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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의 녹음 기록을 최소한의 편집을 통해 재구성한 인터뷰집의 일부입니다. 전체 인터뷰집은 ESC 청년과학기술인 위원회의 협력과 도움에 힘입어 [어떤 대화: 청년 과학기술인의 목소리](pdf)로 발간되었습니다. (필자)

  1. 청년 수학자와의 대화
  2. 청년 생태학자와의 대화 
  3. 공룡 꿈나무와의 대화
  4. 과학고 교사와의 대화 
  5. 청년 유기화학자와의 대화
  6. 제약회사 연구원 출신 마케터와의 대화
  7. 어느 학생연구생과의 대화
  8. 청년 전자공학자와의 대화 
  9. 청년 프로그래머와의 대화

¶ 이 인터뷰는 2015년 10월에 있었던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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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전자공학과에서 박사 과정 중인 학생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석-박 통합 5년 차 혹은 그냥 박사 4년 차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요새는 연구가 잘 안 풀려 졸업이 불투명해서 슬럼프를 겪고 있습니다.

– 원래 저희가 그런 분들 모시고 이야기하는 거 좋아합니다. 왜 연구가 안 될까요?

원래는 꿈과 희망으로 연구했는데, 계속하다 보니까 제 연구의 단점이 너무나도 잘 보이고 장점 같은 걸 잘 포장해서 발표하거나 졸업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저 자신의 단점이 너무 많이 보여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어요.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저 자신의 단점이 너무 많이 보여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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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주파 연구 

– 어떤 연구인지 간단히 설명을 해주신다면?

저희 연구실은 초고주파를 다루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통신에 쓰는 그런 회로 시스템을 만드는 거예요. 송수신기, 안테나 등의 말단 부위를 연구하는 연구실이고, 저는 거기서 통신은 아니지만, 실내에서 어떤 사물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이런 것을 파악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안테나

– 실외가 아니라 실내에서? 그게 지금 가능한가요?

어렵습니다.

– 더 강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진짜 진짜 어렵습니다. 요 근래 실내 GPS를 연구하고 있다 아니면 개발하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실내에서 하기 어려운 이유가, 실외와는 또 다른 환경… 예를 들면 벽면이 많다든지, 막혀 있고, 사물도 안에 많이 들어있다든지 하는 환경에서 왔다 갔다 하는 물체도 많아서 이것들을 추적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전자파가 반사하고 회절하고 이러면서 더 찾기 어려운 환경이 되죠. 이걸 풀어보고자 했는데 어렵네요.

– 이게 되면 어떤 이득이 있나요?

일단 실내에서 “어디로 오세요” 라고 하시면, 저는 이 건물에 처음 왔으니까 ‘엘리베이터가 어디 있지?’, ‘몇 호가 어디에 있지?’,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위치를 찾을 수 있고, 그걸 추적할 수 있으면 편하죠. 또 어플리케이션으로는 환자가 어디 있는지 그런 것도 추적이 가능하고. 어떤 물체든 간에 송수신 장치를 붙여두면 어디 있는지 추적이 가능하니까요.

– 그런 정보를 알면 범죄수사를 한다거나 할 때 응용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로 유리하겠네요. 지금 그러면 송수신 장치를 개발하신다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정확히는 실내에서 전자파가 어떤 현상을 일으키고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
진짜 진짜 어렵습니다.

– 신호처리 분야인가요?

신호처리 같으면 소프트웨어나 수학으로 이런 걸 증명해내고 이런 건데, 저는 하드웨어적으로 접근해서 복잡한 신호처리 없이 간단하게 하드웨어만 가지고 어느 정도의 정확성을 가지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신호처리를 하면 아무래도 계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정확하게 찾으려면 시간도 당연히 소모가 돼요. 예를 들어서 건전지를 쓰는 단말기다 하면 계산을 하는 도중에 에너지를 소모해버릴 수도 있고.

– 그러면 하드웨어적으로 더 명확한 신호를 내주는 회로를 만드시는 건가요?

