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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하야해도 나라 안 무너진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 열린 최순실 사태 규탄 촛불대회에 나온 이재명 성남시장은 연설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입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대통령은 나라의 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을 대표해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이요, 대리인일 뿐입니다.”

우리는 공화주의자인가 

당연한 말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현실은 슬프다. 스스로 제왕인 줄 착각하는 공직자도 문제지만, 국민도 통렬한 각성이 필요하다. 나라가 민주공화국으로 운영되려면 국민부터 봉건성을 벗어버리고, 공화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 손으로 뽑은, 즉 자기가 임명한 공직자를 제왕 모시듯 하며 굽신대는 신민형 국민에게 민주공화국은 돼지 목의 진주에 지나지 않는다.

왕은 대부분의 경우 종신직이다. 게다가 국가원수의 직을 마치면 통치권은 자기 식솔에게 넘어간다. 이런 전제 체제에서 왕이 물러나는 것은 세상이 뒤집어지는 엄청난 일이다. 제왕의 성씨가 바뀌는 것은 한 왕조 종묘사직의 종말이고 그 자체로 혁명이다. 이른바 역성혁명(易姓革命)이다. 왕이 죽기라도 하면 하늘이 무너진다. 이른바 천붕(天崩)이다.

JTBC 보도로 최순실 게이트가 '의혹'이 아닌 '사실'로 확인되자 국민에게 사과하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는 왕이 아니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공화주의자인가.

하지만 공화국에서는 5년 마다, 혹은 4년 마다 역성혁명이 일어난다. 흔해빠진 일이다. 대통령이 죽는다면 큰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민주 국가의 원수는 집권 중이라도 잘못하면 얼마든지 쫓겨날 수 있다. 내각책임제에서 국가원수인 총리는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파리 목숨이고, 임기가 있는 대통령도 머슴 자리에서 축출할 수 있는 탄핵 제도가 있다.

공화국에서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일도, 세상이 뒤집어지는 일도 아니다. 5년, 혹은 4년 기한의 선출직 공직자가 자리를 떠난다고 해도 그에 못지않은, 혹은 그보다 더 유능한 다른 공직자가 금방 자리를 채우게 된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 조금 앞당겨 벌어지는 것일 뿐이다.

‘쫓겨난 대통령’ 닉슨 

대통령이 임기 중에 쫓겨나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공화국 헌법을 군홧발과 장기집권 야욕으로 짓밟아왔던 한국에서는 몇 사례가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4.19 민주혁명으로 쫓겨났다. 종신 대통령을 꿈꾸던 박정희는 암살로 물러났다.

한국 독재자들의 패퇴는 공화국 시스템의 작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격렬한 정변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일상적인 사례는 아니다. 임기 중 대통령이 쫓겨나는 일상적 사례를 들라면 미국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불러오면 된다.

미국의 37대 대통령 리처드 밀허스 닉슨(Richard Milhous Nixon, 1913년 1월 9일 ~ 1994년 4월 22일)

미국의 37대 대통령 리처드 밀허스 닉슨(Richard Milhous Nixon, 1913년 1월 9일 ~ 1994년 4월 22일)

닉슨은 두 번째 임기 중인 1974년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스스로 떠난 모양이지만, 국민이 축출을 원했고, 의회에서도 탄핵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등을 떠밀려 쫓겨난 것은 분명하다.

닉슨이 쫓겨난 것은 이른바 워터게이트 추문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추문은 닉슨이 재선 운동을 하던 1972년에 상대 당인 민주당 사무실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된 일에서 비롯된다. 이 도청 공작을 조사했더니 백악관 참모까지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참모들이 미행, 도청, 공작, 압력 같은 것에 연루되는 일은 어떤 나라에서는 흔하디흔한 일상다반사라서 경범죄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지만, 미국에서는 벌집을 쑤신 듯한 양상이 벌어졌다.

워터게이트 추문이 상대 정당에 대한 도청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은 닉슨이 이런 도청 공작을 벌인 탓에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오해다. 닉슨은 (적어도 입증된 바에 따르면) 도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닉슨이 쫓겨난 진짜 이유 

닉슨이 대통령직을 맡아서는 안 될 결격자로 낙인찍히고 국민의 분노를 사서 결국 쫓겨난 이유는 두 가지다.

  1. 첫째, 거짓말을 한 것.
  2. 둘째,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정상적인 수사를 방해하려 한 것.

