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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는 약 5,100만 명의 사람들이 1,950만 가구를 이루어 산다. 그리고 한 해 동안 그중 750만 명이 거주지를 옮긴다.

한 해 이사 건수는 전국적으로 약 600만 건 정도다  

가구 전체가 한 번에 이사하기도 하고, 가구원 중 한 사람만 이사하기도 하는데, 통상적으로 우리가 ‘이사’라고 부르는 건수는 2015년 한 해 동안 약 600만 건이다. 참고로 각자 다른 곳에 살던 두 사람이 결혼해서 한 지붕 한 가족을 이루면 이는 두 건의 이사로 간주한다.

이사 후 우리는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한다. 이 자료들은 다시 디지털화되어 보관되며, 통계청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전국의 모든 전입신고 데이터를 모아 공개한다. 물론 자세한 개인의 정보들은 지운다. 주소 역시 읍면동 단위까지만 공개된다.

전입 신고 양식
전입 신고 양식

단 11개의 문자로 600만 행이 가득 차 있다

2015년 한 해의 인구이동 데이터는 500MB의 txt 파일이다. 만만한 확장자인 txt 파일이지만 덩치가 큰 탓에 다루기가 쉽지는 않다. 윈도우 기본 프로그램인 메모장에서 여는데도 약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0부터 9까지의 숫자, 그리고 오직 쎄미콜론의 11개 문자로 600만 행이 가득 차 있다. (클릭하면 커짐)
0부터 9까지의 숫자, 그리고 오직 쎄미콜론의 11개 문자로 600만 행이 가득 차 있다.

막상 txt 파일을 열어봐도 암호 같아 보인다. 숫자와 세미콜론만 잔뜩 있다. 그래도 통계청은 친절하게 저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주는 문서 역시 동봉하고 있다. 알고 보면 그리 복잡한 내용은 아니다.

저 한 줄 한 줄은 한 건의 인구이동을 설명한다. 첫 번째 줄을 보면, 2015년 1월 2일에 서울시 종로구 청운효자동(11;110;51500)에서 청운효자동으로 71세의 남자(1) 세대원이 가족 문제로(2) 전입을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2015년의 txt 파일에는 6,098,916줄의 데이터가 있으므로, 저 건조하고 딱딱해 보이는 문서에는 언제 몇 살의 남성 혹은 여성이 어느 동에서 어느 동으로 무슨 이유로 거주지를 옮겼는지 600만 건의 사연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 데이터를 도대체 어디에 쓸 수 있을까? 물론 쓰임새야 무궁무진하다. 지자체 단위에서는 전입에서 전출을 뺀 숫자로 해당 행정구역의 인구 순 유입이 얼마였는지를 파악하기도 한다. 출생과 사망이 인구의 자연적 증감이라면 전입과 전출은 인구의 사회적 증감이라고 흔히 일컫는다. 자연적 증감과 사회적 증감을 합쳐 특정 도시의 인구가 늘어나는지 어느 농촌의 인구가 줄어드는지 알 수 있다.

출발지와 도착지 기준으로 1,200만 쌍의 다른 이동이 발생할 수 있다

인구 이동 데이터의 특성 중 한 가지는 출발지와 도착지가 있다는 점이다. 전국 읍면동과 출장소의 개수를 합하면 2015년 기준으로 3,566가지의 출발지와 3,566가지의 도착지가 있는 셈이므로 12,716,356가지의 출발지-도착지의 쌍이 존재한다. 이렇게 많은 가지 수의 데이터는 하나의 표에 그리기도 어려울뿐더러 그린다고 해도 한 눈에 알아보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 이럴 때는 그림으로 한번 그려 보는 거다.

사실 저 데이터는 나이와 성별에 대한 이야기, 한 번에 몇 명의 사람이 이동하였는지의 정보가 더 들어있지만, 이번에는 그저 하나의 이동을 한 개의 가늘고 연한 선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선에서 적절히 타협하기로 한다.

그래서 일단 한번 무작정 그려 본다.

