 이렇게 너 계속해라 월급도 좀 주고 이래야 계속 하는데 지금 포닥 자리가 안 나고 있어요.

– 그 문제가 포닥 자리가 없다는 문제인가요 아니면 분야가 안 맞는 건가요? 우주론을 안 하고 조금 더 핫한 분야를 했다면 괜찮았을 수 있는 분위기인가요?.

쉬운 길들은 있죠. 지금보다는 더 편한. 하지만 저는 이 분야의 매력에 빠졌으니까 한 거고. 그런데 어쨌든 이 분야만 해서는 전망이 어두워요, 국내에서는. 실은 포닥이라는 게 비정규직 이잖아요. 사람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을 얘기 하는데 이쪽 분야는 아예 비정규직도 못 구해요.

– 빛이 있기 이전 단계네요. 양분화가 있기 이전에 애초에 직장이 없다.

그래서 뭐 어렵게 비정규직을 잡았는데, 그러면 또 다음에 정규직에 문제가 있고. 정규직도 테뉴어(tenure)[footnote]테뉴어(Tenure): 대학에서 교수의 직업 안정성을 평생 보장해주는 특수한 제도적 장치. 영년 교수직 제도라고 번역되기도 하며, 흔히 “정교수”가 되었다고 함은 테뉴어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또한, 대학에 정규직 연구자로 취직했다 함은 테뉴어 트랙 계약을 합의했다, 즉 영년 교수직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받았다는 의미와 사실상의 동치로 사용된다.[/footnote]가 있고 비-테뉴어가 있고. 그래서 그냥 마음을 놨어요. 어차피 제가 그 그룹에는 못 들어갈 것 같아요.

– 학원 강사 하시잖아요.

예. 그래서 뭐… 어차피 돈 벌이는 해야 되니까. 결혼도 했고, 애도 낳고 해야 하는데 그래서 학원 강사를 합니다. 중고등학생 가르치면서 아… 중학생 애들 진짜 말 안 듣고 진짜 머리가 아파요, 진짜.

시간강사 빈 강의실 대학

– 혹시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셨나요?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 하는데요, 애들이 꿈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중적인 재미는 아닌 것 같아요.

– 지금 하시는 연구가 돈이 많이 드나요? 시뮬레이션 연구라고 들으니… 컴퓨터만 있으면 되나요?

박사 학위 논문은 제 노트북으로 했어요. 시뮬레이션 그냥 노트북으로 돌려서. 알고리즘이 중요한 거죠. 해상도를 더 높이고 싶으면 그 때 필요에 따라 그냥 사이즈를 키우면 됩니다. 계산 양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제가 뭐 해상도 이 정도로도 그냥 논문은 쓸만하니까 괜찮아요. 더 뭘 보고 싶으면 필요할 수도 있겠는데 그러면 이제 슈퍼 컴퓨터죠. 보통 템플릿 만드는 사람들은 다 슈퍼 컴퓨터 써요.

– 슈퍼컴퓨터를 쓸 역량이 주어졌다면 템플릿을 만드는 연구도 했을 수 있나요?

남들이 하던 거 따라가면 우리가 리딩을 못해요. 어떻게 보면 몇 명 없는데 그냥 투자죠 그냥. 지금 그 분야는 뭐 엄청 많이 해요. 소스 코드도 많이 공개 되어있고. 그런데 아직 제가 하는 분야는 다 직접 짜야해요. 한 마디로, 학문을 하더라도 맨날 따라갈 수는 없다는 거에요. 제 후배들은 노벨상을 받아야 할 거 아니에요. 자꾸 이렇게 사지로 내 몰아야… 저야 이제 졸업을 했으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 그런데 졸업을 해도 어차피 취직 안되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요. 저희가 할 말은 아니지만… 혹시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관심은 있는데 그것도 가시밭 길이죠. 그래서 제가 하는 생각은 이거에요. 제 개인적인 목표를 말씀 드리면, 단기적으로는 지금 쓰는 논문 마무리를 해 보고, 안되면 뭔가 다른 일을 좀 벌려야 될 것 같은데 일단은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학원강사를 계속 좀 하고. 그리고 연구도 아깝거든요.

기왕이면 좀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독립 연구를 해야 하는데 어떤 안정적 재정이 뒷받침 되야 되니까 그러면 기본적인 수익 구조가 있어야 하고. 학원은 개인 수입니까 결국 독립 연구소를 세운다면 거기에 수입이 있어야 하겠죠.

