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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종종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한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그 시간 그 장소를 떠올리며, ‘차라리 그때 이랬어야 했는데…’라며 뒤늦게 아쉬워한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지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말한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그렇다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해서 걱정한다. 현재의 불만스런 현실이 계속 지속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생이 별 볼 일 없을 것 같다는 짐작 때문이다. 여전히 궁색하게 살 것 같다는 불안 때문이다. 지금 웬만큼 누리고 있다고 해서 안심하는 것도 아니다. 과연 이를 계속 지킬 수 있을지를 미리부터 걱정하느라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린다.

불안 공포 재난 손 좌절 우울 심각 미안

시간이 갈수록 후회와 걱정이 먼지처럼 쌓이고 쌓인다. 먼지들이 두껍게 쌓일 때쯤 ‘왜 나만 이렇게 힘든가?’라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남들은 다들 수월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처음부터 다 갖추고 시작한 것 같다. 나만 혼자 힘들고, 나만 혼자 불투명한 미래 앞에 놓여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며 점점 깨닫게 되는 것은, 사실 남들도 그 속을 알고 보면 상처 없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 나름의 이유로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또 그러면서도 ‘왜 나만 이렇게 힘든가.’ 푸념하며 산다.

당신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나도 나름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온 편이다. 하지만 나는 중요한 때에 생각을 바꿀 수 있었고, 조금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여기서 그 이야기를 소개한다.

세 번째 심장 수술 

20여 년 전의 어느 늦가을, 고등학생이던 나는 세 번째 심장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잠이 잘 안 와서인지, 벌써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5층 병실에 앉아서 창밖 너머로 어둠 속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간혹가다 응급실 쪽으로 들어오는 구급차 말고는 오가는 이들도 드물었다. 고요하다 못해 스산한 한밤중의 병원이었다.

‘지금쯤 학교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되는데.’

‘내가 커서 과연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잡념이 머릿속을 내리누르며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기분을 더욱 가라앉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창밖으로 유독 환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는 3층 정도의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건물의 창문 안쪽으로 천장에 줄지어 있는 형광등이 밝게 빛을 밝히고 있었다.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향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잠 못 이루고 있던 아버지에게 저곳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버지는 내 옆으로 오더니 내가 턱을 들어서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그곳이 의과대학에 딸린 도서관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안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의대생들이라고 하였다.

의대생. 그들은 나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여기서 환자가 되어 수액들을 팔에 주렁주렁 매달고 생사를 가르는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시각 바로 길 건너에서는 의대생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문득 나도 그들이 있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손 희망 구원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이라는 것을. 그래서 길 건너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상상은 꼭 이루어 내겠다는 의지에 관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힘든 상황을 잊게 해줄 진통제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각이 바뀌었다.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통제로 잠재우기에 나의 삶은 너무 소중했다. 그러기에는 나의 단 한 번뿐인 삶에 너무 미안했다. 나는 살아 숨 쉬는 그 무언가로 내 삶을 채우고 싶었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뭔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반항심일 수도, 어쩌면 그 반대로 무한의 긍정일지도 모르는 어떤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병실에서 의학도서관을 바라보는 삶’이 아닌 ‘의학도서관에서 병실을 바라보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환자들을 바라보는 삶’을 살겠노라 굳게 결심했다. 그사이 차오른 눈물의 간지럼을 참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볼 위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수술은 잘 끝났다. 나는 학교로 돌아왔다. 하지만 전과 달라진 것이 있었다. 병실에서 의학도서관을 바라보던 그 날의 다짐은 ‘내가 나에게 쓴 편지’가 되어 항상 내 마음속 깊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는 결국 나를 그들이 있던 ‘다른 세상’으로 이끌었다. 정확히 10년 후 나는 의사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10년 전에서 온 편지 

‘10년 전에 자기 자신에게 썼던 편지’를 소재로 한 소설 [10년 전에서 온 편지] [footnote]원제 : 株式會社タイムカプセル社 十年前からやってきた使者 | 기타가와 야스시 지음 | 고정아 옮김 | 마일스톤 | 2017년 01월 16일 출간[/footnote]은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잔잔히 되돌아보게 했다.