도청 공작을 수사하던 FBI는 백악관 관료가 연루된 정황을 발견하고 수사 폭을 넓히고 있었다. 닉슨은 불확실한 주장에 근거한 정치 공세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수사 내용이 익명의 내부 정보원에 의해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전달되면서 수사 상황은 생중계되었고, 이 정치적 사건은 이제 숨길 수도, 무마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닉슨은 백악관에서 공식, 비공식 대책회의를 열며 사태에 대응하려 애썼다. 이것은 당연히 그럴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닉슨은 국가 안보를 담당한 CIA를 동원하여 FBI의 수사를 저지하는 방법을 찾도록 비서실장에게 지시하게 된다. 대외적으로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백악관이나 행정부에 연루된 사람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조직적인 은폐(cover-up)를 시도한 것이다.

닉슨은 CIA를 동원해 FBI의 수사를 방해하려고 했다.

닉슨은 CIA를 동원해 FBI의 수사를 방해하려고 했다.

“녹음테이프를 숨겨라” 

워터게이트 추문과 의혹이 점점 확대되자, 미국 상원은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사건을 직접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의안은 상원에서 77대 0으로 통과되었다. 행정부의 조직적 정치 범죄를 파헤치기 위해 의원들이 소속 정당에 상관없이 의기투합했다는 점을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 상원 조사에서 중요한 증언이 나왔다. 한 백악관 참모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를 비롯한 백악관의 주요 공간에서 진행되는 대화 내용을 모두 녹음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증언한 것이다.

특별조사위원회에서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퍼스를 포함해 백악관의 주요 공간을 녹음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특별 조사위원회에서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퍼스를 포함해 백악관의 주요 공간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모두 녹음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제 녹음테이프만 확보하면 ‘게임이 끝나는’ 상황.

닉슨이나 참모들이 워터게이트 은폐에 연루되었는지 아닌지는 녹음테이프를 확인하면 쉽게 밝혀지는 셈이다. 수사 당국은 즉시 대화 녹음테이프 제출을 요구하였고, 닉슨 측은 국정 운영과 관련한 중요 사항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거부했다. 이로부터 몇 개월 동안 테이프 제출을 둘러싸고 상원 및 수사 당국과 백악관이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테이프를 숨기려는 백악관의 노력은 대법원 판결로 끝이 났다. 녹음테이프 존재가 알려진 지 1년 만에, 대법원은 테이프에 대한 처분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닉슨 측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만장일치로 내렸다. 이에 따라 백악관은 녹음테이프를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삭제된 녹음테이프, 또 한 번의 거짓말  

공개된 테이프에는 백악관 참모들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있고 그 은폐를 모의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한 테이프는 18분 30초 정도가 삭제되어 있었다. 백악관은 닉슨의 개인 비서가 실수로 버튼을 잘못 눌러 녹음이 지워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론이 검증해 본 결과, 이 비서가 쓰는 책상과 집기 구조로 볼 때 녹음 버튼을 잘못 누르는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한 번의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다.

의회에서는 닉슨을 탄핵하기 위한 절차가 개시되었다. 하원 법사위는 닉슨이 수사 진행을 방해(obstruction of justice)하였으므로 탄핵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막판에 몰리게 된 닉슨 측은 결국 감추었던 18분 30초의 녹음 내용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그가 국가 안보를 핑계로 하며 CIA를 동원해 수사를 방해하려고 비서실장과 모의한 내용이 생생하게 들어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하는 결정적 증거, 이른바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나온 셈이다. 닉슨은 이 테이프가 공개되기 직전까지 자신이 워터게이트 사건이나 그 은폐와 관련이 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것이 거짓말이었음이 명백해졌다. 그때까지 닉슨을 변호해 왔던 변호사들도 등을 돌렸고, 이렇게 말했다.

“이 테이프는 대통령이 2년 넘게 국가, 자신의 참모, 그리고 변호인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해 왔음을 입증한다.”

결정적 증거물이 공개된 지 사흘 만에 닉슨은 하야했다.