신호를 잡아내는 거죠. 이 신호는 어느 각도에서 왔다고 찾아낸다든가 할 수 있는 거에요.

– 생각해보면 큰 틀의 연구 목적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실현이 될 수 있는데. 알고리즘을 잘 짜서 향상시킬 수 있고, 아니면 하드웨어 스펙 자체를 끌어올릴 수도 있겠고, 또는 아예 레이더처럼 얘를 어디 어디에 놔서 놓는 위치를 최적화해서 커버 범위를 넓힐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요새 기사 같은 것 보면 실내 GPS를 개발했다 이런 데가 있는데 그런 기술 같은 경우에는 실내에 1m 혹은 2m 간격으로 장치를 엄청나게 많이 붙여요. 그렇게 하려면 가령 7층짜리 건물에 그걸 하고 싶다고 하면 그걸 층층마다 엄청 많이 붙여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돈이 너무 들어요. 정확성 보장은 할 수 있지만, 좀 더 간단하게 적은 단말기를 붙여서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고 시작을 했죠.

– 하지만 잘 안 되고 있는 상태로군요.

앞으로 잘 되겠죠?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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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공학을 선택한 이유 

– 이런 연구 하는 데에 필요한 특별한 하루 일과가 있나요?

저는 하루 일과를 끝낼 때 다음 날 뭐를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요.

– 계획적이시네요.

그렇게 안 하면 다음 날 뭐 하지 하다가 하루가 다 가버리는 수도 있기 때문에 연속성 있게 연구하려고 하죠. 코딩을 좀 하다가 집에 가기 전에 여기까지 마무리했는데 내일은 3D에서는 어떻게 나오나 봐야지 뭐 이렇게 계획을 해 놓고 가서 보통 전날 계획대로 하는 편인데요.

요새 같은 경우에는 코딩을 많이 하고 있고 뭐 솔루션이 안 보인다 싶으면 논문 검색도 하고, 학회 같은 데 가서 비슷한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도 좀 만나서 그 친구들이 뭐 안 했나 이렇게 이름으로 검색을 해요.

주로 검색을 합니다.
요새는 코딩도 많이 하고, 검색도 많이 합니다.

– 혹시 나한테 말 안 하고 다른 학회에서 발표한 거 아닐까 하는 건가요(…)

비슷한 거 하니까요 뭐. 다 아마 비슷할 거에요. 연구실 들어오면 논문 검색 좀 하다가 논문 좀 읽고. 교수님 시키는 일 하다가. 졸업은 뭘로 하지? 졸업 주제 공부 좀 하다가 집에 가는 게 5년째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 뭔가 고3의 생활을 보는 것 같네요.

생각보다 단조롭죠 대학원 생활이. 아주 규칙적이고. 하루 하루가 매우 똑같습니다.

– 전자과에서 연구 하시는데, 학부 때도 전자과를 하셨죠.

맞아요.

– 전자과 외길 인생 10년 이런 느낌이네요.

네, 맞아요. 계속 제가 진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봐서 과학을 하게 된 계기에 관해 생각해봤는데, 일단 어머니 아버지가 둘 다 과학을 하셨어요. 어머니는 화학을 하셨고, 아버지는 같은 학교에서 기계공학을 하셨고.

전자공학 외길 10년...
전자공학 외길 10년…

– 왜 하필 전자과를 갔나요?

수능을 쳤는데… 그냥 쳤어요 그냥. 그런데 제가 그 당시에 집에서 독립하고 싶은 거예요. 빨리 나오고 싶은 거에요, 뭔가.

– 많은 고3들의 바람이네요.

뭔가 자유로운 삶을 꿈꿨는데 부모님께서 세 군데 학교를 정해 주셨어요. 여기 아니면 너는 아무데도 못 간다. 그러니까 서울 갈 생각 하지 말아라 이렇게 된 거예요. 문제는, 그 곳에 가기에는 제가 좀 힘들어서.

