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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지 벌써 6년이 지났다.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알앤앨 바이오’라는 줄기세포 전문업체가 벌인 엽기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강남의 부자들을 중심으로, 연예인, 국회의원 등이 중국에서 원정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다는 뉴스가 있었고, 특히 그 불법시술을 받은 고객 몇 명이 사망하면서 불법 줄기세포 시술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아래 이어질 글은, 6년 전에 썼던 글을 현재 시점에서 퇴고한 것이다. 6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뉴스를 검색해봤다. 논란에 휩싸였던 알앤앨 바이오는 2013년 상장 폐지되었고, 사장 라정찬은 배임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최근 무죄로 풀려났다. 그 사이 차병원이 줄기세포에 관한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건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길라임’이 되고 싶었던 박근혜 

줄기세포는 한국에서 고생이 많은 연구분야다. 황우석이 그 명예를 실추시킨 이후, 한국 사람들은 모두 줄기세포 전문가가 되었다. 이젠 박근혜, 최순실을 비롯한 그 비선실세들이 차움이라는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줄기세포 주사를 맞았다는 뉴스로 정국이 떠들썩하다. 어쩌면 정말 난치병 치료에 중요할지도 모를 연구분야인 줄기세포가, 한국에선 황우석이라는 트라우마에서 이젠 ‘박근혜-최순실-길라임’이라는 트라우마로 기억되게 생겼다.

줄기세포엔 죄가 없다. 외국에선 줄기세포연구가 빠르게 발전 중이고, 난치병 치료 등을 위한 임상시험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데, 한국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미용 및 회춘을 위한 줄기세포 시술이 유행이었다니. 정말 멋진 대통령이다.

2015년 10월 21일 청와대 사랑채에서 진짜 길라임 하지원과 함께 한복 특별전을 관람하는 '길라임 워너비' 박근혜.
2015년 10월 21일 청와대 사랑채에서 진짜 길라임 하지원과 함께 한복 특별전을 관람하는 ‘길라임 워너비’ 박근혜. (출처: 청와대)

6년이 지난 지금, 줄기세포 시술엔 얼마나 큰 진전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피곤한 일이다. 내가 줄기세포 전문가도 아닌 데다, 자기 돈을 들여 검증도 안 된 줄기세포 시술을 받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걸 찾아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가장 먼저 식품의약품안전평원이 PDF 파일로 공개한 [줄기세포치료의 모든 것]이라는 문서가 보인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문서에 따르면 줄기세포 치료제와 치료술은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미 승인된 줄기세포 치료제가 있다. 하지만 그 승인된 치료제조차 부작용과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어 면역반응 이상, 세포 오염으로 인한 부작용, 줄기세포의 변형 및 비정상 증식으로 인한 암 발생 등이 그것이다.

"공명’이란 남의 사상이나 감정, 행동에 공감하여 그같이 따르려 한다는 의미로,‘NECA 공명’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원탁회의 BI(Brand Identity) 입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NECA 공명 ’을 통해 보건의료분야의 이슈와 쟁점에 대해 이해 당사자간의 입장 공유 및 숙의과정을 거쳐 합의를 이루고자 하며, 그 결과가 사회적인 공감을 얻어 울림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PDF 말미 '공명'에 관한 설명, 발행: 한국보건의료연구원 www.neca.re.kr ㅣ 한국줄기세포학회 ww.ksscr.org)
“공명’이란 남의 사상이나 감정, 행동에 공감하여그같이 따르려 한다는 의미로,‘NECA 공명’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원탁회의 BI(Brand Identity)
입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NECA 공명’을 통해 보건의료분야의 이슈와 쟁점에 대해 이해 당사자간의 입장 공유 및 숙의과정을 거쳐 합의를 이루고자 하며, 그 결과가 사회적인 공감을 얻어 울림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PDF 말미 ‘공명’에 관한 설명, 발행: 한국보건의료연구원 www.neca.re.kr ㅣ 한국줄기세포학회 ww.ksscr.org)

문서는 아주 자세히 줄기세포치료제가 승인받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 승인과정이 차움병원이 박근혜와 최순실로부터 혜택을 받았다고 의심되는 부분인지 모르겠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현 시국에선, 식약청의 줄기세포치료제 승인과정에 대한 감사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마 공평하게 이루어졌겠는가.

