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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권력, 질문하는 의무

기자를 하면 뭐가 좋을까. 개인적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온갖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거리낌 없이 질문할 수 있다. 그래서 기자들은 초짜일 때부터 어디 가든 기죽지 말라는 말을 선배들한테 자주 듣는다. 기가 죽어 움츠러들면 힘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게 된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질문이 나올 수가 없다.

이런 특징은 세상 사람들에게 ‘기자란 족속들은 어딘가 건방지다’는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다소 선입견이 개입해 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보고 듣는 것도 많으니 할 말도 많고, 불편한 질문을 거리낌 없이 던지는 버릇은 충분히 예의 없게 비칠 수 있다. 시민단체 활동을 오래 해서 기자들을 많이 접해본 한 지인은 “기자들은 수백 명 사이에 가만히 섞여 있어도 금방 티가 난다”는 얘길 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기자들은 어딜 가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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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다. 어찌 보면 꽤 강력한 특권이다. 흔히 하는 얘기로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한다. 다시 말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질문할 권리를 위임받았다. 이는 곧 언론에는 질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최근 특검에서 날마다 언론 브리핑을 하면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이명박근혜’ 9년을 거치며 나라 꼴이 망가진 게 어디 한두 가지겠냐만 언론의 ‘금도’가 무너진 것은 무엇보다 뼈아프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질문할 권리’를 포기하고 ‘질문해야 할 의무’를 외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는 재임 4년 동안 기자회견을 한 게 다섯 손가락도 안 되는데 그나마 미리 정해놓은 각본에 따라 묻고 답했다. 이건 기자회견이 아니라 그저 ‘쇼’일 뿐이다. 그 쇼에 기자들 스스로 동참했다는 게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쪽팔릴 따름이다.

이명박의 2007년 공보물에 '이명박근혜'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명박근혜’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명박의 2007년 공보물. 이명박근혜 9년 동안 가장 심하게 망가진 영역 중 하나는 뭐니 뭐니해도 언론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다. 국민대통합을 위해 이명박근혜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발본색원해서 응징하는 미래지향적인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질문할 권리와 의무를 되새기는게 시급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각오를 가장 먼저 새겨야 할 사람은 기자 가운데 한 사람인 필자일 것이다.)

5월9일이 대통령 선거일이다. 본격적인 선거국면이다. 각종 토론회가 열린다. 많은 이들이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기자라는 명패를 달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온갖 질문을 던진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문하는 사람이 아무거나 막 던져도 된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내가 다 부끄러운 질문이 쏟아진다.

최근 관훈클럽에서 열린 안희정 초청 토론회에서 어떤 논설위원이 안희정에게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의 압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이 중국과 미국 중 어디를 방문해야 하나”라고 질문했다. 하다못해 우리 집 꼬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 질문에 대처하는 법을 터득했다. 언론사 경력 수십년은 되는 분이 안희정을 무시하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본인 스스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아직 답을 못찾아서 그런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은 미국에 얻어낼 게 아직은 훨씬 더 많다.

최근 대통령 후보 문재인은 “미국에 대해 ‘NO’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길 했다. 한미동맹 훼손 우려라느니, 안보관이 의심스럽다느니 하는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은 부모님이 시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는 게 효자라고 생각하시나? 친구 사이라면 새벽 두시에 술 마시러 고속버스 타고 오라고 해도 가야 한다는 건가? 미국에 ‘NO’라고 했다가 큰일나는 사이라면 그건 친구나 동맹이 아니라 그냥 갑을관계 혹은 주종관계 아닌가? 그러니까 문재인 발언에 의문을 갖는 분들은 한국이 미국 앞에선 독립국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최근 사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미국과 중국이 얽혀 있는 쉽지 않은 딜레마를 자초한 외교참사다. 하지만 많은 언론에서 ‘중국은 내정간섭을 중단하라’느니 ‘중국의 협박에 위축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확대재생산한다. 내가 보기엔 이런 관점은 질문을 포기했거나 틀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왜 지금 사드를 배치해야 하는지 질문은 없고 ‘북핵이 없으면 사드도 없다’며 미국이 들려주는 얘기만 진실이라고 단정해버리기 때문이다. 왜 북한보다도 중국이 더 반발하는지 그 까닭을 살펴보고, 중국이 내세우는 이유가 타당한지 아닌지 검토해보는 절차는 생략한 채 ‘치졸한 보복’이라고 손쉽게 규정해 버릴 거라면 ‘외교’는 뭐하러 한단 말인가.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말했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찾은 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 없잖아.”

올드보이 (2003)

올드보이 (2003)

이우진은 훌륭한 언론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언론이라는 걸 안다. 질문 잘하는 것이야말로 능력이요 실력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의무다. 달을 가리킨다고 달만 쳐다보는 바보는 되지 말자.

이 글은 ‘인권연대’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슬로우뉴스 원칙에 따라 편집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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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 편집위원

예산전문기자를 꿈꾸는 기자 겸 박사 겸 블로거( http://www.betulo.co.kr )입니다. 시민단체 공동신문 '시민의신문'을 거쳐 현재 서울신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나라살림연구소와 저널리즘학연구소에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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