그때 집이 대구였어요.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럼 대구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되겠구나, 무얼 공부해야 하지 알아보다가 그런 생각도 했죠. 제가 수능 점수가 좀 좋아서 서울에 간다 해도 용의 꼬리가 되느니 차라리 여기서 뱀의 머리가 되겠다 해서 학교랑 과를 알아보다가 어떻게 보면 점수에 맞춰서 가게 되었습니다.

– 쉽게 말하면 전략적 선택을 했군요.

그리고 웃긴 게 고등학교 때 물리를 되게 못 했어요. 그런데 이거를 용납할 수가 없는 거에요. 내가 이걸 왜 못하지? 그래서 오기가 생겨서 내가 이거를 끝장 내버리겠다. 이거를 다 부셔버리겠다.

다 부셔버리겠어!
다 부셔버리겠어!

– 그런데 왜 물리과를 안 가고 전자과를 갔어요.

점수 맞춰서(…) 슬픈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현실이죠. 우리나라에서 수능을 치면 학생들이 보통 점수에 맞춰서 학교를 정하고, 과를 정합니다.

– 대학 때부터 전자과에서 공부하는 건 재미 있었나요?

제가 물리를 못 해서 걱정을 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숙제를 해도 좀 성취감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크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진짜 잘 왔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게 된 건가요? 아니면 이건 또 다른 스토리인가요?

이 안에서도 전공이 엄청나게 많은 거에요. 영상 처리하는 데도 있고, 제어 하는 데도 있고, 전파 연구 하는 데도 있고, 뭐 신호처리도 하고. 그리고 제 학부가 전자과가 아니라 전자 전기 컴퓨터였어요. 그래서 전기과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엄청나게 많은 거예요.

1학년 때는 일괄적으로 일반 물리라든지 똑같은 수업을 듣는데 2학년 때부터는 물론 공통된 전공을 듣거든요. 들으면서 이제 세분화된 전공을 선택을 해야 하는데 뭘 할까 하다가 전자기학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한국이 잘 나가고는 있지만, 사실 국방 쪽 이런 쪽도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데 너희라도 관심 좀 가져 봐라.”

그래서 국방 쪽에 일을 하려면 어떤 전공을 들어야 하나 하면서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관련 산업에 대한 검색을 막 했어요. 회사들이 뭐 하는지 보니까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그 안에서도 전자전, 레이더 이렇게 실제 전투에서 사용할 때 쓰는 통신시스템 하는 걸 보고 그러면 내가 이 많은 전공 중에 전파 전공을 해야 하는구나 해서 세분화된 전공 선택을 했어요.

그리고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 학위별 로 비율을 보니까 석사, 박사가 정말 많더라고요. 연구소니까. 그래서 ‘음, 나는 대학원도 가야겠네?’ 해서 생각보다 대학원 가야겠다는 생각을 되게 빨리 했어요.

디자인: 노수리
디자인: 노수리

– 정말 계획적이시네요.

저는 목적이 없으면 일을 하기 힘들어요. 이거를 왜 공부해야 하지 하는 대답을 못 찾으면 흥미가 떨어지는 거죠. 관심도 안 가고.

– 동기부여가 필요하시군요.

네.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이만큼 정해져 있는데 나는 목적의식을 가진 일들이 이만큼 있고 목적 없는 일이 이만큼 있으면 당연히 밀리게 되고 재미도 없고. 그래서 저는 저에게 뭔가 시키려면 목적을 줘야 합니다. 제 자신을 이해시켜야 돼요.

– 굉장히 계획적이시니까 지금 걷고 있는 길의 목표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대학원에 오니까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조사했던 회사들 위주로. 몇 군데 알아봤는데 꽤나 들어가기 힘든 거예요. 자리가 별로 안 나더라고요.

그래도 난 가고 싶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지 또 열심히 알아보니까 일단은 보면 여기가 자리가 나는 경우가 제가 정확히 아는지는 모르겠는데, 누가 정년 퇴임을 하시면 그 자리에 맞는 TO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찾아보니까 산학 장학생을 뽑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제가 모집할 수 있는 자격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 때를 기다리는 잠룡처럼! 이렇게 웅크리고 있다가! 기회는 찬스다! 하고 출수하셨군요.