다시 미국 FDA 웹사이트에 접속해봤다. 6년 전에 비해 난치병 등에 대한 임상시험을 자세히 기술해놓긴 했지만, 여전히 줄기세포치료를 받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줄기세포 치료는 여전히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그 효과는 천천히 과학자들에 의해 검증 중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생물학자로 내가 지닌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조언해야만 한다면, 나는 이렇게 부탁하고 싶다.

‘줄기세포시술에 돈을 낭비하지 말라.’ 

특히, 밉던 곱던 간에 그런 검증되지도 않은 시술을 국가원수의 안면에 주입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가원수의 안면부위가 무슨 임상시험을 위한 희생의 영역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국민을 위한 거룩한 희생일 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만.

‘회춘제’ 줄기세포, 그 무식함의 근원 

여전히 강남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이 줄기세포 시술을 무슨 만병통치약 혹은 회춘제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다. 그들의 과학적 무지 때문이다. 그렇게 많이 배우고 돈도 많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무식할 수 있을까? 생물학을 아주 조금만 알아도,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은 줄기세포를 자신의 몸에 찔러 넣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만 과정이 잘못된다면, 잠재적인 암세포 수 백만 개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그 무식함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은 이번 최순실 사태로 풀렸다. 그 정도 수준이었던 것이다, 한국 기득권층의 지식이란. 이래서 한 국가의 기초과학이 중요하다. 적어도 자기 몸에 암세포를 찔러 넣는 사태는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더 치를 떨게 하는 것은 그 천민적인 발상이다. 자본주의의 욕망에 꿈틀거리는 한국 기득권층의 유일한 관심사는 자기 자신의 무병장수와 자식의 성공뿐이며, 그 두 가지를 위해서라면 수 천만의 상식을 깨버릴 수 있다. 최순실이라는 한국 부유층의 뇌 속엔 줄기세포·미용시술 따위에 대한 욕망과 정유라가 이대에 입학하고 금메달을 따는 것 정도 외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최순실 따위가 살아가는 목적은 자기 몸과 자식들에 대한 욕망, 그리고 어떻게 하면 노동 없이 돈을 벌 수 있는가 하는 것뿐이다.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정유라)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정유라 F라고 하셨잖아요" 이대 학생 대자보, 담당교수에 사과 요구) http://www.vop.co.kr/A00001078582.html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정유라)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안티 에이징'이라는 본능적인 욕구는 돈과 권력이라는 연결고리로 '줄기세포시술'이라는 무지로 표출됐다.
‘안티에이징’이라는 본능적인 욕구는 한국 기득권에게는 돈과 권력이라는 도구를 통해 ‘줄기세포시술’이라는 무지로 표출됐다.

인간으로서의 존엄 같은 것은, 이들에겐 의미가 없다. 말해 줘도 그걸 들을 뇌가 없다. 최순실 일가가 얼마나 천박하게 살아왔는지를 보면 안다. 말이나 타고 마사지나 받으며 살고 싶은 족속들인 것이다. 이들은 책 한 권 읽지 않을 것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이들은 처참하게 무능할 것이다. 정유라의 과제보고서와 박근혜의 말과 글을 보라. 기본적인 글쓰기 훈련조차 되어 있지 않은 자들이, 한국을 농단한 것이다.

자발적 ‘마루타’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기득권층이, 과학엔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무식할 수 있어서, 자신에게 독약을 주사하고 있다. 아래 펼쳐질 글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부자들의 줄기세포 시술을 그냥 내버려 두자는 말이다. 그들이 알아서 엄청난 양의 임상 데이터를 제공해주고 있는데, 줄기세포 시술을 받을 돈도 없는 우리 서민들은, 그들이 충분히 줄기세포 시술의 위험성을 검증해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이들이 알아서 마루타가 되어 주겠다는 걸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바꿔 생각하면 그들은 자기 돈으로 우리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천박한 욕망을 숭고한 희생으로 이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두 조용히 하자. 쉿!