뭔가 복잡하게 선들이 오가는 것이 보이지만 그 이상은 알아볼 수가 없다. 선을 조금 더 연하고 가늘게, 그리고 두 점 사이의 오고 가는 이동이 겹치지 않도록 약간의 곡선으로 표현하기로 한다. 그리고 하나의 선 역시 출발할 때 연하고 도착할 때 조금 진하게, 색상도 진행 방향에 따라 푸른색에서 흰색으로 약간의 변화를 주어 다시 그렸다. Processing으로 작업했으며 이미지의 어두운 부분을 살려내는 후보정을 거쳤다.

수도권의 압도적인 영향력이 보인다

그리하여 뚝딱 하고 완성되었다. 뚝딱!!! 뚝딱뚝딱하고 수십 번쯤… 하면 완성된다.

진행 방향은 호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보면 된다. 제주도와 서울 사이의 이동으로 말해보자면, 왼편으로 돌아 올라가는 것이 제주도에서 서울로 가는 이동, 오른편으로 돌아 내려오는 것이 서울에서 제주도로 들어가는 이동이다.

이렇게 전국을 한 번에 보면, 수도권의 압도적인 영향력이 보인다. 서울·경기·인천을 시점과 종점으로 하는 이동만 346만 건, 즉 전체 선들의 절반이 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동은 주로 대도시 단위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특정 도시의 인구가 많아야 인구 이동이 일어날 확률이 커지므로 서울과 부산 사이의 이동은 서울과 춘천 사이의 이동보다는 많을 수밖에 없다. 두 물체의 질량이 클수록 당기는 힘이 세진다는 만유인력의 법칙과 비슷하다.

그런데 한 가지 만유인력의 법칙과 다른 점이 있다. 거리에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와 그다지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부산의 인구 이동량이 서울-춘천보다 많은 것은 당연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아주 당연하지는 않다. 부산은 서울에서 꽤 먼 곳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거리가 멀지만, 수도권으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고 간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특별한 점일 수도 있다. 저 그림을 보고 있자면, 전국의 어느 한 곳도 수도권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지역은 없어 보인다.

또 다르게 말해보자면, 거리가 멀어질수록 이동량이 적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 바로 인구이동의 흥미진진한 비밀이 담겨 있다. 그 비밀을 이제부터 조금 들춰보기로 하자.

우선, 수도권의 영향력을 한번 걷어내 보기로 한다. 서울·경기·인천을 시점과 종점으로 하는 선들을 모두 지우고 다시 그림을 그려보았다.

지역의 대도시들은 인구 이동의 허브 역할을 한다

이제야 좀 다른 지역들도 보인다.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전주가 각 지역에서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보자.

지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오가는 선이 한 쌍 그려지는데, 마치 꽃잎 한 장처럼 보인다. 꽃잎이 펼쳐진 만큼이 바로 그 도시의 영향력이 된다. 광주는 서쪽으로는 목포까지, 동쪽으로는 순천과 여수까지 영향력을 미친다. 전라남도 대부분 지역의 사람들이 광주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해남과 완도는 목포와 더 가깝지만, 광주와의 상호 이동량이 더 많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도 경계를 잘 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라남도에서 전라북도로 넘어가면서 곧바로 전주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전주보다 광주와 더 가까운 전라북도 남측 지역도 전주와의 드나듦이 더 많아 보인다.

반면 경상남도는 약간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울산-부산-창원-진주로 이어지는 이동의 네트워크가 보이는데, 각 도시가 주변의 거점 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경상북도로 넘어가면 대구가 중심 도시 역할을 한다. 역시 재미있는 점은 대구의 영향력이 경남으로 넘어오면서 급격하게 약해진다는 사실이다.

반면 그림 왼쪽 아래에 있는 순천 위 광양은 약간 다르다. 전라남도에 속하면서도 경상도와 많은 인구 이동을 보여주는데, 아마도 제철과 같은 산업으로 경남과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경상남도 여러 도시의 중화학공업단지에서는 많은 사람이 구직을 이유로 자주 이사하며 살고 있다.