맞아요. 기회를 빨리 잡아야 해요. 첫 번째 기회는 잘 안 됐는데 이번에 되어서 졸업만 하면 갈 수 있어요. 문제는, 졸업을 해야 해요(…)

– 산학 장학생은 졸업을 하면 갈 수 있다고 표현을 할 수도 있지만, 졸업을 하면 가야만 하는 계약이죠?

맞아요. 이게 기간이 정해져 있어요. 언제까지 와라. 최대 이 기간까지 너를 지원해주겠다. 그런데 얼마 안 남았어요. 그래서 제가 요새 매우 초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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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 아름이? 여자라서 힘들었던 일들 

– 지금처럼 쭉 과학외길, 공학 외길, 전자과 외길을 걸어오시면서 힘든 점이 있었나요? 조금 더 좁혀서는 여자라서 힘들었던 부분? 지금 그냥 과학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연구가 안 되고, 어렵고 같은 보편적인 말씀들은 해주셨는데 혹시 내가 여자가 아니면 이건 좀 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싶었던 것들이 혹시 있나요?

아무래도 공학 쪽을 하면 남학생이 많거든요.

– 특히 전자과를 하면 더더욱 그렇겠죠. 성비가 어느정도 되죠?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한 10:1은 되는 것 같아요. 많이 높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옛날에 교수님들 말씀 들어보면 어느 공과 쪽이라고 해도 여학생이 별로 없었는데, 요새는 아무래도 여자들이 예전에 비해서는 공학 쪽, 이학 쪽을 많이 선택하는 분위기인 것 같긴 해요.

여기 있으면 남학생들이 많아서 어려움이 없냐고 하는데 저는 약간 성격이 막 엄청나게 여성스럽지는 않아요. 다행히도 생각보다 잘 어울릴 수가 있었고요. 아마 이쪽 분야에 계시는 여학생, 여학우, 여자 과학자들이 어쩌면 저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어요.

내 성격이 원래 조금 걸걸해 라든지. 그런데 제가 저번 학기에 여성과학기술인 정체성 찾기 3부작으로 강연 같은 걸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 아무래도 제목이 여성 과학자 이렇게 들어 가니까 여학생들이 많이 왔어요.

여자 사람 누구

길게는 못 했지만, 이야기를 좀 나눠 보는데 거기에 오신 분 중에 한 명이 말씀하시더라구요. 이게 사실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학생들이 불편해 하니까 그런 걸 수 있다는 거죠.

남학생들만 있었던 연구실에 비해 서로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여학생들이 알아서 그걸 선택하는 거일 수도 있다, 물론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사실은 그걸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고 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즉, 그런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거지 네가 원래부터 남성성을 가져서 그런 건 아니다는 말이군요.

애초에 여성적이고 남성적이고 나누는 것 자체가 말이 이상하지만, 사람들이 통념으로 말하는 그런 남성적인 성향을 좀 가지고 있는 게 분명 연구실 생활에 편리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헌데 이 부분 때문에 ‘나는 과학을 하고 싶은데, 공학 쪽으로 연구실을 가고 싶은데, 남학생이 너무 많고 나는 힘들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여학생들도 분명히 있어요.

– 그럴 것 같아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없다면 이상하겠죠.

실제로 연구실을 어디를 갈까 알아볼 때 연구실에 여학생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 있는 쪽으로 선택하는 여학생도 많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해결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그 와중에, 제가 처음에 연구실을 알아볼 때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들었고 또 심지어 제가 학부로 있던 학교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는 말도 들었는데, 여학생을 아예 안 받는 연구실도 있어요.

– 그러면 전공능력이나 그런 것과는 별개의 이유로 학업을 못 하는 경우가 생기겠네요. 특히 그 분야의 진입이 제한적일수록 지금 이런 부분은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되죠.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 비해 힘든 일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힘든 일 더 잘할 수 있는 여학생이 올 수도 있잖아요. 덧붙여서 요새 들어 좀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남자 여자 공통 주제가 생각보다 없다는 사실이에요. 서로 좋아하는 관심사가 달라요.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기도 하지만…

– 지극히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서 개인의 관점과 해석을 말한다고 합시다. 이게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고요.