– 독립 연구소를 통한 수입을 꿈꾸시는군요

만약 있다면 그렇죠. 크라우드 펀딩을 하든, 컨텐츠 회사가 되어서 과학 관련된 저술을 하든, 컨텐츠를 개발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거나. 그러면 연구의 재정이 생기고 할 텐데 아주 큰 일이잖아요. 혼자 할 수가 없어요. 이런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 본말이 전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류사적인 의미가 있는, 우주에 대한 인간의 지식을 한 뼘이라도 넓히고자 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 과학저술 활동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그런데 과학 저술 활동은 오히려 이런 연구가 탄탄하게 선행되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과학저술 활동은 그 나름대로 또 일이고 이것이 돈이 된다는 보장도 없죠. 한국에서 누가 과학 우주론 책을 사서 보겠어요. 그런데 예술인도 그렇고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이렇게 한 달 100만 원 벌면서 어찌 보면 인디 밴드들과 비슷하게 살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순수과학은 배고픈 거니까.

돈 수입 달러

– 스티븐 호킹은 소녀시대 같은 거고 우리는 소녀시대가 되기는 힘들지.

사실 괜찮은 건 아니고 문제죠. 요즘 그래서 예술가들도 무슨 바른 음원 협동조합인가 그런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움직임이 있는데 과학 쪽엔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좀 아쉽네요. 아직은 제가 대학원생 신분이어서 생각만 많고 뭘 못 했는데 이제는 정말 포닥 자리가 안 잡히면…

– 정말 생각을 해 볼 문제입니다. 사실 대학에서만 연구하라는 법은 없어요. 연구소에서만 연구하라는 법도 없고. 역사가 흘러가며 생긴 연구 제도의 흐름 같은 것이지 어떤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기 때문에 미래에는 새로운 연구 형태가 나올 수 있죠.

이게 혼자 뭘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요. 최소한 교통비는 나와야 하는데 그게 힘들어요. 제가 대학원생 하면서 지도교수님이 연구비가 없어서 사비로 왔다 갔다 하고 그런 적이 있어요. 좀 부담이 되더라고요. 2박3일 학회면 제가 숙박비도 내야하고. 그러면 학회에 안 나가고 그냥 있으면 연구가 진행이 안 되고. 이런 부분이 좀 힘들어요. 대학원 때 그랬는데 앞으로는 심지어 소속도 없어지고 아예.

–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꽤 있을법한 분야 같은데요.

선배들 보면 수치 상대론 그룹에 있다가 졸업하시는 선배들이 몇 분 계시는데… 다른 일 하시죠. 보통 이쪽이 시뮬레이션 하니까 그 쪽 테크닉 이용해서 생물학 하시는 분도 있어요. 생물물리. 그 쪽도 있고 아예 다른 일 하시는 분도 있고 금융계 진출하시는 분도 있고. 한 선배는 막 쓴 논문이 뭐 올해의 논문 이렇게 올라가요 저널에 보면. 그런데 요즘 펀드 매니저 관련 시뮬레이션 하고 있고. 포닥 자리가 안 나니까요.

– 이러다 보면 학술적으로 대가, 빅네임(big-name. 대가)이 배출되기 힘든 구조 아닌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피라미드를 막 올라가서 이렇게 하시는 분들은 대가가 되었어요.

승리 위너 승리자

– 거의 천재 중 천재 급만 올라갈 수 있는 그런 건가요? 논문을 내는 족족 올해의 논문을 먹어야..

이게 또 완벽하게 본인의 실력이다, 그러면 모르겠는데 아닌 경우도 있고 하니까. 예를 들어 지도교수님 그런 것도 있고, 우연히 기회가 잘 맞은 것도 있고. 이런 말 하더라고요. 아무리 페라리가 와도 주차장에 댈 곳이 없으면 꽝이다.

– 멋지게 커다란 이야기로 시작해서 암울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이 자리가 굉장히 초라해 지네요.

– 이론 물리학을 꿈꾸는 많은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지 마.

출입금지

– 아, 왜요? 

유학 가.

– 아, 결국 탈조선 해라.

그렇네요. 어렸을 때 빨리 탈조선을 해야죠. 국내는 이제 좀 답이 없는 거 같아요. 외국은 기회가 많아요, 국내보다는. 선도적인 연구를 할 수 있죠. 대단한 지도교수들이 있고, 엄청난 연구 그룹들이 있고 기회가 있죠. 자리도 있고.

– 굉장히 비교육적인 코멘트네요. 과학 컨텐츠 만들면서 아프리카 방송이라도 하신다면 저희가 별풍선이라도 어떻게 쏴 보겠습니다.

그런 거 했다가 무슨 소리 들을지 몰라요. 틀을 깨야 한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여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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