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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은 해마다 10월이면 공동묘지가 된다

그 집은 주택가 후미진 도로변에 있다. 걷는 사람은 원래 별로 없고, 뒷길이라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 거리다. 집은 이 도로에 늘어선 평범하고 소박한 주택 중 하나다. 하지만 10월은 다르다. 이 한 달 동안 이 집은 온통 음산하고 괴기스러운 영기(靈氣)에 휩싸인다. 그 영기의 힘을 받아, 묘비 아래 묻혔던 시체들이 땅을 헤집고 기어나온다.

이 집은 내가 볼일을 보러 가끔 오가는 길에 서 있다. 10월에 이 집을 주목하지 않고 지나기란 불가능하다. 뜰을 가득 채운 해골, 미이라, 시체, 관짝, 묘비들 때문이다. 밤에는 더욱 그렇다. 가로등도 뜸한 거리라, 이 집의 뜰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해골들은 멀리서도 음산하게 잘 보인다. 빛을 내는 요물은 차라리 낫다. 나무에 매달린 시체들은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옆을 지나갈 때에야 비로소, 바로 옆에 무언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일부러 해 놓은 줄 알면서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10월 31일은 서양에서 오래전부터 챙겨 온 명절인 할로윈이다. 죽음이나 저승을 주 관심사로 하는 특이한 명절 할로윈의 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대체로 여러 문화권의 영향을 받으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 중 켈트족의 늦가을 축제인 소우윈(Samhain)과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풍습에 따르면, 소우윈이 되면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문이 열리고 저승으로 갔던 영혼들이 돌아온다고 한다. 조상의 영혼은 옛 집으로 찾아가지만, 함께 쏟아져 나온 악령들은 사람에게 해코지를 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악령을 속이거나 달래기 위해 그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위장을 하며, 집도 그렇게 꾸몄다고 한다. 이런 전통이 현대의 할로윈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할로윈 때 행해지는 대표적인 풍습은 △ 괴기스러운 의상 입기(와 파티) △ 집집을 돌아다니며 사탕 얻기(trick-or-treat) △ 호박을 깎아 무서운 표정의 등불(잭오 랜턴) 만들기 등이다.

집 주변을 흉흉한 물건들로 장식하는 것도 그렇게 이어진 풍습 중 하나다. 안에 불을 밝힌 잭오 랜턴은 단골 소품이고, 창문에 늑대 인간 포스터를 붙이거나 집 앞뜰에 묘비를 세워두기도 한다. 이런 광경은 공포감보다는, 가을이 한참 깊어졌구나 하는 계절감을 먼저 안겨준다.

그러나 문제의 이 집은 좀 다르다. 앞뜰을 가득 채운 소품들의 규모와 양상이 예사롭지 않다. 땅 위에는 묘비와 해골, 뼈다귀가 빽빽이 차 있고 나무에는 거미줄에 묶인 시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검은 관짝이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고 연기를 뿜으며, 집안 창가에는 거대한 미이라와 해골이 하나씩 서서 밖을 내다본다. 엄청나게 큰 거미 두 마리가 흉흉한 불을 밝히며 집 옆을 돌아 나온다. 마음 약한 사람이라면 밤에 옆을 지나가기가 찜찜할 정도다.

이것은 가히 예술가의 솜씨라 할 만했다. 이렇게 꾸미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는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집 주인은 할로윈을 끔찍이 사랑하거나, 아니면 죽음과 관련된 것에 큰 관심이 있거나, 아니면 사이코패스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특이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집주인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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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길에 무작정 문을 두드려 보기로 하였으나, 어떤 사람이 나올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설마 칼을 들고 나오지는 않으리라 싶었다. 집 앞에 깔린 해골과 묘비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겨 현관에 이르렀다. 문을 두드리고 좀 기다리자, 인기척이 나더니 사람이 나왔다. <록키 호러 픽쳐 쇼>의 집사 리프 래프 비슷한 이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싶었는데, 문을 연 사람은 60대 여성이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행히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이상하기는커녕, 아주 친절히 대해 주어서 오히려 좀 이상했다. 이 집을 빼곡히 채운 할로윈 장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하루 뒤 찾아오라고 시간을 정해 주었다. 그날 저녁에는 내일 꼭 오라는 확인 이메일까지 보내왔다. 이번에는 영화 <미저리>가 생각났는데, 그러고 보니 이 중년 여성은 캐시 베이츠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실제 벌어진 일을 소재로 하여 만든 영화 <127시간>이 주는 교훈은 ‘어디 갈 때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행선지를 알려두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몇 해 전 내가 사는 곳에서는 사진기자 한 명이 외딴 시골집에 홀로 취재를 갔다가 살해되어 불태워진 적도 있다. 할로윈 장식이 빼곡한 그 집을 다시 찾아가는 날,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이 집의 대강의 주소와 방문 시간을 적은 쪽지를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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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하우스’의 주인으로서 이 모든 장식을 다 디자인하고 설치하고 꾸민 사람은 나를 맞아 준 샌디 와이트다. 그녀는 나를 침대에 묶지는 않았고, 대신 부엌 식탁에 앉히고 할로윈 캔디와 초콜릿을 꺼내 놓았다. 거실에 있던 남편 하비 와이트도 부엌으로 나와 반겨주었다. 두 사람이 이 집의 주인이다.