네. 그래서 관심 주제가 예를 들어 연구실에서 남학생들이 ‘야, 어제 유럽 축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잘 모르겠는 거예요. 유명한 팀 이름은 잘 알겠는데.

– 뭐… 저희도 저도 잘 몰라요.

가령 여학생들끼리 모여 있으면 아무래도 좀 화장품 이야기?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남학생들이랑 하기는 아무래도 어렵잖아요. 또, 남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 풋살을 하러 나가는데 그런 데 끼기가 어렵다든지. 풋살 같은 경우에는 학교에 운동장이 있고 그러니까 매우 쉽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건 종목 자체가 제가 끼기가 어렵고 그래서 연구실에서 찾은 대안이 볼링이에요. 그런 식으로 찾을 수는 있는데 볼링을 치려면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하잖아요. 그리고 돈이 들고 하니까 풋살만큼 자주 할 수는 없죠.

대신 그런 건 좀 있었어요. 게임을 배워서 게임은 종종 같이 해요. 뭐 아이스크림 내기로 스타크래프트 4:4 내기를 한다든지.

남녀 단합을 위해 아이스크림 내기로 스타크래프트를 합니다.
남녀 단합을 위해 아이스크림 내기로 스타크래프트를 합니다.

– 스타크래프트 4:4를 할 수 있어요? 남한테 폐가 안 끼치는 선에서?

네.

– 그러면 저희보다 잘 하시는데요(…) 저희 둘 다 손이 느려서 잘 못합니다.

뭐 그런 일도 있고. 또 친구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이게 회사일 수도 있고 연구실일 수도 있는데요, 남자가 많은 일터에요. 그런데 여자가 어떤 집단에 있으면 분위기 메이커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술 먹으면 노래를 불러야 한다든지. 분위기가 화기애애 하도록…

– 여자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요?

네. 뭐 말도 걸어 주고. 이 사람이 그렇다더라 하면 이야기도 막 해 주고.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어서 저는 깜짝 놀랐어요. 왜 그걸 여자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거든요. 이게 꼭 여자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남자가 할 수도 있는 일인데.

깜놀 놀람 서프라이즈 놀라다 깜짝
여자가 분위기 메이커를 해야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 그렇죠. 이게 성별의 문제와는 무관한데요.

친구가 말하기를, “미스 O라는 말만 없어졌지 생각은 똑같다”고 해요. 나이 드신 분들이 그러느냐 물어보니 그 친구의 사례로는 오히려 나이 드신 분은 약간 깨어 있어서 그런가 그런 말, 행동을 전혀 안 하시고 커리어에 대해서 걱정해 주시는데 젊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막 한다는 거예요.

완전 옛날 문화 같은데 오히려 젊은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끼리 “이게 남초 사회의 문제인가?” 이야기를 하다가 남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개개인 인격 문제인 것 같다고도 말을 했죠.

뭐랄까, 이 사회에 남자 샘플이 많으니까 그런 사람이 당연히 더 많을 수 있잖아요. 남자가 원래 많고 그런 사람이 그 중에 있는 거에요. 아까 여자가 분위기 메이커를 해야 한다, 이 부분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가령 신입생 환영회 때 신입생들이 장기자랑을 해야 하는데 남학생들도 장기자랑을 하잖아요. 남자들도 똑같이 당할 수도 있는 거죠.

– 그러면 한국 사회의 문제, 유교적인 우리나라 가부장제 문화가 문제일까요?

글쎄요. 이건 인격의 문제. 그 사람이 잘못했습니다 뭐 그런 것 같아요.

– 요즘에도 나오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공대에 있는 여자들은 대접을 많이 받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공대 아름이”같은 말이요. 이런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게 한 때 유행어였죠.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아마 많을 거에요. 아무래도 사회 특성상 여학생들이 적으니까 튈 수 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수업을 결석을 하거나 지각을 하면 그냥 티가 나요.

