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피셔, 할리우드 영화계를 밝히던 별빛

스타워즈 속 레아 공주, 오르가나 장군으로 유명한 캐리 피셔가 지난 2016년 12월 27일 사망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던 항공기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치료 5일만입니다.

연예계를 지향하지는 않았던 캐리 피셔

캐리 피셔는 아버지 에디 피셔가 가수이고, 어머니가 데비 레이놀즈가 배우인 연예인 집안 출생 여성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다른 배우의 불륜으로 어릴 적 이혼 가정을 경험하게 된 캐리 피셔는 연예계가 싫었는지 공부와 문학에 정성을 기울였다고 하는데요. 특히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문학 쪽으로 성취를 이룰 정도로 고전문학 분야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어머니와 사이가 돈독했던 캐리 피셔는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던 어머니를 따라 같이 공연한 뒤 결국 배우로서의 진로를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연기보다 각본과 드라마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던 캐리 피셔는 한 영화감독의 각본이 마음에 들어 개런티에 개의치 않고 그 영화에 출연하게 됩니다.

그 영화는 바로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이었죠.[footnote]1977년 개봉 당시 제목은 속편을 염두에 두지 않은 [스타워즈]였다.[/footnote] 당시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던 조지 루카스는 다른 무엇보다 캐리 피셔가 여러 사람에게 지시나 명령을 하는 역할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레아 공주’라는 캐릭터를 제의하게 됐고, 캐리는 그 기대를 넘어서는 열연을 보여줍니다.

스타워즈의 성공과 그림자

영화 [스타워즈]가 가져온 전무후무한 흥행 기록과 함께 캐리 피셔 또한 큰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연이은 스타워즈 시리즈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과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에서도 같은 캐릭터를 맡아 20세기 대중문화 속에 자리 잡은 ‘스타워즈’라는 하나의 문화현상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요.

자신에게 몰리는 세간의 관심사가 부담스러웠던 나머지 약에 의존하는가 하면 심한 양극성 장애와 우울증, 불안에 시달리며 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조차 제대로 주변에 알리지 않아서 더욱 그 아픔이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연애와 결혼생활도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블루스 브라더스]에 함께 출연했던 유명한 코미디언 댄 애크로이드로부터 열렬한 프러포즈를 받았지만, 결혼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이후 오랫동안 연인이기도 했던 가수 폴 사이먼과 결혼을 했지만 1년 만에 이혼했습니다.

하지만 캐리 피셔는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나 약물 중독에 의한 방황에 대해 용기를 내 스스로 매체의 인터뷰에 나서서 그 과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직접 저술한 저서들을 통해 경험과 의지를 밝히며 같은 문제나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더 나은 건강과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2016년 하버드대학으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받기도 했죠.

천재 각본교정가

캐리 피셔의 잘 알려지지 않은 행적 중 하나는 그가 훌륭한 각본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로 TV 영화나 미니 시리즈의 각본을 썼던 캐리 피셔는 사실 자신이 쓴 각본보다 다른 사람의 각본을 손보는 일명 ‘각본교정가’(script doctor)로 더 큰 평판을 얻었는데요.

캐리 피셔의 문학적 재능과 영화에 대한 열정은 물론 섬세한 관찰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다른 사람이 쓰다 막혔거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문제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 영화 각본들을 멀쩡하게 혹은 더 훌륭하게 만드는 데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의 각본에 캐리 피셔의 의술(?)이 들어갔는데요. 비교적 잘 알려진 영화들만 해도 아래와 같습니다.

• 후크 (1991)
• 리쎌 웨폰 3 (1992)
• 시스터 액트 (1992)
• 마지막 액션 히어로 (1993)
• 러브 어페어 (1994)
• 웨딩 싱어 (1998)
• 코요테 어글리 (2000)

새로운 스타워즈와의 화해와 성공

캐리 피셔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또 심각한 스트레스에 몰아넣었던 [스타워즈] 시리즈와 오랫동안 거리를 뒀지만 2015년 개봉한 새로운 시리즈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에서 스타워즈와 화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맡았던 공주의 역할이 아닌 저항군을 이끄는 레아 오르가나 장군으로 카리스마를 내보여 올드팬들은 물론 새로운 팬들에게도 큰 호응을 불러냈죠.

1977년의 스타워즈가 당시 영화 역사상 각종 기록을 갱신했던 것처럼 38년 뒤 선보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 역시 큰 기록들을 수립합니다. 현재까지 가장 큰 흥행을 기록한 영화부터 개봉 첫 주에 가장 큰 흥행, 개봉 당일에 가장 큰 흥행, 하루 동안 가장 큰 흥행을 기록한 영화(이상 미국 기준) 모두 [스타워즈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입니다.

캐리 피셔는 2015년 12월에 선보였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에 이어 1년 만에 개봉하는 후속작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도 출연했습니다. 내년에 개봉 예정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8]에서 본인 촬영분을 마쳤다고 하니 스크린을 통해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타워즈 문화”를 열어젖힌 아이콘 중 하나이며 동시에 “새로운 스타워즈 시대”의 열기를 불러온 인물, 영화 크레딧에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지만 실로 많은 영화의 각본을 고쳐온 그는 영화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가 아닌, 자신이 영화계를 밝혀온 큰 별이었습니다.

캐리 피셔의 명복을 빕니다.

[box type=”note”]2016년 12월 28일 데비 레이놀즈의 잇따른 부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데비 레이놀즈의 명복을 빕니다. (필자)[/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