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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하여: 차이메리카의 도래

중국은 세계화에 참여하면서 자신을 바꾸는 지난한 과정에 들어섰다. 중국은 여전히 수많은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형집행을 기록하는 나라다. 또한, 언론을 검열하고, 심지어 인터넷마저도 감시하고, 부패와 비리가 가장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다양한 이해집단의 등장

그러나 세계화와 함께 중국 정부는 점차 거버넌스(governance)1를 학습한다. 이전처럼 국가가 인민 개개인의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중국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이익집단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인터넷을 통해 시민들이 연결되기 시작하자 시민사회가 등장한다.

이제 중국도 국가의 일방적인 주도로만 국정을 운영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제 중국도 국가가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협력’이 필요하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생존을 위해서 선택한 일이었다. 개혁·개방을 통해서 경제적 자율성을 쥐여주자 사회적 자율성의 확장도 따라왔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도시화가 점차 진행되자 국가가 사회의 모든 것을 맡아서 처리해줄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중국인들은 국가의 능력을 보조해줄, 혹은 견제해줄 새로운 사회적 기제들을 요구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약자인 사스(SARS)로 더 유명한 질병이 이를 확실히 증명해주었다. 당국은 처음에 이 질병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자 했고, 중국인들에게 전염병이 확산한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고자 하였다. 질병이 시작된 광둥 성의 언론들은 이에 정부가 전염병을 통제하고 있다는 보도지침에 충실한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중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그들이 본 것을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언론인들이 등장하였다. 당시 홍콩을 오가던 기자들은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고, 중국에서 태동하던 언론들이 조사에 착수해 보도를 시작했다. 정부는 검열을 시작했고 국무원의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 위생부가 보장할 것이니 안심하라고 이야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퇴임한 군의관이 외신에 이것이 거짓임을 폭로해버렸던 것이다.

마이크

중국 당국은 이제 하고 싶다고 해도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런 언론들은 개혁·개방이 궤도에 올랐을 무렵 개혁적인 성향의 당 관료들이 현대화된 국가에는 빠르고 정확한 정보전달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설립한 것이었다. 그들은 경제성장이 중국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을 재고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역으로 중국공산당의 폐쇄적인 정보통제를 갉아먹고 있었다.

후진타오는 마침내 2003년 4월에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소집하여 “지연되거나 기만적인 보고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경고한 뒤 이를 신화통신을 통해 보도했다. 이후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는 즉각 태도를 바꿔 WHO와 협력하여 사스에 대한 ‘인민의 전쟁’을 개시하였다. 중요한 것은 이제 새로운 감염 사례가 모두 언론을 통해 즉각적으로 보도되고 있었다는 그 변화였다. 공산당이 바뀌고 있었다.

쓰촨 성 대지진의 또 다른 의미 

물론 사스는 출발에 불과했다. 그 뒤 2008년에 일어난, 약 7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는 쓰촨 대지진 당시 후진타오 정부는 또다시 사망자 수를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언론이 달려가서 수많은 비리 현장을 집중적으로 보도해서 부실공사의 민낯을 폭로했다.

또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막대한 자원봉사 조직들이 결성되어 지진의 피해를 복구하고 이재민들을 구호하고 있었다. 몇몇 중국인들이 국가가 이전처럼 일생의 모든 일에 간섭하거나 책임질 능력이 없음을 인식하고 스스로 행동에 나선 것이다.

쓰촨성 대지진의 현장, 한 부서진 가옥에 걸린 '마오 주석'의 초상화.

쓰촨 성 대지진의 현장, 한 부서진 가옥에 걸린 ‘마오 주석’의 초상화.

정부는 통치 정당성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면 이를 심지어 지원해주기도 했다. 마침내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NGO의 수만 2013년에 50만 개를 돌파했다. 거기에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비공식 NGO의 수는 150만 개까지도 추산된다(참고 기사).

새롭게 퍼져나간 인터넷을 통해 이제 역시 새롭게 형성된 중국 중산층의 온갖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의가 퍼져나가고, 시민단체의 중요한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들 중 많은 수가 검열당한다. 하지만 그런 요구들은 때로 시민저항으로까지 발전하고, 그중 일부는 실제 성과까지 거둔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중국 사회는 요동치고 있다.