박근혜는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유출 사건에서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그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에 말했다(2014년 12월 7일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결위원 오찬 중 발언). "문건 유출행위는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하고, "검찰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을 주문한 지 엿새 뒤에 있었던 발언. ⓒ SBS화면

2014년 12월 7일 박근혜는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그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1년 10개월 뒤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의 거짓말은  밝혀진다. ⓒ SBS

인기 정치인 닉슨 

닉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음험하고 사악한 대통령처럼 묘사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닉슨의 재임 기간은 1969~1974년이며, 초선(1968년)과 재선(1972년)을 모두 승리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것은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1960년에 일찌감치 대통령에 출마하여, 스타로 떠오르던 민주당의 존 F. 케네디와 맞붙었다.

케네디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것도 아니었다. 닉슨은 케네디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유권자 지지율 0.2%라는 눈물 나는 차이로 낙선했다. (케네디 49.7% 대 닉슨 49.5%, 선거인단 수로는 303 대 219.) 이는 20세기에 치러진 미국 대선 중에서 가장 근소한 차이를 보인 선거 중 하나다. 다시 말해 명문가 출신 스타 정치인 케네디와 맞먹는 인기를 누렸다는 뜻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진 1972년의 재선 선거에서 닉슨은 60.7%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으며, 37.5%를 얻은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을 가볍게 눌렀다. 이 지지율 차이는 미국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네 번째로 큰 차이였다. 선거인단 수로도 520 대 17의 압승이었다. 50개 주 중에서 49개가 닉슨을 지지했던 것이다. 당시 닉슨의 득표 상황을 보면 그가 누린 인기의 양상을 잘 볼 수 있다.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이렇게 잘 나가던 대통령이, 그 선거가 끝난 지 2년 만에 가장 추악한 대통령이 되어 쫓겨났다. 위에 쓴 대로 거짓말을 하며 정당한 사법적 절차를 방해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야 결정을 내린 다음 날 닉슨은 백악관을 떠났다. 헬리콥터가 백악관에서 그와 가족을 태워 앤드루 공군기지로 데려갔다. 그들은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닉슨으로서는 마지막으로 타는 에어포스 원이었다.

1974년 8월 9일 대통령 전용 헬리 마린 원에 탑승하기 전 마지막으로 백악관에서 작별을 고하는 닉슨.

1974년 8월 9일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 원’에 탑승하기 전 마지막으로 백악관에서 작별을 고하는 닉슨.

망할 것 같던 공화당, 레이건으로 부활 

대통령이 물러났으나 하늘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나라가 망하지도 않았다. 오벌 오피스의 빈자리는 즉시 부통령 제럴드 포드가 메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화당 대통령 닉슨이 추문으로 하야한 지 석 달 만에 치러진 1974년 미국 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은 참패했다. 상원 의석 3석과 하원 의석 49석을 민주당에 뺏겼다. 추문 당사자이기도 한 집권 여당으로서 치러야 할 대가를 치렀다고 할 수 있겠다.

제럴드 포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백악관 참모들을 포함한 공직자 69명이 기소되었고, 그중 48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닉슨 자신은 후임자인 포드 대통령(사진)으로부터 사면을 받음으로써 처벌을 면했다.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닉슨을 사면해 버린 포드는 197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지미 카터에 패배했다. 닉슨을 수사 및 처벌로부터 보호한 행위가 포드의 주요 패인으로 평가되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진보적인 정책을 적극으로 펼쳤음에도 임기 내내 이란을 비롯한 중동 문제에 시달리다 1선으로 그치고 말았다. 유사 이래 처음인 대통령 하야와 연이은 대선 후보의 낙선을 겪으며 곧 망할 것 같았던 공화당은 1980년, 새로운 스타 로널드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화려하게 재기한다.

로널드 윌슨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년 2월 6일 ~ 2004년 6월 5일)

로널드 윌슨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년 2월 6일 ~ 2004년 6월 5일)

정의가 중요한가 대통령 임기가 중요한가 

민주 공화국에서 집권자는 원래 자주 바뀌게 되어 있다. 선진 사회는 사람보다 시스템에 의존한다. 사람이 불시에 바뀌더라도 시스템이 단단하면 그 사회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다음 주에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미국이 하루아침에 막장 국가로 전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개인(집권자)의 변화를 포용하여 그 진폭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5년, 혹은 4년만 집권하고 떠난다. 국민은 그들이 만든 정책과 기풍과 구조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 정책과 기풍과 구조 속에서 자식을 키워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정당한 권리를 누리고 공정한 대접을 받으며 살고자 하는 국민의 의지가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몇 년 기한의 선출직 공직자가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 일이 중요한 것인가.

별로 어렵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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