이 집은 밖뿐 아니라 집안도 온통 할로윈이었다. 작은 할로윈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싶었다. 부엌과 거실 군데군데에 잘린 머리, 손, 발, 안구 따위가 피를 철철 흘리며 얹혀 있었다. 각종 재질로 만들어진 호박들은 몇 개인지 세기도 어려웠다. 밖에서 보이던 창가의 미이라와 해골은 가까이서 보니 훨씬 위압적이었다. 이런 장식들은 저마다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대부분 소리에 반응하는 전원 장치가 달려 있어서, 손뼉이라도 한 번 치면 집안이 온통 비명과 음산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식탁 위에는 와인이 두 병 있었는데, 각기 뱀파이어와 드라큘라 레이블이 붙어 있었다. 물론 레드 와인이다.

이렇게 집 안팎을 할로윈 장식품으로 꾸미는 일은 전적으로 부인 샌디의 몫이다. 그녀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거의 손을 보태지 않는다. 나무에 실물 크기의 시체를 매달거나 전깃줄을 이어 설치하는 작업은 남편이 도와줄 만도 한데, 하비는 상자를 날라주기만 한다. 상자의 숫자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남편은 그 정도도 큰 품앗이라고 주장했다.

이 집 안팎을 채우고 있는 할로윈 장식품의 수는 대체 몇이나 될까. 주인도 모른다. 샌디 와이트는 “개수는 모르겠고, 상자로 치면 30개 정도 된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남편은 그보다 수가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엄청난 양의 물품은 1년 중 11개월은 창고에서 잠잔다. 세상에 나오는 것은 10월 한 달 동안만이다.

장식품은 직접 만든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할로윈 전문 매장에서 산 것들이다. 샌디는 내게 할로윈 쇼핑몰 웹사이트 두어 개를 가르쳐 주었다. 시즌이 끝난 11월 초에 사면 훨씬 싸다는 팁도 알려 주었다. 할로윈은 내년에도 계속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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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 특히 미국에서 전통 명절은 모두 상업화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명절 대목마다 관련 업계는 온갖 전략을 총동원해서 명절 특수를 타고 매출을 늘리려 애쓴다. 덕분에 명절과 쇼핑은 서로 뗄 수 없는 말이 되었고, 돈을 쓰고 소비를 하는 것으로 명절치레를 하는 일이 우리 시대의 관습이 됐다.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명절이 다가오는 낌새는 온갖 매장에서 날아오는 광고 전단지를 보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할로윈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이 명절은 가족이 모인다거나 하는 의미가 약하고, 일정한 상품(장식품, 의상, 사탕이나 초콜렛 등)을 구입해야 즐길 수 있는 성격이어서 유달리 그 소비성이 강하다. 미국에서 할로윈 관련 매출은 해마다 꾸준히 느는 추세다. 미국유통협회는 올해 미국 소비자가 할로윈을 준비하고 즐기는 데 80억 달러(8조8천억 원) 이상을 쓸 것으로 예상했다.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예산보다 큰 금액이다. 이 협회 조사에서, 어떤 형태로든 할로윈 명절을 쇠겠다고 말한 사람은 전체의 70%에 이르렀다. 이들은 장식품, 의상, 호박, 사탕을 사는 데 1인당 80달러 가까이 쓸 것으로 추산되었다. 작년에는 72달러 수준이었다. 소비성이 강한 할로윈 행사를 보도하는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 제목은 ‘무서운 할로윈, 소비도 무섭다’였다. 이 기사에서 유통협회 회장은, 사람들이 두 달 전부터 할로윈을 준비하고 있으며 할로윈은 가장 빨리 성장하고 확산되는 명절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매장에 진열된 할로윈 관련 상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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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 와이트가 <미저리>의 캐시 베이츠와는 다르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나는 긴장을 풀고 좀더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왜 집을 할로윈 박물관처럼 꾸미는 것일까. 무슨 생각으로 시체를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고 집안 곳곳에 끔찍한 손, 발 따위를 늘어놓는 것일까. 이것은 어리석은 질문일 것이다. 좋아서 하는 일에는 따로 이유를 달 수 없기 때문이다. 샌디는 “이건 그냥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지 않냐?” 하고 나에게 반문했다. 옆의 남편은 “이 사람은 마음 속에 애가 하나 들어 있어.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샌디는 남들이 흔히 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은 하지 않는데, 그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샌디가 할로윈 장식에 열중하는 이유를 조금 다른 데서 읽어낼 수 있었다. 그녀가 가면 20여 개로 가득 찬 상자를 열어 보였을 때였다. 샌디는 가면을 하나씩 꺼내 직접 써보이며 설명해 주었는데, 그 중에는 <스타워즈>의 요다 가면도 포함되어 있었다. 콧잔등 부분이 해어져서 구멍이 나 있었는데, 소재나 낡은 모습으로 보아 상당히 연원이 있는 가면 같았다. 무엇보다, 부부 두 사람 사는 집에 가면 20여 개가 필요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알고보니 이 가면들은 지금은 어른이 되어 따로 살고 있는 이 부부의 세 아이가 할로윈 때 사탕을 얻으러 나가며 썼던 것이었다.