중국이라는 ‘공포’

하지만 외부인이 이것을 면밀하게 관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중국 내부의 거버넌스가 현대화되어가는 것은 사실 대다수의 서방 사람들에게는 체감되지 않는다. 그보다 우리 피부에 더 와 닿는 것은 남중국해에서 보여주는 중국의 고압적 태도, 대국의 질서를 거스르며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약소국을 ‘손봐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환구시보(環球時報)2, 그리고 분노한 채 단체로 아이폰을 부수고 KFC에 몰려가는 중국인들일 것이다.

아이폰을 부수고, KFC로 몰려가는 중국인. (출처: asiaone.com) http://news.asiaone.com/news/asia/chinese-protest-outside-kfc-outlets-smash-iphones-anger-over-south-china-sea-ruling

아이폰을 부수고, KFC로 몰려가는 중국인. (출처: asiaone.com)

이런 중국의 행동들은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보여주는 대외적 행동은 과거 중국이 보여주었던 지배적 존재감과 그들의 야망을 상기시키며 주변국에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초월적인 규모의 거대한 대국이 빠르게 부상하는 것에 대한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이러한 공포 감정은 인간이 진화를 해오면서 발달시킨 것으로, 편도체가 관장하는 위험회피의 정서이다.

하지만 과거 영장류 조상들은 위험해 보이는 미지의 물체가 나타났을 때 빠르게 몸을 피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지만, 현대 한국인이 중국에 대해서도 같은 식의 대처를 할 수는 없다. 왜냐면 중국은 어찌 되었건 같이 가야 하는 파트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섭다고 눈을 닫고 귀를 막는다고 중국의 ‘이상한’ 행동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 지구를 뜨지 않는 이상 중국의 존재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없다. ‘Made In China’가 보이지 않는 곳이 있다면 모를까. 따라서 우리는 공포 감정을 조금 억제하고 전전두엽을 활용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감정과 논리적 사고를 모두 종합한 뒤, 눈앞에 보이는 알 수 없는 존재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이에 마주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면밀하고 차분하게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우리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을 만났을 때, 그리고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귀신이 보편적으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귀신의 정체가 속임수임이 탄로 나거나, 그 행동의 의도가 모종의 논리로 ‘설명’된다면 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드러나 덜 두려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중국이 보여주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동기를 나름의 논리로 설명해낼 수 있다면, 적어도 저 대국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두려움도 어느 정도는 덜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G2 – 미국과 중국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서 저렇게 강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첫째로는 당연하게도 중국을 둘러싼 힘의 균형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힘을 대체로 잘 보여줄 수 있는 지표인 GDP를 기준으로 했을 때, 과거 중국의 경제규모는 정말 그 거대한 크기에 걸맞지 않은 좁쌀만 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개혁개방을 거치며 중국은 수많은 국가를 뒤로 밀쳐내면서, 그리고 마침내 2010년에는 부동의 2위였던 일본마저 젖히면서 G2로 등극할 수 있었다.

중국 미국

중국과 미국의 규모 면에서의 격차는 엄청난 속도로 좁혀졌는데, 2000년 기준으로 중국의 GDP는 1조 달러로 당시 10조 달러를 상회하던 미국의 10%에 불과했다. 현재 미국의 GDP는 2000년 이래로 18조 달러까지 늘어나 여전히 그 저력을 자랑했으나, 같은 기간 중국의 GDP는 12조 달러로 성장해 미국의 60% 수준까지 쫓아왔다(관련 기사).

이제 미국과 중국의 격차는 앞으로 더 좁혀졌으면 좁혀졌지 큰 폭으로 다시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중국의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수준의 격차가 대체로 유지될 것이다. 이렇게만 되어도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고 자신들의 의지를 동아시아에 강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중국이 그렇다고 아시아에서 자동으로 지배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설령 미국이 빠진다고 하더라도 아시아 각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중국의 행동반경은 크게 제약받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마음대로 못한다는 사실이 미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이 지역의 협상 테이블과 지역 질서의 주도권을 쥐는 것은 미국이겠지만, 중국을 배제하고 일을 진행할 수는 없게 되었다.