– 맞아요. 몇 명 없는데 안 오면 바로 카운트가 되죠. 남자는 200명중에 한 명 안 와도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런데 또 저를 기억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 게, 교수님들이 보통 “여학생”이라고 기억해요. 그 여학생이 안 왔네 이렇게. 이름을 잘… 학생이 워낙 많으니까 이름을 기억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냥 항상 요 자리에 앉던 여학생이 안 왔네. 그러니까 티가 좀 잘 나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주목을 좀 받게 되었던 것 같아요.

– ‘대출'(대리출석)도 못 하겠다. 학창시절의 로망이 깨져버렸네요.

할 수가 없죠. 남학생들이 제 대출을 할 수는 없잖아요. 높은 목소리로 ‘네~ ‘하면 일단 실패죠. 여하튼 그런 집중을 받게 되는데, 예를 들어서 공대 아름이라고 생각하면 보통 그런 거 있잖아요. 이 여학생이 학교를 가니까 이미 숙제가 다 되어 있어서 제출까지 되어 있더라 이런 일화.

– 오오오오 엄청나다.

전공 책 무겁잖아요. 뚱뚱하고 크고 그러니까 남학생이 “이리 와, 내가 들어줄게” 이렇게 한다든지. 그런 것을 상상을 하거든요. 상상하는데, 공학 공부하는 여학생 대부분이 이 말에 공감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 일은 거의 없어요.

환상? 외부에서 이 사회를 봤을 때 단지 주목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일을 미리미리 해놓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교수님이 연습문제 이만큼 풀어와 하면 바로바로 해요.

그러면 어디서 냄새를 맡고 “숙제 다 했니?” 이러면서 친구들이 막 우글우글 몰려와요. 제가 A라는 친구한테 숙제 빌려줄게 하면서 줘요. 제출할 때쯤 되면 이게 어디 있는지 몰라요. A한테 없어요. A, B, C, D, E, F, G, H, I… 이렇게 막 돌다가 너덜너덜해져서 내기 직전에 다른 애가, J라는 애가 줘요, 저한테.

저는 종이 구겨지는 것도 되게 싫어하거든요. A한테 줄 때 빳빳하게 해서 주는데 너덜너덜해져서 와요. J라는 애가 안 주면 숙제를 낼 수가 없어요, 저는. 누구한테 갔는지도 몰라요.

숙제 보고서

– 이래서 실내 GPS가 필요하구나.

… 내 숙제 어디있니.

– 모든 그림이 연결되네요.

여하튼, 여학생들이 ‘내가 공대 가면 숙제 누가 해주겠지, 누가 나를 많이 도와주겠지’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절대 그런 일 없어요. 무거운 책은 남학생도 무거운데 이걸 어떻게 들게 시켜요.

그래서 저는 그냥, 저는 또 책이 훼손되는 거 되게 싫어해요. 안 그랬으면 챕터를 잘라 다녔을 텐데 그게 싫으니까 필요한 부분만 복사해서 들고 다녔어요. 혹은 학교에 사물함이 있으니까 그냥 숙제를 학교에서 하고 가요. 아 그래서 빨리 했었구나… 집에 와서 안 하니까. 홈웍(homework)이 아니고 스쿨웍(schoolwork)이었네요.

– 저희와 다르게 정말 열심히 사셨네요.

그래서 별로 그렇게 대접 받을 일 없는데, 오히려 “너 공대 아름이지?” 이렇게 선입견을 가지고 저한테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아까 말했듯이 “너 공대 다녔어? 너 그럼 편히 다녔겠네. 솔직히 뭐 이렇지 않아? 남자애들이 다 해주지 않아?” 애교 있는 목소리로 “어 선배 나 이거 몰라요.” 그러면 “어, 선배가 다 해줄게” 이러는 거 아니냐 짐작하는 거죠.

– 그럴 때 어떤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저는 진짜 모욕적으로 들려요. 억울한 정도가 아니라 모욕적으로 들려요. ‘내가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지 어떻게 알고 니가 그렇게 말을 하지?’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아니에요~” 하고 말죠.