왼쪽이 대구 오른쪽이 포항이다. 포항은 특이하게도 해안선을 따라 경상북도 북쪽 끝까지 영향력을 지닌다. 어업이라는 생업과 관계있지 않을까? 평소에 고기를 팔러 종종 다니다가 그 도시가 친숙해져서 이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어업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이동한 흔적일 수도 있다. 다시 서울 쪽으로 올라가 보자.

신도시와 아파트 단지는 시도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흡수한다

수도권 근처는 너무 이동이 많기 때문에 선을 좀 더 가늘고 연하게 만들고 색상도 바꾸어 그렸다. 서울 부근에서 광주나 부산으로 이동하는 큰 반경의 선들이 흐리게 사라지고, 이제 서울의 이동이, 그리고 서울 주변 도시들의 이동이 좀 더 자세히 보인다. 서울 부근이 별처럼 빛나는 이유는 인접 지역(바로 옆 동)으로의 이동이 원거리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많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많은 이동은 같은 동 안에서의 이동이다. 이러한 이동들은 이 그림들에서 표현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도경계를 잘 넘어가지 않는데,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거나 신도시가 생기면 거침없이 넘어가기도 한다. 동북쪽의 별내 신도시, 수원 옆의 동탄 신도시가 주변의 인구를 흡수해 갔으며 대전 위의 세종시가 청주, 대전, 조치원의 인구를 빨아들였다.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그렇다면 서울은 어떠한가. 21세기의 서울에는 산에 터널이 뚫리고 지하철이 땅속과 한강 위를 가로지르지만, 사람들의 이동을 보고 있자면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주로 친숙한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가정에서 보면, 사람들은 아직도 자연환경의 제약을 많이 받는 원시인처럼 주변을 인지하는 것 같다. 한강을 잘 건너지 않고 안양천, 중랑천, 심지어는 강남구와 송파구 사이의 탄천마저도 사람들의 친밀한 이동을 가로막는 자연적 경계가 된다. 서초구는 서울 도시계획에서 하나의 생활권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한가운데 높은 지형을 경계로 하여 서쪽은 동작구와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 동쪽은 강남구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인다.

여의도는 한강 한가운데서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 어느 곳과도 특별히 가까운 관계를 맺지 않는 여의도는, 서울 한복판의 섬마을이다.

우리는 언제, 왜, 이사하는가

사람들은 왜, 어디서 어디로 이사를 하는가? 왜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으로 가지 않고 먼 곳과 더 가까운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는가? 다리 위로 걸어가면 10여 분도 걸리지 않는 강 건너 지역으로는 왜 이사 가지 않는가?

‘자식은 서울로’ 보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옆 동네로 가면 집값이 뛰기 때문에 못 갈 수도 있고 학군이 달라지기 때문에 안 갈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살던 동네가 친숙하기 때문에 멀리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왜 사람들은 굳이 같은 동네나 바로 옆 동네로 이사를 하는가. 좀 더 나은 집을 마련해서 옮겼을 수도 있다. 한 자리에 오래 눌러살고 싶지만, 내 집을 갖지 못해 2년마다 쫓기듯 주변을 맴도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국토 관리를 위해 나누어 놓은 행정구역과는 또 다른 ‘생활권’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하위 허브에서 중심 허브로 이어지는 이동의 체계를 만들어냈다. 아주 가까운 지역들을 오가면서. 때로는 읍내로, 동네의 큰 도시로, 그리고 또다시 먼 곳의 대도시로 오가면서.

아래는 1년간 이동을 동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YouTube 동영상

경기 / 강원 / 충청 / 전라 / 경상 / 제주에서 출발하는 선(전출지 기준)들을 각각 다른 색으로 표현하였고, 전입지에 도착하면 하얗게 잠시 반짝이도록 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눈을 부릅뜨고 보면 사람 수에 따라 이동단위의 크기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보고 있자면, 아니 누가 대체 백령도로 저렇게 꾸준히 이사를 오가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데이터를 살펴보면 그들의 대부분은 바로 20대 초반의 대한민국 남성들이다. 짐 없이 머리 깎고 이사를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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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출처

  •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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