팔씨름 싸움

왜냐하면, 중국 자신의 힘만으로도 미국이 주도하는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기후변화 문제에서 세계 1위의 탄소배출 국가가 된 중국이 파리협약에 서명을 안 하겠다고 나선다면 설령 미국 포함한 모든 국가가 참여한다고 해도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교역질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빠진 아시아 태평양 교역은 상상하는 것도 힘들다. 중국 입장에서는 주변국들은 중국의 여러 무역상대국 중 하나이지만 주변국들에 중국은 대체 불가능한 절대적 존재 중 하나이기 때문에 관계도 비대칭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중국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힘을 얻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은 중국 따로, 미국 따로, 동아시아 따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긴밀히 얽히면서 공진화(共進化)3하였기 때문이다.

미·소 관계 vs. 미·중 관계  

이 공진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면 이 과정 자체가 이전 소련과 미국이 보였던 강대국 경쟁과 중국과 미국이 보여주는 현재의 경쟁 구도가 상당히 다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중국을 소련과 비교하면서 소련의 전성기에 비하면 떨어지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하기도 한다. 나름 타당한 생각이지만, 우리는 미·중 관계와 미·소 관계의 차이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국제공조로 운영되는 체제는 당연히 그 체제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영향력과 발언권을 각 국가들에 분배해준다. 미국과 소련은 1914년 이래로 무너진 국제질서에 대한 최종적인 도전, 즉 나치의 도전을 함께 물리치면서 UN을 비롯한 1945년 이후의 전후 질서를 설계해갔다. 소련은 그 과정에서 2,700만 명의 상상을 초월하는 인명을 잃어가면서 UN의 성립과 운영에 막대한 영향력을 확보하였고 동유럽 국가들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미국 소련

그리고 1945년에 윤곽이 만들어지던 냉전 체제가 무너진 뒤 펼쳐진 세계화의 시대에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은 무엇인가? 이는 정보화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정보화를 통해 기업이 생산공정을 분리 배치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이익이 그다지 발생하지 않는 단순 제조를 선진국 기업들은 중국에 하청을 맡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연구개발(R&D), 마케팅과 같은 고수익 부문과 첨단산업에 집중하면서 본격적인 혁신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특히 공해산업을 거의 다 중국이 떠맡아 중국인들은 어마어마한 환경공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중국은 이윤은 적게 가져갔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로 세계를 뒤덮으면서 몸집을 불렸다. 그리고 여기서 남아도는 외화로 미국 재무부 채권을 구매해 미국의 재정적자를 뒷받침해주었다. 그 대신 중국이 얻어낸 것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빈곤 탈출이었고, 마오 주석의 파괴적 통치로 파탄 난 통치 정당성을 경제성장의 과실을 분배하며 회복해낼 수 있었다.

소련의 제로섬 게임 vs. 중국의 포지티브섬 게임  

소련과 중국의 차이가 보이는가? 국제질서에 대한 소련의 기여는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었다. 반면 중국의 기여는 철저히 경제적이었다. 현재 중국이 소련보다 국제정치에서 제한된 영향력만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런 면에서 당연하다. 중국은 작금의 국제정치 질서가 형성되는 데 직접 기여한 바가 없다. 중국에 정치적인 보상을 해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세계 경제에 적응해나가기 위해 중국을 스스로 맞춰나가야만 했다. 이것이 동유럽 위성 국가들과 아시아의 공산주의 동맹국들을 거느리고, 500만 붉은 군대와 KGB로 상징되는 소련의 위용을 중국이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다.