모욕적으로 들리죠.
억울한 정도가 아니라 모욕적으로 들리죠.

– 성격이 아주 좋으시네요(…)

뭐, 소문은 들어봤어요. 그런 애들도 있다고. 누구는 남자친구가 학위논문을 써줬다느니 하는데 이게 진짜인지는 모르겠어요.

– 소문이니까요 그런 말들은.

제 주변에서는 보지 못했고, 개인적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누가 와서 또 그래요. 과제가 있는데, 제가 막 엄청 끙끙대고 있어요. 자리에 앉아서 제 등을 보고 있으면 ‘쟤 진짜 고생하고 있네’ 이렇게 보일 정도로 뭘 하고 있으면,

“야, 누구는 어떤 남학생이 와서 이거 해줬대, 너 뭐하냐 이거 왜 니가 하냐? 쯧쯧”

이렇게 말 하면 좀 샘도 나요. 당연히 편하게 하면 좋죠. 안 그래도 안 풀려서 짜증나서 죽겠는데 옆에서 기름을 붓고 있으니. 괜히 삐딱한 생각으로 아 나도 나가서 남학생들 많이 사귀어서…

– 다 휘어 잡아가지고 막 과목별로 와서 하라고 빨리 시켜버리고요?

다섯 명한테 시켜서 제일 괜찮은 한 명 것을 골라서 낼까… 물론 그럴 리는 없죠. 자기 것은 자기가 해야 합니다. 혹시나 이런 공대 아름이를 노리고 공대에 오려는 여학생들은 남한테 의존할 생각 버리고 파이팅 하세요.

공부는 남학생이고 여학생이고 둘 다 똑같이 힘들어요. 똑같은데, 물론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남이 내 일을 하도록 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 오늘 소중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사실 저희가 여성 과학자, 공학자들은 정말 공격적으로 섭외를 합니다. 노력의 차원이 달라요. 성비를 맞춰보려 하는데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더 소중하기도 해요.

원래 공대가 애초에 5:5가 아닌데, 그 사회 집단에 맞추려면 원래 비율을 맞춰야 하나요?

– 그렇게 했으면 지금까지 인터뷰 중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했겠네요. 저희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건 좀 이상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동료 여자 과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저는 요새 말년 차가 돼서 그런가, 처음에는 제가 연구실 들어갔을 때 여학생이 없었다가 다니는 도중에 여학생이 한 명 들어왔다가 졸업하고 이번에 새로 들어오긴 했어요. 그런데 새로 들어오기 전까지 있다가 없으니까 뭔가 허전? 괜히 더 심심한 느낌? 원래 없었을 때도 잘 지냈는데 있다 없으니까.

– 숨을 쉴 수 없군요.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여성 과학자 커뮤니티 같은 게 있으면, 사실 여학생들 이야기하면서 스트레스 풀고 그런 것도 큰데요.

–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보통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집단이 필요하다 했을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그래? 너희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니? 아니면 너희들이 진짜 큰 인격적, 도덕적 이슈가 있어서 그걸 막아줄 방패가 필요해?” 라고 하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수다 떨고 공감하고 정보 공유하고 이런 커뮤니티가 필요해요.

그런 게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론 연구가 제 업이 되겠지만, 그것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친구들이랑 모여서 일 얘기를 할 수도 있어요. “나 오늘 뭘 태웠어” 그런 얘기도 하고.

남학생들한테 그런 말을 하면 보통 “아 그래” 하고 말 텐데, 여학생들한테 하면 “진짜?” 이러면서 노는 거죠. 나갈 때쯤 되니까 이런 모임이 있었으면 학교 생활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 우정 석양
– 사소하면서 중요한 이슈로 끝을 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실내 GPS 나오면 연락 한 번 주시고요.

저도 뭐 웃기는 목표이긴 한지만 교수님 위치 추적하면… 교수님이 복도 끝에서 여기까지 오신다 그러면

– 비상! 비상!

진정한 실용화죠.

– 꼭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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