가면만이 아니었다. 집 안팎에 있는 장식품 중 많은 수가 아이들이 할로윈 때 갖고 놀던 것이거나, 그들과 함께 뜰을 꾸밀 때 쓰던 것이었다. 샌디는 이런저런 장식품을 설명하며 자녀들과 얽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장성하여 출가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해마다 이렇게 할로윈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 할로윈 꾸미기를 시작했냐고 물었을 때,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30년은 되지 않았을까 하고 대답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일이었던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물품이라고 말하며 포옹한 ‘미스터 머미'(창가의 거대한 미이라)는, 지금은 스물 일곱 살인 막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식품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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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미국이라도 주에 따라, 또 도시에 따라 규정이 다를 수 있지만, 와이트 내외가 사는 곳에서는 자기 집 뜰을 자기 마음대로 꾸미는 것은 완전히 합법적인 일이다. 지각없이 남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증오 메시지를 심어 둔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할로윈 장식이 아무리 뻑적지근하다 하더라도 자기 영역인 이상 문제는 없다. 그래도 옆집 마당에 시체가 주렁주렁하면 불편해하는 이웃도 있지 않을까.

이것을 유유상종으로 설명해야 할지, 아니면 미국식 개인주의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샌디의 대답은 ‘이웃은 별로 상관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집 장식을 함께 즐긴다’는 것이었다. 동네에서 샌디는 ‘할로윈 레이디’로 불린다고 한다. 9월 말이 되면 왜 빨리 장식을 시작하지 않느냐는 독촉도 받는다. 하긴 와이트 부부가 이 집에서 살아온 것이 30년 이상이고 그 기간의 할로윈 때마다 이 집 뜰은 공동묘지가 되었을 테니, 설령 마뜩잖게 생각하는 이웃이 있더라도 익숙해지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샌디를 만나기 며칠 전 저녁에, 나는 이 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잠시 지켜 본 적이 있다. 가끔 오가는 차들이 이 집 앞을 지날 때, 차 뒤에는 거의 예외 없이 브레이크 등이 켜졌다. 아예 차를 세우고 잠시 감상하다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 집 뜰을 채우고 있는 것은 분명한 설치 미술이고, 샌디 와이트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조형물로 형상화하는 당당한 아티스트였다.

[덧붙임]

할로윈 이틀 뒤인 11월2일에 와이트 부부는 이메일을 한 통 보내 왔다. 할로윈 저녁에 이 집을 찾아온 아이들이 345명 이상이었으며, 지역 소방서에서 소방관들이 불자동차를 끌고 나와서 이 집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캔디를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 날 저녁은 정말 완벽했으며 우리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정 시각: 2012년 11월 3일 오전 3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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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허광준(deulpul)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들풀넷 운영자 / 연구 및 강의 노동자, 매체 비평가, 콘텐츠 생산자 / 들풀미디어아카데미 대표 / 과거에 [(원)시사저널] [포린 폴리시(한국어판)] [미디어 미래] [미디어 오늘] 등에서 기자, 편집위원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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