최고 권력자였던 박근혜는 가장 많이 그리고 자주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을 것으로 가정하자. 왜냐하면, 자신이 강조했던 애국심의 발로로, 가장 숭고한 희생을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처럼 애국을 강조하는 정치인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가장 위험하고 소중한 임상데이터를 제공하기 위해 가장 많은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으리라고 추측해야 한다.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과학적 무지로 '무장'한 한국 기득권, 그 안티 에이징의 화신들은 스스로 마루타를 자청한다. 이들에 대한 과학적 조사가 필요하다.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과학적 무지로 ‘무장’한 한국 기득권, 그 안티에이징의 화신들은 스스로 마루타를 자청해 ‘임상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들에 대한 과학적 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싫지만) 청와대 주치의는 당장 대통령의 몸 상태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줄기세포 시술의 큰 부작용 중 하나는, 그 세포들이 언제든 암세포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65세의 나이라고 믿기 힘든 안면부위를 봤을 때, 그곳부터 검사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65세면 줄기세포 시술을 받지 않았어도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나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에 연루된 한국의 의사 집단에게 권고하고 싶다. 시민의 욕망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 당신들의 존재 이유는 아닐 것이다. 이 국정 농단의 사태에서, 당신들은 결코 피해자가 아니다. 당신들은 협력자다. 며칠 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차병원 원장의 인터뷰를 들었다. 뻔뻔하게 의사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무슨 철학자 러셀의 ‘크레타 인의 역설’도 아니고, 거짓말을 하면서 동시에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단 말인가.

카드 잊소리 차움 병원 박근혜

어차피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 알게 될 일이다. 현 시국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의사집단의 반성이 요구된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부터 줄기세포 시술까지, 한국 기득권층의 한 축인 의사집단은 사람의 생명과 몸을 함부로 다룸으로써 이 부패의 과정에 동참했다. 특히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였던 백선하, 그리고 이번 줄기세포 시술 논란의 중심에 있던 차병원, 모두 황우석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한국은 여전히 2005년 황우석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학은 여전히 이 땅에 자리 잡지 못했다. 그것이 슬픈 것이다.

줄기세포 딜레마

요약하자면, 줄기세포치료는 미래의 치료기술로서 상당히 기대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엔 매우 집중적으로 몇 년 동안을 연구해야만 넘을 수 있는 주요한 기술적 장벽들이 여전히 존재한다.[footnote]미 국립보건원(NIH)의 줄기세포 관련 안내문 중, 성체줄기세포에 관한 문서 중에서. “What are the potential uses of human stem cells and the obstacles that must be overcome before these potential uses will be realized?”[/footnote]

‘해외원정 도박’과 ‘해외원정 출산’이 유행이라는 말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던 국민들은, 이제 그 리스트에 ‘해외원정 줄기세포시술’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해외원정이라는 말은 월드컵과 같은 대대적인 스포츠 축제를 앞두고 운동선수들이나 감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하는 그런 종류의 운동인 듯싶다. 김연아가 캐나다로 해외원정을 갔다는 뉴스에서는 이 단어가 그리 혐오스럽게 들리지 않았는데, 이제 해외원정이라는 말에서 부유층의 진한 향기를 느낀다.