냉전은 결국 소련이 독·소 전쟁에서 흘린 피로 얻어낸 정치적 보상물을 판돈으로 걸고 미국과 벌였던 게임이었다. 반면 중국은 정치적인 면에서 게임을 걸 의지 자체가 없었다. 중국공산당은 더 많은 농촌 인구를 도시경제로 끌어들여 고용하고 꿈틀대는 시민사회를 경제 성장을 통해 안정시키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덩샤오핑이 소련의 위협을 덜어내기 위해 벌였던 중국-베트남 전쟁을 제외하고 이후 중국은 상대적으로 주변국들을 안심시키는 데 집중한다. 덩샤오핑은 일본과 미국에 찾아가서 수교를 끌어냈고, 동남아 각국과 싱가포르를 순방하면서 화교들에게 송출하던 마오이즘 혁명방송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1979년 1월 미국과 공식 수교 이후 9월 중국 지도자 최초로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을 만난 덩샤오핑.

1979년 1월 미국과 공식 수교 이후 9월 중국 지도자 최초로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을 만난 덩샤오핑.

대만 문제만 타협 불가능으로 나왔으나 일단은 미국의 상대적 우위를 인정하고 묻어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1996년은 이런 정치적인 힘에서의 세력 불균형이 극명히 드러난 해였다. 중국은 대만의 리덩후이 총통과 갈등이 빚어지자 대만해협에서 무력시위를 감행했는데 당시 제7함대가 배치되자 아무 말도 못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소련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바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군대를 파견하여 철저하게 진압했고 미국은 비난과 제재만 했을 뿐 실질적으로 소련에 위협을 줄 수 없었다. 또한, 소련은 미국이 터키에 핵미사일을 배치하자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겠다고 나서서 국제질서를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넣고, 서로 핵무기를 철거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는 게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이 벌이던 게임은 중국의 포지티브섬 게임(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이 아니었다. 냉전은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이익의 총합이 0이 되는 관계)이었다. 소련이 세력을 확장하면 미국의 세력권이 줄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관계는 판돈(이익)이 정해져 있고, 한쪽이 얻으면 한쪽은 잃는 제로섬 게임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판돈(이익)이 정해져 있고, 한쪽이 얻으면 한쪽은 잃는 제로섬 게임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여기에 중국과 소련의 중대한 차이가 있다. 공산권 바깥의 세계, 세계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활력 넘치는 국제무역의 세계와 고립된 소련은 서방과의 출혈경쟁을 감당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냉전 말기에 소련은 결국 목재와 원유,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하위 파트너로 국제질서에 종속되어 가던 중이었다.

앞서 중국과 주변 국가 얘기를 했듯이 서구에 있어서 목재와 원유는 소련이 아니면 브라질과 사우디에서 사와도 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소련은 서유럽과 북미, 일본에 밖에 천연자원을 팔 곳이 없었고, 국제유가가 떨어지자 그대로 주저앉게 된다. 그 뒤엔 소련 제국이 몰락한 자리를 서구 기업들이 그대로 흡수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소련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차이메리카’의 도래 

니얼 퍼거슨 반면 중국은, 대만 문제에서는 설령 뒤로 물러섰다고 하더라도 포지티브섬 게임의 경기장 위에서 조용히 힘을 키우고 있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이 도광양회4하라고 했던 것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중국과 미국은 같이 얽혀가고 있었다.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1964년~ , 사진) 말대로 ‘차이메리카’로 진화한 것이다.

이제 미국과 중국은 단순히 하청기지와 원청이라는 형태로 일방적으로 묶여 있는 갑을 관계가 아니다. 중국이 미국의 재정을 받쳐주고 하청업무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해주는 이상 미국은 소련처럼 중국을 고립시킬 수 없다. 소련이 홀로 파멸해버렸을 때 미국은 그 빈자리를 자기가 채우면 되었다(우크라이나를 보았을 때는 그런 능력도 재고해야 할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중국이 파멸해버리면 미국도 파멸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해졌다. 이미 베이징 근교의 스타트업 단지 중관촌, 그리고 개혁개방의 첫 기수인 선전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서로 얽혀가고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단순히 이제 중국의 공룡 테크기업의 자리를 넘어서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기업의 자금줄로 등극했다 (참조 기사).