10년 전에서 온 편지

이야기는 2005년 일본의 한 중학교에서 졸업식을 앞두고 졸업생 스물세 명과 선생님들이 10년 후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편지는 ‘타임캡슐사’라는 회사에서 10년간 보관했다가 배송하는데, 10년이 흘러 2015년이 되었을 때 주인이 살던 곳에서 이사하는 등의 이유로 전하지 못한 편지 다섯 통이 남는다.

회사의 직원으로 등장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수취인 부재로 반송된 편지의 주인들을 찾아 출장을 떠난다. 편지 주인들은 처음에는 경계심을 품으며 마지못해 편지를 받는다. 하지만, 10년 전 자신이 썼던 글을 읽는 순간 당시의 꿈과 희망, 기대가 고스란히 재생되는 체험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저마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10년 전 자신이 쓴 편지를 받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비록 소설 속의 이야기지만, 나는 이들의 모습에서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한발 더나아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다.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우리는 평소 쉽게 지나치기 쉬운 중요한 삶의 진실을 배울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나간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슬픈 일은 슬픈 대로, 기쁜 일은 기쁜 대로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한때 힘들었던 경험은 훗날 어려운 시기에 마주했을 때 이를 돌파할 힘이 된다. 반면에 기쁜 일이 당신을 방심케 하여 예상치 못한 수렁으로 이끌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삶을 사는 것이다. 후회를 두려워하며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후회를 남기는 삶이다.

둘째,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다.

당신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놓여있는 상황들 가운데 1년 전에 예상했던 것들이 얼마나 될까. 당신이 지금 품고 있는 가장 큰 걱정거리가 1년 전에 짐작이나 했던 것이었나.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1년 전에도 현재의 당신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1년 후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을지 지금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습관적으로 현재의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지금 처한 곤란한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의 과거가 보여주듯, 앞으로의 미래도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더라도 미리 손 놓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미래는 사실 상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가 모르는 다양한 삶이 있다.

제 딴에는 남을 위해서 해준다고 한 행동 때문에 오히려 당사자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 예컨대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선의로 하는 말과 행동들이 실제로는 환자들과 보호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고통으로 전해질 때가 있다. 의사들은 질병에 관해 알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환자 한 명 한 명이 다양성을 가진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환자는 더 큰 상처를 입는다.

비단 의사와 환자 사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의 상사와 부하직원, 학교의 교사와 학생, 가정의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다. 상대방의 삶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당신이 모르는 다른 이들의 다양한 삶이 있듯이, 당신의 자신에게도 당신이 모르는 면이 있다. 당신이 과거에 가졌던 꿈을 지금도 여전히 잘 지키고 있는가. 그때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같은 사람인가. 시간이 흘러가며 변하는 당신이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당신이 모르던 사람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다.

요컨대, 우리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며 중요한 삶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나간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므로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므로 미리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삶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억 사진 슬픔

마무리하며, ‘10년 전에서 온 편지’가 상징하는 바는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다. 이러한 성찰은 그 당시 품었던 높은 이상을 되살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마음 먹은 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꾸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 우왕좌왕하기보다는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그곳에 답이 있다.

자신에게 쓴 편지가 없다고 해도 괜찮다. 오래전에 썼던 일기장이 이를 대신할 수 있다. 그것도 없다면 어릴 적 살던 동네의 골목길을 걸어보자. 시간의 흐름에 잊혔던 기억들이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도 3개월에 한 번씩 정기진료를 받기 위해서 내가 수술받았던 병원을 찾는다. 그때마다 의학도서관 건너편의 내가 입원했던 건물 앞을 지나간다. 거기서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내가 입원했던 병실의 창문을 올려다본다.

그 창문 안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10대 후반의 나와 마주한다. 수십 년의 시간의 벽을 넘어서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언제나처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환자들을 바라보겠다’는 그때의 다짐을 지키며 살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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