최근 MBC의 보도에 따르면 ‘알앤엘(RNL)바이오’라는 생명공학기업의 알선으로 많은 인사들이 중국 등지에서 줄기세포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알앤엘바이오의 고객명단에는 국회의원, 공공단체 기관장 및 공직자, 연예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footnote]헬스코리아뉴스, 줄기세포 불법시술 현직 국회의원 연루. 2010년 11월 06일.[/footnote] 이러한 해외원정 줄기세포 치료를 감행했던 한 환자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footnote]MBC뉴스, “줄기세포 치료‥원정시술 사망?”, 2010.10.22.[/footnote]되었고, 심지어 국내에서는 불법인 시술이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알앤앨바이오로부터 불법으로 불기세포시술을 받은 이들은 8,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footnote]MBC뉴스, “[단독보도] ‘줄기세포’ 국내에서 불법시술”?, 2010.11.07.[/footnote] 줄기세포로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과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황우석 사태 이후, 또다시 대한민국은 줄기세포로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과도한 욕망은 그 필연적 결과로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과도한 욕망은 그 필연적 결과로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2005년부터 해마다 굵직굵직하게 터지는 사건들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줄기세포, 광우병, 어뢰와 선박파괴의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 평소에는 과학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국민들조차, 언론의 계속적인 보도를 외면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곳곳에서 전문가들과 아마추어들이 논쟁을 펼치고, 때로는 과도한 음모론이 부각되기도 한다.

줄기세포 파동 때는 미국의 사튼 박사와 황우석 박사가 특허권을 두고 암투를 벌인 것이 사건의 배후라는 음모론이 널리 퍼졌었다. 광우병 사태 때는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괴물이 되어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고등학생들의 루머가 살포되어 정부를 긴장시켰다. 이러한 루머로 인해 그 수많은 촛불시위의 민중들이 집결했다는 음모론도 정부에 의해 널리 살포되었다. 천안함 사태의 전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이 와중에 다양한 음모론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다.

이 와중에 과학적 지식이 좀 있다는 이들은, 국민들이 무식하다며 냉소적인 조소를 보내기도 한다.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길 가다가 번개를 맞을 확률보다도 작다는 수학적 확률론으로 무장한 주장이 활개를 친다. 광우병에 걸린 환자에게는 죽을 확률이 거의 100%에 가깝다는 상식적인 인식도 무시된다.

왜냐하면, 소고기를 먹는 사람들 대부분은 광우병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나 모를 두려움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두려워하는 민중의 감수성은 무시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학을 모르기 때문이다. 과학주의자 혹은 회의주의자라고 불리는 소수의 집단은 민중의 위에서 과학적 지식의 권위로 그들을 깔아 뭉개려 한다. 도대체 누가 그들에게 과학으로 그런 권위를 부여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과학의 본질은 합리성과 객관성에 있지 않고, 스스로 오류를 수정하는 건강함에 있다.
과학의 특성은 합리성과 객관성에 있지 않고, 스스로 오류를 수정하는 건강함에 있다.

과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객관성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스스로 오류를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건강성에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재의 과학적 지식체계를 완벽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과학은 과학자에게 그따위 도그마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던 과학자들의 대다수는 과학을 도그마와 반대되는 것으로 사고했다.[footnote]이상하, “볼츠만의 도그마 없는 과학”.[/footnote] 예를 들어 볼츠만은 물리학의 이론들조차 완벽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던 원자론까지 끊임없이 의심했다. 근대의학자의 아이콘 중 한 명인 윌리암 오슬러는 이렇게 말했다.

“의학은 불확실성의 과학이며, 확률의 기예다.”[footnote]Elliott, Perry, and William McKenna, “The science of uncertainty and the art of probability: syncope and its consequences in hypertrophic cardiomyopathy.” Circulation 119, no. 13 (April 2009): 1697-9.[/footnote]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과거의 두 가지 사건과 현재의 사건이 모두 의학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하지만 이보다 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다. 이를 ‘줄기세포의 딜레마’라고 부르고자 한다. 첫 번째 딜레마는 이 사건을 광우병 사태와 비교하면서 드러난다. 과학과 비과학의 문제가 이 첫 번째 딜레마에 걸려 있다. 이를 ‘부자 과학의 딜레마’라고 부르도록 하자. 두 번째 딜레마는 윤리적인 것이다. 해외원정 줄기세포 사태는 분명히 해결되어야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한 가지 딜레마가 발생하는데, 이를 ‘착한 부자의 딜레마’라고 부르도록 하자.