중국 미국

이 모든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미국이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을까? 설령 미국이 압도적인 힘으로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곤 하더라도(그런 힘을 가진 것은 명확하다), 그 결과는 소련의 해체 뒤에 찾아온 21세기와는 다를 것이다. 오히려 빅토리아 시대에 진행되던 세계화가 일거에 종료되고 보호주의와 경제적 불황이 망령처럼 세계 각지를 배회하고 다녔던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음울한 분위기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찍이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 (1987)에서 지적했듯이, 국가의 정치적인 힘은 결국 동원 가능한 자원에서 나오고 그건 경제적인 힘이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다. 사실 소련이 국제질서를 건설하는 데 정치적인 기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 있었다. 소련의 힘은 미사일과 전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수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 마그니토고르스크의 제철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철, 거대한 우랄마시의 생산라인과 모스크바 대학교의 연구소에서 나왔다. 스탈린은 소련의 경제력을 동원해 군사력과 정치력으로 전환했고, 이를 이용해 전간기의 혼란을 종식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며, 그 대가로 정치적인 보상물을 얻은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동원 가능한 자원이 이렇게 막대해졌는데 그 힘을 쓰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지리한 평행선 

이는 어찌 보면 양심이 조금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왜냐면 정치적 기여분이 없음에도 그에 준하는 이권을 보장해달라는 떼쓰기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그 막대한 힘을 동원해 미국의 협조자로서 국제사회의 질서 유지에 기여를 해왔다면 적어도 미국이 중국에 모종의 보상을 안 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이 제공해주는 국제안보라는 공공재에 사실상 무임승차해 이득만 보고 그에 맞는 책임은 상대적으로 적게 지고 있다. 그런데도 목소리를 키우겠다는 것을 누가 좋게 봐줄 수 있을까? 서방 세계가 중국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미국이 이제 동아시아를 다루는 것이 훨씬 까다로워졌다는 사실과는 별개 문제다. 중국이 소련과 같았으면 단순히 봉쇄하고 갈등을 유발해 중국을 주저앉히는 전략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그런 전략을 쉽사리 취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미·중 간의 마찰이 확대되어 지금 미국이 중국에 대한 포괄적 봉쇄를 시행한다면 중국은 죽을 때 미국까지 같이 끌고 들어갈 수 있다. 중국에서 활약하는 미국 기업들의 수익, 중국이 미국에 투자하는 방대한 자금은 모두 증발할 것이다.

Michael Mandiberg, made in china, CC BY SA https://flic.kr/p/6ADPgV

Michael Mandiberg, “made in china”, CC BY SA

그리고 아무리 세계화로 유연해졌다곤 하지만 단기간에 옮길 수도 없고 그만한 매력 있는 투자처도 딱히 찾기 힘든 현 상황에서 글로벌 공급 사슬과 글로벌 가치 사슬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미국 학계의 수많은 중국 유학생들은 어떻게 될까? 중국이 들고 있는 미국의 재무부 채권은? 이런 이유로 미국은 중국을 함부로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의 의사대로 미국이 휘둘린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여전히 주도권은 미국에 있고 힘의 균형은 미국에 유리하다. 다만 이제 마음 편하게 일방적으로 의지를 행사하는 상황은 끝났다는 이야기다. 오바마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천명한 것은 이에 근거한다. 중국의 커진 힘을 견제할 미국의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실질적인 액션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중국이 크기 전에는 아시아로 회귀할 필요가 없었다. 그곳이 곧 미국의 천하질서가 만들어낸 사회발전과 근대화의 전시장이었으니까.

이제 동아시아는 자신의 힘에 걸맞은 세력권을 보장받고자 하는 중국과 그것을 용납할 수도 없고 완전히 물리쳐낼 수도 없는 미국이 그려낼 지리한 평행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1. 거버넌스(governance): 거버넌스는 정부(거버먼트; government)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통치가 아닌 경제 영역, 시민사회 영역 등 다양한 이해 당사자(스테이크홀더; stakeholder)의 협력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통치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테이크홀더리즘을 거버넌스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말로는 ‘협치’라고도 부르지만, 아직 개념적으로 정의에 대한 학문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편집자)

  2.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3. 공진화(共進化): 한 생물 집단이 진화하면 이와 관련된 생물 집단도 진화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진화생물학의 개념.

  4.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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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임명묵
초대필자

전문성이 부족한 학부생입니다. 세계를 설명하는 많은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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