부자 과학의 딜레마

한국에서 ‘과학적’이라는 단어는 참 고생이 많다. 촛불시위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이는 한국인들이 ‘과학적’이지 않다며 자성을 촉구했고, 촛불시위 2주년을 맞아 대통령께서는 광우병 사태의 진실이 모두 밝혀졌다며 지식인과 의사들에게 반성을 촉구했다.[footnote]김우재, “[시각] 대통령님, ‘촛불’ 핵심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에요”, 한겨례 사이언스온, 2010.05.15.[/footnote] 그분들에게 광우병 사태의 본질은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에 있었던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다고, 아니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인간 광우병에 걸린다는 과학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민중의 목소리는 비과학적이라는 논리다.

이는 과학적 사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과정에 대한 비판과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들이 중첩된 복합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윗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분들의 견해를 일단 받아드리도록 하자. 촛불시위에 나섰던 민중은 비과학적인 태도로 정부의 정책을 근거 없이 비난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번 해외원정 (불법) 줄기세포시술을 받은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 연예인들의 태도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뉴스에서는 성체줄기세포시술은 아직 그 안정성과 효용이 확인되지 않은 기술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주장에는 과연 어떤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한때 국가과학자의 칭호를 받았던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로 환자맞춤형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해외 유명저널에 논문을 발표했다는데, 과학적 근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보다는, 비과학적인 서민들의 촛불시위를 욕하고 비난했던 이 땅의 상류층은 그들보다는 좀 더 과학적인 근거로 행동하지 않을까? 그들이 해외원정까지 가며 줄기세포시술을 받았다는 것은 이 치료법에 뭔가 과학적인 근거가 확실하기 때문은 아닐까?

'우주의 기운'을 모아 회춘하겠다는 일념으로 '해외원정 줄기세포시술'을 받기위해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들.
‘우주의 기운’을 모아 회춘하겠다는 일념으로 ‘해외원정 줄기세포시술’을 받기위해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들.

1. 성체줄기세포란 무엇인가 

우선 이들이 시술받았다는 ‘성체줄기세포(adult stem cell)’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 황우석 박사 덕에 온 국민이 전문가가 된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와는 달리 성체줄기세포는 말 그대로 성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줄기세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란의 발생 초기에 얻어지며,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세포주를 ‘전능성 줄기세포(Totipotent stem cell)’라고 부른다. 같은 배아줄기세포라 해도 조금 더 발생단계를 진화 분화되면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읽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의 세포를 ‘다능성 줄기세포(Pluripotent stem cell)’라고 부른다.

전능성·다능성의 특성을 지닌 배아줄기세포와는 달리 성체줄기세포는 ‘중복성 줄기세포(Multipotent stem cell)’라고 불리는데, 이는 특정한 계통으로만 분화되도록 운명이 결정된 상태임을 뜻한다. 따라서 성인의 몸에서 가장 쉽게 채취할 수 있다고 알려진 조혈 줄기세포(hematopoietic stem cell)의 경우, 모든 종류의 치료에 사용할 수 없다. 분화할 수 있는 세포의 종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화되지 않은 조혈 줄기세포를 인체의 혈관에 주사하면, 잘해봐야 림프구, 백혈구, 적혈구를 조금 더 갖게 될 뿐이다.[footnote]이민철, “줄기세포의 개념: 배아 줄기세포와 성체 줄기세포”, 보건연구정보센터.[/footnote]

과학자들이 세포배양 연구를 통해 줄기세포의 분화를 연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건만 잘 갖추면 이론적으로는 조혈모세포로부터 혈액을 이루는 세포의 계통뿐 아니라, 신장, 간장, 근육, 심장, 신경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성체줄기세포의 ‘분화유연성(Stem Cell Plasticity)’에 관한 연구라고 한다.

하지만 성체줄기세포가 분화유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다양한 가설과 모델들이 존재하며, 아직 연구는 초기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쥐에서 수행된 어떤 결과들은 실험적 오차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증거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가 수행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혹은 시술이 효용성 있는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footnote]오일환, “줄기세포 연구의 최신동향”, 보건연구정보센터.[/footnote]

사람 몸 남자 분열

물론 성체줄기세포시술의 장점도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성인의 체내에 들어가서 암을 형성할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그렇지 않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안정성의 측면에서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우리 몸의 암세포들은 일반적으로 줄기세포로부터 비롯된다는 과학계의 추론이 존재하고,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초기 단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암으로부터의 안정성도 확신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성체줄기세포의 이용에는 ‘과학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문제점들이 산재하고 있다. 먼저 성체줄기세포가 ‘대칭 분열(Symmetric Cell Division)’ 뿐 아니라 ‘비대칭 분열(Asymmetric Cell Division)’도 한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대칭 분열이란 분열 전의 세포와 분열 후의 딸세포가 똑같은 성질을 지닌 것을 말한다. 비대칭 분열이란 분열 전의 세포와 딸세포가 다른 성질을 지닌 경우를 뜻한다. 비대칭 분열에선 분열 후의 두 세포 중 하나의 세포만이 줄기세포의 원래 성질을 보유하고, 다른 한 세포는 조금 더 분화된 상태로 출발하게 된다.

따라서 비대칭 분열이 지속해서 일어나면 성체줄기세포시술을 위한 필수단계인 세포주의 대량생산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자신의 몸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서 시험관 배양을 통해 충분히 불릴 수 없다면 시술은 하나 마나 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아직 대량생산의 단계가 요원하다는 사실이다. 해외원정에서 비싼 돈을 내고 시술을 받은 국회의원 나리들께서는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알고 계셨을까?

2. 성체줄기세포 분화유연성의 한계 

두 번째 문제는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성체줄기세포의 분화유연성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즉, 몸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는 제한된 종류의 세포로만 분화가 가능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조혈 줄기세포를 추출해서 혹시라도 대량생산을 한다고 한들, 조혈모세포가 갑자기 피부세포로 분화하지는 못한다.

건강한 피부를 갖기 위해서는 피부세포로 분화할 가능성을 지닌 줄기세포를 추출해야만 한다. 줄기세포시술을 받은 한 여성환자분께서는 “줄기세포를 맞으면 50대 기능이 20대처럼 20~30년 젊어지고 얼굴에 맞으면 피부가 몇십 년 정도 젊어진다”고 알고 계셨다는데 이러한 생각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젊음 늙음 영 올드

3. 암 발생의 위험 

세 번째 문제는 이미 언급한 안정성에 관한 것이다. 성체줄기세포는 암 발생의 위험이 비교적 적다고 알려졌지만, 분명히 예외가 존재한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2~3개월간의 배양 기간을 거친 세포들은 안전하지만, 그보다 오랜 기간을 배양한 세포들은 암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한다. 여전히 줄기세포시술을 받으려면 암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시술을 받은 고위 공직자들은 이런 ‘과학적’인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늙어서 암에 걸려 죽으나, 줄기세포시술을 받아서 암에 걸리나 피장파장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간은 고전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다지 합리적인 존재는 아니다.

암세포

4. 소결: 성체줄기세포 연구 현장 의학자의 결론 

이러한 문제들을 토대로 성체줄기세포를 직접 연구하고 있는 현장의 기초의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과학적’ 연구가 비교적 초기적인데 반해, 최근 임상적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파일럿 연구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들이 완성된 기술, 실용화된 의료행위로 인정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footnote]김영인, “오일환, 성체줄기세포의 세포학적 특성”, 대한의사협회지.[/footnote]

이게 과학자들의 ‘과학적’인 결론이다. 혹시라도 한국과학자들의 수준을 의심하는 이들이라면 좀 더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사료되는 미국립보건원(NIH)의 견해를 참고할 수 있겠다. 미국립보건원은 성체줄기세포를 임상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이식된 조직에서 기능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분열되어야 한다.
  • 원하는 세포 계통으로 분화가 가능해야 한다.
  • 성체줄기세포가 이식된 사람의 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 이식 후에는 주변 조직으로 잘 흡수될 수 있어야 한다.
  • 이식자의 생존 기간 동안 제대로 기능을 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어떤 식으로든 이식된 사람에게 위험을 끼치면 안 된다.[footnote]미 국립보건원(NIH)의 줄기세포 관련 안내문 중, 성체줄기세포에 관한 문서 중에서. “What are the potential uses of human stem cells and the obstacles that must be overcome before these potential uses will be realized?”[/footnote]

나가 보기엔 이번에 해외에서 원정시술을 받은 분들의 태도는 -위의 과학적 근거들에 준한다면- ‘비과학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에 대해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광우병 사태 당시 거리로 뛰어나온 민중들에게 따라붙던 ‘비과학적’이라는 수식어는 왜 이 분들에게는 따라다니지 않을까? 그들이 그 비싼 시술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상류층이기 때문일까? 상류층은 과학적 지식이 좀 더 많은 것일까?

과학은 보편적인 지식을 추구하는데 왜 누구는 비과학적이고 누구는 과학적이라는 말을 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니라, 서민이 하면 비과학이고, 부자가 하면 과학이 되는 세상. 그것이 ‘부자 과학의 딜레마’다.

착한 부자의 딜레마

착한 부자의 딜레마는 과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다. 한 하버드 교수의 ‘정의’에 관한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한국에서도 정의와 윤리 혹은 도덕에 관한 논의들이 넘쳐난다. 또한, 2010년 트위터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던 ‘이마트 피자 논쟁’은 이념적 소비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며 온 국민에게 윤리학적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이 줄기세포 딜레마로부터 하버드의 교수가 강의했던 것보다 더 심오한 윤리적 딜레마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해외원정 줄기세포시술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분명히 불법이다. 또한, 줄기세포시술의 안정성과 효용성은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술을 받은 이들은 자발적으로 시술에 참여했다. 따라서 이들은 법의 규정에 의하면 엄연한 피해자가 된다.

하지만 무려 8,000명이나 되는 이들이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면, 시술을 받은 이들을 역학적으로 추적해서 현 단계에서의 성체줄기세포의 안정성과 효용성을 거의 확실한 수준으로 증명할 수 있다. 더 많은 자발적 시술자들이 등장하게 된다면, 더 확실한 수준의 증명이 가능해 질 것이다. 이는 매우 귀중한 과학적인 자료로 봉사할 수 있다.

과학 실험 테스트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의 자발적 시술 참여를 막기만 해야 할 것인가? 법의 논리에 따른다면 답은 당연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도덕적 의무를 따른다면 이러한 부자들의 착한 행위는 권장해야 마땅한 것이 된다.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향후 불치병 혹은 난치병 환자들이 사용하게 될 임상실험을 도와주고 있다. 이는 명백한 윤리적 딜레마의 상황이다. 누구도 부자들의 자발적인 행위를 욕할 수 없다. 경제적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증오가 하늘을 찌르는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행위는 어쩌면 장려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체줄기세포시술의 과학적 불확실성을 잘 아는 전문가들에게는 다시 한 번 윤리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부자들의 착한 소비를 장려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술의 위험성을 권고해야만 하는 의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나는 매우 심각한 고뇌의 상황에 처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어야만 할 것인가? 건설적인 방향으로 논의를 진전시켜, 시술을 받은 8,000 명에 대한 역학조사 예산을 편성할 것을 주장해야 할 것인가?

박근혜

나는 광우병 사태 당시에, 광우병에 대한 촛불 민중의 태도를 비과학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과학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만일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희박하다 하더라도, 이처럼 다수의 민중이 그것을 반대한다면, 정부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과학적 권위를 내세워 이들을 비난할 권리는 없다고 나는 주장했었다.[footnote]김우재, “인간광우병, 걱정 말라고?”, 시사IN, 2008.05.26.[/footnote]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부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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